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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국가를 향한 정치의 재구성, 길을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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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국가를 향한 정치의 재구성, 길을 찾다 [복지국가 정치동맹의 길] 김윤태ㆍ이상이ㆍ이대근 좌담
'복지국가'를 화두로 만난 열한 명의 정치계·시민사회 인사들은 사안에 따라 입장이 엇갈리기도 했지만, 이들의 시선은 차이 너머의 한 점을 향해 있었다.

민주당에선 손학규 대표를 필두로 정세균·정동영·이인영 최고위원, 천장배 당 개혁특위 위원장이 참여했다. 진보정당에선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와 권영길 의원, 진보신당 조승수 대표를 만났다. 시민사회에서는 이상이 복지국가 소사이어티 공동대표, '100만 민란운동'의 문성근 대표, 김기식 참여연대 정책위원장 등 현재 복지논쟁의 주요 당사자들이 망라됐다.

너도나도 뛰어들고 있는 '복지담론'의 미로 속에서 한국 사회가 추구해야 할 복지국가의 청사진과 그 가능성, 그리고 이를 위한 현실적 경로를 모색하기 위한 시도였다. 프레시안과 '복지국가 정치동맹'이 공동으로 기획한 '복지국가 정치동맹의 길'의 마지막 순서, 지난 18일 프레시안 사무실에서 열린 좌담회 역시 그 고민의 연장선상에서 마련됐다.

토론자들은 한 목소리로 "복지국가는 온다"라고 단언했다. 야권이 충분한 힘을 가졌거나 정치적-사회적-경제적 조건이 무르익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시장만능주의의에 내몰린 국민 다수의 '실존적 고통'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오늘의 고통에 모두의 미래를 걸어야 하는 'MB시대'의 역설. 좌담회에는 이상이 제주대 교수와 이대근 경향신문 논설위원이 참여했다. 진행은 앞선 인터뷰와 마찬가지로 김윤태 고려대 교수가 맡았다. <편집자>

<'복지국가 정치동맹의 길' 연쇄 인터뷰>

<1> 이상이 "복지국가 단일정당 못 만들면 한나라당에 필패한다"
<2> 이인영 "작은 차이 때문에 'MB후예'의 재집권을 용인할텐가?"
<3> 정동영 "증세 없는 보편적 복지는 허구다"
<4> 김기식 "장래희망이 '기초생활수급권자'라는 아이에게 우리는?"
<5> 문성근 "2012년 민주진보정부, 아! 이건 된다"
<6> 손학규 "'돈부터 내라'면 복지 자체가 안 된다"
<7> 천정배 "지출구조 개혁이 우선, 마지막 기댈 수단이 증세"
<8> 조승수 "부자 증세는 보편적 복지의 최소 조건"
<9> 권영길 "'요람에서 무덤까지', 그게 바로 국가의 역할"
<10>정세균 "세금부터 올리자는 주장, 바보스러운 접근"
<11>이정희 "적극적 증세? '종부세 실패' 되풀이해선 안돼"

▲ '복지국가 정치동맹'은 가능할까. 좌담회 참석자들은 역설적으로 한국 사회 구성원들이 체감하고 있는 '실존적 고통'이 복지국가의 길을 앞당기고 있다고 진단했다. (왼쪽부터 차례로) 김윤태 고려대 교수, 이상이 제주대 교수, 이대근 경향신문 논설위원. ⓒ프레시안(최형락)

"이제는 복지...머리가 아니라 몸이 먼저 알았다"

김윤태 : 그 동안 프레시안, 복지국가 소사이어티와 함께 '복지국가 정치동맹'을 주제로 주요 정당, 시민단체, 싱크탱크의 여러 전문가들과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최근 복지는 한국 사회의 가장 중요한 논쟁의 중심적인 주제가 되어 있습니다. 우선 최근의 논쟁과 관련한 견해를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이대근 : 복지는 사실 한국 사람에게는 굉장히 낯선 것이었고, 나아가 좋지 않은 이미지도 있었던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너도나도 복지국가 이야기를 합니다. 복지에 대한 수요가 폭증하고 있습니다. 논리적으로 복지가, 복지국가가 무엇인가를 설득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그 필요성을 몸으로 느끼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 몸의 표현으로 기존의 단어인 복지를 끌어다 쓰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유럽 등 복지국가를 위한 환경이나 조건을 따지기 전에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스스로 느끼는 결과가 그렇다는 겁니다. 그런 점에서 복지는 시대정신입니다. 헌법에도 행복 추구권,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권리, 사회적 시민권이 명시돼 있지만 사실은 형식적인 수준에 그치고 있고, 대부분 기억도 하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지금의 복지담론의 실체는 그 헌법적 가치를 시대정신으로 바꿔 놓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상이 : 그 동안 정치인이나 시민사회 전문가들의 인터뷰를 읽어보니 보통 시민들의 이해와 요구에 대해 굉장히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었습니다. 공통적으로 이를 자신의 정치적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역시 정치는 표를 먹고 사는 게 맞다고 할까요? 민심의 변화를 정치인들이 잘 포착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게 뭔가, 이대근 논설위원이 잘 말씀하신 것처럼 이제 좀 바뀌어야 한다는 열망이 있다고 봅니다. 그것은 좀 더 좋은 시스템을 '기획'하자는,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요구라기보다는 거의 본능적인 것에 가까워 보입니다. 도저히 버티기 어렵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것이 6.2 지방선거에서 터져 나왔습니다. 게다가 이명박 정부의 소통부재, 일방주의적 국정운영이 얼마나 사람들을 숨막히게 하고 있습니까. "못살겠다, 바꿔보자"는 경제사회적 요구와 정치적 민주주의적 요구가 결합돼 있다는 겁니다. 우리 국민들이 이러한 변화의 열망을 드러낸 역사적 경험이 몇 차례 있습니다. 1987년 6월항쟁이 그랬고,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출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경험이 정치적 민주주의, 일반 민주주의적 요구였다면 이제는 이를 넘어선, 경제사회적 토대에서부터 폭발해 올라오는 에너지가 패러다임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제2의 민주화 운동,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를 향한 혁명적 열기가 꿈틀대고 있다는 겁니다.

