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개월씩 총리직 분담키로
그런데 이번 합의 내용이 묘하다. 36개월로 보장된 이스라엘 총리직을 네타냐후와 간츠가 반반씩 맡기로 했다. 네타냐후가 전반기 18개월 동안 총리직을 맡고, 그 뒤 18개월은 간츠가 맡는다는 것이다. 권력분점에 따라, 네타냐후는 이스라엘 최장수 총리 기록을 다시 쓰게 됐다. 간츠와 합의한 대로 네타냐후가 18개월 임기의 총리를 마친다면, 15년 7개월 동안 이스라엘 총리를 지낸 신기록을 세우게 된다. 네타냐후의 장기집권에 적지 않은 이스라엘 유권자들이 정치적 피로감을 느껴왔다. 더구나 그의 팔레스타인 강공책이 중동의 하늘에 먹구름을 드리워온 것이 문제다. 합의에 따르면, 간츠는 국방장관을 맡고 있다가 2021년 10월 이스라엘 총리에 오른다. 지난 1년 동안의 정치 위기 속에서도 간츠는 "네타냐후와는 손을 잡지 않겠다"고 선을 그어왔다. 네타냐후가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의 정착촌을 이스라엘 영토에 합병하기로 선언하는 등 극우적 행태를 보였고, 간츠는 그런 네타냐후의 노선과는 거리를 두어왔다. 그런데 이번에 손을 잡았다. 네타냐후-간츠의 권력분점 거래로 네타냐후는 일단은 여유를 찾게 됐다. 뇌물수수, 사기, 배임 혐의로 기소된 그는 5월 24일 이스라엘 법정에 서야할 판이다. 하지만 이번 정치거래로 자신에 대한 기소와 재판을 무력화할 방패를 손에 쥐게 됐다. 무엇보다 차기 법무장관과 검사 임명에서 자신의 권력을 쓸 수 있다. 만에 하나 이스라엘 대법원이 "네타냐후는 형사 피고이므로 총리직 수행을 할 수 없다"는 결정을 내리더라도, 이를 비껴가는 법안을 처리할 수 있다.코로나가 야합 이끌었다
이번 권력 분점 합의에서 간츠도 실리를 챙기게 됐다. 이스라엘 내각 구성에서 국방장관과 외무장관을 비롯한 절반의 지명권과 더불어 18개월 뒤 총리 자리를 보장 받았다. 간츠는 지난 1년 동안 거듭 "뇌물수수, 사기, 배임 등 부패 혐의로 기소된 총리와는 손을 잡지 않겠다"고 밝혀왔다. 그런 간츠가 네타냐후와 손을 잡은 이유는 권력에 대한 유혹일 것이다. 네타냐후와의 권력 분점 합의 뒤 그 자신의 트위터에서 이렇게 적었다. "이번 합의로 우리는 4번째 선거를 막았다. 민주주의를 지키고 코로나 바이러스와 싸울 것이다" 지난 2월 예루살렘으로 성지순례를 다녀온 한국인들이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렸다는 보도가 나왔듯이, 이스라엘도 코로나를 피해가진 못했다. 4월 21일 기준으로 확진 1만 3942명에 사망 184명을 기록 중이다. 간츠의 말대로라면, 코로나는 이스라엘 정치권의 파국을 막은 주역으로 꼽힌 셈이다."코로나가 중동평화를 가져왔다"
팔레스타인도 코로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4월 21일 기준으로 확진 466명, 사망 4명이다. 코로나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사이의 유혈충돌도 막았다는 얘길 듣는다. 해마다 봄이 오면 3월 말에서 5월 중순에 이르는 기간 동안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곳곳에서 대규모 집회가 열려왔다. 그 과정에서 팔레스타인 땅에선 붉은 피가 어김없이 흐르곤 했다. 3월 30일 '땅의 날'이 출발점이다. 1976년 3월 갈릴리 지역의 팔레스타인 원주민들 땅을 이스라엘 정부가 강제 수용하려 들자, 이에 맞서다 팔레스타인 사람 6명이 이스라엘군의 총격으로 죽고 100여 명이 총상을 입었다. '땅의 날'은 그 참극을 기리는 날이다. '땅의 날' 시위로 말미암아 긴장된 분위기는 4월 내내 이어지고, 5월 14일 이스라엘 건국기념일에 절정을 이룬다. 이스라엘 전역이 유대인들의 행진과 축하 행사로 물결치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시위도 격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올해만큼은 코로나 때문에 상대적으로 조용한 편이다. 어디까지나 역설적이지만 "코로나가 중동평화를 가져왔다"는 말까지 들린다."네타냐후의 유혹에 간츠가 넘어갔다"
네타냐후-간츠 권력분점 거래를 둘러싼 이스라엘 현지 시민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정치적 파국을 피하는 묘수라며 환영하는 목소리가 들리지만, 실망한 나머지 한탄과 분노의 목소리도 들린다. 일부 간츠 지지자들은 "네타냐후의 유혹에 간츠가 넘어갔다"고 비난한다. 그동안 간츠를 지지해온 이스라엘 유권자들 가운데 상당수는 실망감을 감추지 않는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유혈분쟁의 뇌관으로는 크게는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를 언제 세울 것인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양쪽의 국경선은 어떻게 그을 것인가 △동예루살렘은 어느 쪽에 귀속될 것인가 △팔레스타인 난민들은 이스라엘에 두고온 옛 땅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유대인 정착촌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등으로 모아진다. 이 가운데 현시점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이 유대인 정착촌이다.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곳곳에는 유대인 정착민들이 세운 집단부락이 보인다. 요르단강 서쪽에 자리잡고 있다고 해서 '서안지구'(West Bank)로 일컬어지는 이곳은 이스라엘이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에서 이기면서 요르단으로부터 빼앗아 50년 넘게 점령중이다.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이 지역의 유대인 정착촌을 불법으로 여긴다.서안지구 정착촌을 이스라엘 영토로?
