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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한-미-중 '동상이몽', 정답은 6자 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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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한-미-중 '동상이몽', 정답은 6자 회담 [이수훈 칼럼] '도발→제재→반발→추가 도발'의 악순환 깨려면

제재 정책의 딜레마

북한이 올해 1월 6일 감행한 제4차 핵 실험과 2월 7일 장거리 로켓 발사 시험에 대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3월 2일 또 하나의 대북 결의인 2270호를 채택했다. 이 결의의 전문 서두에는 이전에 북핵과 장거리 미사일 도발에 대응해 유엔 안보리가 채택한 결의들이 나열되어 있다.

1993년 북한이 핵 확산 금지 조약(NPT) 탈퇴를 선언한 데 대한 결의 825호부터 도합 7개의 결의들이 망라되어 있다. 2006년 제1차 핵 실험에 대한 결의 1718호, 2009년 제2차 핵 실험에 대한 결의, 2013년 제3차 핵 실험에 대한 결의 등도 포함돼있다. 이에 더해 3건의 의장 성명도 언급되어 있다.

2270호가 역대 가장 고강도이자 포괄적인 제재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이전 결의들이 채택될 때에도 제재 정책의 주체들은 예외없이 "고강도"라 말했고, 북한이 백기를 들 것이라 주장해왔다. 그러나 현실은 그 정반대로 전개되어 왔다. 도발 행위를 할 때마다 엄중한 제재를 가했지만 북한은 굴복은커녕 도리어 반발하며 보란 듯이 또 다른 도발 행동을 계속해왔다.

즉, 제재가 통하지 않고 제재 정책이 성공할 가능성이 낮다는 점이 생생하게 입증됐다. 제재 정책의 역사가 결코 짧지 않다는 사실을 미루어볼 때 제재 정책의 전략가들도 제재가 통하지 않는다는 '불편한 진실'을 모를 리 없다.

따라서 유엔의 대북 제재는 이제 다분히 관성적 행위라는 인상을 준다. 북핵 문제라는 고도의 난제를 해결하겠다는 핵심 유관국들의 정치적 의지가 부족한 가운데 도발에 대한 대응 조치를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표명하는 하나의 정치적 행동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 사회의 대북 제재 정책은 비용을 거의 치르지 않고 핵심국들의 전략적 이해관계를 적절히 배합하여 언설로 표명하면 되는 정치적 행위다. 동북아의 복잡한 지정학적 유동성과 결부되어 있는 구조적 문제를 두고 아직도 '전략적 결정'을 갖추지 못한 미국이 그럭 저럭 상황을 끌고 가는(muddling through) 전략의 결과인 측면도 없지 않다.

미국이 채택한 독자 대북 제재 강화법이나 대통령의 '행정 명령'은 자신이 선택하기에 가장 손쉬운 대북 징벌 조치다. 북한 도발에 대해 행동을 취하지 않을 수 없고, 정작 그 효과는 의문 투성이에 빠진 것이 제재 정책이다. 이는 제재 정책의 딜레마라 할 수 있다. '도발→제재→반발→추가 도발→추가 제재'의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 지난 3월 2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 유엔 본부에서 열린 유엔 안보리 이사회에서 이사국들이 만장일치로 대북 제재 결의안을 채택했다. ⓒAP=연합뉴스

중국의 역할과 동북아 외교

이번 북핵 및 장거리 로켓 사태에서 중국의 입장과 역할이 단연 돋보였다. 다 죽어가던 6자 회담과 사문화되다시피한 '9.19 공동 성명'이 일단 숨통을 유지하게 된 것도 의장국 중국의 외교 때문이었다.

중국은 제재의 불가피성에 동의하면서도 북한에 대한 우방국으로서의 배려도 대개 관철시켰다. 중국은 시종일관 북한 민생을 저해하는 내용이 들어가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견지하며 이를 결의 제48항에 관철시켰고, 석유공급 중단과 같은 특단의 조치는 수용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중국은 1월 6일 핵 실험이 나자마자 바로 자신의 북핵 해결 3원칙, 즉 한반도 비핵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유지, 대화(6자 회담)를 통한 해결을 상기시켰다. 한국 정부가 핵 실험에 대해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하고, 장거리 로켓 발사 후 개성공단 폐쇄 조치를 하여 대북 초강경 대결 정책으로 선회한 것과 대비되는 대응이었다.

1월 27일 왕이(王毅) 외교부장은 베이징(北京)에서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과 회담을 가진 후 기자회견에서 "제재는 목적이 아니라 북한을 대화로 이끄는 것"이라면서 '엄격한 제재'를 요구한 미국과 분명한 입장차를 보였다. 중국에 대한 '압박 카드'라면서 박근혜 대통령이 1월 13일 '대국민 담화'에서 꺼낸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의 한반도 배치 문제에 대해서도 중국의 안보 이익에 반한다는 점을 명백하게 하였다.