김윤태 : 세 가지 차원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첫째 우리나라에선 산업화와 민주화가 빠르게 이뤄졌지만 87년 이래로 진보적인 정치담론이 주도적인 역할을 충분히 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2007년 대선 때 보수진영에서는 선진화를 들고 나왔지만, 그에 대한 대안담론이 없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최근 1~2년 사이에 복지논쟁이 나오면서 복지국가론이 진보진영의 새로운 지배적 담론이 됐다는 점을 주목합니다. 둘째로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의 복지가 국가가 주도하는 제한적 복지였다면, 과거와는 다른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겁니다. 국가가 주도하는 게 아니라 시민의 욕구가 분출되는 형태라는 것입니다. 셋째 보편복지 논쟁에서 볼 수 있듯이 '복지국가'로 가야한다는 주장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문제에 있어 1단계 논쟁은 정리가 됐다고 봅니다. 진보진영 내에서도 80년대에는 "복지는 곧 개량"이라는 인식이 있었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물론 구체적인 정책이랄지, 프로그램, 재원조달 방안 등에 대한 논의는 아직 미흡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뷰를 진행하다보면 구호만 있을 뿐 세부적인 플랜이 부족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아쉬운 지점이라고 하겠습니다.

"문제는 보편복지-선별복지 논쟁이 아니다"

▲ 이상이 제주대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김윤태
: 이제 본격적으로 말씀을 나눠보겠습니다. 민주당의 강령에 보편적 복지가 들어가지 않았습니까? 최근 한겨레-KSOI 여론조사를 보니까 '선별적 복지'에 대한 선호도가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어떤가요, 보편적 복지에 대한 이야기가 많기는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적 인식이나 지지는 적은 것으로 봐야 할까요?

이상이 : 그 여론조사는 "한정된 재화를 갖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지를 주는 게 좋은가, 모든 사람에게 주는 게 좋은가"를 물어 본 겁니다. 당연히 전자를 선호하게 되지요. 질문이 잘못 구성됐다는 겁니다. 보편복지와 선별복지를 두고 민주당원들에게 여론조사를 해 보면 대체로 8대2 정도로 보편복지를 지지합니다. 당원 중에서도 20%는 선별적 복지를 지지하는 사람이 있는데, 전반적인 정서는 보편복지에 대한 지지가 더 높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하지만 보편복지와 선별복지는 대립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기존의 보편복지 프로그램, 무상의료나 연금제도 등으로 모자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그만큼 선별적 복지, 더 많은 복지를 줘야 합니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도 "보편복지와 선별복지를 대립적으로 보지 말고 다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레토릭에 불과하기 때문에 신뢰를 하지 않는 것이지, 사실은 맞는 이야기입니다. 논쟁의 중심축은 보편복지냐, 선별복지냐가 아니라 신자유주의적 시장만능국가냐, 아니면 보편적 복지국가냐라고 하는 패러다임의 대결이 되어야 합니다.

