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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진정한 '협상가'가 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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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문재인 정부, 진정한 '협상가'가 되려면? [기고] 때론 영리한 '협박'도 필요하다
북한은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는가?

북한의 대륙간 탄도 미사일 발사로 미국의 대북전략이 위축될 거라는 전망들이 분분하다. 미국이 북한의 핵공격 우려 때문에 섣불리 한국이나 일본에 군사적 지원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은 ICBM 능력을 더욱 정교화해 자신의 전략적 지위를 극대화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과연 북한은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는가?

그럴 수 있다. 북한의 ICBM 실전배치로 미국은 강경한 대북 정책을 자제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이 북한의 의도대로 게임의 구조가 바뀐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북한이 ICBM을 실전배치해도 패권국가인 미국이 '불량국가' 북한에 머리를 조아릴 가능성은 없기 때문이다.

ICBM 실전배치와 핵도미노

물론, 미국은 북핵에 대한 대응 방식을 바꿀 것이다. 그것은 북한이 희망하는대로의 백기투항이 아니라 '대북 적대시' 정책의 세련화가 될 것이다. 미국은 동맹국 한국과 일본의 대북 견제력을 더욱 활용할 것이다. 한일 양국에 핵억지력을 '아웃소싱'할 수도 있다.

남한내 전술핵 재배치는 당연시될 것이다. 더 나아가 한일 양국에, 아니면 최소한 남한의 핵무장을 '용인'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핵무장 용인은 당연히 국제사회를 의식해 암묵적 형태가 될 것이다. 이스라엘 모델이다.

중국은 난감해질 수밖에 없다. 사드와 달리 한국의 핵무장에 딱히 반발할 명분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핵폭탄에 사드처럼 X밴드 레이더가 달려있는 것도 아닐 테니까 말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미국이 남한내 사드 배치를 전격적으로 철회하기라도 한다면 중국은 더욱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런 식의 동북아 핵 도미노는 결국 북한의 핵무기를 무용지물로 만들 것이다. 동시에 미국의 대북제재 역시 계속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북핵을 둘러싼 게임에서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다. 북한은 핵을 가졌지만 그것은 카드로서의 효용을 상실했다. 대북 제재는 계속된다. 북한은 서서히 말라 죽을 것이다. 결국 북한은 게임 체인저가 아니라 '루저'가 되는 것이다.

북한은 연금술사가 아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없다. 국제제재가 지속되고 자본의 유입이 끊긴 상태에서 무슨 수로 경제건설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정말 장마당 경제로 사회주의 강성대국이 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인가?

김정은 정권이 이런 상황을 모를 정도로 순진하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 알고도 그런다면 그것은 결국 핵개발의 목적이 '국내용'임을 실토하는 것이다. 평화협정이든 뭐든 상관없다. 핵무기만 가지고 있으면 정권의 힘을 과시해 인민들을 동원할 수 있다는 속셈이다. 정말 이렇다면 북핵문제는 정권이 붕괴되지 않는 한 해결 될 수 없다. 중국이 북한 정권의 붕괴를 극구 반대하고 있기 때문에 따라서 북핵문제는 영원히 풀릴 수 없다.

결론은 간단하다. 김정은 정권이 정말 핵카드로 대미 관계 개선에 나설 요량이라면 여기서 멈춰야 한다는 것이다. 이 지점을 벗어나 핵을 실전배치하는 순간 오히려 북한의 몸값은 급전직하한다. 북한은 그나마 지금껏 향유해 왔던 '약자의 힘'마저 잃어버릴 것이다.

문재인 정부, 무엇을 할 것인가?

취임후 문재인 정부는 한미동맹 강화에 전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북한의 ICBM 발사에 대응해 사드의 추가배치를 전격적으로 결정하기도 하였다. 급작스러운 정권 교체라는 어수선한 상황에서 일단 기존의 전략 자산인 한미동맹을 굳건히 하겠다는 전술적 의지로 보인다. 인수위도 없이 시작된 외교 업무와 취임후 3개월도 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어쩔 수 없는 전략이라 이해될 수 있다.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가 보다 확실히 해야할 지점들이 있다. 무엇보다 미중 양국에게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가 바로 한국이라는 점을 명확히 인지시켜야 한다. 한국의 동의 없이는 한반도에서 그 어떠한 전쟁도 불가하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인지시켜야 한다. '한반도에서 수천이 죽어도 상관없다'는 트럼프의 비상식적인 발언에 숨죽이고 있으면 안 된다. 강력히 항의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보다 당당해질 필요가 있다. 부조리에 항거해 거리로 쏟아져 나왔던 수천 수만의 시민들이 탄생시킨 정권이기 때문이다. 그 수많은 사람들중 한반도 전쟁을 원하는 이는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그것이 아무리 '위선'이라도 어쨌든 자유민주주의를 최상의 가치로 간주하는 미국에게 당당해질 수 있는 이유다. 말끝마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고 외치는 중국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무엇이 두려운가?

