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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탄핵 또는 쿠데타…브라질은 내전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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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탄핵 또는 쿠데타…브라질은 내전 상태? [장석준 칼럼] 브라질, '쉬운' 개혁의 실패
지금 브라질은 한국이 2004년에 경험했던 것과 비슷한 대통령 탄핵 소용돌이 속에 있다.

4월 17일 브라질 하원은 3분의 2 이상(총 513석 중 367인)의 동의를 얻어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 탄핵안을 가결했다. 하원을 통과한 탄핵안은 5월 11일 상원 표결에 부쳐질 예정이다. 상원 총 81석 중 과반수인 41인 이상이 동의하면, 최대 180일간 대통령 직무가 정지되고 연방대법원의 탄핵 심판이 진행된다. 그 동안 대통령 업무는 부통령(민주운동당 소속 미셰우 테메르)이 대행한다.

2002년 대선에서 노동운동가 출신 루이스 이냐시우 '룰라' 다 시우바가 당선된 이후 노동자당은 네 차례 연속 집권해왔다. 룰라의 바통을 이어받은 호세프 대통령은 2014년 10월에 실시된 대선에서 재선에 성공해 노동자당 제4기 정권을 이끌고 있다. 지금까지 14년의 장기 집권이다.

룰라와 같은 해에 대선에 승리해 등장한 노무현 정부의 운명과는 크게 대비되는 모습이다. 노무현 정부는 집권 후반기에 지지층 이반을 겪으면서 권력을 야당에 넘겨줬다. 반면에 룰라-호세프 정부는 사회 개혁에 일정하게 성공해 도시 빈곤층과 낙후 농업 지역을 탄탄한 지지 기반으로 만들며 잇단 재집권에 성공했다. 그래서 룰라의 '성공'에 견줘 노무현의 '실패'를 돌아보려는 시도도 꽤 있었다.

그런데 이 얼마나 놀라운 역사의 아이러니인가. 다름 아닌 그 노동자당 정부가 노무현 정부가 맞닥뜨렸던 것과 같은 탄핵 위기에 직면한 것이다. 호세프 정부의 지지율도 바닥이다. 룰라 대통령 임기 후반에 80% 넘는 경이로운 지지율을 기록했던 것은 까마득한 옛날 일처럼만 느껴진다. 더불어 인구 2억의 브라질에서 노동자당 정부가 버팀으로써 유지되던 중남미 좌파 붐도 결정적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정작 정치 비리 수사와는 별개인 호세프 대통령 탄핵

현 사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2014년 대선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브라질 우파는 세 차례나 대선에서 노동자당 후보를 제압할 대안을 마련하는 데 실패한 처지였다.

우파는 대선 대응을 놓고 둘로 갈렸다. 1980년대에 군부 독재에 맞서는 구심이었고 현재 원내 최대 정당인 민주운동당(우리로 치면 더불어민주당?)은 테메르 대표를 호세프 대통령 후보의 러닝메이트로 내세워서 노동자당 주도의 연립 정부에 참여하는 길을 선택했다.

반면 민주운동당에서 갈라져 나온 사회민주당(이름과는 달리 정통 사회민주주의보다는 신자유주의 집행자 노릇을 해왔다)은 다시 한 번 노동자당과 정면으로 맞붙었다. 사회민주당은 룰라 당선 이전에 페르난두 엔리케 카르도수 대통령을 통해 8년간 집권했고, 대선 때마다 룰라, 호세프와 결선 투표에서 맞붙은 유력 후보를 출마시킨 바 있다. 이 당은 민주운동당과는 달리 2014년 대선이 정권 교체의 호기라고 보았다.

이때 브라질 곳곳에서는 청년 시위가 벌어지고 있었다. 연방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이 사회 개혁보다는 월드컵, 올림픽 등 대형 스포츠 행사 유치, 개최에 더 골몰하는 데 항의하는 시위였다. 정계, 재계, 언론계에 포진한 반(反)노동자당 진영은 재빨리 이 시위를 정치적으로 이용했다. 사회 개혁 요구 대신 노동자당 정부에 대한 공격만 부각시켰고, 청년, 빈민이 아닌 중산층 단체들이 시위를 주도하도록 분위기를 띄웠다.