이대근 : 복지담론이 정치인, 지식인 사이에서 주로 논쟁이 전개되고 있는데 각자 강조점도 다르고 이제 막 기존의 모델을 배우는 단계인 것 같습니다. 복지담론의 초기인데, 대중들의 언어로 복지담론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지금은 전문가들이 쓰는 용어들을 늘어놓고 고르라는 수준이 아닌가요. 대중들이 요구하는 복지의 흐름과 방향이 어디인지를 찾는 게 중요합니다. 지금은 보편복지와 선별복지라는 게 있고, 서로 대립적인 것이라는 정도만 알려져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세금을 더 내더라도 더 많은 복지혜택을 받을 것이냐, 더 많은 복지를 위해 세금을 더 낼 의향이 있는지를 물어보는 식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김윤태 : 외국의 어느 모델을 봐도 100% 보편복지만, 혹은 100% 선별복지만 적용하는 사례는 없습니다. 영국에서 30년대부터 복지국가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스웨덴에선 '인민의 집'이라는 말이 있고, 독일은 '사회국가', 미국에선 복지국가보다는 '사회보장'이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미국의 우파들은 복지국가를 '사회주의'라고 비난하기도 하는데, 이것을 보면 나라마다 같은 개념이라도 받아들이는 차이는 있는 것 같습니다. 자칫하면 이대근 논설위원의 말처럼 학문적, 추상적 논쟁이 될 가능성도 있다고 봅니다. 대중과의 괴리를 주의 깊게 봐야 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이상이 :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중산층을 포함한 다수 국민들이 복지를 필요로 한다는 겁니다. 학자들은 이미 이론적으로 보편복지가 맞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전문가들은 다 알고 있습니다. 복지국가를 제대로 해야 한다, 보편적 복지국가로 가야 한다는 것은 교과서에도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그 동안 우리나라에서는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복지국가를 공론화시키지 않았어요. 수십년 전부터 교과서에 나오는 이야기인데도 그랬습니다. 우리 국민들이 과연 이것을 원할 것인가, 수용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생각부터 했기 때문입니다.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을 진행하고 있는데, 실제로 반응이 굉장히 폭발적입니다. 사람들이 불안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건강보험은 입원진료비의 60%만을 해결하고, 40%는 환자 부담입니다. 중병에 걸리면 서민가계는 파탄이지요.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하려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큽니다. 건강보험은 1인당 3만3000원 이지만, 민간보험은 월평균 10만 원의 비용에 정작 혜택은 쥐꼬리만큼 줍니다. 보험료의 환급률이 40%밖에 되지 않아요. 건강보험은 실제로는 보험료의 180%를 돌려받게 됩니다. 현행 건강보험은 보편주의적 복지입니다. 국가가 잘 했다면 국민은 민간보험에 가입할 필요가 없지요. 그걸 해놓지 않으니 서민가계에는 엄청난 부담을 주고, 사회통합이 훼손되는 등 엄청난 비효율을 낳고 있어요. 이는 모두 시장의 실패에서 비롯된 겁니다. 국민들은 시장만능국가에서 각자도생의 방식으로 사는 것에 피곤해 하고 있습니다. 복지에 대한 수요는 결국 더불어 사는 삶을 제도화 해달라는 요구로 봐야 합니다.

"세금 앞에서 멈칫한 민주당, 관건은 '정치의 재구성'"

▲ 이대근 경향신문 논설위원. ⓒ프레시안(최형락)
김윤태
: 최장집 교수는 프레시안과의 신년 인터뷰에서 "정책이나 모델 논쟁으로 가는 것은 걱정스럽고, 정책 투입의 측면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국민적 욕구를 반영하는 정당이나 정치세력이 없는 한 모델이나 정책논쟁은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었습니다.

이대근 : 시민들의 욕구는 있는데, 그 욕구가 구체화된 상태는 아니고, 전문가 집단은 나름대로 복지국가론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것들이 서로 만나지 않은 상태에서 담론과 모델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초기니까 불가피한 점도 있다고 봅니다. 최장집 교수의 말씀도 복지국가에서 중요한 한 축입니다. 복지국가의 세 가지 요소는 증세를 통한 재원 마련, 또 하나는 투입 측면이라고 할 수 있는 사회적 기반, 그리고 복지동맹이라는 정치주체입니다. 이 세 가지 요소는 모두 필요합니다. 현재 증세문제와 정치동맹 이야기는 어느 정도 나오는데, 사회적 기반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취약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노동문제입니다. 노동자들의 조직률이 10%에 불과하고, 산별이 아니라 기업별 노조 중심입니다. 그렇다보니 차곡차곡 사회적 기반을 만들고, 그 위에 정치주체를 세우고, 그 주체가 집권해 국민들 설득하고 세금을 걷는 과정으로 나아가는 게 너무 어렵습니다. 이런 가운데 복지국가를 위해 유일하게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이 바로 정치적 자원입니다. 갑자기 세금을 거둘 수도 없고, 사회적 기반이 갑자기 바뀔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정치세력을 어떻게 재구성해서 한국의 현실에서 어떻게 돌파구를 마련할 것인가, 정치주체가 제대로 이끌고 나가는 게 중요하다는 겁니다.

