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모피길 : 대항하(河) 시대
시베리아가 없었다면 러시아 또한 없을 것이다. 러시아가 오늘의 러시아인 것은 오롯이 시베리아 덕분이다. 국토의 8할을 점한다. 77%가 시베리아다. 지구 지표면의 1할에 조금 못 미치는 크기이다. 시베리아만 따로 떨어뜨려도 유라시아에서 가장 넓은 지역이 된다. 중국보다 인도보다 크다. 시베리아 안에 미국과 유럽을 모두 우겨넣을 수 있다. 아메리카의 동과 서로 4개의 시간대가 지난다. 시베리아의 동과 서에는 8개의 시간대가 흐른다.
우랄 산맥을 지나면 시야가 확 트인다. 촘촘한 도시들이 사라지고 드문드문 마을들이 산재한다. 광활한 대평원을 가로지르는 것은 거대한 호수와 장대한 강줄기이다. 바이칼 호수와 오브 강, 예니세이 강, 레나 강, 아무르 강이 유장하게 펼쳐진다. 대호(大湖)와 대하(大河) 끝에 대양(大洋)에 도달한다. 태평양에 다다르는 것이다. 시베리아는 대륙과 대양을 관통하고 있다. 시베리아를 안음으로써 러시아는 바다와 육지를 관장하는 해륙(海陸)제국이 되었다.
욕심에서 출발했다. 욕망이 분출했다. 시베리아 진출의 첨병은 모피 사냥꾼이었다. 중국에 비단길이 있고 인도에 면화길이 있다면 러시아는 단연 모피길이다. 중원과 남방과는 달리 북방은 몹시 춥다. 일 년의 절반이 혹한의 겨울이다. 비단과 면화를 겹겹으로 껴입은들 살을 에는 추위를 견뎌낼 재간이 없다. 털모자를 눌러쓰고 가죽장갑을 끼고 모피코트를 걸쳐야 한다. 동물 가죽은 따뜻하고 보드라우며 고급지기까지 했다. 실용품이자 사치품이었다. 담비와 여우와 족제비를 족족 닥치는 대로 잡아들였다. 씨가 마르고 종이 멸하면 강줄기를 따라 더더욱 동진했다. 포르투갈과 스페인과 네덜란드가 인도양의 해양도시를 건설하고 있을 때, 러시아는 시베리아의 강변도시를 건조하며 내륙의 대항해시대, '대항하(大航河) 시대'를 개창했던 것이다. 콜럼버스와는 지구 정반대 방향으로 돌아 신대륙도 '발견'한다. 베링 해협을 지나 알래스카와 캘리포니아까지 이른 것이다. 18세기 '루스카야 아메리카'를 경영하며 구대륙과 신대륙을 겸장한다. 19세기 대영제국과의 그레이트 게임, 20세기 미국과의 냉전을 예비한 것이다.
러시아의 프런티어, 시베리아에서도 원주민과 토착민 착취는 아메리카에 못지않았다. 세금으로 현물 납부, 모피를 요구했다. 싼값에 거두어들여 러시아와 유럽에는 비싼 값에 되팔았다. 막대한 이문을 남기며 원시자본을 축적한다. 17~18세기 러시아 재정의 1/3을 모피가 차지했을 정도이다. '부드러운 금'이라고도 불렀다. 남아메리카의 금광과 은광을 채굴하듯이 모피를 죄다 거두어들인 것이다. 원주민들은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한 생업에는 소홀하고 모피 사냥에 전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형적인 식민지 수탈, 종속경제로 전환된 것이다. 식생활은 곡물과 빵, 설탕과 차 등 러시아 상품에 의존했다. 고약한 상인들은 보드카로 지불했다. 몸을 감싸는 모피는 헌납하고 술기운에 의존하여 추위를 버틴 것이다. 몸과 마음의 건강을 해치는 경우가 많았다. 가장 파국적인 상황은 러시아인의 몸속에 숨겨둔 병원균이다. 천연두, 홍역, 매독 등 접하지 못했던 질병에 속수무책 쓰러졌다. 다른 문명에 대한 면역력 결핍, 시베리아 판 총, 균, 쇠가 자행된 것이다. 사라지는 토착문명을 대신하여 군인들은 요새를 짓고 성직자들은 성당을 세웠다. 시베리아는 키릴문자로 새겨진 러시아의 신천지가 된다. 또 한 편의 신세계 교향곡이 북방에서 울려 퍼졌다.
