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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먹는 하마' 아파트가 절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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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먹는 하마' 아파트가 절전하자… [작은것이 아름답다] 주민들이 나서 '절전소'를 만들다
안 켜고 안 쓰기. 절전은 사소하다. 아파트 한집 한집 사소한 실천이 모여 '변화'가 되는 순간, 절전은 관계이자 즐거운 일이 된다. '절전소'란 함께 에너지를 줄이면 '절전은 곧 발전'이 된다는 뜻. 서울시 성북구에서 시작해 원주, 대전, 대구, 광주 곳곳에서 함께 덜 쓰고 스스로 발전하는 절전소를 만났다.

전기요금 폭탄에야 비로소

성북구 종암사거리 11번째 '성북절전소' 동일하이빌뉴시티 아파트. 2011년 겨울 입주한 첫 해 전기요금 폭탄을 맞았다. 한 달 아파트 전체 전기요금이 7000만 원, 세대마다 내야 할 공동전기요금이 17만 원에 달했다. 440세대 가운데 아직 200세대만 입주했을 때였다. 입주자대표 남승보(59세) 님은 가만있을 수 없어 동대표로 나섰다. 원인은 주차장 배관에 감아놓은 열선. 주차장이 2~6층 지상에 있어 벽을 터놨는데, 배관 동파를 우려해 시공사가 전기를 내내 쓴 것이다. 뾰족한 해결책 없이 첫 해는 시공사에서 전기요금을 부담하는 것으로 마무리 지었다.

다시 겨울이 오자 아차 싶었다. 임시로 날이 추울 때만 열선을 틀기로 했다. 그런데도 전기요금이 2~3000만 원 나왔다. "두 해에 걸쳐 당할 수는 없었죠. 대책을 세우자고 말했어요." 겨울엔 배관 물을 빼면 어떨까, 물을 한쪽으로만 흐르게 하는 체크밸브를 사용해 보면 어떨까 여러 얘기가 오갔다. 서울시에도 물어봤지만, 답이 없었다. 전기세 몇 푼 때문에 소방법까지 어기며 목숨을 담보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느 날 관리소장이 부동액을 떠올렸다. 부동액은 이미 자동차에서 사용될 정도로 휘발성이 없고 인체에 무해했다. 체크밸브를 설치해 주 배관 속 물이 역류하지 않게 한 뒤, 배관 가지에만 부동액을 넣었다. 7만 킬로와트(㎾) 공용전기가 줄어 바로 전기 요금이 1000만 원으로 떨어졌다. "절전이 얼마나 중요한지 확실히 느꼈어요. 절전소 의미를 비로소 알게 됐죠."

▲ 성북동 절전소. ⓒ작은것이아름답다(정현주)

'전기 먹는 하마' 아파트가 자연스레 절전을?

2012년 서울시 '원전 하나 줄이기' 정책 발표 뒤 지자체에서도 친환경 정책 수립에 나섰다. 절전소는 성북구가 녹색연합과 함께 '온실가스 없는 성북구' 행동 계획의 하나로 시작했다. 녹색연합 에너지기후팀장 신근정(44세) 님은 절전소가 행정 체계로 안착하는데 집중했다. 지자체에서 에너지 정책을 지속할 수 있도록 또 주민들이 절전 스트레스 없이 자연스럽게 동참하는 것이 중요했다. "성북구 20개 동에 모두 절전소를 만들 계획이었어요. 동에는 새마을 부녀회, 주민자치위원회 같이 지역 리더들이 있고요. 아파트에는 행정 체계가 있잖아요. 아파트 관리소장, 입주자 대표회장이 절전소를 맡아 주민과 함께 움직일 수 있다고 봤죠."

첫 해에는 시험 삼아 서울시 '공동주택 공동체 활성화 사업'으로 온실가스 감축 주민 활동을 하고 있는 아파트 두 곳부터 함께했다. 바로 아파트 절전소 1, 2호 석관두산절전소, 동소문현대절전소. 그 다음 해에는 성북구 공무원과 직접 아파트마다 찾아 나섰다. "성북구에서 행정 지원을 설명하면 저는 온실가스 감축이 얼마나 중요한지, 주민들에게 얼마나 즐거운 일일지 설득했어요." 입주자대표가 주도하는지, 관리소장이 리더십을 발휘하는지, 부녀회가 있는지 없는지, 주민 공공 공간이 있는지, 마을 도서관이 있는지, 노인정이 있는지, 낮과 밤 언제 잘 모이는지, 자체 벼룩시장이 있는지 같이 하나하나 아파트마다 특성도 파악했다. 아파트 특성에 따라 접근 방식을 고민하고 단지 안에 장이 열리면 홍보 자리를 펴기도 했다.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절전에 참여하는 것을 목표로 20단지가 넘을 때까지 아파트를 찾아다니며 모집했다. 구민 가운데 에너지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절전소 길라잡이'로 세우기도 했다. 절전소 길라잡이가 달마다 절전소를 방문해 에너지 절약에 대해 알렸다. 지금 성북절전소는 아파트 절전소 41곳을 포함해 64개소 3만4000가구가 함께 한다. 2012년에서 2015년까지 절감량은 총 771만 8000킬로와트, 한 가구당 300킬로와트 사용 기준으로 2만5000가구가 사용할 수 있는 분량이다.