실제로 2014년 대선에서 호세프 대통령은 사회민주당의 에우시우 네베스 후보와 접전을 벌였다. 룰라는 두 차례 대선 결선 투표에서 모두 60% 넘는 지지를 얻었다. 호세프는 2010년 대선 결선에서 56.05%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그러나 2014년 대선 결선에서 그가 얻은 지지는 51.64%에 그쳤다. 신승이었다.

그만큼 반노동자당 진영의 실망감도 컸다. 이들은 선거 부정 의혹을 제기하고 재검표를 요구했다. 이때부터 브라질 정가에서는 대선이 '2회전(결선 투표)'으로 끝난 게 아니라 '3회전'이 기다리고 있다는 이야기들이 오갔다.

반노동자당 진영은 이른바 '세차 작전(오페라상 라바 자토)'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았다. '세차 작전'이란 세르지우 모루 연방 판사가 2014년 3월에 착수한 국영 석유 기업 페트로브라스 비자금 수사를 말한다. 이 수사를 통해 페트로브라스가 총 28억 달러(약 3조2000억 원)에 이르는 비자금을 조성했고 이것이 정치권으로 흘러들어갔다는 게 밝혀졌다. 일회성 비리가 아닌 구조적 부패였다. 정치권이 온통 브라질 최대 공기업의 눈 먼 돈을 빨아먹고 살아온 셈이었다.

여야를 가릴 것 없이 수많은 정치인이 수사 대상 목록에 올랐다. 그 중에는 노동자당 정치인도 있었고, 반노동자당 진영의 거물들도 있었다. 대표적인 인물이 호세프 대통령 탄핵 표결을 주재한 에두아르두 쿠냐 하원의장이다. 민주운동당 소속인 그는 페트로브라스로부터 받은 거액의 비자금을 자신의 지지 기반인 대형 교회(복음주의 개신교)를 통해 세탁한 뒤 스위스 은행에 은닉했다. 이 혐의 때문에 그는 탄핵 표결 직후 연방대법원에 의해 하원의장 직무를 정지당했다.

페트로브라스 수사는 브라질 정치 개혁의 출발점으로서 분명 긍정적인 의의를 지닌다. 룰라 전 대통령도 온라인 저널 <디 인터셉트(The Intercept)>와의 인터뷰(4월 11일)에서 '세차 작전' 자체는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노동자당 정부가 사법부 독립성을 강화한 덕분에 이런 성역 없는 수사가 가능했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문제는 사법부 엘리트들의 정치 성향과 반노동자당 진영의 노림수가 서로 맞아떨어지면서 '세차 작전'의 주된 목적이 부패 근절에서 노동자당 정권 전복으로 변질됐다는 점이다. 수사 목록에 오른 인물들 중 60%는 브라질에서 낡은 부패 정치인의 대명사인 파울루 말루프가 이끄는 진보당 소속이다. 여기에 민주운동당과 사회민주당 쪽 혐의자들을 더하면 목록이 대부분 채워진다.

그럼에도 최대 TV 채널인 글로부 등 보수 언론은 처음부터 노동자당의 혐의만을 부각시켰다. 그러면서 룰라와 호세프도 비리에 연루된 것처럼 몰아갔다. 마치 유죄는 기정사실이고 증거만 찾으면 된다는 식이었다. 그러나 수사 당국은 지금까지 두 사람이 페트로브라스 비자금을 유용했다는 사실은커녕 이를 인지하고 있었다는 증거도 찾지 못했다.

호세프 대통령의 탄핵 이유 역시 부패 혐의와는 거리가 멀다. 다들 처음에는 페트로브라스 비리에 연루됐기 때문에 탄핵 당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막상 실제 탄핵 사유는 '세차 작전'과는 상관이 없다. 호세프 대통령의 유죄를 좀처럼 입증할 수 없자 사회민주당 소속인 카르도수 전 대통령은 전반적인 정책 실패만으로도 충분히 탄핵 사유가 된다고 둘러댔다. 구체적으로는 매년 예산안 심의 과정에서 재정 적자 규모를 실제보다 축소하기 위해 중앙은행에서 단기 차입하던 노동자당 정부의 관행이 법률 위반이라는 게 이번 탄핵안의 주된 사유다.

