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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혁명의 교란자들을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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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시민 혁명의 교란자들을 넘어 [김민웅의 인문정신] '퇴진'에서 '체포' 그리고 '혁명적 과도정부'까지
박근혜 체포 영장발부

"박근혜는 퇴진하라"의 구호가 이제는 "박근혜를 체포하라"로 옮겨가고 있다. 한 달만의 변화다. 퇴진을 머뭇거리면, 아예 잡아넣겠다는 것이다.

10월 말에서 11월 초, 주범이 명확해지자 "최순실 게이트"가 "박근혜 게이트"로 정리되면서 시민들의 요구는 확고해졌다. 제1야당 더불어민주당이 퇴진 당론을 정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이후 박근혜가 물러날 기미를 보이고 있지 않자 탄핵이라는 퇴출작업이 정치권에서 시동을 걸었다. 그러나 계산과 흥정이 끼어들었다. 그러는 사이에 시민들은 한걸음 더 나가 "박근혜 체포/구속"으로 전선을 압축시켜나가고 있다.

전국 2백만 촛불집회가 열리던 11월 26일자 <한겨레>의 1면이 국민이 청구하는 "체포영장"으로 큼지막하게 찍혀 나온 것은 그런 민심의 반영이었다. 이미 드러난 것으로도 중대 범법자인 존재를 헌법적 최고 지위에 그대로 두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의지가 강해지고 있다. "퇴진"은 당사자의 결단을 요구하는 것에 반해, "체포"는 대통령 직위 박탈과 법적 응징을 적극적으로 하겠다는 차원에서 그 의미가 사뭇 다르다. "박근혜 체포" 주장이 시민들의 입에서 스스럼없이 나오게 된 상황은 검찰에게도 중대한 압박이다.

시민혁명의 진화

이런 상황으로 계속 가게 되면, 박근혜는 청와대에서 제 발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끌려나오게 될 것이다. 포승에 묶인 박근혜의 등신대 사진판이 집회 현장에서 인기를 모았던 것도 시민들의 분노가 어느 수준에 이르고 있는가를 증명한다. 5차에 이르는 집회와 퇴진 요구에도 박근혜가 꿈쩍하지 않는다면, 시민들은 지치는 것이 아니라 더욱 분노하고 더욱 강력한 수단을 강구해나갈 것이다.

과거와는 달리, 시민들은 이른바 국정공백의 불안에 사로잡히지 않고 있다. 혼돈의 시기를 겪게 된다면 그건 그것대로 겪으면서 밀고 나가겠다는 의지가 만만치 않다. 어떤 격변의 상황도 두렵지 않게 된 것이다. 또한 촛불집회의 열기가 시간이 지나면 사그라들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동력을 수많은 형태로 전환해서 민주주의 사회를 세우기 위한 기반을 만드는 일에 쏟고 있다. 도처에서 벌어지는 지역 촛불집회는 물론이고 주민단위 차원의 시민민주주의 논의는 촛불이 단지 주말집회로 끝나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시민혁명이 움직이고 있는 방향은 매우 분명하다. 일차로 박근혜를 헌법적 최고 권력자의 지위에서 즉각 퇴장시키고 그간 온갖 농단으로 국민생활을 괴롭힌 자들을 함께 청산하는 동시에, 그런 기조에 따라 진행되어온 정책을 중단시키겠다는 것이다. "새누리당 해체"가 "박근혜 퇴진"과 함께 외쳐지는 것도 그런 현실의 면모이며, "재벌도 공범"이라는 구호가 공감을 사기 시작한 것도 마찬가지다. 역사의 진전을 가로막고 있는 앙시앙 레짐인 박근혜 체제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과 극복인 것이다.

정치권의 탐욕

이와 같은 시민혁명의 진화 속도를 정치권은 따라 잡지 못했고, 그 요구도 여전히 확고히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시민혁명의 주도권은 철저하게 광장에 있다. 이 과정에서 정당이 한 일은 별반 없었고, 오로지 시민들이 여기까지 밀고 왔다. 야당과 야당 지도자라는 이들이 시민혁명에 수동적으로 합류하기조차 얼마나 계속 미적거렸던가?

그런데 이제는 그걸 자기들 몫으로 챙겨서 어찌 해보려는 모습을 보인다. 시민혁명이 이들을 그대로 용납할까?