이상이 : 사회적 기반이 취약하다는 것은 맞지만, 그 때문에 복지국가 건설이 어렵다는 해석에 대해선 반대합니다. 이대근 논설위원의 말씀도 같은 맥락이라고 보는데요, 정치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봅니다. 정치를 통해 노동의 취약한 힘을 돌파해야 합니다. 여기에서 정치는 단지 정치체제뿐 아니라 풀뿌리 시민들 속에서의 정치적 힘을 포괄하는 개념입니다. 복지국가를 위한 사회적 기반에는 조직된 노동뿐 아니라 조직된 시민도 있습니다. 광범위한 시민운동 속에서 구성된 정치가 법과 제도를 바꾸고, 노동권을 신장하는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의 질을 개선해 이를 다시 노조의 힘을 결집시켜야 합니다. 정치가 노동의 힘을 키우는 상황전개가 요구된다는 겁니다. 국가의 성격을 바꿔야 합니다. 약탈적 시장만능 국가가 아니라 노동을 존중하는 상생국가로 가야 합니다. 그렇게 확대된 노동의 조직력으로 복지국가를 보위해 가는 선순환 구조가 필요합니다. 시민사회적 접근이 굉장히 중요한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노동자들도 집에 돌아가면 시민사회의 구성원들입니다. 시민단체들이 현재의 표출되는 정치의식을 모아내는, 풀뿌리 시민운동을 활성화시켜야 합니다. 그러면 복지국가를 위한 사회적 기반도 구축할 수 있습니다. 저는 낙관적으로 봅니다. 그 근거는 불행하게도 우리 국민의 고통이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주체적 조건이 좋아서가 아니라, 객관적 조건이 너무 열악하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복지국가 가능론에 설득력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김윤태 : 많은 분들이 복지국가라고 하면 스웨덴을 떠올립니다. 노조 조직률이 80~90%에 이르고, 노사정 협약도 잘 돼 있고 사회민주당이 강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노조가 발달돼 있고 강력한 사회민주당이 집권하지 않으면 복지국가는 어렵다는 생각을 하는 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독일의 경우 비스마르크 보수정권이 복지를 시작했고, 스웨덴에서도 사실 '인민의 집'이라는 것은 우파의 용어였습니다. 미국에서도 자유주의적 이념에 가까운 민주당이 복지를 주도합니다. 다른 나라의 경우를 봐도 강력한 노조와 사회민주정당이 있어야 복지국가가 가능하다는 논리는 성립되지 않아 보입니다. 복지국가를 지지하는 정치적 세력들이 정치나 시민사회 영역에서 고민해야 할 부분입니다. 시민단체나 중산층, 기성정당의 도움을 받거나 민주당과 연합해서라도 복지를 발전시키려는 창의적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런 면에서 비관적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산업화와 민주화도 빨랐지만, 복지국가의 예산도 비교적 짧은 시간에 발전해 오지 않았습니까. 다음 주제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복지국가 논쟁에서 꼭 짚어야 할 논점은 다름 아닌 세금입니다. 요즘 정치권의 논쟁도 주로 증세론을 둘러싸고 전개되고 있습니다.

이대근 : 지금 민주당의 고민은 세금과 관련된 모든 문제를 다 보여주고 있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민주당은 중도보수 정당입니다. 지난 3년 간 민주당의 스펙트럼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할 때는 우경화 노선을 걸었던 민주당은 3년 뒤 보편복지를 내세우면서 진보적 색채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민주당의 발목을 잡는 것은 세금 문제입니다. 각종 '무상시리즈'를 제시하면서도 세금문제는 전혀 거론하지 않고 있습니다. 문제는 궁극적으로 복지국가로 가기 위해선 증세를 어느 시점에서는 꺼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지금 민주당의 입장은 증세를 영원히 생각하지 않도록 돼 있습니다. 물론 현실적으로 민주당이 증세를 내세우거나 말할 수 없는 측면은 인정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현실 정치세력에게 솔직하게 '선(先)증세, 후(後)복지'를 구호로 내걸고 집권하라고 할 수 있을까요. 어려운 문제입니다. 민주당의 고민은 민주당뿐 아니라 한국사회 전체의 고민입니다. 증세문제에 대해선 전략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그 방법은 어차피 절충적, 단계적일 수밖에 없을 겁니다. 재정개혁 등을 통해 할 수 있는 복지를 하고, 그 다음에 보다 많은 복지를 위해선 증세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해야 합니다. 세금을 더 내야 한다는 당위에 대한 저항을 깨지 않는 한 복지국가로 갈 수 없습니다. 정당도 우회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언젠가는 드러내야 합니다.

