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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이라는 유령이 떠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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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이라는 유령이 떠돌고 있다 [김윤태 칼럼] 불평등이 문제다 (1)
지금 어떤 유령이 하늘을 떠돌고 있다. ‘불평등'이라는 유령이! 한국 사회에서 증가하는 불평등이 사람들의 행복감을 떨어뜨리고 자살, 우울증, 저출산, 과잉 경쟁, 일 중독 등 수많은 사회문제를 만들고 있다. 지난 30년간 아무리 경제성장률이 올라가고, 1인당 국내총생산이 상승하고, 한국이 세계적 경제대국이 되어도 수많은 사회문제들은 해결되지 않고 있다. 문제는 경제가 아니다!

나는 한국 사회의 가장 심각한 사회문제가 사회경제적 불평등이라고 생각한다. 부유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의 격차가 너무 벌어지고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과 불평등은 더욱 심각하다. 남자와 여자의 격차는 이미 오래 전부터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중년 세대에 비해 청년 세대, 노인 세대의 빈곤율이 지나치게 높아졌다.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사람들의 분열이 빠른 속도로 이루어지고 있다. 대한민국이 두 개의 국민으로 분열되고 있다.

점점 커지는 소득 불평등

한국 사회의 소득과 자산이 소수의 부자에게 집중되고 있다. 대다수의 중산층은 아무리 노력해도 부자가 되기 힘들다고 체념한다. 실업자와 극빈층은 최소한 인간다운 생활을 누리기조차 힘들다고 절망한다. 생존경쟁에서 실패한 사람은 절벽 아래로 추락한다. 먹이사슬의 최고 정점에 있는 포식자만 살아남을 수 있다. 결과적으로 한국 사회는 부익부 빈익빈 사회로 변하고 있다.

최근 한국의 불평등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상위 수준이다. 한국의 불평등은 지니계수, 상대적 빈곤율, 5분위 배율에서 완벽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상위 1%의 부의 집중이 빠른 속도로 이루어졌다. 2014년 현재 한국의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상위 1%의 소득은 약 12.3%로 증가했다. 상위 10퍼센트는 약 44.8%를 차지한다.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로 높은 비율이다. '20대 80의 사회'는 과거의 이야기가 되었다. 이제 '1대 99의 사회'가 출현하였다.

신약 성경 '마태복음' 25장 29절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미국 사회학자 로버트 머튼은 과학자들이 공동으로 연구 성과를 만들지만 유명한 과학자가 무명의 과학자에 비해 더 많은 보상을 받는 현실이 마치 마태복음의 구절과 같다고 주장했다. 이를 '마태 효과'로 불렸다. 우월한 사람과 열등한 사람의 작은 차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커져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큰 격차로 커진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도 마태 효과가 그대로 실현된다. 부유한 사람은 점점 더 부유해지고, 가난한 사람은 점점 더 가난해진다. 부자에게 유리한 정책이 채택되지만 가난한 사람을 위한 정책은 밀려난다. 부자를 위한 감세와 가난한 사람을 위한 복지 축소가 동시에 이루어진다.

불평등 사회가 만든 비극

대한민국 헌법 10조에 '모든 인간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는 문구는 평등의 선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 사회가 부자들만 존엄하고 가치 있고 행복한 권리가 있는 사회로 변했다. 놀라운 점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빠르게 불평등이 커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소득과 부의 불평등은 한국 사회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 되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노동시장의 소득 불평등이 지나치게 커지고 있다. 특히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가 지나치게 커지고 있다. 반면에 임금 정책과 재분배 정책은 빈약하다. 최저임금이 매우 낮은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사회보험의 사각지대가 많아 사회적 위험에 그대로 노출된 사람이 많다. 여성, 청년, 노인, 장애인 등 약자를 돕는 사회보호 제도도 형편없이 부족하다. 결과적으로 불평등이 심화되면서 중산층이 몰락하고 빈곤층이 늘어났다.

불평등이 커질수록 부자를 부러워하는 사람들은 끝없는 지위 경쟁에 빠져든다. 학벌, 미모, 사치품을 숭배하고 과소비에 빠져들지만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부유한 사람과 비교하며 자신에 대한 열등감이 커지면서 스스로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자존감이 약해지고 우울증이 확산되고 자살률이 급증하고 있다. 사회의 활력이 사라지고 미래에 대한 비관주의가 널리 퍼지고 있다.

금수저, 흙수저의 세습사회

한국 사회의 더 놀라운 사회현상은 세습이 불평등을 심화시킨다는 점이다. 2013년 재벌닷컴 자료에 따르면, 상장사 상위 1% 주식 부자들이 보유한 주식 가치가 78조원에 육박한다. 전문경영인보다 재벌 2세, 3세의 비율이 압도적이며, '상속형' 부자가 70%를 차지한다. 자기 힘으로 창업한 부자는 10명 중 3명에도 못 미친다. 오늘날 젊은 세대들은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자신의 운명이 결정된다고 믿는다. '금수저'와 '흙수저'로 세상이 갈라졌다고 한탄한다.

부모의 능력에 따라 자녀의 운명이 결정되는 '세습 사회'가 등장하면서 능력에 따른 자유로운 사회이동이 사라지고 있다. 계층 상승의 주요 통로가 되는 교육 기회가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결정되면서 균등한 기회를 강조하는 민주주의의 가치가 약화되고 있다.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21세기 자본>에서 전 세계적 차원에서 세습된 부와 권력에 의해 과두제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경고했는데, 한국이야말로 가장 대표적 세습 사회로 변화하고 있다.

