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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선투표, 개헌 없이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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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선투표, 개헌 없이도 가능하다" [프레시안 뷰] "1987년과 2017년, 또 소수파 대통령 만들 건가"

한 세대 만에 가능했던 구로구 투표함의 개봉

7월 21일은 한국 선거사에서 역사적인 날입니다. 약 30년 전, 시민혁명으로 군부독재를 종식시킨 후 첫 선거에서 투표함 하나가 문제가 되었습니다.

서울 구로을 선거구에서 한 부재자 투표함이 투표 종료시간 전에 개표소로 옮겨지다가 시민들에게 적발된 것입니다. 시민들은 이 투표함을 구로구청으로 옮기고 농성을 시작했습니다. 1000명에 가까운 시민들이 연행되고, 200여 명이 구속되었습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이 투표함을 열지 않고 수장고에 보관해 왔습니다. 열 수 없었습니다. 특정 후보자에 대한 부정투표가 우르르 쏟아져 나오든, 아니면 정상적인 투표함이었는데 단순한 실수 때문에 벌어진 일이든, 그 후폭풍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부정투표함으로 밝혀진다고 해도 진상을 규명해서 당사자들을 처벌하기란 거의 불가능해 보입니다. 또한 정상적인 투표함이라고 해서 시민들 탓을 할 수도 없습니다. 관권선거의 징후가 너무나 깊게 남아있는 현실에서 시민들의 행동은 합리적 의심에 해당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투표함이 개봉되었습니다. 부정선거 의혹이 제기된 지 거의 한 세대 만입니다. 이 투표함의 개봉과 사실의 규명은 한국정치사에서 가장 격변의 시기에 있었던 한 사건에 대해 차분히 되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함으로써, 우리의 민주주의를 되돌아보는 의미가 있습니다.

민주화 30년이 되는 내년 대선도 그 연장선 상에서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내년 대선에서 30년 만에 다자구도가 재현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그 결과가 한 세대 전과 같을지, 아니면 다르게 만들어 질지는 우리 손에 달렸습니다.

▲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선거연수원 대강당에서 1987년 제13대 대통령선거 구로구을 부재자 우편투표함이 개봉되고 있다.1987년 대통령 선거 당시 구로구청 농성사건의 발단이 됐던 투표함으로 한국정치학회의 연구용역 요청에 따라 개봉됐다. ⓒ연합뉴스


과반 지지를 얻지 못하는 대통령

1987년, 13대 대선의 결과는 노태우 후보가 득표율 36.6%(828만 2738표)로 1위, 김영삼 후보가 28%(633만 7581표)로 2위, 김대중 후보가 27%(611만 3375표)로 3위를 기록했습니다. 투표율이 89%에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전체 유권자 대비 당선자의 득표율은 35%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과반에는 터무니없이 모자랐습니다.

13대 대선 이후로는 그래도 상황이 조금 나아졌다고 볼 수도 있지만, 자세히 보면 근본적으로는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은 42%, 김대중 대통령은 40%, 노무현 대통령은 48.9%로 당선되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2위와의 득표차는 가장 많았지만 48.6%에 머물렀고, 박근혜 대통령만이 51.6%로 과반을 넘겼을 뿐입니다.

당선자가 40%를 넘어 과반에 가깝거나 넘겼다고 해서 민주성이 강화되었다고 보기도 어려울 듯 합니다. 17대 대선을 제외하면, 지난 20년 동안 1~2위 간의 득표 차이는 2~3%대를 넘지 않았고, 이는 단일화 과정이나 군소후보들의 선전 여부 같은 변수에 충분히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수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치 세력이 크게 양분되어 있는 상황이라면, 이러한 상황이 별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진보, 보수라는 이분법, 혹은 다른 사회적 균열에 따라 정치 세력이 존재하는 것은 그렇게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미국이나 영국에서도 양당제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문제는 내년에도 이 구도가 지속될 것 같지는 않다는 데에 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 결과로 누가 선거에서 유리하냐가 아니라, 대선결과에서 민주성이 얼마나 확보될 것인가, 그 정부가 얼마나 안정적으로 통치할 수 있느냐 하는 점입니다.

5자 구도, 혹은 그 이상

내년 대선 후보는 30년 이전보다 더 다양할 것으로 보입니다. 우선 안철수 의원이 대선을 포기하거나 단일화를 할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지난 대선에서 안철수는 정치에 아직 입문도 해보지 않은 신인이었고, 소속 정당도 없었습니다. 지금 안철수는 지역구 재선 국회의원이고, 38석의 의석을 가졌으며, 총선 정당 지지율에서도 2위를 했습니다.

