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6년 상황은 정반대였다. 당시 한나라당은 57.2% 정당득표율로 서울시의회 106석 중 102석을 가져갔다. 열린우리당은 21.3%를 얻었으나 불과 2석을 얻었다. 10.4%를 얻은 민주당, 10%를 얻은 민주노동당은 각각 1석에 불과했다.
이런 극단적인 독식과 극단적인 배제가 나타나는 이유는 선거제도 때문이다. 승자독식 소선거구제로 치러지는 선거가 정치를 기형화한다. 일찍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선거제도의 모순을 간파했다. 그는 중대선거구제나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시행해야 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2003년 국회에 보낸 적이 있다.
"제도를 바꾸는 일은 개별 의원들과 정당들의 현실적 이해가 걸려 있어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지역주의 타파 문제만은 당리당략이나 의원 개인의 이해관계를 털어 버리고 국민과 나라를 위해 심사숙고해서 결단해주시길 바랍니다. 모든 국민으로부터 욕먹는 정치, 자식에게까지 부끄러운 정치, 정치인 스스로 떳떳하지 못한 정치에서 이제 함께 해방됩시다."
선거제도만 바꾼다면 대연정을 통해 권력의 절반을 나눌 수 있다고까지 말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꿈은 15년이 지난 지금도 이뤄지지 않았다. 학자들과 시민사회 인사들, 정치인들이 28일 '독과점 정당 체계개혁, 장벽 없는 정치시장을 위하여'라는 토론회를 연 이유도 당시 노 전 대통령의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다.
"사회경제적 약자도 강자가 될 수 있다"
최영찬 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 운영위원장은 "노 전 대통령이 연정을 주장했는데, 이는 선거제도 개혁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했다. 그는 "승자독식 선거제도에서는 연정은 불가능하다"며 "독일은 우리보다 더 나은 선거제도를 가져서 통일 문제에 대해서는 보수당, 진보당 막론하고 함께 노력해 왔다"고 설명했다.
최태욱 한림국제대학원 교수는 잘못된 선거제도를 "87년 체제의 핵심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정치시장에 장벽이 너무 많아서 좋은 선수들이 못 들어간다"며 "시민 대다수가 자기 대표가 없이 방치되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영남당과 호남당이 있지만 소상공인 청년당은 없다"고 말했다.
이어 최 교수는 "선거제도를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고치면 사회경제적 약자도 강자가 될 수 있다"며 "소상공인이 10%의 표만 총선에서 모아도 30석의 유력 정당이 된다. 청년정당과 녹색당도 마찬가지이고 비정규직 노동자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기형적인 양당제 질서를 고착화시키는 승자독식 소선거구제를 바꿔 다양한 정치세력이 민의를 정당하게 대변할 수 있도록 정치시장의 질서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다. 토론회에 참석한 모든 이들이 동의한 선거제도 개혁 방향은 비례대표제 확대다. 현행 국회의원 소선거구제는 지역구에서 1등으로 당선된 의석들로 253석이 채워진다. 나머지 47석은 정당지지율로 배분된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주장하는 최 교수는 선거제도를 먼저 바꾸면 이에 조응하는 권력구조로 바뀔 가능성이 커진다고 덧붙였다.
하승수 비례민주주의 연대 공동대표는 용어가 어려운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다당제로 이해하면 된다"면서 "국민들 65%가 다당제를 선호한다는 여론조사가 나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 6.13 지방선거 광역지방의회에서 자유한국당이 소선거구제로 엄청난 피해를 봤다"며 "한국당의 부산 정당 지지율이 36%인데 47석 중 6석만을 얻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한국당이 도 의회에서 다수를 차지하다가 소수를 넘어 극소수로 전락했다"며 "한국당 국회의원들도 지방선거 결과를 보면서 생각에 변화가 있을 수 밖에 없다"고 했다.
하 대표는 이어 "고 노무현 대통령이 모든 것을 다 내주더라도 선거제도 하나는 바꿔야 한다라고 했다"며 "노무현 대통령의 정신을 민주당이 잊지 않았다면, 지금 잠시 민주당이 유리하다고 선거제도 개혁을 거절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비례대표를 확대하려면 국회의원 정수를 늘리거나, 지역구 정수를 줄여야 한다. 국회 불신이 극심해 국회의원 증원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에 대해 하 대표는 "국회예산을 동결하고, 국회의원수를 늘리자는 찬반 투표를 해봤냐"며 "똑같은 예산으로 국회의원 숫자만 늘리는 개혁에 대해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라고 했다.
이어 그는 "최근 정치개혁 특위나 헌정 특위에서 한국당 반대 논리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하면 국회의원 수를 늘려야 하는데 국민들이 싫어한다는 것이다"라며 "이는 제대로된 국민들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고 던진 주장이다"라고 덧붙였다.
선거제도 개혁, 관건은 민주당과 한국당
이대근 경향신문 논설주간도 "한국당이 당 내부 개혁도 하고 이미지 개선도 해야한다"며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은 정치개혁이면서 당 내부를 개혁하는 명분이 된다"고 했다. 그는 "한국당이 승자독식 선거제도의 수혜자에서 피해자로 바뀌었다"며 "이 상태로 다음 총선을 치룰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이 있는 지금 이 시점이 좋은 기회"라고 했다.
50%에 가까운 민주당의 지지율과 80%에 달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을 두고서도 이 논설주간은 "개혁없는 높은 지지율이라는 모순이 있다"며 "그 지지율을 가지고 선거제도 개혁과 같은 개혁과제를 실행하는데 써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김누리 중앙대 교수도 "소선거구 선거제도로 수구와 보수가 손잡아서 지금까지 한국정치가 왔다"며 "왼쪽에 한국에는 사실상 진보라고 불릴수 있는 정당이 거의 없었다"라고 했다. 이어 그는 "문재인 정부 개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선거법 개정"이라며 "대전환 시대에 문재인 정부가 선거법 개혁을 하지 않는다면, 지금처럼 수구와 손 잡고 내가 가지고 있는 기득권을 누리겠다는 말과 다름 없다"고 덧붙였다.
6.13 지방선거때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했던 신지예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도 "한국정치가 다양성을 보장하고 있느냐 질문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정치를 숲에 비유하면 큰 나무 두 그루만 덩그라니 있다. 큰 숲으로 변해야 한다"며 "국회가 소우주라고 한다면 우리 사회를 닮아있는 모습대로 구성되어 있냐"고 되물었다.
신 위원장은 "사표가 많이 발생할 수 밖에 없는 현재 선거제도는 공정하지도 않고 정의롭지도 않다"며 "의원연수나 항공기 1등석과 같은 특권을 줄이면, 지금같은 상황에서 국회의원 400명도 운영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2012년 국회의원 선거에 만 26세로 전국 최연소 비례대표로 출마했던 우인철 전 우리미래 대표는 "수 십 년간 정치가 한 번도 심판 받은 적이 없다"며 "큰 틀에서 보면 1등당과 2등당이 권력을 주고 받았다"라고 했다. 그는 "2012년 총션이 끝나니 반값등록금을 달성하겠다고 약속했던 말들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며 "정치가 왜 문제를 바꿀 수 없나. 지금 생각해 보니 제도가 기성정치를 지켜주는 방향으로 작동했다"라고 말했다.
토론회를 주최한 정동영 의원은 "거대한 촛불의 핵심은 내 삶을 개선하라는 요구였다"며 "내 삶을 개선하는 핵심은 결국 정치를 바꾸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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