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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시장 이분법 넘어 '강한 사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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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시장 이분법 넘어 '강한 사회'로! [의제27 '시선'] 위기의 시대와 새로운 진보의 길
2008년 미국에서 시작한 금융위기 이후 수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세계는 위기의 시대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장하준 교수가 <그들이 말하지 않은 23가지>에서 날카롭게 지적했듯이 위기의 시대를 만든 근본 원인은 자유시장에 대한 맹신이었다. 자유시장이 항상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는 믿음은 아무런 과학적 근거도 없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세계적 차원의 경제위기는 자유시장과 금융 세계화를 무한정 밀어붙이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종말을 보여준다. 탈규제, 감세, 공기업의 사유화를 신봉하는 워싱턴 합의는 이제 전 세계의 의심을 받고 있다.

그러나 세계경제의 급속한 변화와 자유시장 자본주의의 위기에도 불구하고 진보정치는 아직도 새로운 방향을 찾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진보세력도 2007년 대선 패배 이후 수년 동안 낮은 정당 지지율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진보세력은 자신들의 문제를 선거전략, 소통, 리더십의 문제로 판단한다. 그래서 선거공약으로 복지정책을 내세우고 거리에서 대중과 소통하고 유력한 대선 후보를 찾기에 급급하다. 그러나 더욱 심각한 어려움은 진보세력을 이끄는 지적, 이데올로기 위기의 문제이다.

새로운 진보정치 모델

2010년 지방선거에서 폭발한 무상급식 논쟁 이후 진보세력은 복지국가를 주장한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유권자들은 다음 선거에서 복지보다 경제가 더 중요한 문제라고 응답한다. 진보세력이 새로운 경제모델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김대중 정부의 '생산적 복지'와 노무현 정부의 '비전 2030'은 공급측면을 강조하고 자유시장 접근법에 치우쳤다. 지금도 진보세력이 세계경제의 지구화, 국제무역, 금융규제에 어떤 대안을 가지고 있는지 분명하지 않다. 새로운 경제정책은 과거의 케인스주의와 통화주의 이후를 준비해야 한다.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은 성장동력뿐 아니라 사회통합과 환경보존의 목표와 불가분의 관계를 가진다.

한국의 진보세력의 다른 문제는 정책 대안을 만드는 의사결정 과정이다. 진보정치 모델의 새로운 거버넌스(협치)가 필요하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정책 결정 과정을 보면 여전히 청와대에서 내려오는 하향식 방법이었다. 민주당 정부 시대에 획기적인 민주화와 분권화가 이루어졌지만 새로운 시대의 변화에 비해 충분하지 않다. 새로운 진보정치는 시민의 참여와 논쟁이 필수적이다. 정부 정책은 힘든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많으며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야 한다. 복지국가 논쟁에서 필수적인 조세정책은 광범위한 대중의 지지를 얻어야만 한다. 지속가능한 정책 대안을 만들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민이 참여하는 개방적, 중층적 의사결정 과정을 강화해야 한다.

정부와 시장을 넘어 강한 사회로

진보정치의 발전을 위해서 새로운 진보적 아이디어의 재발견이 중요하다. 지난 50년간 한국의 진보세력은 시민적 자유, 절차적 민주주의, 한국 사회의 발전을 위해 중요한 공헌을 했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서 추구했던 민주화와 분권화의 가치는 아직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앞으로 한국의 진보세력은 지속가능한 진보를 위해 사회정의, 평등, 사회통합의 가치를 더욱 강조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최근 민주당이 '보편적 복지'를 강령에 포함하고 진보정당과 정책 방향이 가까워지는 것은 주목할 만 하다. 복지국가의 강화는 단순하게 사회지출의 증가가 아니라 지속적 경제성장과 사회통합을 위한 투자가 될 것이다.

