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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박근혜 사령관의 법무 참모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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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박근혜 사령관의 법무 참모였나 [기고] '양승태 대법원'의 군사문화
사법부가 대란에 빠져들었다. 재판을 놓고 '거래'를 한 의혹이 드러났다는 게 줄거리다. 정지영 감독이 만든 영화 <부러진 화살>에서 주연 배우 안성기가 "이게 재판입니까 개판이지"라고 피를 토하듯 절규하는 대목이 나온다. 양승태 파동의 '주제'도 재판을 개판 만들었다는 이야기인 듯하다. 그게 빌미가 된 것으로 보인다. "재판을 엿 바꿔 먹었다"는 극언까지 나오는 중이다. 사후 처리 문제를 놓고도 수사 의뢰 찬반이 엇갈린다. 보통 대란이 아니다.

물론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펄쩍 뛰었다. 대법원이나 하급심 재판에 결단코 부당하게 간섭한 적이 없고, 성향에 따라 판사들을 뒷조사 한 적도 없다고 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기자회견을 하면서, 법관 생활을 40년 넘게 해 왔음을 두차례나 강조했다. "대법원의 신뢰가 무너지면 나라가 무너진다"고도 했다. 그걸 누구보다 잘 아는 자신은 절대로 결백하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자꾸 새로운 의혹들이 고개를 들고 있다. 혼란스럽다.

사람들은 저토록 나뭇잎이 심하게 흔들리는데, 그저 보이지 않는다 하여 바람은 불지 않는다고 고집할 수 있는 거냐고 말들 한다. 이 나라 헌법 제103조에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양승태 대법원은 그걸 제대로 지키지 않은 듯하다.

암울했던 군사정권시절 시국 사범에게 무죄를 선고한 판사를 향해 국가관이 없다고 호통을 친 대법원장이 있었다. 군사문화가 대법원에도 해바라기처럼 만발하던 무렵의 이야기다. 양승태 대법원에는 청와대를 향한 해바라기가 만발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 조사단'이 '거래된 것'들로 보인다며 내놓은 자료에는 '국정 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 협조한 재판'이라거나, '정부의 노동시장 유연성 확보에 기여'에다, '한일 우호 관계 복원을 위해 일본 기업이 재판에 이기는 판결 기대' 등의 대목도 나온다. 해괴한 것들이 수두룩하다. 사법부가 부당하게 '협조'하고 '기여'한 재판이 '거래'되었다는 이야기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혹시 법원행정처가 그랬는지는 몰라도) 나는 모르는 일"이라는 투로 말했다. 그러나 법원행정처는 대법원장과 수직관계에 있는 직속 기구다. 대법원장 모르게, 사전이건 사후이건 법원행정처가 일을 벌일 수 없게 되어 있기 때문에 하는 소리다. 양승태 대법원은 박근혜 대통령뿐만 아니라 특정 언론사와도 거래를 한 사실이 문서를 통해 드러났다. '거래 품목'은 무엇이고 '거래 조건'은 무엇이었을까 대단히 궁금하다.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은 그 구린내 나는 거래마다 억울한 피해자들의 피눈물이 그늘에 질펀하게 깔렸다는 사실이다. 법원은 인권의 최후 보루라는 철칙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힘 없고 빽 없고 돈 없더라도 사람의 기본권을 최후까지 지켜줘야 할 법원이 오히려 청와대와 '교신'해 가며 무참히 짓밟은 사례들이었다. 거래된 재판 하나하나가 다 눈물겨운 사연들이었다.

KTX 여성 승무원들은 해고무효 소송 1심과 2심에서 이겼으나, 대법원에서 뜻밖의 패소 판결을 받았다. 그냥 법리 판단에 의한 패소가 아니라, 권력의 입맛에 맞춘 것이었노라고 대법원이 스스로 인정한 문건에서 공개했다. 1·2심에서 이겨 그동안 못 받은 4년 치 월급을 받았으나, 대법원 판결이 뒤집히는 바람에 받은 월급의 이자까지 얹어 1억여 원씩을 물어내야 했다.

한 해고 승무원은 때문에 "세 살 아이에게 빚만 남겨 미안하다'는 기막힌 유언을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 이건 사람 사는 세상의 이야기가 아니다. 양승태 대법원이 그랬다.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소송도 항소심에서 이겼으나 대법원이 뒤집었다. 노조 지부장은 그 판결 이후 4명의 동료와 가족들을 "떠나보냈다"고 했다. '노동시장 유연성 확보 기여' 사례였다. 일제 전범(戰犯) 기업을 상대로 한 강제 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소송은 당초 9명이 제기했으나, 지금 생존자는 2명뿐이다. 양승태 대법원이 판결을 무기한 미뤄왔기 때문이었다. 청와대 비서실장과 '교신'이 있었다고 했다.

자세히 보면 재판의 피해자들은 하나같이 무지렁이 졸(卒)들 이었다. 다투는 상대가 있다 해도 소송을 제기한 쪽은 '무시해도 별일 없는 계층'이었다. 더구나 다투는 상대가 정부이거나 대기업이거나 청와대 빽줄 정도 되면, 따질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그건 군사문화다.

흔히 군사문화는 승리·능률·일사불란 등을 추구하는 문화로 알려져 있다. 기본적으로 졸권(卒權;졸병의 기본권)은 우선순위가 한참 뒤로 밀린다. 군사문화의 기본 사항이다. 양승태 대법원이 '졸권'이나 '인권 최후의 보루'를 지켜줄 필요가 없다고 본 것은 바로 찌든 군사문화의 발로로 보인다. 문건에 나온 대로 '박근혜 정부의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 협조'한 게 맞는다면 양승태 대법원장은 정확하게 '박근혜 사령관의 법무참모'를 자임했는지도 모른다.

참모란 원래 '각급 고급 지휘관의 지휘권 행사를 보좌하기 위하여 특별히 임명되거나 파견된 장교'를 말하지 않던가. 그래서였는지도 모른다. 양승태 대법원은 '영장 없는 체포 활성화 방안'까지 검토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으스스한 이야기다.

필자는 30년 전 8월 '청산해야 할 군사문화'란 칼럼을 썼다 하여 정보사령부 현역 군인들로부터 왼쪽 허벅지를 도륙당하는 '칼부림 테러'를 당했다. 그 때문에 필자는 아직도 군사문화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군사문화는 이제 청산되는 게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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