사드 반대에 관한 중국의 단호한 입장은 이후 <환구시보>를 위시한 관변 언론 매체에서 왕성하게 제기되었고, 왕이 외교부장이 워싱턴 방문에서 가진 여러 회담과 3월 17일 모스크바 방문에서 가진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의 회담에서도 재확인됐다.

일종의 북핵 사태 셔틀 외교를 펼치고 베이징으로 돌아온 왕이 부장은 3월 8일 전국인민대표대회 도중 기자회견을 열고 중국의 입장을 재정리하는 기회를 가졌다. 3월 7일부터 한국과 미국이 대규모 '키리졸브' 연합 군사훈련에 돌입한 나머지 북한과 거친 말들을 교환하면서 그의 말대로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화약 냄새가 감도는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즈음에, "단순히 제재와 압력을 맹신하는 것은 한반도의 미래에 대해 무책임한 태도"라 일갈했다.

그는 또 "이번 결의에는 6자 회담 재개 지지와 각국에 정세 긴장을 격화시키는 행동을 취하지 말라는 촉구도 포함됐다"고 환기시킨 뒤 "이런 내용이 전면적이고 완전하게 이행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제재 일변도로 치닫는 한국과 미국 정부에 대한 대꾸였던 셈이다.

이번 사태를 거치면서 새롭게 수면 위로 떠오른 쟁점 역시 왕이 부장이 제안한 평화 협정 논의일 것이다. 베이징에서 '비핵화-평화 협정' 병행 추진을 제안한 뒤, 그는 2월 23일 워싱턴에서 존 케리 국무장관과의 회담 후 열린 기자회견에서도 "안보리 결의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며 "대화의 트랙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한 뒤 "비핵화 협상과 평화 협정 논의를 병행해 6자 회담을 재개하는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 말했다. 미국에 대해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나서라는 압박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그는 전인대 기자회견에서도 "비핵화는 국제 사회의 확고부동한 목표이며 정전 협정의 평화 협정 전환은 북한의 합리적인 우려와 관심 사항"이라면서 ‘비핵화-평화 협정’ 병행 추진을 거듭 주장했다. 이 제안이 비록 중장기적 성격을 갖는다 하더라도 우리는 대비에 나서야 할 것이다.

한-미-중 3국의 전략적 불일치

여러 분석가들이 지적하듯이 안보리 결의 2270호는 중국과 미국의 담판 결과다. 특히 앞서 분석했듯이 중국의 주도성과 활발한 외교 행보가 큰 영향을 미쳤다. 한국 정부 외교 팀은 "뭔가 하고 있다"는 시늉을 내는데 그친 듯한 인상을 갖게 하였다. 한국 정부는 지금 제재 일변도로 일관하고 있을뿐더러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북한이 핵을 포기할 때까지 "강력하고 실효적인 모든 제재 조치를 취해 나갈 것"이라 천명했다. 고위 외교 안보 팀 인사들도 "지금은 제재에만 치중할 때"라고 제재를 강조하고 있다.

이 결과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철회되었고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도 치명타를 입었다. 북한이 핵포기를 하지 않으면 남북 관계는 한발자국도 앞으로 나갈 수 없게 된 정세로 되돌아가버렸다. 한국 정부의 목표는 제재를 통한 북한 핵 포기다. 혹은 대통령의 말대로라면 제재를 못 견뎌 "자멸"하는 시나리오도 있다.

중국은 한국 정부와 입장이 상당히 다르다. 왕이 부장의 말대로 "개방적인 태도"를 갖고 온갖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대화를 통해 결의가 "전면적이고 완전하게 이행되는 것"을 목표를 삼고 있다.

그 결의에서 중국이 주목하는 항들은 49항과 50항이라 할 수 있는데, 49항에는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 "평화적, 외교적, 정치적 해결",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 노력과 긴장 고조 행동의 금지" 등의 내용이 들어 있다. 중국이 평소 즐겨 사용해오던 용어들로 표현되어 있다.

50항에는 "6자 회담 지지 및 재개의 촉구", "9.19 공동 성명 지지"라는 중국의 어젠다가 들어 있다. 한국 정부가 역점을 두고 있는 동북아 외교 혹은 북핵 외교와는 지향점이 판이한 셈이다.

