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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 점령지에서 언론 공백 메꾼 공동체 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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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IS 점령지에서 언론 공백 메꾼 공동체 미디어 [ACT!] 다큐 <유령의 도시> 리뷰
한국에서 공동체 미디어를 만든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2000년 통합방송법이 출범한 이후로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표현의 자유를 지키는 것도, 더 많은 공동체 사람들이 매체를 보게 만드는 것도 모두 쉽지 않습니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들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계속 공동체 미디어를 만드는 것일까요. 한국에서 멀리 떨어진 시리아에서, 그것도 IS의 점령지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지하에서 공동체 미디어를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유령의 도시>를 통해 그 의미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지난 5월에 열렸던 서울환경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유령의 도시>(City of Ghosts, 2017)가 상영되었다. 매번 서울환경영화제는 '환경'의 의미를 확장해서 사유하는 작품들을 상영했지만, <유령의 도시> 같은 작품을 개막작으로 가져온 것에는 무척이나 많은 메시지가 느껴졌다. 마치 개막작 상영 전 개막 행사에서 직접적으로 박근혜 정부의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지적했던 것처럼 말이다.

다큐멘터리는 전쟁과 미디어 사이의 관계를 무척이나 인상 깊게 전달한다. 인류의 역사는 곧 전쟁의 역사였다는 말을, 그리고 지구에 사는 모든 생물들 중에 오로지 인간만이 '기록하는 동물'(homo biblos)이었음을 생각하면 전쟁과 미디어의 관계를 이렇게 정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인류의 역사는 곧 전쟁의 역사고, 다시 그 역사는 인간의 손으로 끊임없이 '기록'되었다고. 현존하는 기록물 중 가장 오래된 역사서인 헤로도토스의 <역사>(Historiae)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기록이 전쟁에 대한 이야기였듯 말이다.

세월이 흐르며 인류의 문명은 계속 진보했고, 전쟁 역시 고도화되었다. 그리고 전쟁은 단순히 물리적인 충돌을 넘어, 기록과 기록 - 다시 말해 미디어 간의 전쟁으로 확장되었다. 마치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처럼 전쟁을 준비하는 세력들은 무기와 병사를 가다듬는 이상으로 자신들을 위한 미디어를 만드는 것에 심혈을 기울였다. 전쟁은 곧 자신들의 장점을 널리 전파하고, 단점은 최대한 가리는 '선전물'의 역사기도 했다.

그리고 2010년대를 맞이한 지금, 미디어는 소식이나 입장을 단순히 전달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이렇다 할 대량살상무기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라크를 공습한 미국 정부를 더욱 부추긴 미국의 주류 언론들처럼 때로는 전쟁 자체를 '만들어' 내기도 하며, 다른 한 편으로는 엄혹한 시기에 발행된 각종 지하언론들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 압박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단결하는 '각성제'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유령의 도시>는 이 상반된 두 가지 측면의 미디어를 밀착하여 접근하는 다큐멘터리다.

주류 언론이 눈길을 돌렸던 곳을 바라보았던 감독, IS를 응시하다

<유령의 도시>를 연출한 감독 매튜 하인만은 그간 주류 미디어가 수박 겉핥기식으로 쓱 지나갈 뿐, 심층적으로 짚어내지 않았던 영역의 실상을 강렬하게 고발하는 다큐멘터리를 계속 만들어왔다.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본격적으로 알렸던 다큐멘터리 <비상계단 : 미국 건강보험을 구하기 위한 싸움>(Escape Fire : The Fight to Resuce American Healthcare, 2012)은 마이클 무어의 <식코>(Sicko, 2007)와 비슷하게 민영화된 이후로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미국 건강보험 문제를 다룬 작품이었지만, <식코>보다는 좀 더 차분하게 문제를 짚는 것은 물론 구조적인 대안까지 제시하며 호평을 받았었다.

2015년에 발표된 이후 선댄스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 부문 감독상을 수상한 후속작 <카르텔 랜드>(Cartel Land) 역시 멕시코 마약 카르텔과 그에 맞서 싸우는 자경단의 이야기를 밀도 높은 현장 취재를 통해 생생하게 전달하며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두 편의 다큐멘터리를 통해 매튜 하인만은 너무나도 중대한 사안인 것은 물론 미국과도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지만, 가십거리로 다루는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는 이야기를 묵직하게 다루는 감독으로 주목을 받았다.

