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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폐지당' 당원입니다 [4.13 총선 인권올리고 가이드 ④] 소수자도 함께 살기 위해 '폐지'를 외치다
지난 10일 오후, 서울특별시청 바스락홀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정당은 아니지만, 기존 정당이 하지 않는 소수자의 목소리를 대변하겠다는 '장애 등급제‧부양 의무제 폐지당' 창당 대회가 열렸기 때문입니다. 당명부터 범상치 않은 느낌을 주는 폐지당은 장애 등급제와 부양 의무제뿐만 아니라 이 땅에 모든 차별과 억압을 폐지하기 위해 다양한 비례대표까지 선출했습니다. 장애 등급제 폐지 후보, 부양 의무제 폐지, 탈 시설(시설 폐지) 후보, 성 소수자 차별 폐지 후보, 용산 참사·국가 폭력 책임자 처벌 후보, 맘 편히 장사하는 상인들의 후보까지 이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 이야기들이 대회 내내 들려 왔습니다. 무엇이 이렇게 총선을 앞두고 '당'이라는 매개를 통해서 모이게 만들었을까요?

2012년 8월 21일부터 지금까지 광화문 지하도 한 구석엔 1일 현재까지 1321일 동안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이 농성을 하고 있습니다.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함께 하는 것을 억누르는 장애 등급제·부양 의무제를 폐지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3년 반이 넘는 시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농성장을 지키고 있습니다.

장애인 당사자들의 필요성과 상황에 따라 복지를 주는 것이 아니라 단지 신체적인 기준에 따라 등급을 매기는 장애 등급제는 한국에서만 남아 있는 악질적인 제도입니다. 혼자서는 거동도 할 수 없는 상황임에도 장애 등급이 낮게 판정된다면 활동 보조 서비스를 받을 수 없습니다. 장애인 당사자의 기준이 아닌 제공자의 기준으로 장애인에게 등급을 매기는 이 제도는 장애인이 사회 구성원으로 살 수 있는 가능성을 차단하는 억압의 장치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부양 의무제는 또 어떻습니까? '생활 능력이 없는 사람을 돌본다'는 부양이란 사전적 단어를 가장 가난한 이들의 가족에게 강제하는 것이 바로 부양 의무제입니다. 장애인이나 가난한 이들이 자립해서 살아가기 위해 기초 생활 수급비를 받으려 할 때, 가족이 경제 능력이 있으면 기초 생활 수급비를 주지 않겠다는 것이 부양 의무제의 핵심입니다. 그 가족과 떨어져 살더라도, 오랜 세월 교류가 없더라도 부양 의무제는 이런 것을 고려하지 않습니다. 복지의 책임을 국가가 하지 않겠다고 가족에게 떠넘기는 이 제도는 계속해서 가난을 세습하게 만드는 장치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 지난달 18일 오후 노원구 서울북부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열린 발달 장애 유권자 대상 모의 체험 투표에서 참가자들이 투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두 '복지 아닌 복지' 때문에 복지를 받아야 할 장애인과 가난한 이와 같은 소수자 계층이 피해 입고 고통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상황 속에서 끊임없이 비극의 소리들이 들리고 있습니다.

재작년 이맘때쯤, 장애인 송국현 님이 화재 속에 사망했습니다. 거동이 어려워서 활동 보조가 필요했던 송국현 님은 장애 등급이 3급이었기 때문에 활동보조를 이용할 수 없었고, 계속해서 국민연금공단에 항의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습니다. 결국, 장애 등급제 때문에 송국현 님은 화마 속에 장애인 활동 보조는 물론 자립 생활의 꿈마저 접어야 했습니다. 재작년 2월 복지 사각지대에 처한 세 모녀가 최후의 선택은 목숨을 스스로 끊는 것이었다는 것을 보여 준 비극적인 사건입니다. 작년엔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들은 자신의 사망 후 혼자 남겨질 자녀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심지어는 자녀를 살해하는 뉴스가 4건이나 크게 보도됐습니다.