2. 시베리아 횡단철도 : 붉은 열차
19세기와 20세기를 가르는 세기적 사건이 일어난다.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건설된다. 서말의 구슬도 꿰어야 보배이다. 수십의 강변도시를 철도로 이음으로써 유라시아의 시공간 혁명을 촉발한다. 물리적 거리는 단축되고, 심리적 거리도 축소시켰다. 농노해방으로 자유를 얻은 농민들이 'wild wild east', 동부 개척에 나선다. 1897년 700만에 불과했던 시베리아 인구는 1910년 2000만에 이른다. 같은 시기 유럽에서 아메리카로 이주한 사람보다 더 많은 이들이 아시아로 옮겨간 것이다. 톰스크는 인구가 10배로 폭발했다. 옴스크, 크라스노야르스크, 치타, 이르쿠츠크, 하바롭스크, 우수리스크, 블라디보스토크 등 러시아풍 신도시들이 속속 발전했다.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도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단연 화제였다. 모스크바에서 베이징에 이르는 가상 기차여행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관람객들은 실제 객차처럼 흔들리는 열차 칸에 올라탄다.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는 동안 캔버스에 그린 1km의 이동 파노라마가 시베리아 풍경을 재현한다. 45분 여행을 마치고 베이징 역에 내리면 청나라 복장 사람들이 맞이한다. '지리상의 발견', 유럽과 아시아를 내륙으로 잇는 러시아제국의 위용을 과시한 것이다.
그 제국이 1917년 볼셰비키 혁명으로 고꾸라졌다. 적군과 백군의 최후의 결전이 벌어진 장소 또한 시베리아였다. 미국은 블라디보스토크를 통하여 물자를 제공했고, 일본은 군사를 출병하여 백군을 지원했다. 소련을 우랄 서쪽으로 봉쇄하고, 우랄 동쪽에는 울란우데나 치타를 수도로 삼는 '극동 공화국'을 세우려고 했다. 친일 정권 수립으로 시베리아를 분할함으로써 공산주의의 확산, 도미노를 차단하려 든 것이다. 1918년 시베리아에 진출하여 이르쿠츠크까지 장악했던 일본이 사할린까지 후퇴했다가 최종적으로 물러난 것이 1925년이다. 7년간 대륙에서의 실전 경험을 쌓은 이들은 1931년 만주 사변을 일으키는 관동군의 주축이 되었다. 시베리아 출병이 1930년대 만추리아를 중국에서 떼어내는 만주국 실험의 예습 격이 된 것이다. 1910년대의 코리아, 1920년대의 시베리아, 1930년대 만추리아의 운명은 긴밀하게 연동했다.
모스크바와 치타 사이의 적/백 내전에서 선봉에 선 사람이 트로츠키였다. 볼셰비키의 참모총장으로 그가 자리했던 곳 또한 시베리아 횡단열차였다. 복사기와 전신기와 라디오 방송국과 도서관과 목욕탕까지 갖춘 '이동하는 작전 본부'였다. 모스크바의 레닌과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도쿄부터 런던까지 전 세계 소식을 기차 칸에서 받아보았다. 트로츠키의 '혁명 열차'가 군사적으로 승리하면, '선전 열차'가 그 뒤를 이어 달렸다. 신문과 포스터 등 공산주의를 전파하는 설국 열차들이 시베리아를 붉게 물들였다. 1918년 모스크바부터 카잔을 달렸던 아홉 칸 '레닌 호'가 시발이다. 1920년대에는 18칸으로 확장하여 신문사까지 따로 운영했다. 시베리아 도시들에 도착할 때마다 현지 정보를 실시간으로 입력하고 편집하여 출력하고 보급했다.
소비에트 대중문화도 기차를 타고 전파되었다. 가장 유명했던 것이 영화 상영이다. 시베리아에는 여전히 키릴문자를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아이콘과 이미지를 통하여 공산주의를 확산시키는 편이 효율적이었다. 역전이 SNS의 허브가 된다. 선전 열차가 오는 날이 곧 마을의 잔칫날이 되었다. 삼삼오오 아이들 손을 잡고 기차역으로 향했다. 난생 처음 영화를 보는 사람들도 많았다. 극장국가를 통하여 최초로 조우하는 인물이 혁명의 아버지, 레닌이었다. '쇼통'에 성공함으로써 하라쇼!(Хорошо, 좋아요) 찬양하고 고무하는 '소비에트 키드'들이 무럭무럭 자라났다.
