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2015년과 지난해에 이어 남북의 화해와 평화통일을 위한 시민들의 모임인 평화통일시민행동(대표 이진호)의 '평화통일시민강좌'를 연재합니다.
올해로 3회째를 맞이하는 평화통일시민강좌는 '새정부 통일정책, 이렇게 가야한다'를 주제로 7월 15일까지 총 5회에 걸쳐 진행합니다. (☞)
10.4 선언의 주역이었던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며 지난 10년간의 남북대결정책의 대전환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이번 강좌는 남북의 화해와 평화를 위해 정부가 시급하게 취해야 할 정책들이 무엇이 있을지 살펴보고 다시 6.15시대로 돌아가기 위한 시민들의 목소리를 모아내는 자리입니다.
새로운 정권이 이명박, 박근혜 정권의 냉전의 적폐를 해소하고 평화통일의 새시대를 열어갈 수 있도록 여론형성의 장이 될 ‘평화통일시민강좌’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네 번째 강연은 심리학자 김태형 심리연구소 함께 소장의 강연입니다. 김 소장은 '이제 국가보안법 폐지를 말할 때'를 주제로 남한 내 뿌리깊은 '종북몰이'에 대한 문제점을 짚어봤습니다. 다음은 강연 주요 내용입니다.
일반적으로 공포증은 죽음과 같은 충격적인 공포를 경험했을 때 유발됩니다. 한국 사람들에게 색깔 공포증은 단순히 언어적 공격 이상입니다. '넌 빨갱이야' 이 말은 단순히 기분 나쁨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매장당하거나 심지어는 죽기까지 했습니다.
해방을 전후한 시기 좌익사범에 대한 학살, 한국전쟁 당시 보도연맹 사건, 그 이후 조봉암 사건이나 인혁당 사건과 같이 간첩으로 몰아 하루아침에 감옥에 넣고 고문해서 죽인 사건들이 지속됐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빨갱이로 몰리면 말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색깔 공포증
색깔 공포증은 정신장애입니다. 한국인들은 집단 정신병이 있는 것입니다. 이 정신장애는 우리 사회에 악영향을 끼칩니다.
먼저, 사고능력을 저하시킵니다. 개 공포증을 예로 들면 어릴 때 개에게 물렸던 사람은 성인이 되어서 치와와 같은 작은 개를 만나도 공포를 느낍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치와와가 이 사람을 무서워해야 마땅하겠지만 개 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치와와를 무서워합니다. 치와와를 만나 공포가 유발되는 그 순간 정상적인 사고가 안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는 통합진보당 해산 당시 종북몰이가 있었습니다. 대통령 부정선거를 획책하여 위기에 몰린 국정원이 이를 만회하기 위해 통합진보당에 대한 종북몰이를 시작했습니다. 21세기에 정당이 해산당하는 말도 안 되는 일이 생겼는데 정치인이나 진보언론들은 이에 대해 싸운 것이 아니라 침묵하거나 동조했습니다. 제가 만났던 한 언론사의 기자는 당시에 진보 안에 숨어있는 종북주의자들을 다 없애버려야 한다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사건이 어느 정도 잠잠해지니 우리가 국정원에 농락당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다음에 또 종북몰이가 시작되면 맞서 싸우지 못하고 똑같은 실수를 할 가능성이 높다고 인정했습니다. 기자라면 우리 사회의 엘리트인데도 종북몰이 한 번에 사고능력이 마비되었던 것입니다.
색깔공포증은 종북몰이가 한창일 때뿐만 아니라 평상시에도, 일상적으로 사고능력을 저하시킵니다. 그것은 무엇보다 '금지' 때문입니다. 금지어가 대표적입니다. 우리는 어깨동무, 동무생각은 되지만 '동무'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조선일보는 되지만 '조선'은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대동강 맥주는 맛있다'나 '화성 12호는 참 멋지다'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금지가 있으면 사고능력이 저하됩니다. 프로이드는 빅토리아 왕조시대 때 여성이 남성보다 지적 능력이 떨어졌던 이유를 성에 대한 금지라고 주장했습니다. 당시에는 여성이 공공장소에서 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경찰이 잡아갈 정도로 성에 대한 금지가 심했습니다. 여성들은 성에 대한 이야기가 입에서 튀어나오지 않도록 머릿속을 단속해야만 했습니다. 떠오르면 말하고 싶어지니 머리에서 억제하고 금지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럴 경우 과연 '성'만 금지되겠습니까. 사람은 연상을 통하여 사고를 진행합니다. 성에 대한 생각은 다른 것을 떠오르게 하고 다른 어떤 것이 성을 떠오르게 하기도 합니다. 그 결과 여성들은 '동물의 왕국'도 못 보고 동물원도 못 가게 될 수 있습니다. 동물들의 친교행동이나 교미는 성을 떠올리게 할 위험이 크죠.
