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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따르는 더 큰 의문들, 왜 지난 정권선 '병사'라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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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뒤따르는 더 큰 의문들, 왜 지난 정권선 '병사'라 했나 서울대병원 "정치적 고려 아니다"...유족 "만시지탄이지만 다행"
15일 서울대병원이 고(故) 백남기 농민의 사망진단서 내용을 '병사'에서 '외인사'로 변경했다고 밝혔다. 사망진단서가 나온 지난해 9월 이후 9개월 만이다. 병원이 사인을 바꾸는 일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병원 측은 "정치적 이유 때문은 아니"라고 극구 해명했다. 그러나 지난해 사망진단서 논란 당시에도 담당 주치의와 병원 측이 외압설에 휘말렸던 만큼 박근혜 정부에서 '정권 눈치 보기'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심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당시 '병사'로 사인이 발표되자 서울대 의대 학생 및 동문들, 대한의사협회 등에서 '납득할 수 없는 결과'라고 강하게 비판한 적이 있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소속 의사(신경외과 전문의) 김경일 서울시립동부병원 전 원장은 <프레시안>과 인터뷰에서 "'급성신부전'은 고인이 물대포를 맞고 다치지 않았으면 생기지 않았을 병이다. 그럼에도 사망진단서에 사망원인을 '병사'라고 명시했다. 대부분의 경우, 이렇게 하지 않는다"고 했다. 또한 '병사'라는 사인에 의거 경찰이 부검 영장을 받아든 데 대해 "몽둥이로 개 패듯 패서, 다리를 부러뜨려놓고는, 왜 부러졌는지 원인을 찾겠다고 하는 격"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관련기사 : "백남기 사망진단서, 경찰이 병원에 압력 가한 듯")

이때문에 박근혜 정부 시절에 왜 백남기 농민이 '병사'로 기록돼야 했는지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제기될 전망이다.


서울대병원 측은 이날 어린이병원 1층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지난해 9월 25일 사망한 백남기 농민 사망진단서의 사망의 종류를 병사에서 외인사로 14일 수정했다"고 밝혔다.

직접 사인은 심폐정지에서 급성신부전으로, 중간 사인은 급성신부전에서 패혈증으로 변경했다. 선행 사인은 급성경막하출혈에서 외상성경막하출혈로 바꿨다. 사망에 이르게 된 최초의 원인을 '외상성경막하출혈', 즉 외부 충격에 의한 부상으로 인지하면서 사인을 병사가 아닌 외인사로 규정하게 된 것이다.

사망진단서 수정은 신경외과 교수회의와 의료윤리위원회 승인을 거친 후, 지난해 백 씨의 사망진단서를 직접 작성하고 서명한 전공의 권모 씨에 의해 이뤄졌다. 수정된 사망진단서는 유족 측과 상의해 곧 재발급될 예정이다.

김연수 진료부원장은 "오랜 기간 상심이 컸을 유족들에게 진심으로 깊은 위로의 말과 안타까운 마음을 전한다"며 "오늘 오전에 유족을 직접 만나 이같은 뜻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김 부원장은 "또 이번 일에 관련된 모든 사람을 비롯해 국민 여러분에게 사회적 논란을 일으킨 점을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외상 후 장기간 치료 중 사망한 환자의 경우 병사인지, 외인사인지 의학적 논란이 있을 수 있다"면서 "그러나 대한의사협회 사망진단서 작성 지침을 따르는 게 적절하다는 판단을 내리게 됐다"고 수정 배경을 설명했다.

▲15일 오후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열린 고 백남기씨 사인을 병사에서 외인사로 변경하는 내용의 기자회견에서 김연수 서울대병원 진료부원장이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인 변경, 왜 지금에서야?

백 씨는 지난 2015년 11월 14일 민중총궐기 집회 도중 경찰이 쏜 물대포를 맞고 쓰러졌다. 이후 서울대학교에 후송돼 수술했으나 의식불명 상태가 됐고, 결국 지난해 9월 25일 사망했다.

백 씨가 사망하자 주치의 백선하 교수는 3년 차 권 전공의에게 사인을 '외인사'가 아닌 '병사'로 기재하라고 지시해 논란을 일으켰다. 대한의사협회의 지침에 따르면 물대포 직사에 따라 의식을 잃은 뒤 사망했기 때문에 '외인사'로 기록하는 게 맞다는 지적이 나왔지만, 백 교수는 "병사가 맞다"고 강조했다. 진단서 수정에 대해서는 "전공의가 진단서를 작성했더라도 그 책임과 권한은 저에게 있다"면서 "어떤 외부 압력도 받지 않았다"고 했다.

병원 측은 이후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사망진단서 작성 과정에 외압이 있었는지를 조사했으나, 사망진단서 작성은 '주치의 고유 권한'이라는 이유로 문제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당시에는 '문제 없음'으로 결론을 내렸던 병원 측이 사망 진단서 변경이라는 극히 이례적인 결정을 함에 따라 그 배경에 관심이 쏠렸다.