절전 실감 난다

남승보 님은 부동액 덕분에 큰 문제를 해결하며 자기 아파트만의 특성을 돌아보게 되었다. "주상복합이라 수영장, 사우나 같은 공용 시설물들이 많았어요. 건물 자체가 큰 데다 요즘 짓는 아파트들은 설비를 과하게 하는 추세에요." 아파트 곳곳 절전할 수 있는 곳을 찾아 전기 사용을 줄일 만큼 줄여나갔다. "사례 발표할 때 불을 껐다고 하면 사람들이 웃더라고요. 절전에서 가장 쉬운 건 일단 끄는 거예요." 변압기 5대 가운데 2대를 꺼 대기전력을 차단했다. 변압기용량(수전용량) 4800킬로볼트암페어(kVA)에서 2800킬로볼트암페어로 절반으로도 충분했다. 경비원들이 쓰는 전기히터도 바꿨다. 히터는 전기도 많이 먹는 데다가 화재 위험도 있었다. "우리 아파트는 지열을 쓸 수 있도록 지어졌는데요. 지열 체계에 연결해서 냉난방 에어컨을 달았어요. 전기요금 많이 들지도 않으면서 더울 땐 시원하고 추울 땐 따뜻해요."

수영장, 사우나에서 쓰는 전기는 물 순환 펌프 회전수를 줄였다. 회전수를 2분의 1로 줄면 전기는 세제곱인 8분의 1이 되는 '펌프의 상사의 법칙'을 적용했다. 달마다 14700킬로와트를 줄일 수 있었다. 주차장 형광등은 3600개 가운데 최소 필요한 620개만 켜기로 하고 사용할 전구만 LED로 교체했다. 계단은 비상등만 켜도 충분히 환해 형광등을 껐다. 한번은 변압기 전원, 모터 회전 수 조절한 일을 발표하자 한 아파트 전기기사가 왜 전문기술정보까지 공개하느냐며 난색을 표했다. "특별할 게 있나 싶었어요. 당연한 거잖아요. 보통 아파트 전기기사, 관리소장, 입주자대표들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아요. 절전할 때 의사결정이 굉장히 빨랐어요. 입주자대표와 관리소 사이 의사결정이 상식에 어긋나지 않아야 해요."

2016년 32평(105제곱미터)기준 월평균 관리비는 21만 원. 동일하이빌뉴시티는 46평 기준 보통 30만 원 안팎이다. 경비 9만 원, 7층 공공시설 이용 3만5000원, 이 10만5000원을 빼면 보통 아파트처럼 관리비가 20만 원꼴인 셈이다. 보통 주상복합 아파트 관리가 평당 만 원인데 비해 저렴한 편이다. "올해에야 모든 세대 입주했는데도 공용전기는 늘지 않았어요. 오히려 마이너스를 유지하고 있어요." 공용전기 '마이너스'는 세대 전기 요금에서 공용전기료를 빼준다는 뜻이다. 공용전기와 세대 전기를 더해 평균 사용량에 따라 전기 요금을 내는 단일계약을 따르기에 가능한 일이다. 단일계약은 공용사용이 세대사용 일정 비율 아래일 때 전체 요금이 줄어드는데, 15퍼센트 아래면 공용전기요금이 마이너스가 된다. 아파트 전기요금 부과방식은 종합계약, 단일계약으로 나뉜다. 종합계약은 세대와 공용 사용량에 저마다 다른 요금제로 부과하는 방식. 공용전기 사용량이 적을 때 단일계약이 유리하다.