이상이 : 증세없는 무상복지를 하겠다는 민주당의 주장은 정치공학적 발상으로 위험합니다. 거꾸로 부메랑이 되어 민주당에 큰 상처를 주게 될 겁니다. 복지국가 동력과 사회적 기반을 더 훼손할 우려도 있습니다. 앞서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을 언급했지만 국민 1인당 1만1000원만 더 내면 민간 의료보험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것이 훨씬 안정적이고 유익한 길이라는 것을 국민들이 판단하게 해 줘야 합니다. 각자도생하던 삶의 방식을 공공적, 제도적 방식으로 함께 해결하는 것으로 바꾸는 게 더 이득이 된다는 것을 많은 국민들이 알기 시작했습니다. 정치 지도자들이 앞장서서 증세는 나쁜 것, 정치적 악마인 것처럼 규정하는 것은 정치적 패착입니다. 동시에 시민사회의 기대나 역동성도 훼손합니다. 세금을 더 낸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더 내느냐, 그게 아닙니다. 자기 능력에 따라 누진적으로 내자는 겁니다. 복지재정 확충은 누군가 더 세금을 내는, 사실상 증세입니다. 비과세 감면을 없애거나 감제조치 철회 등도 어차피 증세입니다. 솔직해져야 합니다. 이렇게 다 늘어놓고, 사회적 토론을 붙이고, 시민들이 결정하게 해야 합니다.

김윤태 : 김기식 참여연대 정책위원장이나 선대인 김광수경제연구소 부소장은 재정개혁이나 조세정의 실현 등을 통해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 논리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상이 : 가능하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부자감세 철회, 정부 재정지출의 구조개혁, 그리고 주로 조세개혁을 통해 세금을 걷겠다는 게 아닙니까. 세원을 포착하고 자산소득에 세금을 부과하겠다…, 그게 증세입니다. 자산소득이니까 주로 부자들이 더 내게 되지 않습니까? 바로 부유세입니다. 말만 조세개혁이라고 바꾼 겁니다. 문제는 이러한 과정은 과거부터 시도돼 왔다는 점입니다. 과세하려고 발버둥을 쳤지요. 하지만 세원포착이 어렵고, 저항 때문에 굉장히 긴 시간이 걸립니다. 그렇게 해서 복지국가를 하겠다는 건 국민을 속이는 일입니다. 긴 시간에 걸쳐 조금씩 효과가 나기 때문입니다. 민주당은 그래도 공당이어서 비교적 솔직한데, 이런 과정을 통해 48조 원을 마련한다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일부 논객들은 100조 원을 이야기합니다. 국민을 속이는 일이죠. 한 가지가 빠져 있어요. 바로 긴 시간이 걸린다는 겁니다. 10년 뒤에 가능하다? 그 동안 복지는 어떻게 합니까.

김윤태 : 영국에선 "세금을 올린다는 건 정치인의 자살노트"라는 말이 있습니다. 노동당의 '부자증세' 공약은 보수당의 "세금걷어 쓰기만 하는 정당"이라는 공격 속에서 중산층의 지지를 잃었던 측면도 있습니다. 국민들이 복지는 지지하지만, 세금 문제가 선거에서 쟁점이 되면 과연 정치적으로 얼마나 지지할 수 있을까요. 심각하게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정치인들이 과감하게 세금 문제를 이야기하지 못하는 것은 그래도 이해할 수 있지만, 일부 시민단체나 싱크탱크가 '증세없는 복지국가'를 이야기하는 것은 좀 실망스럽습니다. 그 이야기를 이론화하면 아마 노벨 경제학상을 받을 겁니다.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증세냐, 감세냐의 프레임에 들어가지 않으면서도 정교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이상이 : 그런 논리에 반대한다는 겁니다. 감세 프레임은 패배했어요. 한나라당이 부자만 감세한 게 아닙니다. 다 감세하고 그 혜택을 부자에게 더 많이 준 것입니다. 그것을 국민들에게 열어놓고, 토론하고, 공론화하자는 겁니다.

이대근 : 그 점에 저도 동의합니다. 증세없는 복지를 이야기하지 말고 "지금은 이 정도의 복지를 하고, 다음 단계에선 증세를 통해 더 많은 복지를 하겠다"고 해야 합니다. 집권해도 5년입니다. 자칫하면 재정적자를 감수하면서 혜택을 먼저 주게 되는 것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럼 먼저 복지를 해 주고, 창고가 비었으니 국민에게 채워 달라고 해야 할까요. 고민되는 부분입니다.

김윤태 : 이미 유권자들의 의식이 조세나 복지에 대해서 어느 정도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는 수준까지 왔다고 봅니다. 복지를 제시하면서 세수확보 계획을 내놓지 않으면 어느 세력도 선거에서 당선되기 어렵지 않겠습니까.