이게 탄핵 사태의 실상이다. 물론 페트로브라스 비리에 노동자당이 연루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호세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 공세는 '세차 작전'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오히려 수사 목록에 오른 정치인들이 화살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탄핵 발의를 한 측면이 강하다. 2014년 대선 결과에 불복하던 반노동자당 진영과 부패 정치인들이 제휴하게 된 것이다.

이 대열에 노동자당의 연립 정부 파트너였던 민주운동당이 결합하면서 탄핵 드라마는 완성됐다. 민주운동당 대표이기도 한 테메르 부통령은 임시 대통령으로서 권력을 잡을 기회가 열리자 미련 없이 현 정부에 등을 돌렸다. 덕분에 탄핵안을 통과시킬 하원 내 3분의 2 동맹이 최종 구축됐다.

탄핵안의 하원 가결 이후 테메르 부통령은 임시 대통령 직무를 시작하면 열흘 안에 브라질의 경제 침체를 극복할 충격 요법을 단행하겠다며 기염을 토하고 있다. 그 주된 내용 중 하나는 공공 연금 대폭 삭감이다.



'쉽지만 위태로운' 개혁인가, '어렵지만 오래 갈' 개혁인가

노동자당을 비롯한 브라질 좌파(노총인 CUT, 땅 없는 농민들의 운동 등)는 이번 사태를 '쿠데타'로 규정하며 이에 맞서고 있다. 브라질이 반세기 전에 경험한 군부 쿠데타와는 달리 헌법 절차에 따른 정치 행위이기는 하다. 그러나 불과 1년 전 선거에서 유권자들이 선택한 바를 엘리트들의 결정에 따라 뒤집으려 한다는 점에서 과거의 쿠데타들과 다르지 않다. 노동자당에 절대 우호적이지 않은 급진 좌파 정당들, 가령 사회주의자유당이 호세프 대통령 탄핵에 누구보다 격렬히 반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21세기형 신종 쿠데타에 맞서 합법 정부를 지켜야 한다는 것과는 별개로 노동자당이 범한 잘못은 분명히 따져야 한다. 느닷없는 탄핵 공세가 먹힐 수 있도록 만든 책임은 온전히 노동자당 정부에게 있다.

근본적으로는 경제 정책 실패가 있다. 2008년 세계 금융 위기의 여파로 브라질 경제가 심각한 침체에 빠져드는 과정에서 호세프 정부는 시의적절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불황은 과거에는 이야깃거리도 되지 못했을 우파의 반정부 선동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이보다 더 뼈아픈 실책은 노동자당 역시 구조적 부패에 연루됐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는 단순히 권력을 쥔 좌파의 도덕적 타락 문제만은 아니다. 집권 이후 노동자당이 취한 정치적 선택의 결과다.

노동자당으로 흘러들어간 페트로브라스 비자금의 대부분은 노동자당이 상하원에서 연립 정부 참여 정당들과 야당들을 '관리'하는 데 쓰였다. 즉, 정치적 타협의 뇌물로 사용됐다. 이는 '세차 작전' 이전에 이미 드러난 사실이다. 룰라의 오른팔이었던 조제 지르세우 수석정무장관(한국의 국무총리)이 2005년에 노동자당 법안을 지지하는 대가로 타당 의원들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처벌받았던 것이다(이른바 '멘살라웅'('월정 상납'이라는 뜻) 추문이다).

여기에는 브라질의 독특한 정당 구도라는 배경이 있다. 브라질은 거대 연방 국가이고 대통령 중심제이면서도 하원의원을 주별 정당 명부 비례대표제로 선출한다. 그러다 보니 특정 주에 기반을 둔 수많은 정당들이 원내에 난립한다. 노동자당은 지난 14년간 여당이었고 민주운동당 다음의 제2당임에도 불구하고 하원 의석이 57석밖에 안 된다. 총 513석 중 10%가 겨우 넘는 것이다. 아메리카 대륙의 또 다른 거대 연방 국가 미국이 양당 독점 구도의 덫에 갇혀 있는 것과는 정반대의 또 다른 덫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당이 선택한 길이 뿌리 깊은 구조적 부패를 활용해 여러 원내 정당들의 타협과 묵인을 '매수'하는 것이었다.