3. 시베리아의 힘 : 가스 로드
1991년 소련이 해체되자, 시베리아에서도 분리 독립 움직임이 일었다. 1920년대의 리바이벌, 중앙의 통제력이 약화되었다. 외부에서는 미국이 은근하게 군불을 지폈다. 내부에서는 시베리아의 자원을 소유한 에너지기업들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았다. 극동공화국을 세워 중국에 자원을 내다파는 것이 더 이로울 것 같았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옐친의 '민주화'와 '자유화'가 더 지속되었더라면 러시아는 유고슬라비아의 운명처럼 더더욱 잘게 쪼개졌을 것이다. 동유럽의 일국, EU의 말단, NATO의 속국이 되었을지 모른다. 그 흐름을 단박에 되받아치며 부상한 인물이 블라디미르 푸틴이다. 집권 초기부터 시베리아 장악을 확고히 한다. 에너지산업에 대한 국가의 통제력을 공고히 한다. 시베리아를 틀어쥐고 있었기에 IMF 구제금융 또한 조기에 벗어날 수 있었다.
2014년 세기의 빅딜이 성사되었다. '시베리아의 힘', 러시아와 중국 간 에너지 합작이다. 시베리아의 천연가스가 만추리아와 몽골리아를 지나 중원으로 흘러든다. 30년 사업, 2050년을 내다보는 21세기의 대계이다. 러시아의 축이 확연하게 유럽에서 아시아로 이동한 것이다. 서방의 경제제재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미 동북아가 서구와 북미를 제치고 가장 큰 에너지 시장이 되었기 때문이다. 가스로드를 통하여 동시베리아를 동아시아와 연결시켜 동유라시아로 진화시킨다. 2017년에는 야말 프로젝트까지 본 궤도에 올랐다. 세계 최대의 LNG(액화천연가스) 공장이 가동됨으로써 북극항로를 통하여 중국으로 인도로 일본으로 에너지가 흘러간다. 푸틴의 브레인 중 일부는 블라디보스토크로 천도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언론에 흘린다. 베이징과 서울과 도쿄와 델리와 가까운 곳으로 수도를 옮겨야 한다는 것이다. 표토르 대제가 '유럽으로의 창'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건설했던 것처럼, 푸틴 대통령은 블라디보스토크를 '아시아로의 창'으로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제3의 로마' 모스크바의 위상을 넘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2050년 제2의 수도, 경제수도가 될 가능성은 없지 않다.
흔히 30년 빅딜의 액수를 '4000억 달러'라고 표기한다. 그러나 장차 표기 단위 또한 달라질 공산이 크다. 오일-달러와 일선을 긋는 가스-위안 체제에 합의했기 때문이다. 유라시아의 지하자원을 사고 팔 때는 유라시아의 화폐를 사용키로 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거래소에서는 유로와 루블을 사용한다. 블라디보스토크 거래소에서는 루블과 위안을 사용한다. 달러에 결박되지 않는 에너지 시장을 자립시킨다. 유라시아의 동과 서에서 아메리카의 화폐 지배를 잠식해가는 것이다. 가스로드를 재건하는 동시에 머니로드도 바꾸어내는 것이다. 중앙아시아와 중동도 의기투합한다. 카자흐스탄부터 이란과 터키, 카타르까지 동참한다. 지난 연말 독일마저 합류했다. 도이츠방크 또한 외환에서 달러의 비중을 줄이고 루블과 위안을 높이기로 결정했다.
송유관, 지하의 길에 이어 지상에서도 또 하나의 빅딜이 예고되어 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고속철도로 업그레이드 시키는 것이다. 이미 유라시아의 고속철은 차이나 스탠다드로 재편되고 있다. 동남아부터 동유럽까지 시속 300km의 '조화호'와 시속 400km의 '부흥호'가 달린다. 부흥과 조화의 공진화, 머지않은 장래에 부흥호가 시베리아를 질주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 유라시아 익스프레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까지 하룻밤이면 도착한다. 부산부터 런던까지 이틀이면 충분하다.
4. 감각의 제국
시비~리!
