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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독극물 가득한 강산을 물려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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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미세먼지·독극물 가득한 강산을 물려준다고? [작은것이 아름답다] "이만하면 '충분하다'. 아이들 걱정만 없다면"
새벽 5시 경 잠이 깰 듯 말 듯 가수면 상태인데 갑자기 집이 휘청, 흔들렸다. 현관에서 자고 있던 개가 워어어 자지러질 듯 짖는다. 휴대폰으로 뉴스를 검색해보니, 올림픽 소식뿐 잠잠하다. 20분이나 지나 경북 포항 일대를 진원으로 규모 4.6의 지진이 발생했다는 소식이 뜬다. 이렇게 몸으로 지진을 느껴본 적이 벌써 몇 번째인가. 50년 넘게 살면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요즘은 몇 달 간격으로 겪고 있다. 지구도 언젠가 사라질 수 있는 생명체, 땅은 흔들리지 않는 것이란 고정관념이 깨어지고 있다. 땅이 흔들리면 어떻게 되나. 단단한 땅을 믿고 세운 인간의 문명. 땅 위에 땅 속에 묻어놓은 귀한 것들, 위험한 것들.

박완서 선생의 성장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세계사 펴냄)를 그제부터 다시 읽고 있다. 유년기 자연 속에서 뒹굴던 추억이 아름답게 묘사되어 있는 책. 개성의 시골마을에서 유년기를 보내고 서울로 이사해 살면서 가장 그리워했던 것은 애틋하게 사랑받았던 혈육들 이상으로 몸을 담갔던 아름다운 자연이라고 쓴 문장에 깊이 공감했다. 몇십 년 뒷세대이긴 하지만 나 역시 그런 어린 시절을 누렸고, 그것은 내 인생의 가장 큰 축복, 마르지 않는 샘이 되었다. 고향을 떠난 날부터 그리워하던 시골생활을 근 50년 만에 밀양 한 오지마을에 들어와 누리고 있다. 아직 학교가 도시에 있어 주중에는 도시의 원룸 신세를 지고 있지만, 금요일 퇴근하여 집으로 향할 때 마음은 샘을 향해 달리는 목마른 사람 같다. 집이 있는 마을로 들어서는 산길에 접어들면 마음은 아늑해진다. 집에 닿아 개들이 풀쩍풀쩍 뛰며 반길 때 개의 잔등을 쓸어주며 햇살에 반짝이는 물결처럼 마음은 즐거움으로 가득 찬다. 달콤한 고구마를 삶아 개들과 나눠 먹고 함께 동네 길을 산책하는 시간은 일주일 동안 쌓인 찌꺼기가 순하게 분해되는 느낌이다. 저물 무렵 텃밭에 심어놓은 푸성귀를 거두고, 주말에는 호미 들고 흙을 일구고 풀을 뽑으면 하루가 후딱 지나간다. 이렇게 살면 언제 죽어도 크게 아쉬울 것 없겠다는 마음이 된다. 도시와 시골을 번갈아 살다 보니 멀리 여행을 떠나는 일도 크게 흥미가 없다. 일상이 여행이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멀리 떠나지 않아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시집 제목처럼 이만하면 '충분하다'. 아이들 걱정만 없다면 말이다.

▲ 미세먼지 낀 서울의 어느 봄날. ⓒ연합뉴스

세상을 생각하면, 특히 내 자식을 비롯한 아이들, 청년들을 생각하면 우울하기 그지없다. 도무지 뒷세대는 어떻게 살라고 이 문명은 이렇게 맹목으로 가는 것일까. 마스크 없이 밖에 나갈 수 있는 날들이 사라지는 것 아닌가 싶게 도시 공기는 오염되어 가고 있다. 수돗물도 못 먹어서 사 먹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공상 만화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기이하게 듣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당연하게 물은 사 먹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물이야 하루 종일 먹는 건 아니니 그럴 수 있다 치더라도, 한순간도 없으면 안 되는 공기가 이렇게 오염되면 이제 개인 산소통이라도 짊어지고 사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일자리 문제는 또 어떤가. 로봇기계에게 노동을 다 맡기면 인간은 노동해방의 세상에서 자유를 누리고 그저 놀고 즐기면 되는 것일까, 기계 부속품 노릇도 못 하는 실업자 빈민들로 넘쳐날 것인가. 잿빛 도시에서 기계 꽁무니를 쫓아가기 위해 인류가 그 험난한 길을 헤쳐 왔던가 싶다. 일자리문제가 아니어도 기계-컴퓨터가 없으면 자기 삶을 채우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늘어간다. 인간은 세계를 기이하게 변형시켰고 인간 스스로도 변종처럼 바뀌고 있다.