미국의 기본적 입장은 '전략적 인내' 정책을 벗어나지 않고 있다. 아직도 북한의 핵포기를 향한 선행동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세한 변화 조짐이 보이기도 한다. 2월 23일 왕이 부장-케리 장관 회담 후에 미 국무부의 담화들은 평화 협정 논의에 대해서 다소 개방적인 태도를 보여주고 있음을 시사하기도 한다.

그리고 실제 <월스트리트저널(WSJ)>의 2월 21일자 기사, 즉 미국과 북한이 제4차 핵 실험 직전에 평화 협정 논의에 대한 합의를 했다는 충격적인 보도는, 미국이 자신의 한반도 전략 전반을 한국 정부와 공유하는지 의구심을 자아낼 정도였다.

특히나 미국이 이번 사태를 거치면서 북핵 문제 해결을 더욱 중국에게 아웃소싱했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에 한미공조만으로 접근해서는 미흡하다. 2003년 6자 회담의 형성기부터 미국은 이라크 전쟁에 역량을 집중하기 위해 북핵 문제를 중국에 아웃소싱했다는 분석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미국이 동맹인 한국의 안보를 경시하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전략적 이해관계를 희생하면서까지 한미 동맹을 가져가지는 않을 것이다. 동맹을 맹신하는 것도 경계해야 할 일이며, 중국과의 "협력 외교"를 배합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결의 2270호 역시 이전 결의와 마찬가지로 제재 정책의 딜레마를 내재하고 있으며, 일정한 한계를 갖고 있다. 특히 한-미-중 3국간 전략적 목표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 결의 이행에 장애가 될 공산이 크다. 중국이 진심어린 제재 공조를 이행할 것인지도 미지수다. 따라서 실효성이 의문이다.

▲ 존 케리(오른쪽) 미국 국무 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지난 2월 23일(현지 시각) 미국 워싱턴 D.C.에 위치한 국무부 청사에서 회담을 가진 후 기자회견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6자 회담 재개해야

한국 정부와 우리 언론의 관심은 온통 대북 제재에 두어져 있다. 제재에 '올인'한 것이다. 제재를 통해 북한이 어려움을 못 견딘 나머지 핵을 포기하고 국제 사회의 정상적 일원이 될 때까지 일관하겠다는 태세다. 이 태세가 성공을 거두었으면 하는 바램이 간절하다. 그러나 그것이 성공을 거둘 확률은 높지 않다.

오히려 이 태세는 북한을 심하게 자극할 뿐더러 자칫 중국 경제의 경착륙 문제 등 내부적 고민에 직면한 중국 정부와 충돌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중국과의 긴밀한 공조 해법을 찾아내야 할 필요성이 더욱 높아졌다.

북한은 자신의 요구가 적절하게 수용되지 않는 한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이번에 중국이 제안한 '비핵화-평화협정' 병행 추진은 그런 요구의 하나에 해당된다. 북미 관계 정상화와 북일 관계 정상화도 일어나야 하고, 경제지원 및 에너지 지원책도 겸비되어야 한다.

즉, 이번 결의 50항에 명시되어 있듯이 '9.19 공동 성명'에 합의된 여러 과제들이 포괄적이고도 상호조율된 방식으로 해결될 때 동시 병행적으로 비핵화도 이루어지게 되어 있다. 이는 외교력과 정치력이 발휘될 때 현실 가능성의 영역으로 들어오는 일인데, 그 첫 출발은 일단 6자 회담을 재개하는 것이다. 달리 해법이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어떻게 6자 회담 재개의 진입로를 마련하는가이다. 북한의 입장도 감안되어야겠지만 중국 측에 북한 설득 역할을 맡긴다고 했을 때 한-미-중 3국의 전략적 공조틀을 마련하는 것이 필수다. 현재로서 '한반도 비핵화'는 장기적 목표로 설정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북핵을 지금과 같은 '사실상의 방치'가 아니라 일정한 국제적 관리의 틀속으로 갖다놓는 것을 실질적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이다.

비록 2012년 4월 북한의 미사일 도발로 인해 백지화됐지만 2012년 초 북미 간 '2.29 합의'를 재생시키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 북측의 핵 및 미사일 시험 유예 대 미국측 지원의 맞교환이 핵심이었는데, 동일한 내용이 될 수는 없겠지만 기본틀은 과거로부터 참고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북미 간의 일정한 합의에 더해 중국이 중재 역할을 하고 한국도 창의적 제안을 보탠다면 6자 회담 재개의 발판이 되지 않을까?

(위 글은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가 발간하는 <한반도 포커스>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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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훈
경남대학교 이수훈 교수는 참여정부 시절 대통령 직속 동북아시대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습니다. 이후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장을 지냈으며 현재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에서 동북아 정세를 조망하는 '이수훈의 동북아시대'를 연재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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