낙조를 바라보던 그의 입술에서 나지막한 탄성이 새어나왔다. 러시아어로 시베리아를 '시비리'(Сиби́рь)라고 한다. 근 30년을 라틴문자에 익숙한 채 살아온 나는 '시비~리!'가 마치 의성어처럼 느껴졌다. 오한으로 파르르 떠는 'shiver'가 연상되기도 했다. 차디차고 춥디추운 시베리아의 이미지가 원체 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시베리아의 동서남북을 주파한 것은 5월부터 8월이다. 특히 7월은 한 달 내내 기차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를 따라서 시비~리! 감탄사를 연발했던 나날이다. 넋을 놓고 창밖의 풍경을 보고 또 바라보았다. 어차피 인적이 드물어 기지국도 부족한 땅이다. 기차역이 아니면 와이파이가 터지지 않는다. 현지 시간도 확인이 힘들다. 8개의 시간대가 흘러가는 곳, 기차 안에는 오로지 모스크바 시간만 표기되어 있고, 와이파이 없는 스마트 폰 시계는 먹통이 되었다. 그저 해가 뜨고 지는 자연의 리듬에 맞추어 하루와 하루를 이어갈 뿐이다. 실시간 정보들로 일희일비하는 온라인세계와 단절된 채 오프라인세계에 집중할 수 있었다. 가상계에서 빠져나와 현실계에 전념할 수 있었다. 연연하지 않고 초연하게 되었다. 단언컨대 시베리아의 절정은 단연 찰나의 여름이다. 200일 동토를 뚫고 솟아나는 뭇 생명의 펄떡펄떡한 기운이 우렁차다. 단색 설경이 아닌 총천연색 절경을 선사한다.
아래 위 침대를 나누어 썼던 그는 카잔에서 옴스크까지 가는 길이었다. 타타르인이다. 본디 시비리가 투르크어 기원이다. '시'는 물을 뜻하고, '비리'는 황야를 말한다. 바이칼 또한 투르크어에서 파생되었다. '바이'는 크다는 뜻이며, '쿨'은 호수이다. 돌궐이 보기에도 시베리아는 대호와 대하와 대지의 장소였다. 그 넓디넓은 대륙에서 다종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간다. 기차를 타고 내리는 사람들 살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6박 7일,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보스토크를 한달음에 잇는 '로씨야 2호'를 타면 유라시아의 만인을 대면할 수 있다. 흉노와 말갈과 선비와 여진과 몽골과 슬라브와 타타르와 고려와 한족의 혼종과 융합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4명이 함께 자는 2등석 침대칸에서는 매일 밤 각양각색의 연합과 연정이 이루어진다. 그들이 유독 사랑하는 팔도 도시락 컵라면과 오리온 초코파이를 나누어 먹는다. 차이(차)와 코페(커피)와 삐보(맥주)를 따르며 정을 통한다. 국사는 흔들리고 국경은 흐려지고 국민은 까무룩 해진다. 20세기형 세계감각이 흐물흐물 녹아난다. 유라시아인으로 세계시민으로 거듭나는 감각의 쇄신과 혁신, 21세기로의 시간여행이다.
백년이나 지각한 감각이다. 19세기 후반 함경도 사람들은 두만강을 건너면 곧장 만추리아와 시베리아와 몽골리아와 접속했다. 모피 사냥에 능했으며 키릴문자를 배우고 정교회에 입문하고 적색혁명에 가담한 이들도 적지 않았다. 크림반도에서 출발한 러시아가 천년을 진화하여 유라시아의 동쪽 끝 한반도의 이웃국가가 된 것이다. 동로마제국, 비잔티움의 후예이자 그리스의 적통을 자부하는 나라와 살을 부대끼며 살게 되었다. 기어이 1948년 반도의 북쪽에 들어선 나라에는 러시아어로 스탈린에게 손 편지를 쓸 수 있는 김일성이 지도자로 등극했다. '마지막 황제' 장백산 혈통의 만주족 국가는 사라졌지만, 백두산 혈통의 북조선은 지금껏 여전하다. 과연 코리아와 만추리아와 몽골리아와 시베리아의 경계는 희미하고 흐릿하며 여릿하다. 북방의 세계감각, 지리감각, 역사 감각, 시공간과 천지인 감각은 반도의 이남과 판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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