절전은 아파트 공동체에도 활기를 띄운다. 동일하이빌뉴시티 절전소 동아리는 노인정에서 모인 12명이 함께한다. 동아리 3년 차에 접어든 한홍희(69세) 님은 절전이 재밌다. "다들 자그마한 것이라도 하고 싶어 서로 어떻게 절전했는지 얘기해요. 절전소 길라잡이가 알려준 대로 하니까 절전이 많이 되더라고요." 길라잡이가 한 달에 한 번 노인정에 방문할 때마다 에너지와 발 마사지, 천연가습기 생활 밀착 강의도 듣는다. 달마다 저마다 전기 소비량을 확인하고 이달의 절전왕도 뽑는다. "다음 주 월요일에 모이는데요. 이번에 제가 뽑혔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자주 뽑혔어요." 절전 동아리 활동이 가족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손주들이 할머니가 절약 얘기하니까 불 안 끄면 안 꺼졌다고 말한대요. 우리 손주들도 저한테 얼른 불 끄라고 말해요." 올해 5월엔 절전소 동아리를 중심으로 아파트 잔치도 벌였다. 남승보 입주자대표가 주상복합 상가에 경품 협찬 요청을 동아리 회원들은 음식 준비에 바빴다. 주민들에게 절전 활동을 소개하고 LED로 바꾸면 전기가 얼마나 줄지를 비롯해 절전 퀴즈 시간도 가졌다.

ⓒ녹색연합

'퍼져라' 우리집 절전

성북절전소를 시작한 지 5년이 지났다. 길라잡이는 아파트 에너지 전환을 사명으로 삼기도 하고, 구청 직원들은 녹색연합 회원이 되어 에너지 서명운동에 동참하기도 한다. 녹색연합 절전소 담당자 김순남(45세) 활동가는 절전소 다음 단계를 고민한다. 실제 절전소 주민들이 절전하고 있는지 확인이 필요하다고 본다. 아파트 관리소장, 입주자 대표가 바뀌면 흐지부지 되는 일이 생기기도 했다. 신근정 팀장은 절전소를 행정 체계로 만들고자 했던 것이 잘못 내다봤던 건 아닌지 싶다. "결국 행정 체계도 사람이 하는 일인데요. 지금 주민 한 사람 한 사람 만나서 절전을 설득하기에는 규모가 너무 커졌어요."

새해에는 지역에너지지원센터를 열어 길라잡이를 직접 채용하고 에너지시민활동가로서 키울 예정이다. 성북구와 아파트 사이 중간다리 역할인 길라잡이가 지역 곳곳 스며들어 절전소 주민들이 '운동성'을 가지길 기대한다. 성북구는 다른 지원책도 고민하고 있다. 성북구청 기후변화대응팀장 조혜경 님은 절전소는 결국 입주자대표, 관리소장 누구든 에너지 문제에 관심 있어야 시작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입주자대표, 관리소장 교육 때 에너지 문제를 알리는 시간을 가지려 합니다. 현재는 눈에 띄는 지원방안이 없어 다른 차별화된 방안도 마련하려 합니다."

남승보 님은 '세대 전기'가 아직 고민이다. 공용전기는 전체 전기사용량에서 10퍼센트일 뿐이고 완전히 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결국 절전소는 세대 전기를 줄이는데 나서야 한다. 대기전력만 줄여도 세대 전기사용량 10퍼센트 줄이는데 주민을 어떻게 이끌어낼 지 고민이다. 텔레비전 절전모드 변경, 냉장고 냉동실 온도 영하 20도에서 17도로, 냉장실 4도로 변경, 쓰지 않는 에어컨 코드 뽑아놓기 같이 성북절전소 1호 석관두산절전소에서 알린 '3플러스1 절전법'도 참고했다. 하지만 그 방법대로 절전을 꾸준히 하도록 알리는 게 쉽지 않다. "공용전기는 필요한 계획을 추진해 작업하면 그만이지만 개별 세대는 제 맘대로 할 수 없잖아요."

절전 방법으로 LED를 강조해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지은 지 얼마 안 된 아파트인데 다시 바꾼다니 불필요하게 느껴진다. "세대마다 형광등을 LED로 바꾸면 160만 원 정도 들어요. 바꾼 뒤 그만큼 투자비용을 회수할 수 있을까요? 처음부터 준공 허가할 때 LED로 하면 되잖아요." 에코마일리지 말고도 다른 지원방안도 필요하다고 본다. "가구마다 한 해 전기 사용량 평균을 낸 뒤 전기 사용을 줄이면 요금 단가를 내려주는 건 어떨까요?"

절전소 4년, 앞으로 이 아파트에서 10~20년 살았을 땐 어떤 모습일지 그린다. "여기에서 6년째 살고 있는데요.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어요. 입주자대표위에서 이만큼 했으니 이젠 여러분들 몫이라고 말하고 있어요. 그렇지만 정말 우리 주민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요? 특별하고 확실한 것이 필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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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작은것이 아름답다>는 1996년 창간된 우리나라 최초 생태 환경 문화 월간지입니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위한 이야기와 정보를 전합니다. 생태 감성을 깨우는 녹색 생활 문화 운동과 지구의 원시림을 지키는 재생 종이 운동을 일굽니다. 달마다 '작아의 날'을 정해 즐거운 변화를 만드는 환경 운동을 펼칩니다. 자연의 흐름을 담은 우리말 달이름과 우리말을 살려 쓰려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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