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밤낮을 놀았습니다. 누가? 마을 사람들이 함께. 어디서? 마을 이곳 저곳에서. 지난 6월 1일부터 3일까지 '성미산 마을축제'가 열렸습니다.
'성미산 마을'은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마을 공동체' 중 하나입니다. 과거 1990년대 공동육아를 시작으로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해 이제는 70여개의 모임, 단체들이 공동체를 이뤘습니다. 서울 마포구 성산1동, 망원동, 서교동, 연남동 주민들 중 일부가 이 공동체의 구성원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로 구성되는 매우 느슨한 공동체이지요.
현재 도토리마을방과후에서는 성미산 마을의 초등학교 1학년부터 6학년 어린이 40명이 교사 4명과 함께 놀면서 배웁니다(올해 2월 도토리방과후와 성미산마을방과후가 통합하면서 대가족이 됐습니다). 어린이들은 함께 나들이도 가고, 축구도 하고, 간식을 만들어 먹기도 하고, 자전거 타기도 합니다. 2박3일로 들살이(여행)를 다녀오기도 하고, 한달에 한번 생일 축하 잔치도 합니다. 아마(부모)들이 품을 내서 사진 찍기도 배우고, 팝송을 같이 부르며 영어 공부를 하기도 합니다. 1학년 입학 백일잔치, 단오절 씨름대회, 해보내기 잔치, 졸업식, 정말 열심히 놉니다. 아, 물론 숙제도 합니다. 숙제를 할 때 고학년 형, 누나가 내키면 저학년 동생들을 가르쳐주기도 한답니다. 도토리마을방과후는 아이들에겐 좋은 놀이와 생활 공동체이고, 아마들에겐 든든한 육아와 교육 공동체입니다. (도토리마을방과후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으시면 )
이번 축제에서 도토리 어린이들은 '아우라 식당'을 열었습니다. '아직도 우리가 라면만 끓여 먹는 줄 알아'의 준말인 '아우라 식당'은 도토리 고학년들이 참여하는 선택 활동 중 하나였습니다. 아이들이 직접 요리를 할 뿐 아니라 식당 홍보와 서빙, 수지 타산 맞춰보기까지 해보면서 노동을 통해 스스로 돈을 번다는 것의 의미를 깨닫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연습이 아니라 실제로 식당을 열어볼 수 있을까를 호시탐탐 노리다가 마을축제라는 호재를 만났으니 당연히 실행에 들어갔지요.
마을축제의 마지막 날이자 하이라이트인 '노는 마당'이 열린 3일, 축제 마당 한켠에 식당을 차렸습니다. 이날 식당은 대박이 났습니다. 완판을 했다지요. 고생한 아이들과 교사들, 그리고 아마들도 뿌듯한 하루였습니다.
축제엔 도토리마을방과후 이외에도 성미산마을의 다양한 단체와 개인들이 참여했습니다. 성미산어린이집, 우리어린이집, 성미산학교, 마포의료생협, 울림두레생협, 되살림가게, 마포희망나눔, 성미산문화협동조합, 우리마을꿈터(택견) 등이 축제에 참가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공동주택 소행주(소통이 있어 행복한 주택) 2호 어린이들도 직접 쿠키와 머핀을 만들어 팔았습니다. 2호 주민인 가지(이 마을에서 어른들은 서로 별명을 부른답니다), 토란, 다람 등 어른들이 돕기도 했지만요. 수익금은 전액을 기부하기로 했다니, 참 기특한 일입니다.
축제 마당의 부스들을 돌아다니며 핫도그, 아이스크림, 피자, 주먹밥, 수제맥주, 각종 음료수 등 먹을거리를 사먹고, 직접 만든 비누, 그릇, 재활용 가방, 작은 공예품 등을 구경하고, 바자회에서 1000원짜리 한두장에 옷 한 벌을 마련할 수도 있습니다. 공원 한쪽에 마련된 물놀이장에서 홀딱 젖어가며 노는 어린이들 중 한명은 안타깝게도 우리 아이였습니다.
무대에서 펼쳐진 공연도 볼만 했습니다. 성미산 마을엔 영화배우와 영화감독, 촬영감독, 뮤지컬 배우 등 문화예술인들도 많이 삽니다. 그 중 마을축제에 빠지지 않고 참여하는 배우가 있습니다. 박근혜 씨가 유독 사랑한 '길라임', 그의 아버지로 분했던 도깨비(별칭)입니다. 여러분, 성미산 마을에 오시면 길라임 아빠와 맥주 한잔하고 춤도 추실 수 있습니다! 도깨비는 이날 까치와 함께 '기타만 메고 다녔지' 등 자작곡 노래들을 불러줬습니다.
마을밴드 7013B의 노래에 맞춰, 또 성미산학교 중등과정 학생들이 가르쳐주는 율동을 따라하며 각자 흥에 맞게 춤을 추면서 마을축제는 끝났습니다. 축제에 참가한 주민들은 각자 놀았던 자리를 정리하고 또다른 장소에 삼삼오오 모여 뒤풀이를 했지요.
'오늘도 잘 놀았다'며 잠자리에 드는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예상치 못한 답변에 깜짝 놀랐답니다.
"우리 마을은 해마다 축제를 해서 좋지?"
"응, 그렇긴 하지. 나도 아이가 생기면 우리 마을에서 키울까 해. 놀 거리가 많아서 좋잖아."
이 아이가 자라서 아이의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 성미산 공동체가 유지될 지는 누구도 모르는 일이지만, 아이의 아이가 자랄 때 쯤엔 더 많은 마을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축제 같은 일상을 나누는 사회가 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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