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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 거짓말 그리고 자본 [사회 책임 혁명] 사모님 경영? 재벌 경영!

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이 최근 국회 조선·해운산업 구조조정 청문회(청와대 서별관회의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이후 전 국민적 비난의 대상이 됐다. 무능력하고 무책임한 경영인으로 몰린데다 파렴치한 인간으로 질타를 받았다.

심지어 그가 흘린 눈물마저 '악어의 눈물'이란 비아냥거림의 대상이 되었다. 청문회장에서는 국회의원으로부터 "울지 말라"는 질타를 받았다. 기업을 '말아먹은' 데 그치지 않고 자신과 가족의 살 궁리만 한 저간의 행태로 인해 어떠한 동정도 받지 못한 것이다. 세월호 선장으로까지 비유됐는데 크게 틀린 비유는 아니지 싶다. 최 전 회장이 남편(조수호)의 사망으로 회사 지분을 상속받은 데 그치지 않고 대표이사를 맡아 직접 경영에 뛰어들었다는 점에서 책임을 모면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언론과 여론의 비난의 초점은 특별히 '사모님 경영'에 맞춰졌다. 청문회에서 김광림 새누리당 의원은 "우리나라 전체 해운사 188개 중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을 제외하고 모두 흑자를 냈는데, 두 회사의 공통점이 모두 '사모님'이 경영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영선 더민주당 의원도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비슷한 입장을 표명했다. 박 의원이 "공교롭게도 이 두 우리나라의 큰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의 오너 경영을 했던 분들이 여자 회장님들이었잖아요. 그러니까 물려받은"이라고 말하자 김현정 앵커는 "사모님들"이라고 받았다. 박 의원은 "사모님들"이라고 확인한 후 "그래서 결국은 전문 경영인이 아닌 회장님의 황제 경영과 또 정부의 무대책, 무능이 낳은 참사"라고 요약했다.

최 전 회장 또한 이 같은 프레임을 대체로 수용했다. 청문회에서 김 의원이 "다른 대기업의 사모님들과 따님들이 회사 경영을 맡아야 할지 자문을 구한다면 뭐라고 답변하겠느냐"고 묻자 "소유와 경영을 분리해 경영은 전문 경영진으로 하여금 선진 경영을 할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고 답했다. 최 전 회장은 동정심을 사려는 듯 "제가 '가정주부'로 집에만 있다 나와서 전문성이 부족했다"고 스스로 '사모님'에서 '가정주부'로 내려앉기도 했다.

그러나 최 전 회장의 답변이 진심 같지는 않다. 과거 한진해운 회장으로 있던 시절에 그는 "신속한 의사 결정과 장기적 안목을 가진 오너 경영인과 능력이 검증된 전문 경영인이 상호보완하고 견제하며 의사 결정을 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여기서 우리는 용어의 혼란을 목격할 수 있다. 최 전 회장이 과거에는 '오너 경영'이란 말을 썼지만 청문회장에서는 '가정주부 (경영)'란 말을 썼다. 국회의원들과 언론의 인식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목격된다. '부부 승계'를 통한 '사모님 경영'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이러한 살짝 비틀린 관점은 사태를 왜곡할 수 있다. 표현 자체에 문제가 있지만 편의상 그대로 차용하면 '오너 경영'의 문제점은 간과하고 '사모님 경영'의 폐해에만 집중케 한다는 점이다. '사모님 경영'은 '오너 경영'의 한 형태이다. '오너'가 숨져 남편이 경영을 맡든 아들이 맡든, '사모님 경영'과 크게 다르지 않다. 경영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건 '사모님' 뿐만이 아니며 마찬가지로 경영 능력이 미지수인 '오너'의 2·3세들 또한 단지 상속자란 이유만으로 경영권을 거머쥐고 있다. 문제는 대주주 일가에서 지분을 상속하면서 사기업인 양 상장사의 경영권을 자기들 마음대로 넘겨주고 넘겨받는 일관된 관행이다.

'오너'라는 말은 정확히 말해 대주주이며, 대주주는 기업의 주인이 아니라 기업의 소유권을 분점할 뿐이다.(나아가 원론과 상식의 관점에선 주주만이 기업의 주인이라고 할 수도 없다.) 대주주가 경영자가 되지 말란 법은 당연히 없으나, 대주주 일가에서 당연히 경영권을 가져가야 하는 것 또한 아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한국 재벌 기업의 대주주는 국민이다. 이상적이라면 대주주·국민연금을 포함한 주주, 노동자·지역 사회 대표 등이 포함되는 정상적인 '경영자 추천 위원회'에서 최고경영자가 선임되어야 하겠지만, 아쉬운 대로 밀실에서 일어나는 전 근대적 경영권 승계만은 방지되어야 하지 않을까.

'사모님 경영'과 '재벌 경영'은 같은 말이다. 사회적으로 크나큰 파장을 일으켰을 때 휠체어를 타고 나타나느냐, 화장 안 한 민낯으로 나타나느냐 하는 아주 미세한 차이만 있을 뿐이다. 최은영 전 한진회장의 행태를 계기로 공론화할 것은 재벌가 '사모님'이나 딸들의 경영 참여의 문제점이 아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전 근대적 거버넌스로 운영되는 재벌가에게 이대로 한국 경제의 전반을 맡겨놓아도 되는지 엄밀히 따져보아야 한다.

재벌 개혁 없이 한국 경제에 미래는 없으며 그 첫 단추는 "전문성 없는" '오너 경영'의 혁파이어야 한다. '사모님'이 분명 밉상이긴 하나, 그가 만악의 근원인 것은 아니다. 최은영에게 죄가 있다면 그가 '사모님'이어서가 아니라 무능력하고 무책임한데다 탐욕스럽기까지 한 '오너'였기 때문이다. 그런 '오너'는 대한민국에 널리고 널렸다.

(안치용 교수는 한국사회책임네트워크 집햅위원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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