▲다큐멘터리 <유령의 도시>
올해 발표된 신작 <유령의 도시> 역시 마찬가지이다. 작품은 <카르텔 랜드>의 배경이었던 미국-멕시코 접경지대보다 더욱 위험한 IS(이슬람 국가)가 점령한 시리아의 도시 라카(Raqqa)에서 벌어진 일들을 다룬다. 다큐멘터리는 2010년대 초 아랍권 국가들을 후끈하게 달궜던 연속적인 민주화 운동 '아랍의 봄'을 짚으면서 시작한다. 아프리카의 튀니지에서 시작된 '아랍의 봄'은 이집트를 거쳐 서남아시아로 넘어가며 시리아에도 혁명의 물결이 닿았다.

약 40년 동안 2대에 걸쳐 시리아를 지배한 알 아사드 독재정권에 대한 염증이 시리아의 온 거리를 가득하게 메웠다. 주변 독재 국가들이 '아랍의 봄'을 거치며 정권이 뒤집어지는 모습을 지켜봤던 알 아사드 정권은 가만히 앉아서 시위를 지켜보지 않았다. 경찰과 군대를 동원해 적극적으로 시위대를 공격하는 것은 물론, 무차별적으로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을 체포해 온갖 고문을 가했다. 정권의 발악에 시민들도 잠자코 바라볼 수는 없었다. 손에 무기를 들고 민병대를 결성해 적극적으로 정부군에 맞서 싸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체 누가 알았을까. 그 혼란기를 틈타 IS가 라카를 비롯한 시리아 일부 지역을 점령하며 발흥하게 될 줄은.

IS 점령지, 전쟁을 말하지만 서로 다른 두 개의 미디어

IS가 소규모 군사조직에서 벗어나 시리아의 라카를 점령하며 맹렬히 위세를 떨치자 모든 미디어는 라카에서 자취를 감췄다. 신문이나 방송 같은 전통적인 매체는 물론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비롯한 인터넷, SNS도 철저하게 통제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시선으로 시리아에서 벌어지는 혼란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중계했던 외신들도 시리아를 떠났다. 한때는 아랍에도 서구식 민주주의가 전파되고 있음을 기뻐하며 영원히 우군이 될 것처럼 여겼던 무수한 해외 언론들은 자신들의 목숨이 위험에 처하자 앞장서서 시리아에서 탈출했다.

미디어들이 사라졌다는 것은 감시할 세력이 사라졌다는 의미와도 같다. 아무도 자신들의 행동을 감시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챈 IS는 라카를 수도로 선포한 뒤 온갖 만행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자신들과 반대하는 세력은 대로변에서 공개적으로 처형하고, 민중들을 억압했다. 하지만 한동안 라카에 사는 사람 정도를 제외하면 라카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소식을 전할 언론들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기 때문이다. 그저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소문'만 들려올 뿐이었다. 그렇게 라카는 영화의 제목 그대로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알 수 없는 '유령의 도시'로 전락하고 있었다.

▲ IS가 만든 홍보 영상의 일부. 멕시코의 사파티스타 반군이 만들었던 홍보 영상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세련된 편집 기술을 동원해 IS는 자신들을 알리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한동안 언론이 자취를 감춘 라카에서도 다시 미디어가 생겨났다. 하나는 IS가 직접 자신들의 활동을 전파하는 것은 물론 사람들을 더욱 활발히 조직하기 위해 만드는 홍보 미디어들이다. 다큐에서 소개하는 IS의 홍보 영상은 너무나도 세련되어 있다. 마치 할리우드에서 만든 광고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로 감각적인 편집과 후반 작업을 통해 자신들의 군사 행동을 멋있게 그려내고, 민간인 학살은 배신자를 처단하는 숭고한 행위로써 교묘하게 치장한다. 윤리적으로 지탄을 받아 마땅할 행동들이지만, 이들이 제작한 미디어를 통해 이러한 행위들은 당위성을 획득하고 만다.

반면 품질은 IS가 만든 영상들과 비교하면 너무나도 투박하지만, 더욱 강렬한 의미를 담아내는 미디어도 있다. IS를 반대하는 시민들이 만든 지하 미디어 <라카는 조용히 학살당하고 있다>(Raqqa is Being Slaughtered Silently, 이하 RBSS)이다. RBSS는 알 아사드 독재 정권에 맞선 반정부 시위에 근간을 두고 있다. 정부의 입맛에 맞게 통제된 시리아 주류 언론들은 시민들의 반기를 전혀 보도하지 않았고, 이에 맞서 시민들은 SNS를 통해 시위 현장을 직접 촬영한 영상을 활발하게 퍼트리기 시작했다.

IS가 라카를 점령하며 상황은 악화되었지만, 한 번 깨인 의식은 쉽게 닫힐 수 없었다. 알 아사드 정권에 SNS를 통한 지하 미디어 행동으로 맞섰던 이들은 IS 치하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맞서기를 시도한다. 스마트폰의 발달은 IS 점령 이후 벌어지는 온갖 사건들을 손쉽게 촬영할 수 있게 만들었고, 그렇게 촬영된 영상은 편집을 거쳐 RBSS의 공식 홈페이지와 각종 SNS 계정들에 업로드된다. 주류 언론들이 떠난 빈 터를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미디어가 채운 셈이다.

