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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과의 거리 1.5km…벼랑 끝에 사는 아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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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과의 거리 1.5km…벼랑 끝에 사는 아빠들 [세월호 2주기, 다시 기억 ③] '세월호 인양 감시' 동거차도 1박2일 르포 上

안산보다도 가깝고, 팽목항보다도 가까웠다. 딸 아이가 누워 있던 그곳과 가장 가까운 곳을 더듬거리며 찾아왔더니 벼랑이었다. 그러나 벼랑 끝까지 와도 닿을 수는 없었다. 바다 건너, 아니 무지개 건너야만 사랑하는 딸 아이를 만날 수 있다.

"윤민아…"

딸 아이를 집어삼킨 바다를 보면 정신이 아득해질 만큼 가슴이 일렁이지만, 그래도 제 뺨을 때려서라도 지켜봐야 한다. 저 바다 어딘가, 윤민이의 친구였던, 윤민이의 선생님이었던 이들이 여전히 누워있다. 그리고 윤민이를 비롯한 304명의 죽음을 밝혀줄 진실이 잠겨있다. 세월호를 인양하겠다던, 진실을 인양하겠다던 누군가가 사실은 진실을 은폐하기 위해 또 무슨 일을 꾸미는 것은 아닌지, 아빠는 밤새 두 눈이 새빨개지도록 바라봤다.

▲동거차도 앞 바다 위에 떠 있는 바지선. ⓒ프레시안(최형락)

"이렇게 가까운데, 한 명을 못 구했어요"

지난 11일. 진도 팽목항에서 배로 꼬박 세 시간 반 걸려 도착한 섬의 이름은 동거차도. 말린 미역이 즐비하게 늘어선 해안을 지나 산길의 초입을 밟으니, 나뭇가지에서 휘날리는 노란 리본이 보인다.

노란 이정표를 따라 다시 오르기를 십여 분, 드디어 희고 둥근 막사 두 개가 모습을 드러낸다.

"아이구, 어서와유."
"여기까지 어쩐 일이십니까."

어눌한 말투의 남자와, 약간 까칠한듯한 말투의 남자가 취재진을 반겼다. 세월호 희생자인 단원고 2학년 3반 고(故)김소연 학생의 아버지 김진철 씨와 고(故)박예슬 학생의 아버지 박종범 씨다.

"어라? 손님이 오셨네?"

장난기 가득한 말투의 이 남자는 같은 2학년 3반 희생자 고(故) 최윤민 학생의 아버지 최성용 씨. 뒤늦게 취재진을 맞은 윤민 아빠는 잠시 산 아래에 다녀온 참이었다.

▲동거차도 산 정상에 자리잡은 천막. ⓒ프레시안(최형락)

세 아빠가 동거차도에 들어온 건 지난 8일, 금요일이었다. 단원고 희생자 가족들은 매주 금요일마다 한 반씩 돌아가며 이곳을 찾는다. 세월호 2주기를 일 주일여 앞둔 그 주 당번은 3반이었고, 이번엔 소연 아빠, 예슬 아빠, 윤민 아빠가 자원했다. 소연 아빠와 윤민 아빠는 벌써 이번이 세 번째였다.

"여기 와서 하는 일이요? 계속, 하루종일 저것만 쳐다보는 거예요."

윤민 아빠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그 끝에 대형 선박과 크레인이 보였다. 세월호 인양 작업을 맡은 인양 업체 상하이샐비지의 바지선이었다.

"봐, 크레인이랑 배 모양이 또렷이 보이잖아요. 그게 보일 정도면 얼마나 가깝다는 거야."

이곳에서 바지선까지 거리는 1.5킬로미터. 손을 뻗으면 잡힐 듯 지척이었다.

"이렇게 가까운데, 한 명을 못 구했어요. 나오라고만 말만 했어도 됐는데. 그때 애들 다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었거든. 그때 애들 구했으면, 우리가 이렇게까지 할 필요 없잖아. 바다만 보고 있으면 막 울화가 치밀어."

▲망원렌즈를 통해 바지선 인양 작업을 지켜보는 예슬이 아빠. ⓒ프레시안(최형락)

"우리가 속는 게 한두번이야?"

심각한 표정으로 바다를 응시하던 윤민 아빠는 "더 자세히 보고 싶으면 들어와"라며 비닐 천막을 걷어 젖혔다.

천막 입구에는 기다란 망원렌즈가 장착된 카메라 한 대가 세워져 있었다. 천막 안에서도 바다를 들여다볼 수 있도록, 천막에 동그랗게 렌즈 부분만 구멍이 뚫려 있었다. 윤민 아빠는 카메라 앞에 놓인 텐트용 의자에 털썩 앉아 바지선이 클로즈업 된 LCD 화면을 보여줬다.

"가운데가 바지선, 저 오른쪽은 유실 방지 펜스 작업하는 데. 오늘은 보령호(한국 바지선)도 와 있네."

윤민 아빠는 LCD 화면을 한참을 들여다봤다. 그러나 화면 속 모습은 정지된 것처럼 잠잠했다.

"도대체 뭣 때문인지 작업을 밤에만 한단 말야. 멀쩡한 대낮에 할 것이지. 말로는 정조기 때 맞추느라 그런 거라는데, 어디 믿을 수가 있어야지. 우리가 속는 게 한두 번이야? 작업하는 거 한 번만 보게 해달라고 해도 방해된다고 오지 말라고 하고. 대체 뭘 하는지 부모는 알아야 할 거 아니에요.

