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가습기 살균제 문제가 다시금 전 국민의 관심사로 떠올랐습니다. 가장 많은 피해자를 낸 기업 옥시레킷벤키저의 책임자인 신현우 전 대표는 지난 26일 검찰 소환 조사를 받았고, '옥시 불매 운동'은 전국적으로 퍼져나가는 중입니다.

가습기 살균제 문제가 터진 것은 지난 2011년. 산모와 영유아가 원인 불명의 폐질환으로 숨지는 사례가 잇달아 일어났고, 그 원인이 가습기 살균제라는 사실이 밝혀지며 많은 이들이 충격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충격과 분노와 애도는 잠시였습니다. 정부와 기업의 사과도, 피해 보상도 없었지만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 대한 관심은 어느샌가 사그라들었습니다.

더는 누구도 이 문제에 주목하지 않았던 2013년, <프레시안>은 전국의 피해자와 그 가족을 만나 그들의 피눈물 나는 이야기를 '가습기 살균제가 짓밟은 행복' 연재 아홉 편으로 묶었습니다. 여전히 그들은 사고 후유증으로 인한 고통에,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슬픔에 신음합니다. <프레시안>은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다시 꺼내보고자 합니다.

네 번째로 전할 이야기는 가습기 살균제로 폐가 손상된 열네 살 성준이의 사연입니다. 성준이는 갓 돌 지났을 때인 2004부터 호흡 곤란 증세로 병원 신세를 져야만 했습니다. 학교도 가지 못 하고 평생 산소 발생기에 연결된 줄을 코에 연결해야 하는 성준이. 가습기 살균제가 어떻게 어린 성준이의 건강을 망가뜨린 것일까요. 성준이는 지난 2일 있었던 옥시 측의 기자회견 자리에도 나와 많은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습니다. 2013년 3월 21일, 당시 11살이던 성준이의 어머니 권미애 씨와 <프레시안>과의 대화를 다시 공개합니다.

권미애 씨의 아들 성준이는 운이 좋았다. 가습기 살균제 탓에 세 살 미만의 영·유아 수십 명이 세상을 떠났지만 그는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기고 올해로 열한 살이 됐다.

지난 10년을 회고하면서 권 씨는 몇 번이나 "정말 힘들었다"고 말했다. 너무나 고통스럽고 처절한 10년이었다.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성준이의 증세를 일기 쓰듯이 빼곡하게 적은 수첩도 자신이 세상에 없을 때 아들을 돌볼 사람을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도 또 아들 성준이도 살아남았다.

학교에 갈 수 없는 열한 살 아이

6일 오후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에 있는 권미애 씨의 집에 들어서자 제 몸만 한 산소 발생기에 연결된 줄을 코에 끼고 있는 성준이가 눈에 들어왔다. 권 씨는 밝은 표정으로 아들을 소개했다. 이렇게 밝은 모습으로 아들을 이야기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려야 했는지 아무도 모른다.

- 성준이 동생은 그제(4일) 초등학교 입학식을 치렀다고 들었습니다. 성준이는 학교에 다니지 않나요?

"제가 데리고 다닐까 생각했었는데 아무래도 안 되겠더군요. 성준이는 면역력이 많이 약해서 다른 아이에게는 별 것 아닌 감기, 장염 등에 걸리면 상태가 심각해지거든요. 학교에 다니다가 감기라도 옮으면 큰일 나요. 감기에 걸려서 열이 오르면 38도 이상을 오르내립니다. 그때마다 가슴이 조마조마해요.

너무 어릴 때부터 병원 신세를 지느라 햇빛을 못 본 탓인지 지금 뼈도 굉장히 약한 상태예요. 병원에서는 "노인보다 뼈에 구멍이 더 많다"고 하더군요. 툭 치면 부러질 정도예요. 게다가 저 산소 발생기가 쓰러지거나 친구들과 장난치다가 코의 줄이 빠지기라도 하면 큰일 납니다. 코에 낀 줄이 1분만 빠져 있어도 숨쉬기 힘들어하거든요."

2004년, 권미애 씨는 태어난 지 한 돌이 된 성준이를 데리고 대학병원을 찾았다. 유난히 자주 토하고 호흡 곤란 증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아기들은 원래 그렇다"는 의사부터 "폐렴에 걸렸다"는 의사까지 진단은 가지각색이었다. 수원 아주대학교병원에 입원한 후 상태는 더욱 악화해 호흡 곤란 증세는 더욱더 심해졌다.

의사는 큰 병원으로 옮기려는 권 씨를 만류했다. "병원을 옮기는 중에 아기가 죽을 수도 있어요!" 결국 심폐소생술까지 받아야 하는 지경에 이르자 권 씨는 "죽을 때 죽더라도 할 수 있는 건 다해보자"며 아이를 서울아산병원으로 옮겼다.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아이가 온갖 기계 장치에 의지해 겨우 숨을 쉬는 모습을 보며 엄마의 마음은 찢어지는 것같이 아팠다.