문제는 이 비극이 과거형이 아니라 두 제도가 남아 있는 이상 계속해서 일어날 수 있다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벌써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울산에서 지적 장애인과 아버지가 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는 씁쓸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광화문 농성이 시작할 때 즈음 19대 국회가 시작했고, 19대 국회가 마무리되고 20대 국회가 시작되는 지금까지도 장애인과 가난한 이들의 외침은 계속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근 4년 동안 국회에 있는 높으신 분들은 과연 이 문제를 진지하게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을까요?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 시절 폐지하겠다고 한 장애 등급제는 중경 단순화 시범 사업으로 바뀌어서 기존 1~3급을 중증으로, 4~6급을 경증으로 나눠서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얘기합니다. 장애 등급제의 근본적인 문제인 장애 등급에 대한 근본적 해결과 폐지 없이 숫자로 된 등급을 중‧경증으로 바꿔 놓고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입니다.

지난해 7월 복지 사각지대 해소를 목적으로 시행된 개정기초생활보장제도 맞춤형 개별 급여는 사각지대의 주범 부양 의무자 기준은 그대로 유지한 채 빈곤층을 기만하는 개정을 강행했습니다. 정부는 부양 의무자 기준으로 인한 사각지대 117만 명 중 10분의 1 수준인 12만 명의 신규 수급 발굴을 예정했습니다. 하지만 부양 의무자 기준의 전면 폐지가 아닌 이상 사각지대 해소 효과가 없다는 것은 정부의 보고서에서도 드러난 사실입니다. 20대 국회의원에 출마하겠다는 정당과 후보들의 목소리를 들으려 해도, 공약보다는 그저 공천 다툼이나 국회의원 자리 다툼만 할 뿐 정책은 실종되고 있는 환멸스러운 모습만 보게 됩니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폐지당이 만들어졌습니다. 기존 주류 정당들이 선거 기간에도 제대로 챙기지 않는 장애인과 가난한 이들을 비롯한 사회의 소수자들을 위한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 만들어졌습니다. 기존 정당들이 제대로 된 사회 소수자들을 위한 정책과 대안을 마련하라고, 그 내용으로 정치를 하라고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 목소리에 다른 사회적 소수자의 목소리들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성 소수자 혐오를 멈출 사회를 만들어 달라고, 집 주인·땅 주인 중심이 아닌 세입자들이 맘 편히 장사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달라고, 용산참사와 같은 국가폭력의 책임자가 처벌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달라고, 장애인들이 시설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닌 자립해서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달라고,,, 그렇게 폐지당을 통해서 장애 등급제·부양 의무제 뿐만 아니라 사회의 차별과 소외, 불합리에 대항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뭉쳤습니다. 그리고 정당이 하지 않는 당 활동을 선거 기간 동안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난 21일, 30일엔 서울 도심 곳곳에서 아침 선전전을 하며 우리의 목소리를 알렸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혼탁하고, 정책은 보이지 않는 20대 총선 선거 기간입니다. 차악에 대한 구분도 희미한 요즘, 소외받는 사람들이 한 데 모여 소외와 차별을 폐지하라며 목소리 내고 있습니다. 사회의 약자, 소수자들을 막는 모든 제약들을 폐지시킬 폐지당이 선거 기간 동안 이 사회를 살아가는 대중들에게 투표 이상의 의미 있는 울림과 변화를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

규니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는 폐지당 준비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4.13총선 인권올리고 가이드는

1부 그들이 말하지 않는 투표 이야기

1. 참정권을 박탈당한 사람들, 청소년
2. 투표하러 가려면 수많은 방해를 넘어가야 하는 사람들, 장애인
3. 투표할 시간이 없는 사람들, 비정규·임시직·아르바이트 노동자
4. 우리나라, 민주주의 국가 맞나요?
5. '표의 주인'을 넘어 '정치의 주인'으로

2부. 차별 내리고 인권 올리고
1. 혐오 내리고 평등 올리고
2. 지역개발 내리고 어울림의 공간 올리고
3. 재벌의 권력 내리고 일하는 사람의 권리 올리고
4. 부양 의무제 내리고 국가 책임 복지 올리고
5. 싸워 이기려는 가짜 안보 내리고 안전하게 살 권리 진짜 안보 올리고

로 구성되어있다.

자세한 내용은 '4.13총선 인권올리고 가이드'(☞)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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