왜 한국인은 불행한가?

경제적 기준으로만 본다면 한국은 성공한 국가이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도 1960년대 약 80달러에 비해 2014년 기준 3만 달러에 육박한다. 거의 300배 이상 증가했다. 세계 최고 기록이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가 측정한 한국인의 '삶의 만족' 수준은 하위권이다. 1인당 국내총생산이 2만 달러가 넘고 3만 달러에 육박해도 행복감이 더 늘어나지 않는다. 가장 빠른 물질적 성공을 이룬 나라가 심리적 불행감에 직면했다는 역설적 현실이 바로 한국의 비극적 자화상이다. 이런 지독한 '한국의 역설'이 왜 발생한 것일까?

나는 한국인이 행복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를 불평등이라고 주장한다. 경제성장이 계속되어도 지나친 불평등을 해결하지 못하면 행복감은 높아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머어마한 부를 차지한 소수의 부유층이 가장 큰 큰 몫을 차지하고 나머지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가난하게 살아간다면 1인당 국내총생산과 평균소득의 상승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다. 조지 오웰이 <동물농장>에서 말한 대로 "동물들은 더 풍요로워지지 않는데 농장만 배를 불려가는 것 같았다".

2000년대 초반 노무현 정부 집권 시 삼성경제연구소와 전경련이 내세운 '2만 달러 시대'라는 장밋빛 환상은 실패로 증명이 되었다. 경제활동인구의 절반이 비정규직이이라면 2만 달러 시대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마치 '형은 뉴욕에 여행을 다녀왔는데 내가 갖고 있는 것은 이 형편없는 티셔츠뿐이다'라고 쓴 옷의 문구와 같다. 우리나라의 상황에 맞게 바꾸어 말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대한민국은 2만 달러 시대를 이루었는데, 내가 얻은 것은 비정규직 일자리뿐이다'. 이러니 한국인의 행복감이 올라갈 수가 없다.

헬조선과 비관주의

2010년부터 한국 사회에 '헬조선'이라는 인터넷 신조어가 등장했다. '한국은 지옥이고 아무런 희망이 없고 조선 시대와 같은 신분제 사회가 되었다'는 의미로 쓰인다. 이는 '금수저', '흙수저'에 따라 인생이 결정된다는 개인적 좌절감의 표현이다. 2015년 20~40대 세대 의식에 관한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우리 사회를 '헬조선'으로 부르는 것에 동의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응답자의 65.3%가 '동의한다'고 답변했다. '헬조선'이라는 용어가 생긴 이유로 '경제적 부의 분배가 공정하게 이뤄지지 않아서'(21.6%), '개인적 노력을 통한 사회경제적 지위 상승이 힘들어서'(16.5%), '세월호 침몰 사고 등 안전에 문제가 있어서' (14.7%) 등 순서로 나타났다(<연합뉴스> 2016년 6월 30일).

2015년 발표한 한국 통계청의 사회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6.7퍼센트가 사회경제적 지위를 '하층'이라고 답변했다. 자신이 하층민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1988년 이후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 평생 노력해도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아질 가능성이 낮다고 생각하는 비율은 60퍼센트에 달했다. 절망적 분위기가 사회를 짓누르고 있다.

로마 역사가 플루타르코스는 "부자와 가난한 자의 불균형은 모든 공화국의 가장 오랜 치명적 우환"이라고 말했다. 현대 사회에서도 불평등이 가장 치명적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불평등은 단지 낮은 수입이나 빈곤만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스웨덴 사회학자 예란 테르보른이 <불평등의 킬링필드>에서 지적한대로 불평등은 우리의 건강, 자존감, 사회활동에 참여하는 자원, 인간으로서의 역량을 손상시킨다. 불평등은 개인 뿐 아니라 경제성장에 해악을 끼치며 파괴적 갈등을 유발하며 사회 전체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불평등이야말로 사회의 가장 큰 질병 중 하나이다. 불평등과 싸우는 과제야말로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도덕적 의무이다.

불평등과 싸우는 국가의 역할

불평등의 완화와 해결이 없다면 사회통합의 어려움이 커질 뿐 아니라 지속적인 경제성장도 불가능하며 한국 사회의 미래도 없다. 정치인과 정책 결정자들이 증가하는 불평등에 맞서 싸우는 역사적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불평등 문제가 공정하게 해결하도록 통합적 제도와 정치적 합의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학자와 지식인은 정부 정책의 본질과 예상되는 결과를 두고 진지한 토론을 벌여야 한다. 법인세 인하, 자사고 설립, 의료 민영화, 무역 자유화가 누구에게 도움이 되는지 따져보아야 한다.

로마 철학자이자 정치가이었던 키케로는 로마 집정관 루시우스 카시우스가 항상 "퀴 보노(Cui Bono)?"라고 현명하게 물었다고 칭찬했다. 이는 "누가 이득을 얻는가?"라는 의미다. 나는 사회과학의 핵심적 질문 중 하나가 정부의 정책으로 '누가 이득을 얻는지' 그리고 '누가 이득을 잃는지' 따지는 일이라고 믿는다. 새로운 정부의 개혁 정책도 이 질문에서 시작해야 한다.

이 글은 김윤태의 <불평등이 문제다: 대한민국 99%의 내일을 위한 전략>(휴머니스트, 2017년 9월 출간예정)을 바탕으로 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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