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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를 만드는 인터넷 설치기사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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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를 만드는 인터넷 설치기사들의 이야기 [ACT!] 공중을 위한, 공중에 의한 <플레이온>
비정규직 인터넷 설치기사들의 이야기를 다룬 <플레이온>(변규리, 2017)을 보고 나면 다큐멘터리는 공중(public)을 위한 그리고 공중에 의한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다큐멘터리가 공중을 위한 영화를 만들고 있음에도 그 자신이 공중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드러내거나 성찰하는 경우는 드물다. <플레이온>이 흥미로운 것은 제작 과정을 직접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추론하게 만드는 힘, 즉 메타 다큐멘터리적인 성격을 일정 부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이 영화는 카메라를 들어본 적이 없는 전직 라디오 PD가 노조 활동을 해본 적이 없는 노동자들을 만나면서 시작되었다. 과거 변규리 감독은 구로공동체라디오 구로FM(이하, 구로FM) PD로 활동했다. 구로FM은 구로민중의집이라는 곳과 같은 공간을 쓰고 있었는데, 당시 이곳은 지역 노동자들이 모여서 토론이나 회의를 할 수 있도록 공간을 대여해주는 사업을 하고 있었다. 마침 파업을 앞둔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 노동조합 금천광명지회 노동자들이 그곳을 찾아서 회의를 했고, 그 과정에서 당시 구로FM PD였던 변규리 감독을 만나 ‘노동자가 달라졌어요!’라는 팟캐스트를 공동으로 진행하게 된다. 이들의 만남은 <플레이온> 제작으로까지 이어진다. 매주 노동자들의 소식을 알리는 팟캐스트의 공동 진행자들이 한편의 노동 다큐멘터리를 함께 만들게 된 것이다. 이 대목에서 다큐멘터리(를 포함한 영화)의 제작 주체가 될 자격은 모든 이에게 평등하게 열려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닫게 된다. 물론 이러한 공식화는 어디까지나 할 수 있는 자들의 결단이 있을 때 가능하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는 점을 명심해두자.

라디오를 매개로 한 만남 탓인지 몰라도, 이 영화의 구성은 라디오의 형식을 따른다. 제목인 ‘플레이온(play on)’은 오늘날 스트리밍으로 음악을 듣거나 팟캐스트를 방송을 듣기 위해 플레이 버튼을 누르는 과정을 연상시킨다. 감독은 방송 중이라는 의미의 온에어(on air) 대신, 방송을 재생한다는 의미의 플레이온이라는 단어를 선택했다. 어느 평범한 소시민 혹은 노동자의 이야기를 익명의 누군가에게 전달하겠다는 게 감독의 의중이 아니었을까. 실제 이 작품은 오프닝과 엔딩을 포함해 영화 곳곳에 팟캐스트 방송을 녹음하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진행자들은 익명의 청취자들을 향해 자신들이 노동 현장에서 경험했던 이야기를 전달한다. 이와 같은 장면들은 라디오의 이야기가 청취자의 경청에 의해 완성되듯이 영화의 이야기는 관객의 관람에 의해 완성된다고 넌지시 말한다.

▲ <플레이온>(변규리, 2017)

한편, 플레이라는 단어는 다양한 사전적 의미 - 놀이, 연기, 내기, 도박, 경기, 행위, 움직임 등 - 를 가지고 있다. 맥락과 관점에 따라서 그 뜻풀이가 달라지겠지만, 이 영화의 내용과 제목을 겹쳐 놓으면 치열한 경기와 그 경기가 중단 없이 계속되는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물론, 여기서 경기를 삶으로 대체해도 무방하리라 본다). 그리고 이는 삶의 여러 단면을 기록하고 그것을 영상으로 옮김으로써 지나간 과거의 현실을 현재적인 삶의 흐름으로 탈바꿈시키는 다큐멘터리의 본질과 맞닿는 것이기도 하다.