이대근 : 민주당이 '3무1반 정책(무상급식, 무상의료, 무상보육, 반값등록금)'을 제시한 것은 자극적이고 선동적 접근입니다. 진지성도 떨어져요. 당 내의 논쟁을 보니 재원마련 TF를 따로 만들었더군요. 순서가 바뀐 겁니다. 복지국가는 한국사회의 기존 구조를 바꾸는 문제입니다. 그런데 당장 복지이야기가 나오니까 여기에 영합해 '무상 시리즈'를 내놓고, 재원이 문제가 되니까 사후에 대책을 세운다는 겁니다. 민주당은 과연 준비를 갖췄을까요. 복지국가는 경제제도, 정치체제, 사회-문화적 변화, 노동시장 등 전면적인 변화를 전제합니다. 그 이야기는 한 마디도 안 하고 있어요. '무상 시리즈'만 제시했다는 데에서 민주당의 한계가 드러납니다.

이상이 : 국민들이 복지의 맛을 봐야 복지의 소중함을 알게 될 것이라는 단계는 이미 지났다고 봅니다. 그건 이미 다 알고 있어요. 국민들은 복지가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느낍니다. 100조 원이 필요한데, 민주당의 방법대로 예상을 해 보면 가능한 것은 30조 원 수준입니다. 그 돈을 갖고 지난 노무현 정부 수준의 복지만 한다면 아무런 감동을 주지 못합니다. 70조 원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 그것을 공론화시켜야 합니다. 우선 40조 원 정도는 증세를 통해 마련하고, 나머지 30조 원에 대한 부분은 장기적으로 미루자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시민적인 토론의 길을 열어둬야 합니다. 엉터리 환상만 심으면서 쉬쉬하니까 복지국가가 가로막히는 겁니다.

▲ 이대근 경향신문 논설위원 ⓒ프레시안(최형락)

"복지국가 단일정당을" vs "현재의 민주당과는 안된다"

김윤태 : 연합정치, 통합에 대한 논점으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우선 최근까지의 야권연대 논의에 대한 입장을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이대근 : 기본적으로 통합은 문제라고 생각하고, 연합의 방식으로 야당들이 총선과 대선에 대응해야 한다고 봅니다. 정치적 삼분립 구조를 갖춰야 제대로 된 정당정치의 발전,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야당이 하나로 통합됐을 때의 문제는 대표성의 균열입니다. 한국은 양당제 같기도, 다당제 같기도 한데 각 정당은 자신들이 모든 국민을 대표하고 있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하지만 모두를 대표한다는 건 아무도 대표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결국은 강자의 논리, 힘의 논리로 귀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회의 모순을 정확하게 드러내고, 조직하고, 대표하고, 대변하는 정당이 독립적으로 존재해서 다른 정당과의 관계에서 견인하고, 자극하고, 협력해야 합니다. 그래야 소수자 등 약자들의 이해가 정당구조 속에서 대표됩니다. 거대 양당이 경쟁하게 되면 대체로 서로 수렴하는 측면이 강해집니다. 결과적으로 대표성에 문제가 생깁니다. 정당들이 경쟁한다고 해서 복지국가를 위한 단일전선이 만들어지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연합의 방식을 채택해야 민주당도 자극을 받게 됩니다. 하나의 당을 만들면 결과적으로는 민주당 안으로 통합되는 것인데, 그럼 민주당도 바뀌기 어렵습니다.

이상이 : 다른 논점에선 이대근 논설위원의 생각과 대부분 일치하는데 이 부분은 좀 다릅니다. 상황판단에 차이가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얼마 전까지의 민주당, 한국 사회의 토대나 사회적 기반을 전제하면 저도 이대근 논설위원과 생각이 같습니다. 민주당을 중도보수 정당으로 봤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저는 민주당을 이제 진보정당으로 가져 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민주당은 보편적 복지국가를 천명했고, 사회경제적 기반도 바뀌고 있습니다. 지금 민주당이 정치적 좌클릭을 감행하지 않으면 한나라당과 차별해서 살아남을 수가 없습니다. 진보로 자리를 옮기지 않을 수 없는 처지라는 겁니다. 복지국가를 민주당이 추진해주지 않으면 진보정당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즉 집권할 정도로 다수파여야 합니다. 다수파 전략으로서 민주당을 복지국가를 추진할 정당으로 재편해야 합니다.

김윤태 : 연합이냐, 통합이냐의 문제에 있어서 어느 한 쪽이 바람직하다는 규범적 결론을 내기 이전에 우리의 사회구조, 선거법, 제도적 장치들을 고려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대통령제라는 권력구조와 현행 소선거법 선거제도 속에서는 양대 정당만 독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진보정당을 지지하지만 당선 가능성때문에 민주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들도 많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진보정당들은 계속해서 아주 적은 의석수에만 머물고 있습니다. 진보정당들이 삼분할 구조를 전제하면서도 연정까지 고려하면서 집권할 목표를 갖고 있다면 개헌을 해야 합니다. 그것을 하지 않으면 스스로의 정치적 기반을 계속 위축시키게 됩니다. 그런데 진보정당이나 민주당조차도 개헌을 할 힘이 있습니까. 불가능하다면 현실적인 조건을 고려해야 합니다. 다른 이념을 가진 정당이 존립 불가능한 게 아닙니다. 영국 노동당이나 미국 민주당도 사회주의부터 사회적 자유주의까지 다양한 이념이 혼재돼 있어요. 이념이나 정책이 가급적 통일되어야 하지만, 하나의 정당 속에서 진보적 정파로 존재한다면 오히려 진보세력이 20석 이상 차지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요. 민주당의 입장에선 통합이 안되면 연합이라도 과감하게 해야 합니다. 30%가 아니라 50%를 양보하더라도 해야지, 그렇지 못하면 내년 총선에서 수도권은 쉽지 않아 보입니다. 총선에서 이기지 못하면 대선승리는 물론 불가능합니다.

