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끔찍한 지옥도의 경고 "개기면 죽는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끔찍한 지옥도의 경고 "개기면 죽는다!" [저항의 미학 ③] 헤라클레스의 망토를 입을 자신이 있는가?
청춘의 피로 얼룩진 1960년 4.19 혁명부터 2014년 4.16 세월호 참사로 이어지는 4월은 잔인한 달입니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벌어진 피의 학살을 염두에 두면, 5월은 잔혹한 달입니다. 그래서 벚꽃이 흩날리는 봄 햇살이 눈부신 지금 <프레시안>이 여러분에게 잔인한 책을 권합니다.

이번에 권하는 페터 바이스의 <저항의 미학>(탁선미, 남덕현, 홍승용 옮김, 문학과지성사 펴냄)은 출간 자체가 '사건'인 책입니다. 1975년에서 1981년까지 세 권이 잇따라 나온 이 소설은 터키, 프랑스를 제외하고는 미국에서도 1권만 소개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한국어판 <저항의 미학>은 터키를 제외하면, 비유럽권에 최초로 완역된 소설입니다.

도대체 지금 이 시점에 세 명의 독문학자가 마치 투쟁하듯 대한민국에서 이 소설을 번역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소설은 파시즘이 유럽을 휩쓸던 1937년부터 1945년까지를 평범한 스무 살 노동자의 시각으로 재구성하고 있습니다. 이 노동자와 그의 동료는 고민하고, 선택하고, 행동하고, 좌절하고 결국 패배합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습니다. 그리고 더 많은 이들은 배신하고, 은둔하고, 차라리 비겁해지기로 합니다.

어떻습니까? 지금 대한민국의 모습과 참으로 닮지 않았습니까?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열정이 좌절되어가는 슬픈 여정을 페터 바이스는 대담하고 과감하게 그렸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묻습니다. 지금, 당신은 어디에 서 있느냐고 또 무엇을 할 것이냐고?

<프레시안>은 문학과지성사와 함께 <저항의 미학>을 먼저 읽은 분의 독후감을 공개합니다. 세 번째 독후감은 '사랑과 자유의 철학자' 강신주 박사가 썼습니다.

강신주 박사는 강연과 책을 통해 많은 사람과 소통하고 철학적 사유를 나누는 철학자입니다. 동서양 인문학을 종횡하며 끌어올린 인문 정신으로 어떤 외적 억압에도 휘둘리지 않는 힘과 자유, 인간에 대한 사랑을 쓰고 말해 왔다. 지은 책으로 <비상경보기> <강신주의 다상담>(전3권),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 <철학적 시 읽기의 괴로움>, <강신주의 감정수업>, <철학이 필요한 시간>, <철학 vs. 철학>, <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 등이 있습니다.

▲ <저항의 미학>(전3권, 탁선미·남덕현·홍승용 옮김, 문학과지성사 펴냄). ⓒ문학과지성사
"하일만은 랭보를 인용할 것이며, 코피는 <공산당 선언>에 대해 말할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의 소용돌이 속에 한 자리가 비어 있을 테고, 그곳에 사자의 앞발이 누구라도 잡을 수 있게 매달려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아래에서 서로 그만두지 않는 한 그들은 사자 모피에 달린 앞발을 보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채울 어떤 뛰어난 사람도 오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이 유일한 기술을, 그들에게 얹힌 끔찍한 압력을 마침내 치워버릴 수 있게 해줄 동작을, 이처럼 손을 치켜들고 흔드는 동작을 스스로 익혀야 할 것이다."

1500쪽에 육박하는 페터 바이스의 소설 <저항의 미학>은 이렇게 끝난다. 1942년 8월부터 12월 말까지 나치 독일에서 실제로 발생했던 반나치스 지하 투쟁 조직 괴멸 사건을 소재로 바이스가 마지막 남은 생명의 힘을 쏟아 부어 만든 대작이 바로 <저항의 미학>이다.

화자 '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등장인물이 실존 인물이다. '나'의 친구로 등장하는 하일만도, 그리고 코피도 마찬가지다. 하일만과 코피가 반나치스 조직 사건으로 처형되고 난 뒤, '나'는 헛헛하기만 하다. 이제 주변에서는 인간의 자유와 해방을 꿈꾸는 사람들을 찾으려야 찾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항상 하일만과 코피와 함께 활동해온 것은 아니다. 파시즘이 독가스처럼 베를린에 퍼져갈 때, '나'는 두 친구를 떠나 자유와 해방 그리고 억압의 실상을 목도하는 여행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나'에게는 감당해야 할 숙제가 주어진 것이다. 하일만 대신 랭보를 계속 인용해야 하고, 코피 대신 <공산당 선언>을 역설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이스에게 있어 <저항의 미학>은 반드시 완성되어야만 했던 이야기였던 셈이다.