복지국가를 향한 새로운 길은 사회적 형평성과 경제적 효율성을 동시에 추구한 유럽 진보정당의 역사적 경험에서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유럽의 경험에서 볼 수 있듯이 정부와 시장을 중시하는 공공정책은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다. 정부와 시장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다. 인구 고령화, 가족구조의 변화, 여성의 사회활동이 증가하면서 보육, 교육, 요양 등 사회서비스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 말기 추진한 사회적 기업은 국가인증을 제공하면서 지나치게 고용 위주의 접근에 머무르고 있다. 일자리 제공을 넘어 상호부조를 강화하는 협동조합과 자원봉사도 널리 장려되어야 한다. 사적 이윤을 초월한 시민의 자발적 참여와 지역사회의 상호협력은 사회적 자본을 강화하고 사회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 사회적 역량에 초점을 맞추는 공공정책은 정부와 시장의 이분법을 넘어 '강한 사회'를 강조해야 한다.

제3의 길 정치에 대한 재평가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는 사회정책과 경제정책을 통합한 접근법을 강조했다. 사회보험을 확대하면서 복지제도를 강화했지만 빈부격차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한국은 1990년대 후반 이후 집권한 미국의 클린턴 민주당 정부, 영국의 블레어 노동당 정부, 독일의 슈뢰더 사회민주당 정부가 추진한 '제3의 길 정치'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유럽 국가들이 노동시장의 진입을 촉진하기 위해 복지급여의 조건을 강화하면서 보편적 복지가 약화되었다. 특히 노동시장에 진입하지 못하는 사회적 약자를 위한 사회보호체제가 심각하게 약화되었다. 결국 2010년 독일 헌법재판소는 노동시장을 개혁하는 '하르츠 법안'을 위헌으로 판결했다. 복지국가의 개혁이 모든 시민의 기본적 생활을 보장하지 못한다면 사회통합과 연대를 유지하기는 어렵다.

2000년 유럽연합이 고용확대와 사회통합을 동시에 추구했던 '리스본 전략'은 사실상 실패로 끝났다. 북유럽을 제외한 유럽 국가들의 고용율과 기술개발 투자 비율은 충분하게 상승하지 않았으며 소득격차는 점점 커졌다. 지난 해 유럽연합은 향후 10년 동안 지속가능한 포용적 성장을 추진하기 위해 '유럽 2020'을 발표했다. 복지국가를 비난하는 한국의 보수세력과 달리 유럽의 보수정당과 사회민주정당은 모두 복지국가를 유지해야 한다고 합의하고 있다. 나아가 유럽연합은 사회적 시장경제의 유럽모델과 생태적 차원을 결합하려고 시도한다. 유럽 복지국가의 논쟁은 빈곤에 대한 사후 지원보다 빈곤, 질병, 실업, 노후 등 사회적 위험을 사전에 예방하는 복지체제로 이동하고 있다. 생산성을 높이는 구조적 접근과 교육을 강조하는 공급 측면 정책을 강조한다. 전통적 사회정책은 교육정책, 보육정책, 노동시장정책, 여성정책과 긴밀하게 결합해야 한다고 본다.

한국의 진보세력은 다른 나라의 실패뿐만 아니라 성공한 정책에서 유용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사회적 평등을 강조하는 북유럽 국가의 적극적 노동시장과 아동에 대한 투자는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제조업의 경쟁력이 강한 독일, 스웨덴의 적극적 산업정책과 사회적 합의를 중시하는 노사관계에서도 교훈을 얻어야 한다. 올 해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 제조업 국가가 된 중국에서도 배울 점이 있다(파이낸셜 타임즈 2011년 3월 14일). 최근 경제성장을 추진하면서 불평등을 해결한 일부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에서도 중요한 사례를 제공한다. 브라질의 룰라 정부는 빈곤율 감소를 주요 정책을 내세우고 복지제도를 도입해 성공을 거두었다.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을 추진하기 위해서 한국의 진보세력은 고용 확대, 산업경쟁력 강화를 위한 기술개발 투자, 빈곤율 감소의 구체적 목표를 제시해야 한다.