이대근 : 민주당 밖에 다른 세력이 있어야 합니다. 민주당이 변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초기입니다. 민주당의 3분의 1은 지역주의에 기댄 세력이고 3분의 1은 관료, 나머지는 이질적 세력입니다. 이들이 우연히 모여서 야당이 되어 있는 상태라는 겁니다. 복지에 대한 욕구가 등장하니까 느닷없이 '3무1반'을 내세우는 민주당입니다. 그런 민주당을 믿고 진보정당의 문을 닫고 이사해서 살아남으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역사적으로 봐도 진보세력의 민주당 진입은 수혈의 측면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민주당은 생존유지를 위해 새로운 피를 공급받은 뒤 다시 원래의 보수정당으로 돌아가곤 했습니다. 이번이라고 달라질까요. 반면 원내교섭단체가 된 진보정당의 목소리는 민주당이나 한나라당 20명 의원들과 다를 겁니다. 진보블럭으로서의 존재와 독립적 교섭단체로서의 힘은 다릅니다. 민주당이 어떻게 변할지도 알 수 없습니다. 실패할 수도 있고요. 실패하면 되돌아 갈 것이고, 노무현 정부 당시처럼 보수화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럼 탈당하겠죠. 어떤 경우에도 좌파정당이 없을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통합하고 또 통합해도 한국 사회의 구조 상 3~4개 정당의 존재는 불가피해 보입니다. 연합정치의 당위성은 그래서 제기됩니다.

▲ 이상이 제주대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이상이 : 가치의 재구성이라는 측면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봅니다. 특히 20~30대 유권자, 서민과 중산층, 여성 등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성향의 유권자들이 투표장에 오는 수고를 감수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지금 민주당에는 그만한 가치가 없는 것이죠. 진보정당도 마찬가지입니다. 찍어봐야 당선 가능성이 없고, 진보정당의 가치도 여전히 NL-PD의 낡은 틀에 갇혀 있습니다. 그렇다면 새로운 가치, 시대정신, 당면과제가 뭔가. 대체로 복지국가로 모아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민주당과 진보정당이 함께 내세워야 합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정치동맹이고, 구체적으로는 복지국가 단일정당입니다. 제가 이야기하는 동맹은 민주당을 단일 정당으로 끌어내는 겁니다. 민주당 속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민주당을 왼쪽으로 끌어내고, 여기에 진보세력이 가서 만나는 겁니다. 중도진보라는 제3지대에서 만나자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안 따라오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새로운 세력이 당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그 분들의 자유이고 권리입니다. 그 당이 따로 존재한다면 또 그들과 연합하면 됩니다. 이 일련의 과정 속에서 복지국가라는 정치적 가치가 정치권뿐 아니라 시민사회 속에서 공유되어야 합니다.

이대근 : 그렇게 본다면 수렴이 되는 측면이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현재의 민주당은 아닙니다. 통합을 하려면 민주당이 통합할 수 있을 정도로 변해 있어야 합니다. 변하지도 않았는데 민주당의 변화를 전제로 통합하라고 진보정당의 등을 떠미는 것은 두 단계나 앞선 이야기라는 겁니다.

김윤태 : 과연 민주당을 그대로 두고 밖에서 '바꿔라, 바꿔라'라고 하는 게 현실성이 있을까요. 학계든 시민단체든 진보정당이든 관여하지 않고 바꾸라는 건 비현실적 요구로 들립니다. 진보정당 입장에선 다음 총선에서 원내교섭단체를 확보할 가능성이 있을까요? 그런 점을 고려하면 5석 정도의 군소정당으로 남는 것보다는 통합을 적극적으로 고려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이상이 : 이 시점에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이 현재의 민주당에 들어가야 한다는 건 잔인한 이야기입니다. 저는 그런 주장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았어요. 국민의 요구는 정치의 재편으로 우리의 꿈을 이뤄달라는 겁니다. 국민의 정치적 요구를 조직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민란운동도 그런 맥락 아닙니까. 복지국가 정치운동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힘이 올라오면 민주당은 복지국가 정당으로 재편될 수밖에 없습니다. 오지 않으면? 민주당은 죽습니다. 똑같은 이유로 진보정당에도 과거의 구태를 벗어달라고 요구하는 겁니다. 진보정당도 과거에 황당한 일을 얼마나 많이 했습니까. 고치자는 겁니다. 고쳐서 힘을 모아 보자, 단일정당을 해 보고 안 되면 연합하자는 겁니다. 선거에서 승리해야 복지국가로 갈 수 있는 모멘텀이 마련됩니다. 그게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이대근 : 민주당에 대한 견인, 필요합니다. 진보정당은 구식 좌파로 남지 않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변화되지 않은 민주당과는 연합도 어려울 겁니다. 양보도 민주당 쪽이 해야 합니다. 진보정당이 지금 할 수 있는 양보의 여지는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이 부분은 좀 다른 차원의 문제이기는 한데, 중장기적 정당구조의 전망과 당장 총선-대선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의 두 가지 측면이 구별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요즘의 논의에선 두 가지 측면이 섞여있는 느낌입니다.