김연수 서울대병원 진료부원장은 "지난해 진단서가 문제가 제기됐을 당시 개인적 판단, 의학적 판단을 존중하지만 그러한 진단서 작성에 의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규범과 지침에 따라 다르게 작성되었다"며 "당시 설치됐던 특별위원회는 그러한 강제 규정을 담지 못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제가 지난 12월 업무 인수인계를 받고 향후 계획을 세우는 과정에서 우리 서울대병원이 국민적 신뢰를 잃은 상황을 정상화하자, 누가 맞다 틀리다가 아니라 비정상적인 논란을 정상화시키는 게 좋겠다고 해서 여러 분들의 의견을 듣게 된 것"이라고 했다.

또 지난 1월 백 씨 유족 측이 사망진단서 정정청구 소송을 제기함에 따라 이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도 사망진단서 수정을 검토하게 됐다고 밝혔다.

김 부원장은 오랫동안 제기됐던 사망진단서 수정 권한 문제에 대해 "사망진단서를 직접 작성한 전공의는 피교육자 신분이지만, 사망의 종류를 판단할 수 있는 지식과 경험이 있고 법률적인 책임도 갖고 있어 수정을 권고했다"고 설명했다.

병원 측은 그러나 사망진단서 수정 권한을 갖고 있는 권 전공의가 담당 교수인 백 교수와 같이 근무하고 있는 상황에서 수정 권고를 하기 어렵다고 판단, 권 전공의의 수련 기간이 끝나는 4월까지 기다렸다고 밝혔다. 병원 측에 따르면 백 교수는 여전히 외인사에 동의하기 어렵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병원 측은 아울러 백 씨 사망진단서 논란처럼 의사 개인의 판단이 전문가집단(대한의사협회 등)의 합의된 판단과 다를 경우, 이를 논의할 수 있는 '의사직업윤리위원회'를 이달 초 만들었으며 위원 위촉 등 세부 지침이 마련되는 대로 가동한다고 밝혔다.

김 부원장은 "근본적인 대책을 찾자는 것, 그리고 전공의를 보호해야 생각 때문에 6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렸다"며 "정치적인 문제 때문이 아니"라며 다시금 강조했다.

병원 측은 '신뢰', '정상화'라는 단어를 재차 언급했다. 이날 기자간담회가 지난해 백 씨 사인 논란으로 추락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병원 측은 이날 논란을 차단하는 데만 급급한 모습을 보여 빈축을 샀다.

사회적 파장이 컸던 사안인 만큼 이날 취재진이 대거 몰렸지만, 간담회 30분 만에 종료하겠다고 일방적으로 밝혀 기자들로부터 원성을 들었다. "이렇게 중요한 사안인데 30분 안으로 끝난다는 게 말이 되느냐"는 지적에 결국 간담회는 15분가량 연장 진행됐다.

서창석 병원장은 간담회 자리에 참석하지 않았다. 병원장의 직접 사과는 없느냐는 질문에 김 부원장은 "오늘 이 자리는 기자회견이 아니라 진단서 내용이 왜 달라졌는지 등을 구체적으로 설명을 하는 간담회 자리이기 때문에 병원장은 오지 않았다"고 일축했다.

▲기자간담회가 열린 서울대병원 어린이병원 1층 로비에서 시민들이 '서창석, 백선하를 파면하라'는 손피켓을 들고 있다. ⓒ프레시안(서어리)

유족 "늦었지만 다행...사망신고 할 것"

백 씨의 유족 측은 늦게나마 사망진단서가 수정된 데 대해 환영의 뜻을 밝혔다. 백 씨 유족 측은 백 씨가 사망한 지 9개월가량 지난 지금까지 사망신고를 하지 않았다.

백 씨의 둘째딸 백민주화 씨는 이날 자신의 SNS에 "종이(사망진단서) 수정뿐만이 아니고 진심으로 아빠에게 미안해 하셨으면 좋겠다"면서 "감사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첫째딸 백도라지 씨도 언론을 통해 "지금이라도 사망진단서가 정정돼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며 "다음 주쯤 사망진단서를 수령할 예정이며 그 이후 사망신고를 진행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백남기투쟁본부도 이날 성명을 내고 "너무나 당연한 일이 너무 늦게 이뤄졌다. 늦게나마 정정이 이뤄져 다행스럽게 생각한다"며 "무엇보다, 사망진단서 문제로 사망신고를 하지 못했던 가족들에게 조금이 나마 위안이 되었으면 한다"고 했다.

이어 "너무나도 명백한 사망원인을 왜 병사로 기재하게 되었는지 규명해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 백선하 교수와 서창석 병원장은 유족과 국민 앞에 사죄하고, 사인 조작 시도의 전말을 고백하며, 사법처리 등 응분의 처벌을 기다려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물대포로 백남기 농민을 사망에 이르게 한 경찰 당국의 당시 진압에 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작업도 시작해야 한다"며 "당시 현장 지휘관들은 물론이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고 임기를 마쳐 유족에게 피눈물을, 국민에게 분노를 안겨준 강신명 전 경찰청장에게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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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어리
매일 어리버리, 좌충우돌 성장기를 쓰는 씩씩한 기자입니다. 간첩 조작 사건의 유우성, 일본군 ‘위안부’ 여성, 외주 업체 PD, 소방 공무원, 세월호 유가족 등 다양한 취재원들과의 만남 속에서 저는 오늘도 좋은 기자, 좋은 어른이 되는 법을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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