결론적으로 금지는 연상의 고리를 따라서 확대됩니다. 단순히 종북과 빨갱이만 금지되는 것이 아니라 그와 연관되거나 그것을 연상시킬 수 있는 것들까지도 금지되는 것입니다. 한 가지라도 금지나 억압이 있으면 전체적인 사고기능에 문제가 생기고 사고능력이 저하되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민족'이란 단어를 금지어로 지정하고 통일에 대해서 1분 자유발언을 하라고 하면 '민족'이란 단어를 억제하는데 심적 에너지를 쓰느라 머리가 잘 안 돌아갑니다. 이렇게 사고 억제는 필연적으로 사고능력을 저하시킵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면서 이것을 잘 못 느낀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의식적으로 억제하는 단계가 1~2년 지속되면 억압이 됩니다. 억제는 의식적이지만 억압은 무의식적이죠. 억압은 무의식적이라 사람들은 자동적, 무의식적으로 어떤 생각을 억누르고 있으면서도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합니다.
억압은 정신건강에 악영향을 미칩니다. 억제는 어느 순간 풀 수 있지만 억압은 그럴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색깔론과 관련해서는 억압의 명수들입니다. 의식적 노력 없이, 불편하다는 자각도 없이 일상적으로 사고를 억압하고 있습니다.
색깔 공포증으로 인해 판단능력도 손상됩니다. 가장 기본적인 판단은 진위판단입니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종북으로 몰릴 가능성이 있으면 진위판단을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더 이상 사고를 진행하지 않습니다.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캠프 쪽이 위기에 몰리자 문재인 캠프를 공격하기 위해 'NLL'논쟁을 촉발시켰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영해선을 포기하는 매국 행위를 했다는 이 억지 주장에 대해서 우선 NLL이 영해선이 맞는지 아닌지에 대한 진위판단부터 했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진위판단을 시도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NLL이 영해선인지 아닌지 아무도 모른 채 논란만 계속해서 반복되었습니다.
색깔 공포증은 후진적 정치를 고착시킨다
색깔 공포증은 한국을 후진적인 정치에 묶어두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최순실 사건을 들 수 있습니다. 21세기에 무당 정치가 가능했던 중요한 원인 중의 하나가 색깔 공포증입니다. 정상적인 정치라면 진보와 보수는 갈등을 겪으면서도 대화하고 타협하면서 사회를 발전시킵니다.
북유럽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는데요, 북유럽의 보수는 진보가 주장했던 무상의료, 무상교육 등을 받아들였습니다. 거부했다면 선거에서 참패하고 정당 존립이 위태로워졌을 것입니다. 국민의 지지가 높은 진보의 정책에는 보수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양보하고 타협했고 그 결과 북유럽은 조금씩 좋아졌습니다.
이러한 역사가 반복되면서 나이 드신 분들은 '계란으로 바위치기' 식의 패배주의에 젖게 됩니다. 박근혜 퇴진 촛불 당시 '군대여, 일어나라' 이런 구호가 나오고 일부 사람들에게 먹혔던 원인이 여기에 있습니다.
한국의 후진적인 정치의 원인은 색깔론에 있습니다. 장기집권 하면서 부정부패한 반장이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새로운 반장후보가 반장선거에 출마해 이 부패한 반장을 비판하면 그는 표를 얻기 위해서라도 조금은 착해질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은 새로운 반장후보를 빨갱이로 몰아 없애버리면 되니 옛날 반장은 변화하지 않아도 됩니다.
한국의 사대 극우 세력은 수틀리면 종북으로 몰아 정치적 라이벌을 제거했기에 조금도 변화하지 않고, 발전하지 않은 채 70년을 버틸 수 있었습니다. 한 마디로 한국의 사대 극우 세력이 조금도 변화하지 않은 채 21세기까지 생존한 결과 발생한 사건이 바로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입니다.
사상의 자유는 보장하지만 일부는 제한되어야 한다?
장기간 동안의 분단 체제, 폭압적인 국가보안법으로 인해 한국인은 반민주적 의식에 젖어 있습니다. 우리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살고 있다 생각합니다. 그런데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은 사상의 자유입니다.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고 실현하기 위해서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 등도 필요한 것입니다.
