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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철 죽이라는 야당, 물 만난 '신앙의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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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철 죽이라는 야당, 물 만난 '신앙의 정치'

[기자의 눈] 영원히 야당만 할 건가?

북한 조선노동당 서열 17위인 거물급 김영철의 방한이 최대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눈물과 감동의 평창올림픽, 국회에서의 개헌과 법안 논의, 심지어 미국 대통령의 장녀인 백악관 선임보좌관의 방한 소식까지 언론의 '톱(top)'에서 밀려났다.

김영철이 이명박 정부 당시 한미 양국에 의해 천안함 사건의 기획자로 지목된 탓에, 파장은 정치권 전반으로 번져나가고 있다.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그의 방한을 막아 달라는 청원이 수십 건 등장했다. 설 명절 연휴를 거치며 간신히 반등세로 접어든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은 다시 향방을 알 수 없게 됐다.

보수 야당은 이 기회에 단단히 한몫을 잡으려 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청와대 항의방문에 이어, 당 사무총장이 라디오 인터뷰에 나와 국회 전면 보이콧을 시사했다. (☞관련 기사 : 한국당 "김영철과 악수하면 文대통령 인정못해") 유승민·박주선 공동대표가 이끄는 바른미래당도 가세하고 나섰다.

차라리 우리도 '믿고' 싶다

이 대목에서, 오래된 지적 하나를 다시 꺼내들지 않을 수 없다. 천안함 사건에 대해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9월 13일 펴낸 '천안함 피격사건 합동조사결과 보고서'에서 "어뢰에 의한 수중 폭발로 충격파와 버블효과를 일으켜 선체가 절단되고 침몰했다"고 결론내렸다. 하지만 국방부가 주도한 민군합동조사단(합조단)의 보고서는 과학자들과 시민사회에 의해 그 진실성을 의심받았다. 이들의 문제 제기에, 납득할 만한 정부의 해명은 전혀 없었다. 단지 '정부 발표를 믿느냐, 북한 주장을 믿느냐'는 '믿음의 문제'가 과학적 검증을 대체했다.

오해는 금물이다. 문제를 제기하는 과학자들이나 시민단체는 무슨 '좌초설'이나 '미군 잠수함 원인설', '기뢰 침몰설' 등을 주장하는 게 아니다. 천안함 사태가 누구의 소행이냐는 물음에 대한 상식적·합리적 답은 '아마도 북한의 소행일 것으로 강하게 의심된다'는 정도일 터이다. 다만 '검사' 역할을 맡은 합조단이 피의자(북한)의 '범죄사실'을 객관적으로 소명하는 데 실패했을 따름이다. 이승헌·양판석 등 과학자들의 주장 요지는 '북한 소행이 아니다'가 아니다. '합조단 보고서가 오류투성이다'일 따름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당시 국방부와 보수언론은 이들의 문제 제기를 '정부 발표를 믿지 못하겠다는 불순세력의 선동' 쯤으로 싸잡아 매도하며 '믿느냐, 믿지 않느냐'는 신앙고백만을 강요했다. 효과는 대단했다. 정부의 발표에 조금이라도 의심을 가졌다는 이유로 고위공직자 후보자(조용환 헌법재판관 후보자)가 인사청문회에서 낙마하거나 현직 정치인들도 마녀사냥을 당했다. 문재인 대통령마저 2015년 3월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대표 시절 '믿습니다'라는 신앙고백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대통령에 당선됐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동참으로 '천안함=북한 소행' 등식이 정치권에서는 더 이상 논란 없이 통용되게 됐다 한들, 매직마커펜으로 쓴 '1번' 글씨의 존재나 버블제트 물기둥이 사라진 데 대한 의문이 갑자기 명쾌하게 풀린 것은 당연히 아니다. 시민단체 '참여연대'는 2015년 당시 '문 대표'의 발언에 대해서도 "국민의 의혹만 키운 정부 발표에 대한 검증 요구를 접고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단정하게 된 근거가 무엇인가"라고 따져 묻기도 했다. 정치권에서는 이들의 질문에 아무 대답도 내놓지 않았다.

그렇다고 8년 전 사건을 이제 와서 재검증하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로 어려운 일이 됐다. 결정적 증거가 남아있다고 보기 어렵고 정부가 참여하는 재검증은 앞서 살펴봤듯이 막대한 정치적 부담 때문에 무리다. 정부가 참여하지 않으면 검증에 공신력이 없어진다. 결국 '보고서는 부족·미흡하지만 정황상 북한이 저지른 것으로 추정된다' 정도로 '퉁 치고' 넘어갈 수밖에 없는 게 지금의 상황이다. 유일하게 명쾌한 해법은, 사건 직후부터 일관되게 관련성을 부인해 온 북한이 스스로 '우리가 한 게 맞다'고 자인하고 공식 사과 내지 유감 표명을 하는 것이다. 당연히 실현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

현재 문재인 정부에서 통일부 산하기관인 남북하나재단(구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는 고경빈은 2011년 당시 강연에서 "천안함 사건은 일종의 '신앙고백'이 됐다. 이성의 시대에서 '믿습니까?'라는 신앙의 시대로 회귀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도 "정부가 신뢰를 잃게 행동한 면은 있지만 이미 한 발표를 뒤집을 정도로 중요한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한편에서는 정권이 바뀌면 재조사해서 결론도 다시 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모양이지만 이는 매우 위험하다"고 제언한 바 있다. 귀담아 들을 대목이다. (☞강연 전문 보기)

'김영철 사살'을 떠들어대는 야당

물론 이런 대혼란이 벌어질 것을 뻔히 예상하면서도 김영철을 굳이 찍어서 보낸 북한 정권의 심보도 고약하다고밖에 할 수 없다. 하지만 '김정은 체제의 북한을 대화 상대로 인정할 수 없고, 그 정권이 저절로 붕괴할 때까지 온갖 군사도발과 전쟁위기를 감내하며 꿋꿋이 '전략적 인내'를 하겠다'는 입장이라면 모를까, 북한과 대화를 하겠다면서 특정 인물은 전범(戰犯)이니 안 된다는 식의 주장은 현실적이지 않다.