억압적 사회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성관념을 해체하는 자유로운 개인이 필요하다. 하일만이 랭보를 통해 꿈꾸었던 것이다. 또 강력한 역사철학으로 무장한 강고한 연대도 불가피하다. 코피가 마르크스를 통해 꿈꾸었던 것이다. 바이스의 <저항의 미학>은 바로 하일만과 코피 사이, 혹은 하일만과 코피가 손을 맞잡는 곳에 놓여 있다.

노골적이어서 그만큼 야만적이었던 전체주의 파시즘! 인간을 자본보다 열등한 존재로 교묘하게 길들이는 자본주의! 그리고 인간의 자유를 위한다는 거창한 명목으로 가장 강력한 독재를 행사했던 스탈린주의! 이것이 바로 20세기였다. 어느 것 하나 자유로운 개인들의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은 것이 없었고, 어느 것 하나 강고한 연대의 와해를 획책하지 않는 것이 없었다. 이런 교묘한 억압이 아직도 횡행하기에 바이스는 <저항의 미학>에서 억압 체제에 맞서 싸웠던 자들, 그러나 승자에 의해 말소되었던 자들의 육성을 들려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바이스의 마지막 목소리에서 더 중요한 것은 하일만도 코피도 아닌 "사자 모피에 달린 앞발"이란 표현일 것이다. <저항의 미학> 1권 첫 부분에는 '페르가몬 신전 부조'에 대한 '나', 코피 그리고 하일만 사이의 대화가 등장한다. 헬레니즘 시대를 상징하는 이 근사한 부조는 페르가몬 왕조를 꿈꾸던 나치 정권에 의해 베를린으로 옮겨져 전시된다.

ⓒwikimedia.org

바로 이 거대한 전시물을 보면서 세 명의 젊은 혁명가들은 미학과 역사철학을 토론한다. 부조는 고대 그리스 로마 신화를 재현하고 있다. 이 부조에는 제우스를 포함한 올림포스 신들이 반란을 일으킨 거인 족을 살육하는 장면이 역동적으로 새겨져 있다. 하늘과 땅, 혹은 하늘의 자식들과 대지의 자식들 사이의 전쟁이니, 이것은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의 전쟁이었고, 더 구체적으로 말해 정신 노동을 하는 통치자와 육체 노동을 하는 피통치자 사이의 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

전설에 따르면 바로 이때 헤라클레스는 거인 족이 아닌 신편을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세 명의 젊은 혁명가는 이것이 날조된 기록이라고 추론한다. 다른 전설을 보면 헤라클레스는 항상 유한한 존재들, 대지의 자식들 편에 섰던 영웅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가 지배자가 아니라 피지배자의 편에 섰다는 걸 말해준다.

헤라클레스! 그는 민중의 마음에 해방의 희망을 새겨 넣은 영웅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세 사람은 '페르가몬 신전 부조'에서 헤라클레스를 찾으려고 눈을 부라렸던 것이다. 날조된 전설처럼 그가 제우스를 편들고 있는지, 아니면 거인 족과 함께 신들과 맞서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헤라클레스는 부조 어느 부분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화자 '나'는 말한다.

"우리가 발견한 것은 그의 이름 표식과 그가 망토로 둘렀던 사자 가죽의 앞발뿐이었다."

세 명의 젊은 혁명가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궁금해진다. '페르가몬 신전 부조'를 만든 사람이 지배자일 리는 없다. 당연히 부조를 설계하고 직접 돌을 깎았던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헤라클레스를 왜 새기지 않았던 것일까? 또 헤라클레스를 새기지 않았으면 그만일 텐데, 왜 헤라클레스라는 이름과 그가 둘렀던 망토는 새겼던 것일까? 답을 성급하게 추정하기보다 다시 페르가몬 신전 부조를 둘러싼 역사철학 문제로 돌아가 보자. 제대로 된 답은 상당히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발견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승리를 거듭해온 사람은, 땅바닥에 누워 있는 사람들을 짓밟고 넘어가는 오늘날의 지배자의 개선 행렬에 함께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전리품이란 지금까지 으레 그러했던 것처럼 이 개선 행렬에 함께 따라다닌다. 우리가 문화유산이라고 일컫는 것은 바로 이 전리품을 두고 하는 말인 것이다. (…) 야만의 기록이 없는 문화란 있을 수 없다. 그렇지 않은 경우는 한 번도 없다. 문화의 기록 자체가 야만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이 사람 손에서 저 사람 손으로 넘어가는 전승의 과정 또한 이와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 유물론자는 가능한 한도 내에서 이러한 전승으로부터 비켜난다. 그는 결에 거슬러서 역사를 솔질하는 것을 그의 과제로 삼는다."

바이스의 <저항의 미학>이 아니라 벤야민의 <역사 철학 테제(Über den Begriff der Geschichte)>에 등장하는 말이다.