서구의 중세시대에는 사상의 자유가 없었습니다. 신 중심의 사상이 유일했으므로 지동설이나 진화론을 주장하면 이단으로 몰려 화형을 당하기까지 했습니다. 신에 의해 권력을 부여받았다고 간주된 왕을 비판할 수도 없었습니다.
사상의 자유가 없으면 사회를 바꾼다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합니다. 신흥자본가와 농민들은 사상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피 흘리며 싸웠고 봉건제 국가를 공화제 국가로 바꾸었습니다. 이런 역사적 사실이 보여주듯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은 사상의 자유입니다. 사상의 자유는 보편적 인권입니다.
하지만 한국에는 사상의 자유가 없습니다. 따라서 한국은 파쇼국가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시청 앞에서 김일성 만세를 외치는 것이 사상의 자유냐'고 묻습니다. 사상의 자유를 인정한다면 당연히 '그렇다'고 대답해야 하는데, 한국인들은 색깔 공포증으로 '그건 아니지'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김일성 만세이든, 모택동 만세이든, 트럼프 만세이든 간에 자신이 믿는 사상을 표현할 권리는 인정되어야 합니다. 한국인은 사상의 자유는 제한되어야 한다는 파시즘적 명제에 동의합니다. 사상의 자유는 허용하되 종북은 허용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상의 자유를 허용하면 나라가 망한다고?
박근혜가 진보당을 해산시키고 난 후에 진행되었던 기자간담회에서 한 외신 기자가 왜 사상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지 물어봤습니다. 박근혜는 “사상의 자유 인정한다. 그러나 한국은 특수한 상황이므로 일부는 제한될 수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전형적인 파시스트의 논리입니다.
히틀러도 사상의 자유를 금지하면서 동일하게 이야기했습니다. 독일은 사회주의 소련과 대치 중이므로 사회주의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미국에서 매카시즘이 맹위를 떨칠 때도 소련과 대치 중이라는 이유를 댔습니다. 그렇지만 미국이 후에 매카시즘을 자진해서 철회한 것은 소련이 없어져서가 아니라 매카시즘이 나라를 망치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파시스트들은 특수한 상황 때문에 사상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사상의 자유를 제한하고 싶어서 특수한 상황을 필요로 합니다. 그러나 사상의 자유는 특수한 상황을 핑계 삼아 제한해도 괜찮은 하찮은 권리가 아니라 그 어떤 상황에서도 침해되어서는 안 되는 인간의 보편적 권리입니다.
자유한국당과 그 지지자들은 '사상의 자유가 허용되면 나라가 망한다'고 떠들어댑니다. 사상의 자유를 허용하면 빨갱이, 간첩들이 설칠 것이고 나라가 혼란스러워져 망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망하는 것은 나라가 아니라 사대 극우 세력이죠.
인류역사에서 사상의 자유를 허용해서 망한 나라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반면에 사상의 자유를 허용하지 않아서 망한 나라들은 있습니다. 히틀러의 독일, 무솔리니의 이탈리아, 일본 군국주의는 사상의 자유를 제한함으로써 광기어린 야만 국가로 전락했으며 30년도 지속되지 못하고 망했습니다.
국가보안법 폐지는 인류의 기본권리 문제로 접근되어야 합니다. 국가보안법 폐지는 한국이 70년간의 파쇼체제를 졸업하고 민주주의 체제로 전환하는 분기점이 될 것입니다. 70년 분단 체제는 정치적으로는 파쇼 체제였습니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국가보안법 폐지로 사상의 자유가 전면적으로 허용되어야 비로소 가능합니다.
반민주적 사회풍토를 만든 국가보안법
우리 사회는 획일적이고 독재적인 문화가 온 사회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직장에서 우리는 반대의견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한국인들은 다른 사람의 의견이 마음에 안 들면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것이 아니라 나이(나이도 어린 것이), 학벌(고졸 주제에), 군대(군대는 갔다 왔어?), 성(여자가 무슨 말이 그리 많아) 등의 비합리적인 이유를 들어 찍어 누릅니다. 그럼에도 입을 다물지 않고 계속 저항하는 사람은 빨갱이나 종북이라는 공격을 받기 마련입니다.
이렇게 비합리적 권위주의, 비합리적 찍어누르기의 맨 끝에는 '종북몰이'가 버티고 있습니다. 국가보안법이 버티고 있기 때문입니다. 천안함의 침몰원인을 두고 북의 소행이 아니라고 합리적 의심을 하는 사람, 노조를 인정하고 지지하는 사람들을 빨갱이로 몰아가는 것이 허용되는 사회는 건강하고 합리적인 사회가 아닙니다.