김윤태 : 김대중 전 대통령은 "70%를 양보하더라도 통합하라"고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통합보다 연합이 더 어려울 것이라는 이야기는 민주당 내부에서도 나옵니다.

이상이 : 솔직하게, 또렷하게 이야기해 봅시다. '연합의 길'을 가정했을 때 진보정당이 원하는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을 만큼 민주당이 양보할 가능성이 있을까요? 전무하다고 봅니다. 아마 3~5석 정도 될 겁니다. 진보정당에서 대표성이 있고 당선 가능성이 명백한 몇몇 정치인들, 아마도 심상정, 노회찬, 이정희 정도일 겁니다. 다른 지역은 양보하지 않을 겁니다. 선거연합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럼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하기 위해 나머지 15석을 진보정당이 독자적으로 당선시킬 수 있을까요. 가능성은 제로입니다. 복지국가 단일정당으로 승부를 걸어야 합니다.

"뭔가 꿈틀거리고 있다, 그게 희망이다"

김윤태 : 통합론과 연합론, 두 가지 견해 모두 일리가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규범적 결론보다는 현실적인 조건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술적 검토도 함께 이뤄져야 합니다. 통합이든 연합이든 안 된다면 공멸의 길로 가지 않겠습니까. 각 주체들의 진지한 고민이 필요해 보입니다. 여기까지 야권연대의 문제까지 논의를 진행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덧붙일 말씀이랄까, 현재 우리사회의 복지국가 논쟁과 관련한 제언이 있다면 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대근 : 뭔가 꿈틀대면서 변화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런 면에서 희망이 있다고 봅니다. 과도기랄까, 변화가 시작되는 초입에서 모든 당사자들이 어떤 전략적 선택을 하는가에 따라서 우리의 미래가 결정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굉장히 중요한 순간입니다. 여건은 어렵고, 과정은 복잡하지만 정치적 역량을 극대화함으로써 한계를 극복하고, 아래로부터의 힘을 끌어가서 폭발시키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최근의 여론조사들을 보면 과거와 다른 변화가 나타나고 있고, 그 속도도 점점 빨라지고 있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한국사회의 역사적 변화를 보면 민중들인 10년마다 대규모로 폭발했습니다. 그런 폭발이 어느 시점엔가 나타날 수도 있을 겁니다. 기대감을 갖고 정치적 역량을 조직하고, 또 준비하는 게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상이 : 신자유주의 10년을 지나오면서 엄청난 변화의 조짐들이 시민사회 내부에서 일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의 요구를 어떻게 복지국가 건설로 모아 나갈 것인가, 그것이 우리의 당면 과제입니다. 앞으로 1년 동안 시민정치운동, 풀뿌리 시민운동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정치가 광범위한 국민의 움직임에 따라가지 않을 수 없는 세상입니다. 민주당이 과거의 관성에 머물러 있는 상황이 그렇게 오래갈 것 같지는 않습니다. 민주당이 이삿짐을 챙겨서 중도진보 복지국가 정당으로 합류할 가능성도 있다고 봅니다. 그 역동성을 지켜보겠습니다.

▲ 김윤태 고려대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김윤태
: 진보진영도 그 동안 새로운 시대에 맞는 가치나 이론을 효과적으로 제시하지 못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할 겁니다. 그런 면에서 최근 복지국가를 중심으로 일고 있는 미래논쟁은 긍정적이라고 봅니다. 다만 그 주체의 측면을 주목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진보세력도 국가권력 밖에서 비판만 하는 게 아니라 그 안에서 개혁과 민주화, 삶의 질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겠습니다.

오늘 좌담회를 끝으로 '복지국가 정치동맹의 길'을 모색하기 위한 프레시안과 복지국가 소사이어티의 기획도 마무리되었습니다. 인터뷰에 응해 주신 모든 분들께 이 자리를 통해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긴 시간 동안 진지하게 토론해 주신 두 분 선생님께도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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