물론 알 아사드 정권이 그랬듯 IS 역시 자신들에게 반기를 드는 행동을 그냥 놓아두지 않는다. RBSS의 멤버 한 명은 실수로 IS의 검문 과정에서 절대 드러나선 안 될 자료들이 담긴 노트북을 압수당하고, 그로 인해 RBSS는 IS의 감시망에 노출되고 만다. 심각한 위기에 놓인 RBSS의 멤버들은 IS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더욱 지하로 숨어들거나, 터키나 독일로 망명을 택하지만 위협은 지금 이 순간까지도 진행 중이다. 지하로 숨은 멤버들마저도 하나둘씩 체포되어 공개처형을 당하고, 타국으로 망명을 택한 멤버들 역시 암살의 위협에서 자유롭지 않다. 설사 자기 자신은 살아남아도, 고향에 남은 가족들이 대신 죽음을 맞이하기도 한다.

목숨이 위협받아도 지키고 싶다, 공동체 미디어

하지만 이런 고난들 속에서도 여전히 이들은 목숨을 담보로 RBSS를 만든다. 다큐멘터리는 조금씩 자신들을 엄습하는 살해 위협과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왜 이들이 미디어 제작을 멈추지 않는지를 비춘다. 작품은 이들이 다른 시리아 사람들과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을 계속 강조한다. 동료와 가족의 죽음에게 눈물을 흘리고, 그 죽음이 자기 자신에게 닥쳐올지 몰라 몸을 부들부들 떨며 공포에 시달린다.

먼 이야기일 줄 알았던 살해 위협은 어느덧 현실이 되고 이 와중에서 몇몇 멤버는 자신들의 활동에 대해서 회의감을 잠시 느끼기도 한다. 해외에서 RBSS의 활동에 주목을 하지만 딱히 변하는 것은 없다. RBSS를 만든 이들이 원했던 대로 외신에서 한동안 찾을 수 없었던 시리아의 소식이 RBSS를 인용하는 형태로 다시 보도되지만, 사정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자신들이 원했던 것과 달리 이슬람 자체를 경멸하는 태도가 조금씩 거세지기도 한다. 언론의 자유를 목표로 결성된 국제언론단체 '언론인보호위원회'에서 2015년 RBSS에 국제언론자유상을 시상하기도 했지만, 역시나 크게 나아지는 것은 많지 않다. 단지 미약할 것으로만 생각했던 자신들의 활동에 온 세계가 주목한 것을 조금이나마 확인했을 뿐이다.

▲ IS 점령지의 시리아 사람들이 만든 지하 언론 <라카는 조용히 학살당하고 있다>(RBSS)의 공식 홈페이지 화면.

목숨에 대한 위협도, 시리아가 처한 상황도 크게 바뀌지 않은 상황 속에서도 왜 이들은 여전히 RBSS를 만드는가. <유령의 도시>는 직접적으로 그 이유를 들려주지 않는다. 대신 혼란과 고통의 순간 속에서도 카메라와 노트북의 손을 놓지 않는 멤버들의 모습을 계속 비추면서 이들이 지닌 강인한 의지를 계속 상기하게 만든다. 알 아사드 정권과 싸우면서 그들은 언론의 자유와 공동체 미디어의 중요성을 온몸으로 느꼈다. IS가 지금 당장 나와 주변 사람들에게 칼을 겨누어도, 이들이 만드는 공동체 미디어는 삶의 목표이자 곧 IS와 맞서 싸우는 무기가 된다. '펜이 칼보다 강하다'는 격언처럼 말이다.

잠시 다큐에서 벗어나 한국의 현실을 생각해보자. 한국은 분명 시리아와 비교하면 언론과 표현의 자유가 충분히 보장되는 국가지만, 2000년 통합 방송법이 시행되고 2005년 공동체라디오가 본격적으로 송출을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시민들이 만드는 풀뿌리 미디어는 많은 어려움에 봉착해있다. 시민들의 자유로운 방송 참여를 보장하라는 법은 사문화되기 직전이며, 공동체라디오의 출력은 10w에 머물러 같은 지역 내에서도 청취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퍼블릭 액세스를 시도하고 공동체 미디어를 포기하지 않는 것을 '미디어'가 가지는 의미가 너무나도 중대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마치 목숨의 위협에 직면하면서도 일군의 시리아 사람들이 RBSS 제작을 중단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유령의 도시>는 시리아에서 미디어 액티비즘을 시도하는 이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퍼블릭 액세스와 공동체 미디어를 실현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든 이들을 위한 헌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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