이 영화의 주요 이야기는 여느 노동 다큐멘터리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오프닝에서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 노동조합 금천광명지회에 소속된 다섯 명의 노동자들이 소개되고, 그들이 노동 현장에서 어떤 고충과 불편을 겪는지를 보여준다. 사용자측과의 부당한 근로계약과 그들이 제시하는 부당한 근무평가 방식,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는 작업현장, 그리고 서비스 이용자와의 관계에서 빚어지는 감정노동에 대한 이야기들이 전개된다. 이후, 영화는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고 파업에 참여하는 과정을 다룬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비정규직을 소재화한 노동 다큐멘터리라면 응당 다루어야 할 부분이지만, 그것이 이미 많은 영화에서 반복되었다는 점에서 진부하다는 지적을 피하기 힘들다. 다만, <플레이온>의 차별화된 지점은 등장인물들의 특이성에 있다. 이 영화의 주역인 다섯 명의 노동자들은 자발적으로 노조를 만들었으며, 그들이 소속된 노조의 구성원은 그들 다섯 명이 유일했다. 즉, 이 영화에서 주목할 점은 바로 신생·소규모 노동조합의 구성원들이 노동자로서의 의식과 실천을 갖추고 그것을 발전시켜나가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영화는 다섯 명의 노동자들이 신생 노조를 만들고 파업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겪었던 문제들을 밀도 있게 다룬다. 예를 들어, 노조를 결성하는 과정에서 사용자측 또는 비노조원들과 갈등을 겪었던 것을 보여주는 장면들이 있다. 여기서 이중의 소외가 나타난다. 사용자측의 부당한 근로 계약 때문에 소외를 당하는 것도 모자라 노조 결성에 색안경을 끼고 있는 동료들로부터 소외되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파업 과정에 있었다. 장기파업으로 생계 곤란에 직면하게 된 다섯 명의 노동자들은 복직투쟁을 할 것인지 생계투쟁을 할 것인지를 결정해야만 하는 갈림길에 서게 된다. 그들의 선택은 생계투쟁이었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과도하게 원론적인 질문을 던지거나 지나치게 무거운 분위기를 조장해 그들의 선택에 의미를 부여하려고 하지 않는다. 뜻밖에도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다섯 명의 노동자들이 생계 곤란을 일시적으로나마 해소하기 위해 삼삼오오 모여 아르바이트를 하는 모습이다. 이 장면은 전체적으로 고조되었던 극적 긴장감을 이완시켜주는 것은 물론 영화의 이야기를 전혀 다른 국면으로 전환해주는 역할을 한다. 비정규직 노동 현장, 노조 결성 과정, 파업 현장 등의 거대 서사로부터 튀어나온 이 일상적인 에피소드는 노동과 삶이 불연속적인 것이 아니라 연속적일 수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다시 말해, 노동자들의 일상적이고 소소한 활동을 다룬 이 장면은 그들의 삶 속에서 일상, 노동, 투쟁이 하나의 연속체를 이루고 있다는 확신을 준다.

이처럼 <플레이온>은 삶과 이야기 혹은 삶과 매체가 형식적인 면에서나 내용적인 면에서나 하나로 겹쳐지는 작품이다. 라디오 또는 영화의 제작과 수용이 공중이라는 공통분모에서 겹치고, 그러한 방식으로 만들어진 이야기가 노동, 삶, 투쟁을 개별적인 단위로 분절시키지 않고 하나의 흐름으로 완성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반복하자면,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 그리고 이 영화의 이야기를 만들어낸 사람들은 노조를 결성하기 이전에, 팟캐스트 방송을 하기 이전에, 그리고 영화를 만들기 이전에 평범한 소시민이었다. 그들은 시작하는 마음으로 노조를 만들었고, 팟캐스트 방송을 했고, 그리고 결국 <플레이온>을 만들어 그 세계의 주역이 되었다. 이야기를 담고자 하는 의지 그리고 그것을 전달하고자 하는 의지가 이 영화의 제작을 가능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물론 아직 이 영화가 완벽하게 완성된 것은 아니다. 관객으로서의 당신이 이 영화에 관심을 두고 관람할 때, 비로소 공중을 위한 그리고 공중에 의한 다큐멘터리가 완성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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