성준이는 그렇게 중환자실에서 11개월을 보내고 나서야 상태가 나아져 퇴원했다. 하지만 성준이의 몸은 이미 만신창이었다. 이제 갓 돌이 지낸 아기가 1년 가까이 병원 신세를 졌으니 오죽하겠는가. 이제 성준이는 평생 산소 발생기에 연결된 줄을 코에 끼고 살아야 한다. 운이 좋아 폐 이식 수술을 받아도 5년간 생존할 확률은 약 50퍼센트.

성준이 또 권미애 씨의 끝이 안 보이는 고난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열한 살까지 든 돈만 1억 원

2011년 여름, 원인 미상 폐 질환의 원인이 가습기 살균제라는 사실이 발표되자 권미애 씨의 집으로 지인들의 전화가 쏟아졌다. "너희 집 혹시 가습기 살균제 쓰지 않았니?" 권 씨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기분이었다. 성준이가 태어나자마자 1년 동안 사용해온 '옥시싹싹 가습기당번'이 떠올랐다.

이 가습기 살균제는 옥시레킷벤키저의 제품이다. 이 기업은 '옥시크린' '물 먹는 하마' '데톨' '개비스콘' 등으로 유명한 영국계 초국적 기업 레킷벤키저의 한국 법인이다.

- 가습기 살균제 피해로 지난 10년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생을 했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경제적인 부분이 힘드시지 않았나요?

"돈이 정말 많이 들어요. 벌써 1억 원이 들었습니다. 하다못해 입원해도 면역력이 약해서 입원해도 꼭 1인실이나 2인실을 써야 하거든요. 예전에 장염에 걸려서 중환자실로 가야 했는데 방이 없어서 특실을 잡은 적이 있어요. 하룻밤에 80만 원이더군요. 지금 먹고 있는 심장약도 2개월 치에 60만 원이고 산소 발생기는 300만 원인데 일정 기간이 지나면 바꿔줘야 합니다.

이사도 정말 많이 다녔어요. 정말 오로지 성준이를 위해서 한 아홉 번 정도 이사한 것 같아요. 창문을 열었을 때 조금이라도 집에 먼지가 쌓이는 게 보이면 바로 이사를 했거든요. 또 전기 요금만 해도 우리 4인 가족이 사는 데 매달 20만 원이 나와요. 성준이가 24시간 산소발생기를 사용해야 하니까요. 이렇게 자잘한 것들을 다 이야기하자면 한도 끝도 없어요."

화목했던 가정에도 먹구름이 끼었다. 20대 중반의 어린 나이에 결혼한 탓에 모아둔 돈도 많지 않았다. 아픈 성준이 때문에 늘 신경이 곤두서 있는 데다, 경제적인 어려움까지 겹치니 서로 싸우는 일도 잦았다. 남편의 수입이 한정돼 있으니 지출을 줄여야 했지만 성준이의 치료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결국 3년간 서로의 얼굴을 보지 않는 고통의 시간도 겪었다.

- 결혼해서 스물일곱 살부터 아픈 아이를 돌봤네요.

"스물일곱 살부터 서른일곱 살까지 꼬박 10년간 아픈 성준이만 바라보고 살았습니다. 성준이를 돌보느라 1박 2일 여행 한 번 못 가봤어요. 힘들었고 또 지금도 힘들어요. 그냥 다른 아이 엄마처럼 살고 싶었거든요. '대체 나는 왜 저렇게 행복하게 살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 정말로 한없이 슬퍼지죠."

상처받은 성준이, "사람들이 나를 싫어해!"

평생 아들을 보며 가슴 아파해야 할 권미애 씨를 더욱 힘들게 하는 일이 있다. 바로 죄 없는 성준이를 죄인처럼 움츠러들게 하는, 사람들의 싸늘한 시선이다.

- 엄마 잃은 아이에게 동네 어른들이 '불쌍해서 어떡하니' 하며 혀를 차서 아이 아버지가 화가 났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무신경한 이웃의 시선에 아픈 적도 많았죠?

"많아요. 생각할 때마다 가슴에 사무치는 일이 있어요. 성준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서 로비에 앉아 있는데 한 남자아이가 시끄럽게 뛰어다니고 있었어요. 그 광경을 본 한 할아버지가 성준이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너 그렇게 시끄럽게 굴면 나중에 얘처럼 된다" 이러는 거예요. 그때는 정말 너무 화가 나서 정말 미친 듯이 큰소리를 따졌습니다.

지금도 식당에 가면 사람들이 서로 쿡쿡 찌르면서 "쟤 좀 봐" 하고 수군대요. 저에겐 다 들리거든요. 산소 발생기를 들고 다니면서 코에 줄을 낀 아이를 무슨 동물원 원숭이 보듯이…. 사람들이 자꾸 그런 식으로 구니까 성준이도 이렇게 말합니다. "엄마. 사람들은 나를 싫어해!"