두 가지만 거론해본다. 첫째는 새누리당 비박세력에 대한 것이며, 둘째는 개헌 문제이다. 야권이 탄핵 작업에 들어가면서 비박 세력의 표가 탄핵통과를 위해 유의미해졌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탄핵정국에 적극 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당연한 선택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이들의 부역 경력이 씻기는 것이 아니다. 탄핵은 이들이 국민을 위해 마땅히 해야 할 정치적 의무가 되었으며, 결코 자신들의 장래를 도모할 정치적 자산으로 내세울 바가 아니다.

그런데도 이들은 이걸 고리로 해서 정치적 재기의 구도를 짜려든다. 이들이 탄핵에 나서지 않는다면 그것은 이들의 정치적 생명이 지금 이 순간 이대로 종말을 고하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살기 위해서라도 피할 수 없는 선택이다. 더 나아가서는 국민들에게 머리 숙여 석고 대죄하는 방식의 하나일 뿐이다.

그럼에도 뭔가 대단한 것을 하는 양 야당과 정치적 거래를 하려드는 태도는 이들 세력의 후안무치와 여전한 정치적 탐욕을 드러낸다. 게다가 국민들을 무시하고 있다.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줄로 알고 말이다.

개헌 주장의 기만성

개헌 주장은 이들의 동아줄이다. 여기에 이들과 함께 자리를 펴려는 세력들이 야권 내에도 출몰하고 있다. 개헌논의 자체가 문제겠는가? 그 시기와 의도, 그리고 지향하려는 내용이 음산하기 때문이다.

87년 민주화 투쟁의 결과물인 현 헌법이 제왕적 대통령제를 보장하고 있다는 논리로, 의회의 권한을 강화하는 내각제 방향으로 개헌을 정리하는 것이 다시는 이런 비극을 되풀이 하지 않는 길이라는 주장은 기만적이다. 의원내각제를 하고 있는 일본이 아베정권이라는 점을 주목하기만 해도 우리는 그와 같은 단순논법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 수 있다. 또한 사표(死票)없고 대표성을 정확히 반영하는 선거법 개정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처지에 이들은 이런 주장을 내세울 자격조차 없다.

게다가 "기득권 타파"를 내세워 비박세력과 연대까지 하려는 일부 대선 주자와 야권의 움직임은 역사의식의 부재만이 아니라 이 기회에 정략적 이해관계를 관철하겠다는 것 외에 다름이 아니다. 청산대상인 부역세력을 권력분점의 동반자로 삼으려는 생각을 하고 있다면, 이들 역시 시민혁명의 심판과 응징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시민혁명의 내부 교란자들이기 때문이다.

이제 해야 할 일 : 혁명적 과도정부

최고 권력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가능하게 하는 권력구조를 만들고 국민저항권 명시를 비롯해서 민주주의의 정치경제적, 사상과 문화 그리고 교육의 기본권을 확고히 해야 한다는 점에서 개헌은 향후 중대한 국민적 과제다. 이는 시민 민주주의의 토대 위에서 깊고 단단한 논의를 거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며, 그 어떤 정략적 계산이 개입될 틈이 없도록 하는 정세관리가 절대 요건이다.

그러자면, 조만간 다가올 대선에서 개헌논의에 대한 치열한 공방이 펼쳐지고 이걸 통해서 향후 논의의 중심을 국민적으로 세워나가도록 해야 한다. 차기정부에서 감당해야 할 일이다.

박근혜 체제의 죄과를 청산하는 작업이 긴요한 이 시기에, 개헌논의로 대충 자신들의 정치적 책임에 대해 묻어가려는 세력도 가려내야 하고 이들과 손을 잡고 시민혁명의 근본 목표를 붕괴시키려는 세력도 선명하게 고발되고 청산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고된 역사의 고비 고비에 축적해온 민주역량의 절정인 시민혁명의 꿈은 위태로워진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혁명적 과도정부"를 머뭇거리지 말고 수립해야 한다. 그냥 과도내각이 아니다. 시민혁명을 교란시키려는 세력들이 기회를 노리고 있다.

