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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은 신기한 의학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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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은 신기한 의학이 아니다 [김형찬의 동네 한의학] 한의학에 편견을 가진 분들께
"허리가 아프다고 하니 엉뚱하게 손하고 발에 침을 놔서 영 미덥지 않았는데, 신기하게도 오늘은 많이 나아졌어요. 한의학은 참 신비하네요."

"음~, 생명이 신비하다고 표현할 수 있지만, 한의학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몸이 본래 그러므로 일견 신기해 보이는 변화가 일어난 겁니다."

진료하다 보면 침을 맞거나 약을 먹고 난 후 매우 빠르게 건강을 회복하는 분이 있습니다. 그런 경우 환자께서 자주 하는 말씀이 바로 "한의학은 신기하다"는 겁니다. 환자가 회복했으니 좋기는 하죠. 그런데 의문도 듭니다. '진료하면서 몸의 상태와 병증을 나름 성실하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설명했는데 뭐가 신기하다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하지요. 그럴 때면 '환자가 생각하는 한의학이란 도대체 어떤 모습일까?' 하는 고민도 생깁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지 생각해 봤습니다. (크게는 역사적으로 바라봐야겠지만), 먼저 한의학에서 쓰는 용어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자에 기반을 둔 단어가 그러한 것처럼, 한의학에서 일상적으로 쓰는 단어 중 여럿은 한 단어가 여러 의미를 품고 있습니다. 반면 한 가지 현상이나 모습을 서로 다른 말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의미가 통용되던 시대에는 별 무리가 없었겠지만, 짧은 기간에 생활방식이나 교육이 서구를 따라가면서 한의학 용어가 사람들에게 낯설어졌습니다. 뭔지 이해되지 않는 처방으로 인해 눈앞에서 분명한 현상이 일어나니 신기하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지요.

어떤 주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공감하기 위해서는 (그 언어의 문화에 기반을 둔) 같은 말을 써야 하는데, 현재 한의학 언어는 한글일지는 몰라도 현대 문화에 기반을 둔 현대 언어와는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의미를 충분히 살리면서 지금의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말로 표현하는 것은 한의학을 공부하고 연구하는 사람들이 풀어나가야 할 숙제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사람들의 생각도 변했습니다. 동양의 전통적인 것은 (뭔가 있긴 하지만) 과학적이지 않다(동양에는 과학이 없었던 것처럼 이야기되지요)는, 우리 스스로 오리엔탈리즘적 사고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대중이 침과 뜸 그리고 한약과 같은 한의학의 치료법을 오해하게 된 것 같습니다. 마치 우리가 알지 못하는 신비한 작용을 하리라 생각하게 되었지요. 하지만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몸과 마음의 상태를 진단하고, 이에 따라 치료 방식을 정할 때 의사의 능력이나 성향은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의사가 선택하는 치료 수단은 물리적 그리고 화학적 방식으로 우리 몸을 조정한다는 데서 같지요. 물론 단순히 물질적으로(기계론적으로) 환원되지 않는 몸과 마음, 그리고 정신이 상호작용한다고 보는 한의학 고유의 인체관은 존재합니다.

침과 약은 우리 몸이 한쪽으로 치우친 것을 본래 균형 잡힌 상태로 회복하도록 돕는 하나의 방법입니다. 마치 피아노의 도 건반을 누르면 도 소리가 나는 것처럼, 특정한 신호를 보내는 자리(혈이라 부르죠)에 침이나 뜸으로 자극을 주면 그에 상응하는 반응이 우리 몸에서 일어납니다. 그 중간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한의학의 신비화에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기'입니다. 이 '기'의 존재는 지금까지 다양하게 증명되었고, 앞으로 더 분명해질 것입니다.

그럼, 한약은 어떤 것일까요? 많은 사람이 서양의 약은 증상만 다스리고, 한약은 근본을 다스린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한약에도 증상만 다스리는 대증약이 무척 많습니다. 열이 날 때 열을 떨어뜨리고, 아플 때 통증을 가라앉히는 약재와 처방이 풍부하게 존재합니다. 급한 불은 꺼야 하기 때문입니다(이것을 드러난 것을 치료한다고 해서 표치라고 부릅니다). 이와 함께 불을 끄고 난 후 불이 다시 나지 않게 예방하고, 불로 인해 엉망이 된 집을 수리하기 위한 약도 존재합니다(이런 방식을 근본을 치료한다고 해서 본치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양약이 성분 중심으로 접근하는 것과는 달리, 전통적인 한의학의 약초에 대한 접근법은 약초 하나를 하나의 생명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최근에는 많은 약초와 처방이 성분 중심으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약초가 자라는 모습과 환경 고유의 맛과 향, 그리고 몸에 들어갔을 때 반응을 바탕으로 이 약초의 성질과 효능을 규정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필요한 몸의 상태가 되었을 때 그 약초를 쓰지요. 그런데 처방 후 우리 몸의 변화는 딱 떨어지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여러 약초를 함께 씁니다. 마치 전쟁할 때 보병과 기병, 그리고 포병과 보급대를 함께 운영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이런 식으로 건강이란 퍼즐 판을 본래의 모습으로 맞춰주는 것이 한약입니다. 이렇게 보면 전혀 신비할 것이 없지요.

한의학이 타 의학보다 모든 면에서 뛰어나다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다른 의학보다 특별히 신기할 것도 없습니다. 따라서 한의학은 신비화되거나, 종교에 비유되거나, 사라져야 할 구습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사기꾼 아니면 한의학을 제대로 모르는 분일 것입니다). 아직 배우고 연구해야 할 것이 많지만, 제가 환자를 만나면서 경험한 한의학은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의학입니다. 이러한 의학이 과거의 유산으로 치부되지 않고, 현대인과 함께 호흡하고 변화하면서 무엇보다 환자중심 의학으로 발전하길 작은 진료실 안에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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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찬
생각과 삶이 바뀌면 건강도 변화한다는 신념으로 진료실을 찾아온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텃밭 속에 숨은 약초>, <내 몸과 친해지는 생활 한의학>, <50 60 70 한의학> 등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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