예전에 하도 부모들이 속이 폭폭하니까 여기 주민분 배를 얻어 타고서 바지선 근처까지 갔단 말야. 그랬더니 못 오게 하고, 우리 태워줬던 분은 불이익 받는다는 얘기나 듣고."

▲카메라 LCD 화면에 확대되어 잡힌 인양 작업 모습. ⓒ프레시안(최형락)

윤민 아빠는 다시 천막을 걷고 나갔다. 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찾았다. 오후 들어서며 바람이 세졌다. 담뱃불도 잘 붙지 않았다.

"바람이 이렇게 불어가지고는 오늘은 영 작업을 못 하겠는데?"

고작 담배 한 개비가 타들어간 사이, 바람이 더 거세졌다. 밖에 세워 둔 철제 간이 의자가 기우뚱하더니 뒤로 넘어갔다.

"음? 쟤네 뭘 하는 것 같은데?" 하더니 윤민 아빠는 다시금 천막을 열고 들어가 다시 LCD 화면을 들여다봤다.

"결국 크레인 접었네. 하기야 이렇게 바람이 심하면 위험해서 안 돼. 오늘은 버튼 누를 일 없겠어."

평상시에는 카메라를 STBY(대기) 상태로 놓다가, 조금의 움직임이라도 보이면 REC(녹화) 버튼을 누르는데, 오늘은 별일 없을 테니 녹화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였다. 의자 오른쪽에는 카메라 조작법이 적힌 종이가 붙여있었다.

"여기 온 아빠들 다 렌즈를 하도 보니까, 이제는 카메라를 대충 만질 줄 알아요. 세월호 가족들은 이런 것도 배워야 해."

윤민 아빠는 의자에서 일어나 "손님이 왔으니 제대로 저녁 준비를 해볼까?"라며 천막 안쪽으로 들어갔다.

▲카메라 작동법이 적힌 종이. ⓒ프레시안(최형락)


비‧바람 들이치는 비닐 천막에서 버틴 7개월

이곳 텐트는 총 3동, 그 중 튼튼한 막사 두 동은 최근에 성미산학교 학생들과 전문가들의 도움으로 지어졌고, 그 이전까진 이 비닐 천막만 있었다. 카메라가 놓인 입구만 엉성한 게 아니었다. 천막 안쪽 천, 모기장이 얼기설기 붙어 있었고, 가느다란 철제 기둥은 이것들을 위태롭게 지탱하고 있었다. 천막이 얼마나 부실한지를 보여주듯, 곳곳에 셀로판지 테이프가 걸려있었다. 아이스박스, 가스레인지, 각종 식자재들 등은 텐트 주변에 어지러이 널려 있었다.

지난해 9월, 유가족들은 여기에 텐트를 치고 직접 전기도 끌어왔다. 바람 통하고, 비 들이치고, 눈 흘러내리는 이곳에서 벌써 7개월여를 지냈다.

"지금은 새 천막이 생겨서 다행이지. 가족들 힘들까 봐 마음 써주시는 분들 덕분에 그래도 우리가 이렇게 버티고 있는 거 아니겠어요."

▲비닐 천막 내부 모습. 윤민 아빠가 밥을 안치기 위해 밥통을 열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냄비에 쌀과 양파, 콩나물 등을 주섬주섬 넣은 뒤 산을 내려가는 길, 윤민 아빠는 "특히 고마운 분이 있다"고 했다. 지금도 윤민 아빠는 그분에게 신세를 지러 가는 길이다. 그의 발걸음이 동네를 향했다.

그는 "이 집"이라고 하더니, 마당에 들어가 수도꼭지를 틀고 쌀을 씻었다.

"이 집 아저씨가 바다에 떠내려가던 지성이를 건져줬어요. 그것만 해도 너무나 고마운데, 이후로도 유가족들 신경을 정말 많이 써줘요. 설거지하고 짐도 갖다 놓으라고 마당 내 주고, 창고도 열어줘요. 이런 분들이 복을 받아야 할 텐데…"

마당에서 나는 부산스러운 소리가 들렸는지, 집 안에서 할머니가 나왔다. 윤민 아빠에게 가볍게 눈짓으로 인사한 그는 도와줄 게 없느냐고 했다. 콩나물 씻고 넣을 위생봉투 한 장만 달라 부탁했더니, 금세 봉투 몇 장을 들고 나왔다.

"또 올게요."
"응, 그랴."

윤민 아빠는 "마음 같아선 그 아저씨를 소개해주고 인터뷰도 주선해주고 싶은데, 오히려 안 좋은 일을 당할까 봐 그럴 수 없다"고 했다. 세월호 유가족들을 돕는 사람들은 모두 어떤 식으로든 불이익을 받는다고 했다.

"수법이 뻔하잖아요. 사람들이 외면하게 만들어서 우리를 고립시키려는 거지." (계속)

▲동거차도 천막으로 올라가는 산길 곳곳을 수놓은 노란 리본 이정표. ⓒ프레시안(최형락)

<세월호 2주기, 다시 기억>

(1) "세월호 수업, 듣고 싶은데 왜 막나요?"

(2) "세월호 2년, 왜 아직도 살려달라 외쳐야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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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어리
매일 어리버리, 좌충우돌 성장기를 쓰는 씩씩한 기자입니다. 간첩 조작 사건의 유우성, 일본군 ‘위안부’ 여성, 외주 업체 PD, 소방 공무원, 세월호 유가족 등 다양한 취재원들과의 만남 속에서 저는 오늘도 좋은 기자, 좋은 어른이 되는 법을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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