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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레임덕, 미국은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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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레임덕, 미국은 즐긴다 [박홍서의 중미 관계 돋보기] 최순실 농단에 허덕이는 사이 북-미-중은…

나라가 어지럽다. 경제력 세계 11위라는 나라, 그래도 이만하면 잘 살지 않느냐는 나라의 국정이 일개 비선 실세에 의해 휘둘렸다. 대선 댓글 사건부터 어느 것 하나 속 시원히 밝혀진 것이 없었다. 메르스라는 역병이 창궐해도, 꽃다운 젊은 영혼들이 차디찬 바다에서 죽어갈 때도, 권력은 안일했다. 재벌 법인세 인상은 단호히 반대하면서 서민 증세는 칼같이 몰아붙였다. 그런 재벌들은 수백억 원을 비선 실세에 쾌척했다.

외교도 다를 바 없다. 박근혜 정권이 애초 주장했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결국 개성공단 폐쇄와 김정은 참수 부대 창설로 종결됐다. 전승절 행사에서 으스대던 한중 간의 우호 관계는 1년도 안 돼 사드 배치로 금이 갔다. 롤러코스터도 이런 롤러코스터가 없다. 모든 게 왜 이리 뒤죽박죽이 되었는지 요즘에서야 비로소 이해가 간다.

대한민국이 총체적 혼란에 빠진 사이, 북-중-미 삼국은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아 있다. 북-미 양국은 말레이시아에서 비밀 접촉을 했다. 박근혜 정권은 이를 민간 차원이라 폄하했지만 북한은 말할 것도 없고 갈루치(Robert Gallucci)나 디트라니(Joseph DeTrani)가 책만 보던 서생들인가? 중국 외교부 부부장도 대표단을 이끌고 평양에 들어갔다.

미국과의 대화를 염원하던 북한이야 그렇다고 치더라도, 미국은 왜 협상 테이블에 나왔는가? 북핵 문제에 대한 미국의 전략은 결국 3가지밖에 없다. 현재와 같은 방치, 북 정권 붕괴(전쟁), 그리고 협상이 그것이다. 방치는 실패했고, 북 정권 붕괴는 중국 때문에 불가능하다면 결국 남은 건 협상밖에 없다.

오바마 정권의 '전략적 인내' 전략은 대북 방치 전략이었다. 그러나 그 방치 기간 동안 북한은 4차례나 핵 실험을 했다. 핵 기술의 고도화, 경량화를 이룩했다고 자랑하고 있다. 핵 억지력의 정수인 SLBM(잠수함 발사 탄도 미사일)까지 만든다 선전해댄다. 상황이 이러니 미국 내에서도 전략적 인내 정책이 실패했다는 목소리가 주류를 이룬다.

김정은 정권 붕괴 전략은 문제 당사자가 소멸된다는 점에서 근본적 문제 해결일 수도 있다. 문제는 중국이라는 존재다. 아무리 김정은 정권이 짜증난다 하더라도 중국이 북한을 버릴 수는 없다. 임진왜란 때도, 청일전쟁 때도, 한국전쟁 때도 중국이 군사 개입을 했던 건 한반도 정권이 좋아서가 아니라 한반도라는 지정학적 가치가 중요했기 때문이다. 2016년도 다르지 않다.

게다가 북중 간 동맹 조약은 엄연히 살아 있다. 1961년 7월 맺어진 조중 우호 조약은 제3국에 의해 상대방이 침공 받을 시 "지체없이 개입"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미국이 이런 상황을 모를 리 없다. 중국을 무시하고 북한을 공격한다는 것은 결국 미-중 간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것이다. 1950년 말 '중공군'의 그 무시무시한 트라우마는 여전하다. '신브레튼우즈 체제' 속에서 이미 한 몸이 돼버린 중국과 전쟁을 해야 할 이유도 전혀 없다.

결국 미국에게 북핵 문제가 더 이상 악화되지 않게 하는 전략은 협상밖에 없다. 북한이 핵무기를 실전 배치해 미국을 실제로 위협하는 임계점을 막겠다면 그 수밖에 없다.