무엇보다 애써 외면하고 있는 진실은 우리는 조금씩, 지구가 도저히 감당하지 못하는 변형된 자연-독극물을 날마다 배출해 내고 있는 것이다. 핵폐기물은 인류를 단숨에, 혹은 시름시름 죽일 수 있는 것이다. 어떻게든 죽는 것은 삶의 진실이지만, 이렇게 무서운 독극물로 죽어가야 한다는 것은 예상하지 못했던 미래였다. 전기는 우리 삶을 지탱하게 하는 에너지인데, 그 에너지원은 누구도 가까이 가기를 두려워하는 크레바스와 같은 핵발전소를 중심에 두려 한다. 에어컨 없으면 못 사는 여름, 전기 없으면 얼어 죽을 것 같은 겨울을 맞으니 전기를 펑펑 쓴다. 더 펑펑 쓰게 하려고 핵발전소 밀집도 세계 1위라는 통계도 아무것도 아닌 양, 핵발전소를 계속 더 지으려는 세력이 결국 대중의 마음을 뺏어갔다. 신고리 5, 6호기 신규 건설을 중단시키기 위해 많은 이들이 노력했지만 찬핵 세력들의 공세를 이겨내지 못했다. 보수 세력들은 자신들의 이익 때문이겠지만, 아무리 잘못된 현실이라도 기존 방식을 고수한다. 그들은 탈핵을 표방한 문재인 대통령을 국정농단 운운하며 비이성적인 비난을 퍼부었다. 원자력공학과 연구자들은 당장 밥그릇이 걸린 문제라고 인지하여 사력을 다해 찬핵 여론을 만들어갔다. 핵발전소 안전성뿐만 아니라 핵폐기물에 대한 대책은 여전히 없다. 그래도 어찌 되겠지. 과학이 알아서 해 줄 거야. 정작 과학자들이 제일 관심 있는 것은 자신의 밥그릇인데 대중들은 맹목이다. 나만 살다 죽으면 되지. 미래는 알 게 뭐야. 그렇게라도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일상에 쫓겨 잊고 살지만, 본질을 들여다보면 이보다 더 무서운 일은 없다. 자연이 감당하지 못하는 것을 지구에 무한정으로 쌓아가는 일. 무시무시한 핵폐기물을 담은 임시저장고는 곧 목구멍까지 찰 판인데, 이 좁은 땅덩이 어디에도 고준위폐기물들을 수용할 땅이 없어 보이는데, 전문가라는 자들의 맹신은 놀랍다. 원자력 교수들 주장은 사용후핵연료에서 가장 위험한 세슘과 스트론튬을 분리해 보관하면 고준위핵폐기물처분장을 100분의 1 아래로 줄일 수 있단다. 경희대 원자력학과 정범진 교수가 몇 달 전 KBS <명견만리>에 출연해 핵발전소는 일반인들이 두려워하는 것과 다르게 위험하지 않다고, 핵폐기물도 별문제 아닌 것처럼 장밋빛 전망을 내놓았다. 객석 관객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잠시, 정말? 그렇게 분리해서 보관할 수 있다고? 핵폐기물 문제도 과학으로 풀 수 있는 것인가? 그 방송이 토론 프로그램으로 진행된 것인지, 국민대 행정학과 목진휴 교수는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 현재 우리나라에 1만5000톤이나 쌓여있는 핵폐기물을 처리할 방법은 없다고, 핀란드와 스웨덴이 지하 500미터 아래 저장고를 짓고 있지만, 10만 년 동안 관리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 30만 년이든 10만 년이든 어차피 개념이 떠오르지 않는 수치다. 현생 인류 역사를 통틀어도 가늠이 안 되는 아득한 시간 아닌가. 그러나 뉴스타파에서 파헤친 진실은 이렇다. 파이로프로세싱(사용후핵연료를 활용한 핵 재처리 기술)은 미국, 일본 같은 여러 나라에서 시도했다가 실패해 폐기하고, 러시아만 일부 상용화 단계에 이르렀다는데 실제로 어떻게 쓰일 수 있을지는 모른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 파이로프로세싱은 경수로폐기물만 처리할 수 있다는 사실도 원자력전문가들은 숨겼다. 우리나라에서 경수로는 2016년 현재 7000톤, 중수로는 8000톤의 쓰레기가 쌓였단다. 더 많은 중수로 폐기물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리고 그렇게 분리한 세슘 같은 독극물도 지하에 묻으면 지하수로 침출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말 많은 경주 방폐장도 중저준위폐기물을 보관하려는 장소일 뿐이다. 진짜 무서운 고준위폐기물들은 이 나라 어디에도 감당할 곳이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정권을 넘어 가장 갈급한 문제인데, 정치인들은 눈앞의 이익 다툼에만 빠져 무서운 진실을 외면해왔다. 진실을 알수록 소름이 끼친다. 화장실은 없는데 꾸역꾸역 먹어대기만 하는 이 맹목의 에너지 현실. 이 무시무시한 독극물을 계속 배출하면서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니. 출산율이 줄어드는 것은 여러 사회 구조 문제가 있지만, 무엇보다 이 나라가 도무지 안전하게 살 수 있는 나라일까 하는 데서 도무지 믿음이 안 가는 것이다.

