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7일 취임 100일 기념 기자회견에서 기자가 한 보유세 인상계획 질문에 “지금 단계에서 부동산 가격 안정화 대책으로 (보유세 인상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답변했다. 문 대통령은 또 “보유세는 공평과세, 소득재분배, 또는 추가적인 복지재원 확보를 위해 필요하다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다면 정부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발언을 듣는 내 심경은 복잡했다.(관련기사 : )
문재인 대통령이 보유세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어렴풋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보유세를 무엇보다 부동산 가격 안정화 수단으로 여기는 것 같다. 물론 문 대통령이 보유세에 대해 공평과세 및 소득재분배(자산을 많이 가진 사람들이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하고, 그 세금으로 시장에서 현저히 불평등한 소득분배상태를 개선하겠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성격이 있다는 건 분명히 했다. 하지만 사회적 합의라는 '단서'와 정부도 검토할 수 있을 것('검토할 것'이 아니라)이라는 '유보'를 붙인데서 알 수 있듯 보유세의 공평과세 및 소득재분배 기능을 보조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사족을 붙이자면 이미 국민 10명 중에 7명이 보유세 강화에 찬성할만큼 보유세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이뤄졌다. (관련기사 : )
문재인 대통령의 보유세 발언이 아쉬운 건 문 대통령이 대한민국의 적폐 중 적폐라 할 부동산 공화국의 실체에 대해 적확한 인식을 결여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염려 때문이다. 2015년 말 기준 한국의 국민순자산은 1경2359조 원인데 이 중 토지(6575조 원)을 포함한 부동산 자산이 무려 9136조 원에 달하며, 그 중 대부분이 극소수의 부동산 소유자들에게 독식된다 (부동산 소유 분포는 극히 불평등하다. 대한민국 인구의 1%가 사유지의 55.2%를, 인구의 10%가 97.6%를 소유하고 있고, 토지를 한 평도 소유하지 못한 세대가 40.1%에달한다. 무주택자도 절반에 가깝다). 또 연평균 발생하는 부동산 불로소득(매매차익 및 임대소득)이 매년 400조 원에 달한다. 이런 사실들은 대한민국이 부동산 공화국임을 증명한다.
주지하다시피 부동산 공화국은 국민경제의 건강한 성장과 지속가능한 사회 발전을 결정적으로 방해한다. 자산양극화 및 소득불평등, 생산과 소비 위축, 경기변동의 진폭 확대, 중앙 및 지방재정의 낭비와 왜곡, 토건형 산업구조 고착화, 인허가 등을 둘러싼 부정부패 양산, 토지의 비효율적 사용, 근로의욕 저해 및 투기심리 만연 등이 부동산 공화국 아래 발생하는 부작용들이다. 부동산 공화국을 해체하기 위한 실마리가 바로 보유세다. 보유세만으로 부동산 공화국이 해체되진 않지만, 보유세 없이 부동산 공화국 해체는 난망이다.
나는 보유세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노무현 전 대통령이 생각났다. 해방 이후 가장 중요한 성취 중 하나라 할 종합부동산세는 그 없이는 불가능했다. 노 전 대통령은 정부, 여당의 반대조차 무릅쓰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종부세를 관철시켰다. 그는 정치적 유불리를 따지지 않고, 설사 정치적으로 부담이 되더라도 부동산 공화국 해체를 위해선 종부세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여기고 끝내 입법화시켰다. 노전 대통령은 자신의 정치적 이해 보다는 공동체와 국가를 먼저 생각한 사람, 지금이 아닌 역사와 대화한 사람, 정의와 공익을 위해선 1000만 명과도 결연히 맞선 사람이다. 내가 노 전 대통령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나는 문재인 대통령이 적어도 보유세에 관한 한 노 전 대통령에게 배웠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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