부자 감세 정책의 파산

현재 미국의 위기는 일시적인 경기순환이 아니라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되었다. 1980년대 레이건 정부 이후 30년간 미국 정부가 추진한 부자감세, 규제완화, 통화량 확대 정책이 바로 경제위기를 만들었다. 공화당과 민주당의 정치인들은 천문학적 선거비용을 조달하기 위해서 기업과 부유층의 막대한 후원금에 의존한다. 기업과 부유층의 정치인에 대한 영향력이 커지면서 세금 감면, 재정긴축, 복지축소, 금융규제완화와 같은 정책을 선택한 결과로 소득격차가 극심하게 벌어졌다.

레이건 정부부터 추진했던 부자 감세는 경제적 재앙을 만들었다. 레이건 대통령은 부자의 소득세를 감면하면 경제가 성장하고 정부의 재정적자가 줄어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기에 세금이 오르면 경제성장이 악화된다는 주장을 펴는 경제학자들이 가세했다. 그러나 부자 감세가 투자 확대로 이어질 것이라는 공급중시 경제학은 이론적으로 이미 파산했다. 이러한 가정은 꿈속에서나 가능한 이야기가 되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주류 경제학자과 관료들의 지적 오만으로 수많은 시민들이 직장을 잃고 거리로 쫓겨나야 했다. 미국에서 막대한 부자 감세에도 불구하고 투자는 증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미국 사회에서 세금 납부에 부정적 편견만 커지면서 사회적 책임과 공동체 윤리가 사라지고 있다. 우리는 미국의 실패 경험에서 유용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경제 회복을 위해서는 부유층 세금을 증대하고 교육과 직업훈련, 환경친화적 기술, 연구개발 등에 더 과감한 정부 투자가 필요하다. 지속적 성장을 위해 더 많고 더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적극적 정책으로 '사회적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미래 전략이 필요하다.

새로운 도전, 새로운 과제

최근 세계경제가 급변하고 있다. 중국, 인도, 브라질 등 신흥국들이 빠른 속도로 경제성장을 이룩하고 선진국과 기술격차가 줄어들면서 미국과 유럽의 경제적 우위가 약해지고 있다. 최근 중국과 아시아 경제는 약 8% 성장으로 세계경제의 위기를 극복하는데 커다란 기여를 했다. 그러나 선진국 경제가 어려움에 빠진다면 선진국 시장에 수출하는 산업을 기반으로 하는 신흥국들의 성장이 계속된다는 보장은 없다. 한국 역시 수출중심 대기업이 경제성장을 이끌고 있지만 언제까지 이런 성장률이 계속 될지 알 수 없다. 비정규직의 증가로 사회양극화와 내수시장의 침체되면서 경제활력은 더욱 악화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한국 경제의 앞날이 항상 밝은 것은 아니다.

장기적으로 심각한 과제는 인구 고령화와 기후변화의 문제이다. 2050년까지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현재 보다 두 배가 넘을 것이다. 한국은 세계에서 고령화 속도가 가장 빠른 국가이다. 아시아 태평양 국가들은 세계의 다른 어느 나라에 비해 기후변화의 영향이 크다. 지금 기후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기상이변과 식량위기의 재앙이 닥칠 수 있다. 안타깝게도 현재 한국사회의 정책 토론은 경기 부양, 국가 채무, 복지 재정에 집중돼 있다. 한국의 진보세력은 더 넓게 더 멀리 봐야 한다. 지속가능한 경제성장, 사회통합, 환경친화적 성장의 대안모델을 제시해야 한다. 성장에 치우친 중도보수의 이념이 추구하는 목표를 뛰어넘어야 한다. 한국의 진보세력은 새로운 힘과 아이디어를 모아 담대한 미래를 제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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