문제는 협상 목표의 우선순위가 북미 간에 다르다는 것이다. 북한은 평화 협정에 방점을 찍고 미국은 핵 폐기에 방점을 찍는다. 이미 다섯 차례나 핵 실험을 한 북한이 핵을 포기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어쨌든 핵 카드로 미-중 양국에게 자신의 몸값을 높일 수 있고, 또한 권력의 힘을 과시해 인민을 동원할 수 있는 '국내용'으로도 그만이다.

반대로 미국은 선(先) 핵 폐기를 포기할 수 없다. 무엇보다 한미 동맹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이 한국을 무시한다면, 한국은 필연적으로 독자 노선으로 갈 수밖에 없다. 독자적 핵무장이라도 한다면 한국은 이전의 '집토끼'처럼 미국에 충순한 모습을 보이지 않을 것은 자명하다. 미국의 동북아 안보 전략에 큰 손해일 수밖에 없다.

미국이 "김정은은 죽는다"라는 대북 강경책을 흘리면서 다른 한편으로 대북 접촉에 나서는 것은 남북한 사이에서 미국이 처한 딜레마를 드러낸다.

이러한 북-미 간 이견의 중재자를 자처하는 이가 바로 중국이다. 핵 폐기와 평화 협정의 동시 추진을 주장하는 소위 '왕이 이니셔티브'가 그 중재의 요체다. 혈맹국 북한과 신형 대국 관계인 미국의 이익을 균형 맞추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특히, 왕이 이니셔티브는 북핵 폐기에 집착하지 않는다. 한반도 비핵화를 천명하지만 그 목표는 현실 가능한 북핵 동결에 있다.

▲ 지난 10월 25일, 미국 정보국장 제임스 클래퍼가 북한에 대한 핵폐기 설득은 실패한 것으로 보이며 최선의 희망은 북한의 핵능력을 동결시키는 것이라고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은 내심 북핵 동결과 평화 협정 교환을 받고 싶다. 선핵 폐기를 고집하면 협상이 결렬돼 북한의 핵 능력이 점점 임계점에 다다를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지난 5월 국가 정보 국장 제임스 클래퍼가 방한에 평화 협정에 대한 한국의 의사를 타진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공교롭게도 박근혜 정권은 그 직후부터 대북 강경책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전격적인 사드 배치 결정과 북한 붕괴를 공개 표명했다. 북핵 문제에 대한 북미 간 협상 조짐을 차단하겠다는 의지로 읽힐 수 있는 것이다.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내년(2017년)에 들어설 미국의 신정부는 당연히 북핵 협상에 나설 공산이 다분하다. 방치도, 북한 붕괴도 현실적 대안이 아니라면 남는 건 협상밖에 없다. 그 구체적 목표도 실현 불가능한 선핵 폐기를 고집하기보다는 '한반도 비핵화'를 주장하되 실질적으로는 핵 동결과 평화협정을 맞바꾸는 쪽으로 가닥을 잡을 공산이 크다. 그 과정에서 미-중 간 긴밀한 협의가 진행될 것이다. 미국과 중국에게 중요한 것은 남북한 정권의 운명이 아니다. 상호간 '거대한 비무장지대'인 한반도의 안정일 뿐이다.

물론 그렇다고 미국의 새 정권이 박근혜 정권을 소외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한국의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기 까지 동맹으로서 비위만 맞춰줄 공산이 크다. 미국은 어쩌면 박근혜 정권의 레임덕을 내심 즐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박근혜 정권은 이를 모두 인지하고 있는가? 불행히도 그런 것 같지 않다. 대통령 외교 연설마저 비선 실세에게 첨삭 지도를 받는 정권에게 도대체 무슨 기대를 할 수 있겠는가? 관련 외교 관계자들은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침묵하고 끌려 다녔는가? 결국 비겁함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모든 주권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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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서
한국외국어대에서 중국의 대한반도 군사개입에 관한 연구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덕여대 연구교수 및 상하이 사회과학원 방문학자를 역임하고, 현재 강원대 등 여러 대학에서 강의하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국제관계 이론, 중국의 대외관계 및 한반도 문제이다. 연구 논문으로 <푸코가 중국적 세계를 바라볼 때: 중국적 세계질서의 통치성>, <북핵 위기시 중국의 대북 동맹 딜레마 연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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