지역구 당선자가 호남에 집중되기는 했지만, 대선에서 참고할만한 정당 지지율의 전국 편차는 별로 나쁘지 않았습니다. 정치인 안철수가 여전히 서툴러 보이지만, 지난 대선 때의 상황과 비할 바는 아닙니다.

특히 경험 면에서 그가 5년 전에 비해 크게 나아졌다는 사실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5년 전에도 안철수의 지지율은 만만치 않았다는 점이고, 또한 문재인은 그 때에 비해 얼마나 나아졌는가를 또한 생각해야 합니다.

문 전 대표는 작년 가을 이후로 대선출마에 대한 마음을 굳힌 것으로 보입니다. 경선 룰 싸움에서 배수진을 친다면, 밖에서 아무리 문재인 필패론이 나온다 해도 당내에서 그가 후보가 되는 것을 막기는 역부족으로 보입니다.

반기문 사무총장 역시 동생을 비롯해 최근 주변을 정리하고 있는 점으로 보아, 대선 출마가 기정사실화 된 것으로 보입니다. 친박에서도 반 총장 말고는 딱히 적절한 카드가 없습니다. 결국 3명의 출마가 거의 확정적입니다.

이렇게 되면 야권 단일화는 어렵습니다. 할 이유가 별로 없습니다. 지난 대선과 달리 안철수 의원이 소속 정당을 갖고 있고, 새누리당에서 친박 후보가 나오면 실제로 3자 필승론이 누구에게든 설득력이 있습니다.

변수는 새누리당입니다. 친박이 반기문을 후보로 고집한다면 비박의 선택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유승민, 남경필, 김무성 등을 내세워 대선 후보 경선에서 반기문을 꺾는 것, 다른 하나는 분당입니다.

친박이 당권을 쥔다면, 반기문 이외의 주자들에게 대선 후보가 돌아갈 가능성은 별로 많지 않을 것입니다. 반대로 반기문 이외의 후보가 대선 후보가 될 가능성이 높다면, 대통령이 먼저 분당을 주도할 것입니다.

문제는 야권이 분열되어 있기 때문에, 4자구도가 나쁘지 않다는 것입니다. 예를들어, 반기문-유승민-안철수-문재인 같은 후보군이 형성될 수 있습니다. 모두가 25%정도는 어렵지 않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래서 일단 이 구도가 만들어지면, 아무도 포기하려들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또 하나의 변수가 있습니다. 만약 문재인이 당내에서는 앞서나가면서도 3자 구도, 혹은 4자 구도에서 3~4위로 밀린다면, 야권의 잠룡들이 당내 경선에서 가만히 지고 있을 이유가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은 경선룰을 정하는 과정에서 이 문제가 불거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상황에서도 문재인이 전혀 물러서지 않는다면, 더민주의 분당 가능성도 없지 않습니다. 박원순, 안희정, 김부겸 같은 잠재적 후보군이 있는데, 120석이 넘는 정당이 대선에서 가만히 주저앉을 이유도 없습니다. 이렇게 되면 5자 구도가 됩니다.

마지막으로 '그 이상'일 수 있는 이유는, 막상 5자 구도에서는 정의당을 비롯한 진보정당의 후보 역시 중요한 변수로 등장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읽는 분에 따라서는 너무 소설 같은 이야기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지난 총선 이후 각각 여당 내부와 야당들, 그리고 야당 내부의 갈등은 봉합하기 어려운 지경으로 가고 있습니다. 대선이 가까워진다고 해서 갑자기 이 갈등이 해소될까요?

또 하나는, 현재의 정치적 구도에서는 이런 다양한 후보들이 자신의 정견을 갖고 나와서 경쟁하는 구도가 한국 정치에서 오히려 바람직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성장이 멈추고 불평등이 심화되는 가운데, 미래의 비전도 보이지 않는 한국의 현실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당내 역학구도에 제한된 대선구도가 아니라, 더 제대로 된 경쟁입니다.

문제는 대선 주자가 많아질수록, 당선자의 민주적 대표성이 낮아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상당한 민주적 대표성을 확보하면서도 다양한 경쟁을 촉발시킬 수 있는 방법, 그것은 결선투표제입니다.

