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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폐 청산 그 이상의 것을 보여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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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폐 청산 그 이상의 것을 보여줘야 [민교협의 정치시평] 정치적 적폐청산과 교육계의 기득권 보장
문재인 정부가 국정원을 비롯한 권력기관을 대상으로 불법적인 권한남용에 대한 거의 전방위적인 조사에 들어가면서 묻혔던 비리와 불법행위가 하나하나 드러나고 있다. 과거 정권의 ‘적폐’는 청산되어야 마땅하고, 그로 인한 폐해를 회복하고 법질서를 바로 세우는 것은 새 정권의 의무이기도 하다. 작년 가을 타올랐던 촛불민심이 말해주는 ‘국민의 명령’도 다름 아닌 적폐청산이었다. 물론 이 과정에서 권력의 부당한 행사에 동조하거나 관여했던 측의 불만이나 저항이 표면화되기 마련이다. 이 청산작업을 정치적 복수로 몰아붙이는 최근 일부 정치권과 보수언론의 작태가 그것을 말해준다. 그러나 이런 억설은 촛불 이후 국민의식의 변화흐름에 역행하는 것으로, 속속 드러나는 적폐의 내용들이 주는 충격과 더불어 역효과만 낼 뿐이다.

이같은 노골적인 반발보다 더 차원이 높고 앞으로의 사태전개에 따라 파급력도 가질 수 있는 것이 현실론을 앞세운 일종의 '물타기' 시도다. 과거의 적폐에 대한 청산은 필요하나 적당한 선에서 정리하고 국민통합을 위해 갈등을 봉합하자는 것이다. 정치권 일부에서 현 정권이 과거에 사로잡혀서 미래로 나아가는 동력을 상실했다는 소리가 나오고 여소야대 국면의 박근혜 정권 말기처럼 '협치'가 우선임을 내세우기도 한다. 그러나 미래도 좋고 협치도 좋지만 그것이 적폐청산의 시대적 과제를 접을 이유는 되지 못한다. 적폐청산이야말로 진정한 협치를 위해서나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기반을 조성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문제는 더 근본적인 데 있다. 적폐청산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과도한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을 혁신하는 조치와 이를 통한 기득권구조의 일정한 재편이 있어야 한다. 과거 정권의 그릇된 관행을 정상화하는 데 멈추고 구조적 변화의 요구나 필요에 부응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퇴치해도 그 적폐는 조만간 되살아나기 마련이다. 과연 문재인 정부는 적폐 청산을 넘어서 기득권 구조의 변혁이라는 과제를 얼마나 제대로 해낼 것인가? 여기에 이 정권의 진정한 성패가 달려 있고, 그만큼 쉬운 일도 아니다. 오히려 ‘요란하게’ 겉으로 드러난 적폐를 정리하는 가운데 심층에서 작동하는 기득권구조는 ‘슬그머니’ 유지시키는 것으로 귀결될 우려도 없지 않은 것이다.

교육부문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그 한 예다. 김상곤 교육부는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조사나 비리재단 엄단 등 눈에 보이는 적폐를 바로잡고자 하는 작업은 진행하면서도 불평등을 떠받치고 있는 교육의 기득권구조와 신자유주의적 경쟁체제에 입각한 대학정책의 혁신에 대해서는 유보적이거나 소극적이다. 불평등구조의 보루 역할을 하는 대학서열 문제에 대한 접근에서부터 그렇다. 집권초기부터 전 정부의 문제 많은 수능개편 계획을 그대로 이어받아 시행하려다가 반발에 부딪쳐 유보한 바 있거니와, 교육의 가장 큰 현안인 대학구조조정 또한 전 정부의 기본방향을 그대로 추진한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전 정부가 수립한 대학구조조정 계획은 기본적으로 대학들 사이의 경쟁을 통해 하위 대학들을 도태시키는 방향을 취해왔다. 박근혜정부가 시행한 1주기 대학구조조정 평가는 전국 대학을 5등급으로 분류하여 하위 대학들에 조정을 집중시키고 재정지원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퇴출을 유도하였다. 이로 인해 각 대학들 그리고 대학내부까지 생존경쟁으로 내몰려 교육이나 연구의 본령이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지난 촛불혁명의 한 도화선이 되었던 이화여대 사태도 경쟁을 통한 재정지원을 미끼로 구조조정을 강제해온 대학정책의 폐해에 기인한 것이다.

대학현장의 혼란과 교육 질의 하락은 말할 것도 없지만, 이 신자유주의적 대학구조조정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서열화로 인한 일류대 중심주의 및 그 뒷받침을 이루는 사회 불평등구조와 기득권 체제를 오히려 심화될 것이라는 데 있다. 구조조정이 필연적이니 이 기회에 좋은 대학은 키우고 나쁜 대학은 도태시켜야 한다는 것이 이 조정방식의 기본에 깔려 있는 발상이며, 현 정부도 여기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이 때문에 구조조정의 불이익은 하위대에 집중되고 정부재정지원은 상위대 특히 소위 일류대라고 지칭되는 대학들에 과도하게 편중되어 온 것이다. 현 정부의 내년도 예산편성도 동일한 패턴을 유지하고 있다. 중상위층 학생들이 주로 재학하는 상위대학에 더 많은 혜택을 부여하는 이런 정책이 지속되면 대학 간의 부익부빈인빈을 넘어서 서열화체제나 사회 전체의 불평등구조를 악화시키는 데 일조할 수밖에 없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이 정부도 지향하는 대학의 공영성을 높이려면 주로 하위층이 진학하는 지방 중하위층 대학이나 2년제 전문대학을 지원하여 공영화시킴으로써 저소득층에게 필요한 교육의 기회를 넓히는 방향의 재정지원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 두 번의 대선에서 문재인 진영이 현재의 사립대의 반을 공영형으로 전환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운 것도 이를 염두에 둔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대학정책에서 이같은 구도는 껍데기만 남아 있고, 대학들의 경쟁유발과 상위대 몰아주기를 기조로 하는 지난 정부의 정책 기본방향이 그대로 채택되었다. 민교협을 비롯, 대학노조, 교수노조, 비정규교수노조 등 대학관련 단체들이 박근혜식 구조조정 정책강행에 반발하여 청와대 앞 철야농성을 지속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기득권세력의 반발이 극심하고 국민통합을 헤친다는 담론이 기승을 부리더라도, 촛불운동으로 탄생한 정권이 적폐청산을 위해 매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현상적으로 드러난 적폐를 없애고자 하는 노력이 그 기반이라고 할 기득권 구조에 대한 근본적 혁신과 맺어지지 못하면 적폐청산의 의미는 크게 삭감되고 새 사회를 구축한다는 신정부의 이념도 훼손될 것이다. 대학이 기득권구조의 재생산도구가 된 현실에서 일부 비리사학 운영자를 징벌하고 총장선거의 개입하지 않는 것만으로 대학개혁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경쟁위주의 대학구조조정 정책이 전면적으로 수정되지 않으면 현재의 불평등구조는 더 깊어지고 대학 자체가 새로운 사회로 가는 길에 가장 큰 적폐로 굳어질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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