유대인 정착민은 통상 60만 명으로 알려진다. 특히 요르단강을 따라 남북으로 이어지는 지역 일대에는 정착촌들이 엄청나게 많다. 국제법상 불법점령으로 비난을 받는 유대인 정착민들은 주변의 팔레스타인 원주민들과 폭력적으로 부딪쳐왔다. 한마디로 유대인 정착촌은 중동평화를 깨뜨리는 뇌관이다. 네타냐후-간츠 두 사람이 합의한 권력 분점안에는 그곳 요르단강 서안의 일부를 이스라엘 영토로 합병하는 방안이 들어있다. 문제의 서안지구 합병은 7월 이후 이스라엘 의회(크네세트)에서 표결로 처리한다는 내용이다. 휘발성 강한 주제는 일단 뒤로 미룬 셈이다. 네타냐후-간츠 야합을 보는 팔레스타인 쪽 반응은 당연히 비판적이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는 "이스라엘의 새 연립정부가 내놓은 요르단강 서안 합병안은 중동평화에 대한 희망을 깨뜨리고 이른바 '2개 국가 해법'을 무너뜨리는 것이다"라고 비판한다. 여기서 말하는 '2개 국가 해법'은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지지하는 중동평화 해법으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이 각각 독립국으로 공존하는 방안을 가리킨다. 총선 과정에서 간츠는 요르단강 서안에서 주둔중인 이스라엘 군을 철군시키는 게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나타내면서 정착촌 철거 문제를 비판적으로 다뤄왔다. 간츠가 강경파인 네타냐후와 야합했다는 비판이 그래서 나온다. 간츠는 중도파로서 국내문제에선 유연한 입장이지만, 이스라엘 안보 문제에 관한 한 네타냐후와 큰 차별성이 없는 편이다. 그가 이스라엘군 참모총장(2011~2015년)으로 재직하던 2014년 여름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Hamas)를 응징한다는 명분으로 가자지구를 침공해 2000명 넘는 팔레스타인 희생자를 낳기도 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 했던가, 이스라엘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다비드 벤구리온이 미국의 유대인들을 향해 "당신들은 다른 무엇보다 유대인"이라 했던 말을 떠올린다.네타냐후의 강공책 누가 견제할까
실망과 허탈감을 느끼는 사람들은 이스라엘 시민권을 지닌 팔레스타인계(아랍계) 사람들이다. 이들은 이스라엘 유권자의 20%를 차지한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지난 총선에서 아랍계 정당들의 연합인 '조인트 리스트'에게 표를 던졌다. '조인트 리스트'는 지난 3월 총선에서 15석을 차지하면서, 네타냐후의 리쿠드당, 간츠의 청백당에 이은 제3당으로 떠올랐다. '조인트 리스트'는 간츠의 청백당과 손을 잡고 새로운 연립정부를 출범시키길 바랬다. 하지만 간츠로부터 버림을 받았다. 네타냐후-간츠의 야합으로 이스라엘 정치권에서 팔레스타인 강공책을 견제할 세력은 크게 약해진 모습이다. 네타냐후는 "내가 총선에서 승리하면 요르단강 서안 유대인 정착촌을 합병하겠다"고 거듭 밝혀왔다. 따라서 새로 구성될 1기 연립정부에서 총리를 맡는 네타냐후가 유대인 정착촌을 비롯한 팔레스타인 문제에서 강경책을 밀어붙일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도 나온다. 시리아전쟁의 참상에 시달려온 중동 하늘에 또 다른 먹구름이 밀려들 가능성이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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