이번 방학 때에 호주에 잠시 여행을 다녀왔다. 어디를 가든 호주의 넓은 땅과 자연이 무척 부러웠다. 호주는 핵발전소가 하나도 없는 나라다. 그래서인지 인터넷은 인색했고, 통신비와 전기세가 비싸다고 했다. 거기서는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시간을 보낼 수가 없었다. 가파른 산길, 한적한 마을 길을 걷고 해변을 걸었다. 넓은 대륙에서 가장 많이 한 일이 걷는 일이었다. 그리고 인상 깊은 사실. 우리보다 훨씬 잘 사는 나라의 거리들, 수도 시드니조차 밤 풍경이 어두웠다. 한국 도시처럼 휘황하게 불을 켜지 않았다. 가게들은 일찍 문을 닫았고, 집과 건물들도 부분조명으로 꼭 필요한 곳에만 불을 켠다고 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야간기차를 탔는데, 조명이 너무 밝아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자기 자리만 불을 끌 수 있는 장치도 없었다. 할 수 없이 눈을 손수건으로 동여매고 잠을 청하며 속에서 부글부글 화가 일었다. 대체 무슨 짓인가. 전기를 쓰는 데 이렇게 개념이 없다니. 전기세가 워낙 싼 탓이다. 시골집에도 태양광을 설치하고 싶은데, 전기세가 너무 적게 나온다. 1만 원이 조금 넘을 뿐이다. 그러니 굳이 초기비용을 들여 재생에너지를 쓰려는 노력을 안 한다. 이것은 모두 핵발전 덕, 탓이라 해도 되겠다. 신고리 건설 문제로 한창 맞붙을 때, 서울대 원자력학과 황일순 교수는 독일을 예로 들면서 탈핵으로 가면 전기세가 3배 넘게 오를 거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독일은 탈핵 정책으로 전환하면서 실제로 오른 전기세가 110% 정도라는 더 정확한 통계자료가 있었다. 그제야 그 교수는 자신이 잘못 알았다고 발뺌을 한다. 그 원자력 교수들도 결국엔 이렇게 솔직하게 말했다. 신규 핵발전소를 건설하지 않으면 '연구자들은 한순간에 끝나는 것'이라고. 자신의 밥그릇을 위해 미래세대는 독극물 속에 살든 말든 진실한 관심이 없다. 그러니 자료 조작도 서슴지 않는다. 정말 핵의 독성이 그렇게 크다면 그만둬야 하는 것 아닌가. 그 인력은 재생에너지 쪽으로 돌리고. 현재 지어놓은 핵발전소들과 그 폐기물을 관리하는 것만 해도 원자력 연구자들은 할 일이 많지 않을까. 재앙 덩어리를 만들어낸 자들이 해결하란 말이다.

보리피리를 만들어 불고 쑥과 달래를 캐며 놀던 어린 시절, 개와 닭과 염소와 돼지가 인간과 함께 살던 시골집 마당. 비록 팔아먹고 잡아먹었지만, 사는 동안은 짐승들도 생명체로 대접받으며 생을 누렸다. 그때는 달걀도 귀했고 고기도 비쌌다. 지금처럼 많이 먹지 못했다. 물도 불도 아껴 썼다. 과거가 무조건 좋았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얻은 것들을 위해 잃은 것은 무엇인가. 꼭 잃을 수밖에 없는 것들인가. 흙을 잊고 생명과 단절되어 살면서 우리는 얼마나 건강하고 행복한가. 미세먼지 가득한 공기와 무시무시한 독극물로 가득한 강산을 물려주면 미래에 우리 아이들은 선조에게 어떤 마음을 가질까. 멀지도 않다. 당장 내 손자 세대는 무어라고 할 것인가. 어떻게 살라고, 우리는 어떻게 살라고 이런 세상을 물려주었냐는 절규가 귀에 들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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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작은것이 아름답다>는 1996년 창간된 우리나라 최초 생태 환경 문화 월간지입니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위한 이야기와 정보를 전합니다. 생태 감성을 깨우는 녹색 생활 문화 운동과 지구의 원시림을 지키는 재생 종이 운동을 일굽니다. 달마다 '작아의 날'을 정해 즐거운 변화를 만드는 환경 운동을 펼칩니다. 자연의 흐름을 담은 우리말 달이름과 우리말을 살려 쓰려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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