대한민국은 동맥경화증에 걸려 있습니다. 소통이 될 수가 없습니다. 국가보안법을 든든한 버팀목으로 하여 상대방을 빨갱이로 몰아가면 이길 수 있으므로 소통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합리적인 소통과 토론이 불가능한 사회입니다.
국가보안법은 또한 무권리를 일상화시켰습니다. 우리는 여러 번의 항쟁을 통해 정권을 교체하거나 끌어내리면서 상층 민주주의를 실현해 왔습니다. 그러나 기층에서는 무권리가 만연해 있고 노예 상태입니다.
직장에서 노동자들이 회사 경영에 참가하거나 틀린 것을 지적할 수 있습니까? 학교에서 교사와 학생들이 교장이나 교감한테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거나 학교 운영에 참가할 수 있습니까?
국가보안법은 한국인들이 광장에서는 정치의 주인이 되지만 일상에서는 노예 상태를 면치 못하게 만드는 주범입니다. 한국의 노동자들은 노조에 가입하는 것이 이익이고 옳은 일이라 생각하지만 종북 낙인이 찍힐까봐 쉽게 가입하지 못합니다. 노동자들은 노조가입 그 자체에는 별 거부감이 없지만 빨갱이로 몰리는 것은 몹시 두려워합니다.
한국에서 국가보안법이 없어지고 노조에 가입해도 아무런 탄압이나 불이익을 받지 않게 된다면 한국의 노동자들은 북유럽 국가들의 노동자들보다 더 많이 노조에 가입하게 될 것입니다.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것도 결국 국가보안법 때문입니다.
국가보안법이 창조와 혁신을 망친다
지금까지 한국경제 성장의 비결은 후발자 전략, 즉 베끼기였습니다. 예를 들면 세계 최초로 스마트폰을 만들지는 못하는 한국은 미국 기업의 기술을 빠르게 베껴서 싸게 만들어 판매하는 전략으로 성장해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우리보다 더 잘 베끼는 나라들이 생겼습니다. 우리는 이제 창조경제, 혁신경제로 가야합니다.
그러나 한국처럼 군사주의적, 권위주의적, 수직적인 조직 문화가 지배하는 기업에서는 혁신적인 기술과 아이디어가 나올 수가 없습니다. 하루빨리 민주적이고 수평적인 기업문화가 자리 잡아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지만 정권이나 윗사람에게 밉보이면 빨갱이로 몰리는 사회분위기에서 그것이 가능할 리 없습니다. 국가적 차원에서 국가보안법이라는 족쇄가 풀려야 우리 사회 곳곳에 수평적이고 민주적인 사회풍토가 정착되고 창의성이 꽃펴날 수 있습니다.
국가보안법 폐지는 우리 사회가 이대로 주저앉느냐 아니면 미래로 나아가느냐를 결정하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색깔 공격이 통하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미래로 가는 유일하고도 가장 빠른 방법입니다.
다행히 과거에 비해 지금은 색깔 공포증이 상대적으로 완화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빨갱이, 종북으로 몰수는 있어도 사람을 함부로 죽이지는 못합니다. 한국인들은 색깔 공격의 위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사실, 즉 색깔 공격을 받는 경우에도 죽을까 봐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짧게 잡더라도 김대중 정부 시기부터 20여 년 정도 경험해오고 있습니다.
이제는 촛불을 들어도 군대를 투입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이런 경험으로 인해 국민들은 예전보다 색깔 공격을 안 무서워합니다. 세월호 참사 때 정부가 종북몰이를 시도했지만 안 먹혔습니다. 정부만 욕을 먹었죠.
2016년 북의 식당 여종업원 12명을 국내로 입국시켜 총선에 유리한 국면을 만들려고 했지만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했습니다.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반대 투쟁 역시 종북으로 몰려고 했지만 성주 군민들은 '우리는 종북이 아니라 경북이다'라고 맞받아쳤습니다.
요즘엔 종북몰이, 색깔론이 잘 먹히지 않습니다. 이 시기야말로 색깔 공포증을 완전히 치유하고 국가보안법을 폐지해서 분단 체제를 민주주의 체제로 바꿀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합니다. 국가보안법 폐지를 통해 지금의 파쇼 체제를 진정한 민주주의 체제로 바꾸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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