벤야민 덕택으로 우리는 '페르가몬 신전 부조'를 세 젊은 혁명가들이 '결에 거슬러서 솔질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이렇게 솔질하면서 그들은 신에게 도륙당한 거인 족이 바로 억압받고 있는 대다수 민중들이라는 사실을 직감하게 된 것이다. 결국 대지의 자식들은 하늘에서 내려온 신의 자식들에게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어야 했다! 바로 이것이 페르가몬 신전 부조가 말하고자 했던 것이다.

저항하지 말라! 그건 바로 죽음만을 의미할 뿐이다! '페르가몬 신전 부조'의 미적 취지를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복종의 미학으로 세상을 보게 될 것이다. 아니 복종의 감수성이라고 해야 할 듯하다. 그러기에 나치 정부는 저 멀리 터키 지역에 있던 '페르가몬 신전 부조'를 베를린에 들여와 시민들에게 보여주었던 것이다. 저항하지 말라! 그건 바로 죽음만을 의미할 뿐이다!

하일만, 코피 그리고 '나'는 박물관에 들른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페로가몬 신전 부조'의 결을 거슬러서 솔질하고 있다. 그러니 대지의 자식들이 무엇인지를 직감하고, 나아가 헤라클레스의 망토가 눈에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이다. 왜 사자의 앞발이 달린 헤라클레스의 망토만 남은 것일까?

바로 여기서 저항의 미학이 탄생한다. 결대로 보지 않고 결을 거슬러 보는 순간, 우리는 저항의 감수성을 갖게 된다. 복종의 미학에서 저항의 미학으로의 이행! 자크 랑시에르가 치안에서 정치로의 이행이라고 했던 건 바로 이것이다. "정치는 정치의 주체들의 세계 그리고 정치가 작동하는 세계를 보이게 만드는 데"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저항의 역사철학은 저항의 미학으로, 그리고 마침내 우리 개개인들이 지배자의 질서, 즉 치안을 교란하는 정치의 영역에 이르게 되는 법이다.

하일만의 랭보를 다시 인용하고, 코피의 <공산당 선언>을 다시 이야기해야 한다! 거인족의 비참한 학살 현장에 헤라클레스의 망토만 남아 있는 비밀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바로 당신이 헤라클레스라고! 바로 당신이 뛰어들어 거인 족을 구해야 한다고! 수천 년 전 페르가몬 신전 부조를 새겼던 어떤 사람은 지배자의 뜻에 거스르면서 우리에게 말했던 것이다.

마침내 화자 '나'는 안 것이다. 자신에게 있어, 무참하게 쓰려져 신들의 발에 밟혀 있는 거인 족은 바로 하일만과 코피 그리고 수많은 자유의 투사들이었다는 사실을. 이렇게 <저항의 미학>으로 바이스는 거인 족을 구하는 헤라클레스가 된 것이고, 동시에 그는 우리에게 <저항의 미학>을 헤라클레스의 망토로 던져준 것이다.

자! 망토를 입고 사자처럼 용감한 헤라클레스가 될 용기가 있는가!
페터 바이스(Peter Weiss)는?

▲ 페터 바이스(1916~1982년). ⓒwikipedia.org
1916년 독일 베를린 근교에서 헝가리 출신 유대인 아버지와 스위스 바젤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1934년까지 독일에서 살았으나 나치스 정권을 피해 영국, 보헤미아(오늘날의 체코공화국), 스위스를 거쳐 스웨덴으로 이주했고, 1946년 스웨덴 국적을 취득했다.

연속적인 이주의 과정에서도 미술 창작과 문학 습작을 병행했으며, 스웨덴에 정착한 이후에는 몇 편의 실험 영화와 상업 영화도 만들었다. 문학, 미술, 영화 등 다양한 예술 장르에서 내용, 형식적 실험을 시도했으며, 1960년 누보로망 스타일의 '마이크로 소설' 〈마부의 몸의 그림자〉로 독일 문단에도 데뷔했다.

1964년 혁명가 마라와 개인주의자 사드의 허구적 만남을 소재로 한 희곡 <마라/사드>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이 시기에 프랑크푸르트에서 진행된 아우슈비츠 재판을 방청한 뒤, 본격적으로 정치적 참여 작가로서 활약하기 시작했다. 아우슈비츠 문제를 다룬 기록극 <수사>, 포르투갈 독재 정권을 겨냥한 <루지타니아 도깨비의 노래>, 베트남 해방 투쟁을 다룬 <베트남 논쟁>, 소련과 동구 사회주의 역사관을 겨냥한 <망명 중의 트로츠키>, 횔덜린을 좌절한 자코뱅파로 등장시킨 <횔덜린>을 발표했다.

1972년 마지막 역작인 장편 소설 <저항의 미학> 집필을 시작하여 총 3권으로 (1권 1975년, 2권 1978년, 3권 1981년) 출간했다. 이 소설은 '좌파 문학의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문학사에 자리 잡았다. 1982년 65세에 마지막 희곡 <새로운 소송>의 초연을 마치고 영면했다. 레싱 문학상(1965년), 하인리히 만 문학상(1966년), 게오르크 뷔히너 문학상(1982년) 등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원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2-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