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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100일 전부터 준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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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100일 전부터 준비하라! [김형찬의 동네 한의학] 100일의 준비
"딸아이가 계류유산(임신은 했으나 아기집만 있고 태아가 없는 유산, 혹은 태아가 이미 사망한 상태의 유산)을 했어요. 수술 후 며칠 있다가 곧바로 직장에 복귀했어요. 병원에서는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하는데, 그걸 보고 있자니 영 마음에 걸려서 데리고 왔어요."

두어 해 전 결혼을 앞두고 엄마와 함께 왔던 분이 아픈 이야기와 함께 다시 찾아왔습니다. 몸을 살피고 생활 패턴을 묻다 보니, 몸보다 유산에 대한 상실감이 더 컸습니다. 정상 출산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한 반면, 직장생활에서 중요한 시기에 아이가 생겨 심리적 부담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때문에 잘못된 것은 아닌가 싶다며 자책했습니다.

"엄마 잘못이 아니죠. 살다보면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임신을 너무 서두르지 말고, 엄마와 아빠가 함께 100일 정도 잘 준비하세요. 두 분의 몸과 마음이 충만해졌을 때 다시 아이를 가지려고 노력해 보세요. 아마 지금의 슬픔보다 배로 큰 기쁨을 주는 아이가 찾아올 겁니다."

계획대로 임신하지 못하거나, 임신을 유지하지 못해 고민하는 분을 꽤 자주 보게 됩니다. 한의원에 오시는 분은 대부분 산부인과 치료와 병행하거나, 유산 이후 건강의 회복에 초점을 둡니다. 임신이 고민인 분은 대체로 임신만 생각해 서두르기 쉬운데, 계획대로 잘 되지 않거나 실패를 되풀이하기도 하지요. 이 때문에 안 그래도 조급한 마음이 더 지칩니다. 저는 이런 고민을 가진 분께 충분히 시간을 갖고 몸과 마음의 건강을 잘 회복한 후 아이를 가질 것을 권합니다. 그래야 엄마는 물론 태어나는 아이도 건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극을 보면 절에 가서 100일 치성(致誠)을 드린 후에 아이를 가졌다는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이 이야기는 단순히 아이를 갖기 위해 지극정성을 다했다는 것 말고도, 건강한 엄마의 몸과 마음을 만드는데 무엇이 필요한지를 말해줍니다.

먼저 100일이라는 기간입니다. 혹자는 시상하부의 항상성을 초기화하는데 걸리는 시간이나 세포의 재생 주기를 이야기합니다만, 진료하다 보면 오래된 병증을 개선하거나 새로운 생활습관을 들이는 데 보통 3개월 정도 걸림을 경험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아마 과거에도 새로운 습관을 들여 몸과 마음의 변화를 일으키는 데 이 정도 기간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있지 않았을까 합니다.

다음으로는 생활 환경입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절은 대체로 숲속 물과 공기가 좋은 곳에 자리했습니다. 그리고 채식으로 구성된 절밥이 있지요. 육류를 섭취하지 않고도 건강을 좋게 유지할 수 있도록 설계된 환경이 100일 치성의 무대인 절인 셈입니다. 일단 우리 몸에 들어가는 음식물과 물과 공기가 좋으니 건강을 회복하는데 더할 나위 없습니다.

이에 더해 절하고 기도하는 과정은 충분한 운동 효과로 이어집니다. 이름난 사찰에서 치성 드릴 정도라면 시쳇말로 있는 집일 확률이 컸을 겁니다. 이런 집안의 여성일수록 과한 영양 섭취와 운동 부족 후유증에 시달렸을 확률도 큽니다. 절하거나 절을 오가는 과정에서 충분한 운동을 했으니, 임신을 목표로 한 여성은 자연스럽게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을 겁니다. 게다가 절에서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하죠. 절에 기거하든, 혹은 집에서 다녔든 간에 절의 기도시간에 맞추려면 어쩔 수 없이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규칙적인 생활을 반복했을 겁니다.

이런 신체 변화와 맞물려 절이라는 공간이 지닌 상징성, 기도를 통해 얻은 감정의 정화와 이완 효과가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당시 여성의 정신 건강 회복을 도왔을 것입니다. 아마 시어머니 등쌀에 시달리던 젊은 새댁은 시댁을 탈출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겠지요.

이렇게 보면 100일 치성이 단순히 상징적인 의미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00일 동안 엄마가 될 여성의 몸과 마음의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현실적으로 계획된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100일 치성의 의미를 알았으니, 이 프로그램을 우리 현실에 맞게 조정한 후 수행하면 됩니다. 물론 이 프로그램은 단순히 여성만 이행해야 할 과업이 아닙니다. 남편도 함께 해야겠지요. 간혹 임신이 잘 되지 않거나 유산을 반복하면 여성의 문제로 몰아가는 경우를 볼 수 있는데, 이는 잘못된 대응입니다. 부부가 동일하게 책임지고 변화해야 합니다.

요즘 제 주변만 보더라도 아이를 필수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로 생각하는 분이 많습니다. 일단 아이를 가지려 한다면, 부부가 함께 일정한 기간 몸과 마음을 준비했으면 좋겠습니다. 단순히 임신 확률을 키우자거나, 건강을 회복하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 과정을 함께 겪으며 조금 더 성숙한 엄마와 아빠가 될 준비를 하자는 것이지요. '현대판 100일 치성 프로그램'을 잘 이행한 부부가 가질 아이는 분명 조금 더 건강하고 행복하리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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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찬
생각과 삶이 바뀌면 건강도 변화한다는 신념으로 진료실을 찾아온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텃밭 속에 숨은 약초>, <내 몸과 친해지는 생활 한의학>, <50 60 70 한의학> 등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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