둘째, 역시 미중관계를 정확히 독해해야 한다. 싫든 좋든 국제정치가 강대국들의 놀음이라면, 미중관계는 한반도 문제의 핵심적인 구조이다. 현재 많은 논자들은 미중관계를 패권국과 부상국의 갈등구조로 채색하려 한다. 그러나 갈등지향적 미중관계는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수면 밑 미중관계는 훨씬 안정적이다.

핵무기로 인해 패권 전쟁이 더 이상 불가능하고, 아울러 미중 양국이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핵심 구성국이라는 사실은 미중관계를 일종의 전지구적 '지배연합'으로 만들어 왔다. 2016년 중국의 대미 무역흑자는 한국의 1년 예산보다도 많은 400조에 달한다. 중국은 그렇게 벌어들인 달러를 다시 미국채에 투자한다. 2017년 중국의 미국채 보유액은 무려 1조1000억 달러에 달한다. 1천조 달러가 넘는다.

당연히 미중 양국은 이러한 질서의 근본적 붕괴를 원하지 않는다. 현 국제질서의 안정적 관리에 강력한 공감대를 가지고 있다. "대량살상무기, 테러, 환경, 국제범죄 등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중국과의 비용분담이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미 대통령 클린턴의 20여년 전 발언은 여전히 유효하고 오히려 더욱 강화되었다.

한반도 문제는 바로 그러한 글로벌 거버넌스의 주요 대상이다. 한반도 분쟁은 곧 미중 양국을 연루시켜 극단적으로 인류 종말의 전쟁을 초래할 수도 있다. 미국이나 중국 어느 누구도 그러한 상황을 결코 바라지 않는다. 시스템의 최대 수혜자끼리 싸울 합리적 이유가 어디에도 없다. 수면 아래 숨겨져 있는 미중관계의 본 모습이다.

따라서, 문재인 정부는 '한반도 안정'을 전략 자산화 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한국이 한반도 안정의 주체임을 미중 양국에게 각인시켜야 한다. 그 방법은 여러 가지다. 극단적으로 한반도 안정을 뒤 흔들 수 있다는 제스처로 미중 양국을 난처하게 만들 수도 있다. 핵개발 시그널도 그 한가지다. 사드배치는 한국을 미중 양국의 탁구공 신세로 만들었지만, 남한판 벼랑끝 전술은 한국을 균형자가 되게 할 수도 있다. 한국이 게임체인저가 되는 것이다. 물론 그러한 전술은 매우 '세련되게' 수행되어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북한에 대해서는 핵의 실전배치가 초래할 후과를 인지시켜야 한다. 상술한 바와 같다. 북한이 핵무기를 실전배치하면 필연적으로 역내 핵도미노를 초래할 것이며 결과적으로 북한은 게임의 패배자가 될 수밖에 없음을 명확히 인지시켜야 한다. 따라서 협상으로 무엇인가를 얻어낼 수 있는 '골든타임'은 바로 지금뿐이라는 점을 각인시켜야 한다.

협상가(negotiator)는 누구인가? 협상가는 단순히 시류에 편승하는 자가 아니다. 게임의 당사자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정확히 읽고, 그들이 현재의 게임구조속에서 어떻게 자신들의 이익을 최대화할 수 있는지를 제시하고 중재해 줄 수 있는 자이다. 이를 위해 때론 영리한 '협박'도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는 진정한 협상가가 되려는 용기를 가지고 있는가? 이제 당당하게 그 배포를 드러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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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서
한국외국어대에서 중국의 대한반도 군사개입에 관한 연구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덕여대 연구교수 및 상하이 사회과학원 방문학자를 역임하고, 현재 강원대 등 여러 대학에서 강의하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국제관계 이론, 중국의 대외관계 및 한반도 문제이다. 연구 논문으로 <푸코가 중국적 세계를 바라볼 때: 중국적 세계질서의 통치성>, <북핵 위기시 중국의 대북 동맹 딜레마 연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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