한때는 추문에도 불구하고 이게 가장 영리한 선택인 것처럼 보였다. 이런 추잡한 타협 덕분에 노동자당은 빈곤 가정 수당 지급, 공공 의료 확대, 비정규직 축소 같은 사회 개혁을 손쉽게 추진할 수 있었다. 만약 스무 개가 넘는 원내 정당들과 사사건건 충돌했더라면 이 정도 개혁도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쉬운' 개혁이란 결국은 함정이었다. 10년 넘게 쌓인 노동자당의 치적에도 불구하고 원내 정당 구도에서부터 사회 전체의 세력 관계에 이르기까지 노동자당 집권 이전에 비해 크게 바뀐 게 없다. 정당들은 구조적 부패를 즐기며 자신들의 진지에 더 견고히 똬리를 틀었으며, 재계와 보수 언론은 이런 상황을 흡족하게 바라봤다.

노동자당 집권에도 불구하고 사회운동은 침체한 대신 대중 속에 새롭게 파고 든 것은 부패 정치인들과 깊숙이 결탁한 복음주의 개신교 대형 교회들이었다. 이 모든 세력은 일단 노동자당 정부에 균열과 상처가 나타나자 곧바로 태도를 바꿔 정권 탈취에 나섰다.

노동자당이 선택했어야 하는 것은 전혀 다른 길이었다. 그것은 기성 정당 구도나 계급 간 세력 균형과 충돌을 빚더라도 대중운동 활성화와 시민 참여를 통해 개혁을 관철하는 길이었다. 실은 2002년 대선에서 노동자당은 이 길을 가겠다고 약속했었다.

"대안 경제 모델을 창조해서 사회적 배제라는 역사적 도전에 맞서고 이를 극복한다는 거대한 과업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독점과 과두 지배라는 야만적 행태를 피하는 것을 전제로 국가가 경제에 적극 개입하고 조절해야 한다. 지역사회에 대한 실질적 통제권을 지닌 사회적 참여를 통해서 우리는 보건, 교육, 사회보장, 주거, 공공 서비스 영역 전반에 공공 정책 계획과 실행의 투명성과 효율성을 높일 것이다. 주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수준에서 이뤄진 참여 예산제의 놀라운 성과를 보건대 이는 연방 정부 수준에도 적용되어야 한다. 복잡한 여러 문제들이 예상되더라도 말이다. 달리 말하면, 우리의 정부는 민주주의에 역동성을 부여하는 새로운 권리와 책임들을 적절히 보장하는 장으로서 공론장의 확장을 추진할 것이다."(노동자당의 <집권 프로그램 2002>)

이것은 분명 단기적으로는 훨씬 어렵고도 험난한 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일단 개혁을 쟁취하기만 한다면 그 성과를 가장 튼튼하게 지속시킬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길이었다.

노동자당을 비롯한 브라질 좌파는 지금 차기 대선 출마 의지를 분명히 한 룰라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반격에 나서고 있다. 룰라는 아직도 숱한 브라질 정치인들 중 대선 당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인물이다. 반격의 전망은 결코 어둡지만은 않다.

그러나 한 가지 전제 조건이 있다. 탄핵 쿠데타 '이후'의 노동자당은 지난 14년간 밟아온 경로와는 완전히 다른 길 위에 서 있어야만 한다. 이제는 '쉽지만 위태로운' 개혁이 아니라 '어렵더라도 오래 갈' 개혁의 추진자여야 한다. 그리고 이는 새누리당 10년 집권 '이후'를 고민하는 우리에게도 중대한 현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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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준 전환사회연구소 기획의원은 오랫동안 진보 정당 운동의 정책 및 교육 활동에 참여해왔으며, 자본주의 위기에 맞선 진보적 사회과학을 재구성하고자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에서 연구 및 출간 사업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레프트 사이드 스토리 : 세계의 좌파는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있나>, <사회주의>, <장석준의 적록 서재>, <신자유주의의 탄생 : 왜 우리는 신자유주의를 막을 수 없었나>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국가 대 시장 : 지구 경제의 출현>, <안토니오 그람시 : 옥중수고 이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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