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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노믹스'와 '잊혀진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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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노믹스'와 '잊혀진 사람들' [의제27 '시선'] "축! 무역 1조 달러 달성?…내년엔 쓰레기 치우자"
엊그제, 우리나라 무역이 1조 달러를 달성했단다. 2011년 12월5일 3시 30분 잠정 집계란다. 정부 공식 보도자료인데, 새벽 3시 30분 통계를 잡았다는 것이 희한하다. 다시 정부 보도자료에 의하면 1962년 세계 수출 순위 104위에서 2011년 7위로 수출은 1만배 증가하고, 무역순위는 65위에서 9위로 무역규모는 2000배 증가했단다.

우리는 1조 달러의 소식이 즐겁지 않다

분명 한강의 기적이다. 세계에서 유래를 찾기 힘든 초고속 성장을 달성한 자랑스런 대한민국 역사의 한 장면임에 틀림없다. 그런데도 이 엄청난 쾌거를 축하하는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축하는커녕 즐거워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소비자에게 주는 피해는 아랑곳하지 않고 고환율을 고집했던 강만수 산업은행장(전 기획재정부 장관)이나 최중경 전 지식경제부 장관의 모습을 떠올리면, 아마 어느 술자리에서 자신들의 업적인 양 자랑하고 있을 그들의 모습을 상상하면 결코 즐겁지 않다. 그 1조 달러가 저들의 배만 불리고 있는 현실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저들이 어떤 의미로 수출 1조 달러를 기념하는지 모르겠지만, 난 '잊혀진 사람들'(forgotten men and women)을 떠올렸다. 미국의 개혁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대공황으로 시름하는 미국인들에게 상기시켰던 그 잊혀진 사람들을 떠올렸다.

"최근의 역사와 간단한 경제학을 살펴봅시다. 여러분과 저, 평범한 남자와 평범한 여자들이 이야기하는 그런 경제학을 말입니다. (중략) 그런데 이제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 동안에 생산비가 상당히 떨어졌는데도 소비자가 지불해야 할 가격은 전혀 떨어지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이 기간에 기업은 막대한 이윤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윤은 가격 하락에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았습니다. 소비자는 잊혀졌습니다. 이윤의 아주 적은 부분만이 임금상승에 포함되었습니다. 근로자는 잊혀졌습니다. 적절한 배당금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주주는 잊혀졌습니다." (1932년 7월 2일 루즈벨트의 대통령 후보 수락 연설 중에서)

1987년 민주화 혁명 이후 한국의 재벌은 오히려 강고한 지위를 확보해 갔다. 국내 대부분의 산업은 독과점 대기업이 지배하는 구조로 변했고, 인적 물적 자원은 재벌에게 집중되었다. 재벌의 과잉투자로 외환위기를 맞아 수많은 노동자가 실업자로 전락하고 자영업자들이 몰락했음에도 재벌은 정부의 특혜를 받아 승승장구 부를 축적해 갔다. 기업은 막대한 이윤을 얻었지만, 고용도 늘지 않고 임금도 높아지지 않았다. 근로자는 잊혀졌다. 단가 후려치기와 기술 빼먹기 등을 통해 빨대를 들이대고 중소기업의 이윤을 뽑아갔다. 중소기업도 잊혀졌다. 고환율, 고물가 정책으로 소비자는 피해를 입었다. 국내에서 생산된 전자제품, 자동차의 국내 가격이 외국보다 비싼 어처구니 없는 일이 당연시되었다. 소비자는 잊혀졌다. 부실 신용카드사를 살리느라 부당한 높은 수수료를 자영업자에게 전가했다. 자영업자는 잊혀졌다. FTA 한다고 농민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농민들도 잊혀졌다. 미국의 비위를 맞추고자 쇠고기 시장 개방을 밀어붙였다. 축산농민들도 잊혀졌다. 부자들과 투기꾼들, 건설업자들에게는 막대한 특혜를 주고서 복지를 늘리는 것은 망국병이라고 반대했다. 끝까지 무상급식을 반대했다. 대학등록금 낮추는 것도 포퓰리즘이라고 비아냥댔다. 서민들과 그 자식들도 잊혀졌다. 재벌의 딸과 며느리들을 먹여 살리자고 빵집, 치킨집, 피자집이 피해를 입었다. 우리 모두가 잊혀진 사람들이 되었다.
▲ 이명박 정부는 '낙수효과'를 앞세워 친재벌정책을 과감하게 폈다.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런 'MB노믹스'의 기본틀을 짠 측근으로 알려졌다. ⓒ뉴시스

기적의 역사는 곧 희생의 역사

나는 수출을 많이 했다고 잔치를 벌이는 대기업에 내 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어렸을 때 눈알사탕 사먹고 싶은 것을 참고 참아 모은 10원 짜리 동전을 모아 아침에 내면, 선생님은 손수 쓰신 예금통장을 돌려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침마다 코흘리개들 동전을 받아야만 했던 선생님의 처지가 딱하다. 그런 코흘리개들 돈을 모아서 재벌에게 싼 이자에 빌려주었다.

재벌의 성장을 위해 노동권을 묵살했다. 그 열악한 노동조건하에서도 남자들은 가족들 끼니 걱정을 해야 했기에 나서지도 못했다. 용감한 동일 방직, YH '공순이'들이 나섰다. 도시 노동자들의 생계가 어렵게 되면서 저미가 정책을 취했다. 다시 농민들도 어려워졌다. 그 모든 것은 재벌을 위한 것이었다.

재벌들은 은행에서 낮은 금리로 특혜 대출을 받아 땅을 사들였다. 그들을 위해 다시 돈을 풀었고, 인플레이션으로 도시 노동자들은 타격을 입었지만 재벌들과 투기꾼들은 일약 거부가 되었다. 복부인들의 활개치고 다니는 한켠에서는 평생을 열심히 땀 흘려 노력해도 아파트 한 채 살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한국 경제 기적의 역사는 저임금, 저미가, 고물가 정책에 의해 국민들에 희생을 강요한 역사다.

그런데 이제 저들은 말한다. 시장경제원리에 따르면 나에게는 재벌에게 지분을 요구할 아무런 권리가 없다고 말한다. 재벌에게 사회적 책임을 요구할 권리가 없다고 말한다. 함께 잘 살아보자고 외칠 권리도 없다고 한다. 재벌들이 잘 나서 성장했다고 말한다. 우리의 희생은 기록에서 사라졌다. 우린 잊혀진 사람들이 되었다. 그리곤 다시 박정희식 개발연대 방식의 성장을 해야 한다는 이명박, 강만수, 최중경이 나타났다. 여전히 재벌을 지원해야 경제가 성장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이 되었다.

내년에는 쓰레기를 치우자

연말이다. 고마운 사람들을 새삼 떠올리는 훈훈한 계절이다. 이 겨울엔 '잊혀진 사람들'을 떠올리고 싶다. 그들이 있었기에 한국경제의 기적이 가능했다. 사실 그들은 잊혀져서는 안 될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이 나라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내년은 민주화 혁명 25주년이 되는 날이다. 주인이 잊혀지지 않는 세상, 주인이 주인 대접 받는 세상을 열어야 한다. 이 땅의 주인인 '잊혀진 사람들'이 전면에 나오는 것을 가로 막고 있는 쓰레기를 치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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