늘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아야 하는 아들. 게다가 그 아들은 다른 아이에게는 그저 일상인 놀이터조차 가지 못한다.

"다른 아이는 다 누리는 평범한 일을 내 아들만 하지 못하는 거잖아요. 원래 이 아이가 큰 인물이 될 운명이었는지 누가 알겠어요?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아이였는데 이 병 때문에 모든 일이 수포가 된 게 아닐까 속상해요. 성준이가 나중에 엄마 없이 잘 지낼 수 있을까 걱정도 되고요."

소외감 느끼는 둘째 아이 보며 가슴 아픈 엄마

요즘 그녀의 큰 걱정거리는 바로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둘째 아이 주아(가명·여)다.

- 아픈 오빠가 있으니 둘째 아이가 소외감도 많이 느끼겠어요. 그런 느낌을 받으시나요.

"그럼요. 저를 포함해서 모든 사람이 성준이만 챙긴다는 느낌을 받나 봐요. 제가 뭐라도 시키면 주아가 꼭 이렇게 말해요. "엄마 나 이거 하면 예뻐해 줄 거야?" 가끔 이런 말도 합니다. "엄마는 나를 싫어해!" 오죽했으면 얘가 이런 얘기를 하나 싶어서 마음이 어찌나 아픈지 몰라요."

아픈 아이가 있어 신경을 덜 쓸 수밖에 없었지만 성준이와 똑같이 애틋하고 사랑스러운 둘째 딸 주아다. 주아는 아픈 오빠 때문에 포기한 것들이 많다. 독감이나 신종플루가 유행하면 주아는 늘 유치원을 그만둬야 했다. 주아가 그런 병을 옮아오면 성준이는 곧바로 중환자실로 직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 지난 2월 25일 옥시레킷벤키저 본사에 항의 방문하는 모습을 텔레비전에서 봤습니다. 그때 주아가 무섭다며 울더군요.

"그날 옥시 측에 항의 문서를 전달하러 갔는데 결국 아무도 나오지 않더군요. 마치 우리가 죄인인 것처럼 보안 용역만 보내놓으니까 화가 치밀어서 큰 소리를 냈는데 주아는 그게 무서웠나 봐요. "엄마 무섭게 왜 그래" 하면서 우는데 정말 속상했죠. 죄는 저쪽이 지었는데…."

"내가 죽으면 세상이 달라질까요?"

각자의 상처를 안고 있는 두 아이를 보면 엄마의 억장이 무너져 내린다. 그러나 그 누구도 권미애 씨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 지난해 10월 보건복지부 국정 감사에 참석하셨지요.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임채민)도 만났는데 이후로 진전이 있었나요?

"그때 보건복지부 장관은 그냥 '우리도 조사하고 있으니 믿어 달라' 이렇게만 말하더군요. 그 이후로 아무 진전도 없고요. 그날 성준이와 저를 보는 관료, 정치인의 시선에서 '저 사람들은 나 같은 피해자를 오늘 처음 봤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들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지 모르겠더군요.

이런 일이 반복되면 세상에 대한 기대가 사라집니다. 그래서 지난 대선 때도 투표도 하지 않았어요. 누가 돼도 어차피 똑같다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 미국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에린브로코비치>라는 영화가 있어요. 한 대기업의 공장에서 유출된 화학 물질이 마을 주민의 건강을 해쳤고, 결국 법원은 기업에 1인당 10억 원에 달하는 보상을 하라고 판결합니다.

"한국에서는 턱도 없는 일입니다. 얼마 전에 외국인 선교사를 만난 적이 있어요. 아이가 왜 이러냐고 묻기에 그간의 사정을 털어놓으니 깜짝 놀라더군요. '난리가 나도 몇 번이나 났을 일인데, 한국은 왜 이렇게 조용하느냐?' 하고 묻기에 제가 다 낯이 뜨거워졌어요. 이게 한국의 현실입니다."

정부와 옥시레킷벤키저 같은 기업이 외면하는 데다, 여론의 관심도 잦아든 상황에서 권미애 씨가 느끼는 절망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그녀의 절규가 가슴을 친다.

"'내가 옥시 앞에서 죽으면 뭐가 달라질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항상 그렇잖아요. 한국은 피해자 중에 누군가 목숨을 내놓아야 사회가 반응하니까요. 한편으로는 서럽기도 합니다. 만약에 제가 권력도 있고 돈도 있었다면, 그때도 성준이의 일이 이런 식으로 처리됐을까요?

지금도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의 인터넷 커뮤니티에 가면 '죽은 아이의 기일'을 언급하는 글이 가끔 보입니다. 살 만큼 사시고 노환으로 돌아가신 부모님을 생각해도 가끔 눈물이 나는데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 마음은 어떻겠어요? 도대체 왜 이렇게 조용한 걸까요?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