퇴진과 탄핵의 대상은 박근혜만이 아니다. 박근혜가 헌법적 지위를 이용해서 구성한 현 체제 전반에 대한 퇴진과 탄핵이 모두 포함된다. 따라서 만일 박근혜의 퇴진이 하루라도 빨리 이루어지지 못한 상태에서 일단 박근혜가 탄핵대상이 되어 직무정지 상태가 되면, 그가 임명하고 이끈 정부 고위 각료 모두의 직무정지도 꼭 뒤따라야 한다. 헌법상 정해진 순위대로 현 국무총리가 국정을 이끄는 것은 박근혜 체제의 그 어떤 지속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시민혁명의 정신과 정면으로 배치되지 않는가?

그러므로 야권은 의회에서 시민사회와 함께 박근혜 체제 전체의 직무정지를 선언하고 그 순간부터 모든 합법적 정부의 권한과 기능은 새로 만들어지는 과도정부에게 넘어간다는 것을 선포해야 한다. 이게 혁명이다. 시민혁명의 주체인 국민들은 뜨겁게 환호할 것이다. 여기서 총리를 뽑고 주요각료를 임명하고 여타 남겨둬도 되는 장관들은 남겨두고 정부기능이 일상적으로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

박근혜 세력 청산과 반민주적 정책 중지, 대선관리 등 과도기의 책임을 맡는 정부이다. 지금의 국무총리와 국무위원이 이를 제대로 감당할 수 있는가?

혁명적 과도정부 수립을 위한 선결조건은 의회를 개방하여 시민 권력과 정당의 깊고 정밀한 토론과 합의를 이끌어내는 작업이다. 그로써 시민혁명이 일궈낸 직접 민주주의의 대의를 통해 새로운 민주정부로 가는 길을 반드시 뚫어내야 한다.

헌법의 정신과 시민혁명의 미래

당연히 반문할 것이다. 기존의 헌법에 위배되는 위헌적 조처가 아닌가 하고. 혁명은 본래 기존의 법질서를 뛰어넘는 것이다. 오늘의 상황을 시민혁명이라고 규정하는 것에 반대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혁명은 기존질서 내부에 갇혀 있는 사건이 아니다. 시민혁명을 옥죄는 제도적 자물쇠를 빠른 속도로 해체시켜야 한다.

우리 헌법의 정신은 그 요체가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에 있다. 그러기에 부역세력이 제외된 정치권과 시민사회가 박근혜 체제 청산이라는 국민적 요구를 받아들여 헌법의 딱 한 조항만 잠정 정지시키면 된다. 권력은 헌법 조문에 글자로 박혀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움직이고 있는 살아있는 국민에게서 나온다. 새로운 질서는 이렇게 탄생한다.

대통령 궐위 시 기존의 순번제로 국무위원이 책임을 맡게 되는 내용이 담긴 헌법 제4장 1절 71조를 잠정 정지시키자. 상황은 급변한다. 혁명적 조처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체제의 지속을 거부하는 것이 국민적 명령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이는 너무나도 정당하다. 시민혁명이 그 조항 하나로 발목이 묶일 수 없다. 본래 그 조항은 제대로 된 정부기능의 연속성과 지속을 염두에 둔 것이지, 난파선 같은 정부의 항해를 계속 보장하는 조항이 될 수 없다. 시민혁명의 길에서, 이 조항의 기능 정지가 도리어 민주공화국의 미래를 지켜준다.

국민들에게 물어보자. 박근혜가 만든 정치적 유산을 잠시라도 그대로 안고 가겠는가, 아니면 오늘이라도 깨끗이 단절하고 새로운 시대로 가는 다리를 건설하겠는가라고.

지금과 같은 혁명적 국면에서, 헌법 제4장 1절 71조 (대통령이 궐위되거나 사고로 인하여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에는 국무총리, 법률이 정한 국무위원의 순서로 그 권한을 대행한다)는 우리가 목숨을 바쳐 지켜야 할 신성한 헌법 조항이 결코 아니다. 이걸 내세워 시민혁명의 전진을 가로막겠다면 그 역시도 돌파해나가는 것이 혁명의 위력이 아닌가? 시민혁명의 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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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웅
미국 진보사학의 메카인 유니온신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동화독법>, <잡설>, <보이지 않는 식민지> 등 다수의 책을 쓰고 번역 했다. 프레시안 창간 때부터 국제·사회 이슈에 대한 연재를 꾸준히 진행해 온 프레시안 대표 필자 중 하나다.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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