특히 김영철이 '천안함 폭침 주범'이라는 주장은 소위 '믿는 자'들의 입장에서 봐도 자가당착이다. 그러면 연평도 포격은 김격식이, KAL기 폭파는 김현희가, 김정남 암살은 동남아 여성 2명이 저지른 일일 뿐인가? 이들을 '사살'하면 희생자들이 지하에서 편히 눈을 감게 되고 정의는 구현되는 것일까? 그럴 리가. 설사 '천안함 북행 소행설(說)'이 어떤 계기로 인해 다시 과학적으로 입증된다 한들, 김영철은 김격식·김현희 등과 마찬가지로 실행범 내지 중간실행범에 불과하다. 1인 독재국가인 북한에서, 연평도·KAL기·아웅산 등 북한이 저지른 모든 만행의 책임은 최고권력자 1인으로 수렴된다. '인민의 뇌수' 수령제를 채택한 북한의 숙명이다.

노무현 정부 당시 통일부 장관을 지낸 정동영 민주평화당 의원은 천안함 논란에 대해 "문제는 북한의 시스템이며, 김영철 통일전선부장 개인의 책임이라 보기 어렵다"고 이날 지적했다. 그의 지적이 겨냥하는 바는 명확하다. 한국과 북한은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이래 현재까지 '종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반인도적 무력 도발이 분단으로 인해 정당화될 수는 없지만, 이른바 북한의 '최고 존엄'을 거론하지 않고 특정 인사 몇몇에게 도발행위의 책임을 묻기도 어렵다. 김영철이 '대남 강경파'이거나 "연쇄살인범"(김진태 한국당 의원, 23일 법사위 회의석상에서)이기 때문에 북한군의 도발이 저질러진 게 아니라는 말이다.

돌이켜보면 과거 보수정권도 무력 도발을 자행했던 김정일·김정은 정권을 대화 상대로 인정했다. 그게 좋아서가 아니라, 달리 답이 없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는 심지어 천안함·연평도 사건이 발생한 이듬해(2011년)에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북한과 비공개 접촉을 가졌다. 결국 북한이 비공개 접촉 사실을 폭로하며 대화가 무산됐지만, '그' 이명박 정부조차 천안함 사태 1년여 만, 연평도 포격도발 반년 만에 북한과의 대화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반증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김정은을 대화 상대로 인정하고, 2015년 1월 신년기자회견에서는 "남북 정상회담도 (평화통일에) 도움이 된다면 할 수 있다. 전제조건은 없다"고까지 했었다.

이런 한반도 분단의 현실을 무시하고 '김영철=천안함 주범=살인자'라는 도식을 앞세워 여론몰이 선동에 나서는 것은 한반도의 긴장 완화와 평화 구축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무책임한 자세다. 이런 주장이 굳이 가져올 수 있는 이득이 있다면, 주장하는 자들에게 정치적으로 이익이 된다는 정도일까. 구태의연하지만, 영화 <강철비>의 주인공들이 말하듯 "분단국가의 인민은 분단 그 자체가 아니라 분단을 정치적 이득을 위해 이용하는 자들에 의해 더 고통받는다."

천안함 사태로 가족·친지를 잃은 유족들의 울분을 십분 이해한다. 8년 전 정부와 여론이 북한과 김영철을 지목한 이상, 유족들에겐 김영철이든 김정은이든 용서할 수 없는 '불구대천의 원수'일 수밖에 없다. 책임있는 정부라면 이들의 상처를 다독여야 마땅하다. 사안의 성격상 김영철의 방한 경위를 사전에 알리고 이해를 구하기가 어려웠더라도, 이제부터라도 유족들을 만나 양해를 구하는 게 옳다. 그게 통합을 지향하는 정부의 마땅한 자세다.

그러나 김영철에 대해 '사살'이며 '체포'를 운운하는 일부 보수야당 정치인들은 자신들이 나라의 안보와 평화를 책임져야 할 집권당이어도 같은 주장을 할 수 있는지 돌이켜 살펴볼 일이다. (☞관련 기사 : 한국당, 4년 전엔 김영철 회담 "바람직하다"더니…) 김영철을 '사살'해야 한다면, 김영철에게 그런 지시를 내렸을 김정일과 정상회담을 추진한다는 것도, 김정일의 계승자 김정은과 마주앉아 대화를 한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북한이 나쁘다고 비난만 하는 것은 필부도 할 수 있는 쉬운 일이다. 영원토록 야당만 할 게 아니라면, 수권 능력이 있는 정당으로서 책임 있는 자세를 보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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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훈

프레시안 정치팀 기자입니다. 국제·외교안보분야를 거쳤습니다. 민주주의, 페미니즘, 평화만들기가 관심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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