1987년 개헌에서 대통령 직선투표 뿐만 아니라 결선 투표가 포함되었더라면 한국 정치의 지형이 크게 바뀌었을지도 모릅니다. 여기서 특정 후보에게 이 제도가 유리했을 것이라는 점, 그래서 군사독재 세력의 재집권이나 3당 합당이 없었거나, 정권 교체가 더 빨리 이루어졌을지도 모른다는 점들은 저의 관심사가 아닙니다.

이것은 민주주의와 관련이 있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당선자 결정방식에서 더 민주성이 강화되는 것, 곧 지나치게 소수의 사람들이 명백한 다수의 선호를 물리치고 선거에서 승리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후보자들 간의 단일화보다 유권자들 스스로의 선택에 맡기는 것은 실천해볼 만한 생각입니다.

결선투표제에 개헌이 필요한가?

양당제를 하고 있는 미국에서는 선거인단 제도를 통해서 어쨌거나 과반을 만듭니다. 538명 선거인단에서 과반수인 270명을 확보하면, 그 후보가 당선자가 됩니다. 역시 양당제를 하는 영국도 지난 60여 년간 두 번을 제외하고는 집권당이 과반 의석을 확보했습니다.

비례대표제와 다당제를 하는 서유럽 국가들에서는 정당들이 연립정부 협상을 통해서 어쨌거나 과반 의석을 넘겨서 집권 정부를 만듭니다. 소수당 정부가 출현할 수도 있겠지만, 의회제의 특성상 이 경우 정부의 권한이 크게 제한되기 때문에 정권은 대단히 불안정하고 곧 재선거를 치르게 마련입니다.

이에 비해, 민주화 이후 30년 간, 단 한 번을 제외하고 항상 국민 과반의 지지를 얻지 못한 대통령이 5년간 국정을 이끌어 나간다는 것이 민주주의에서 얼마나 위태한 일인지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볼 때가 되었습니다.

물론 결선투표제 도입과 관련해서는 이 사안이 개헌을 필요로 하느냐에 대한 논란이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개헌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는 사람들은 대부분 헌법학자들이라는 점입니다.

이 분들은 지금 헌법을 만들 때 결선투표제를 할 수 있도록 한다는 의도가 없었다든지, 중대한 사안이라 국민투표를 해야 한다든지, 선거제도 자체는 헌법에 명시를 해야 논란이 없다는 각각의 이유를 들고 있습니다. 전형적인 법적 헌정주의(legal constitutionalism)의 시각입니다.

그러나 정치적 헌정주의(political constitutionalism)의 입장에서 보면, 그다지 설득력이 없는 반론입니다. 오히려 너무나 중요한 사안이기 때문에 헌법학자들이 결정할 수 없는 사안입니다.

정치학을 전공한 제가 보기에, 결선 투표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사항이 헌법에 명시적으로 나타나 있지도 않은데, 그 해석을 헌법학자나 법관 몇 사람에게 물어서 확인한다는 것은 민주주의는 물론이고 정치라고도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정치가 해야 할 일을 법치가 대신하는 것이고, 좀 더 명확히 말해 그것은 법치가 아니라 법률가 과두정입니다. 이참에 헌법을 헌법학자들의 전유물로 보는 잘못된 생각을 바꿀 필요도 있습니다. 대통령 탄핵의 정당성이나 수도의 이전 같은 문제를 법률가들에 의존해서 해결하는 제도와 관행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이 필요합니다.

여론조사를 따른다든지, 일회성의 국민투표에 부쳐 결정할 수도 없는 사항입니다. 정치권에서 이 논의를 시작하고, 언론과 국민들이 이 제도의 장단점, 한국 정치에 가져올 긍정적, 부정적 측면에 대해 토론해야 합니다. 그래서 다수 국민이 개헌 없이도 선거제도를 바꿀 수 있다고 보는 공론이 형성되고 그에 기반해서 정치권이 합의하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정치학자 사르토리는 결선투표제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른 모든 선거제도에서 유권자는 한 발의 총알을 갖는다. 결선투표제에서만 두 발을 가질 수 있다. 유권자는 한 발을 어둠 속에서 쏘지만, 두 번째는 밝은 햇빛 아래서 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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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관후
16대, 17대 국회에서 보좌진으로 일하고, 영국 런던대학교(UCL)에서 '정치적 대표'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와 경남연구원에서 일하고, 행정안전부 장관정책보좌관, 국무총리 메시지비서관을 지냈다. 정치의 이론과 현실에 모두 관심이 있다.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로 있으며, <프레시안>을 비롯해 <경향신문>, <한겨레>, <피렌체의 식탁>에 칼럼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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