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시리즈를 시작하며
기본소득이 차기 대선의 최대 이슈로 떠오르는 가운데 기본소득에 대한 반대론도 만만치 않다. 부자에게도, 놀고먹는 사람에게도 기본소득을 주어야 하느냐는 철학적 반대로부터 기본소득 도입을 위해 필요한 막대한 재원을 기존 사회보장제도의 보완, 강화에 사용하는 것이 불평등과 빈곤 완화에 보다 효과적일 것이라는 반론이 제기되고 있다. 또한, 최근 핀란드의 기본소득 실험 결과 고용효과가 미미하여 실패했다는 왜곡된 평가를 바탕으로 기본소득을 반대하는 이도 있다. (☞<프레시안> '불붙은 기본소득 논쟁' 연재 묶음 바로 보기)
이에 필자는 기본소득을 둘러싼 논쟁에 생산적으로 기여하기 위해 재원마련 방안, 기존 사회보장제도와의 관계, 핀란드 기본소득 실험의 교훈, 그리고 단기적인 '재난회복 기본소득' 및 항구적인 '생애맞춤형 전 국민 기본소득'의 구체적인 대안을 몇 차례의 기고를 통해 제시하고자 한다. 또한, 기본소득 논의를 위해 필요한 소득, 자산 정보의 구축과 활용, 기본소득을 둘러싼 철학적 논쟁에 대해서도 필자 나름의 의견을 개진하고자 한다.
(1) 전 국민 기본소득, 선진복지국가보다 한국이 먼저 도입할 수 있다
전 국민 기본소득을 의미 있게 실현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재정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이를 위해서 상당한 증세가 필요할 텐데, 과연 우리 국민이 그러한 증세에 동의하겠느냐는 질문에 부딪히게 된다. 실제로 국내외의 기본소득 관련 여론조사에서 증세 필요성 언급 없이 기본소득에 대한 지지 여부를 물을 때에 비해, 증세 필요성을 언급하며 물으면 지지도가 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기본소득이란 이상은 현실적으로는 실현 불가능한 꿈이라는 비관론에 빠지거나, 지금보다도 생산력 수준이 월등히 발전해야만 가능한 미래의 꿈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필자는 전 국민 기본소득 실시를 위한 재원 마련이 그리 어렵지 않으며, 재정개혁과 조세정의 실현의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생산력 수준은 큰 장애가 아니다. 어느 나라에서나 국내총생산(GDP)의 5%나 10% 수준에서부터, 또는 그보다도 더 낮은 수준으로부터 시작하여 사회적 합의에 따라 더 높은 수준의 기본소득을 실시할 수 있다. 유럽의 복지선진국 또는 큰 복지국가보다, 한국 같은 복지 지체국 또는 작은 복지국가가 기본소득이라는 새로운 소득보장제도를 도입하기가 더 쉬울 수도 있다. 필자는 한국에서 GDP 10% 규모의 기본소득을 수년 내에, 즉 차기 대통령 임기 중에 실현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보편적 기본소득은 증가하는 불안정 고용과 소득과 부의 불평등, 그리고 제4차 산업혁명에 따른 일자리 감소 등의 문제를 생각할 때 형식적 자유를 넘어서서 국민의 실질적 자유를 실현하고 소득과 부의 불평등을 완화할 수단이다. 그 실시를 미루지 말아야 한다.생산력 수준, 큰 걸림돌 아니다
기본소득을 요구하는 중요한 근거의 하나는 공유부의 개념이다. 사회적 생산의 상당부분은 토지, 물, 공기, 환경, 광물자원 등 공동의 자원과 과거로부터 오늘에까지 축적된 지식(특히 과학기술과 조직 및 정치기술 등)에 기초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허버트 사이먼(Herbert Simon, 2000)은 미국과 같은 부자 나라들과 제3세계 빈국의 개인소득 차이의 90%가 개인적 노력의 차이가 아니라, 이러한 사회적 공유자원의 차이에 기인한다며 90%, 또는 70%의 소득세가 도덕적 정당성을 지닌다고 하였다. 기본소득을 공유부에 의한 사회적 생산의 일부를 공동체 성원들이 평등하게 나누는 것으로 생각하면, 어느 사회나 합의에 의해 보편적 기본소득을 실시할 수 있다. 국민소득 중 개개인의 공헌으로 귀속시킬 수 없는 일정 비율을 국가 공동체의 성원 모두에게 기본소득으로 나눈다고 할 때, 그 비율을 5%로 하느냐, 10% 또는 25%로 하느냐가 정치의 핵심 이슈가 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기본소득은 재분배가 아니라 공동체 성원에게 기본권으로 주어지는 '선분배'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이 경우 GDP를 기준으로 하는 것보다는 국민총소득(GNI=GDP+해외순수취소득)에서 감가상각(고정자본 소모)을 뺀 국민순소득(NNI)을 기준으로 기본소득을 논의하는 것이 더 타당할 수 있지만, 편의상 일반인에게 더 익숙한 GDP를 기준으로 향후 논의를 진행하고자 한다. 참고로 한국의 2018년 국내총생산은 1898조 원, 국민순소득은 1547조 원이다. 제4차 산업혁명으로 생산력이 고도로 증가해도 일자리는 줄어들고 소득불평등이 극심해지는 상황을 대비하여 기본소득 도입을 주장하는 이도 있지만, 고도의 생산력이 기본소득의 필수조건은 아니다. 인도, 나미비아 등의 기본소득 실험은 작은 금액의 기본소득이 지급된 지역에서 고용이 증가하고 실업률이 감소했으며 노동자의 지위가 향상되고 경제활동이 더 활발해지는 등의 효과가 나타나 기본소득이 제3세계의 빈곤해소에 효과적임을 보여주었다. 1990년대 이래 여러 제3세계 국가들에서 시행된 조건부 현금급여(conditional cash transfer)와 무조건적 현금급여(unconditional cash transfer) 프로그램들도 기본소득의 긍정적 효과에 대한 간접적 증거를 제공한다. 빈곤해소 프로그램의 효과에 대한 연구로 지난해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아브히지트 바네르지와 에스테르 뒤플로 부부(Banerjee and Duflo, 2011)는 조건부 및 무조건적 현금급여에 대해 무작위 대조 실험(randomized controlled trial) 결과를 분석하였다. 이들은 자녀 교육을 조건으로 자녀의 학교출석 등을 모니터링하면서 빈곤가구에 현금을 지급한 경우는 물론이고. 조건 없이 또는 모니터링 없이 현금을 지급한 경우에도 빈곤층 자녀의 학업 성취 등에서 현저한 성과가 나타났음을 발견하였다. 자녀 교육에 영향을 미친 주된 요인은 조건과 모니터링보다도 현금 지급을 통한 소득의 향상에 있었던 것이다. 이들은 개발도상국들이 빈곤을 완화하는 방안으로 낮은 수준의 보편적 기본소득(ultra-basic universal basic income; UUBI) 도입을 권고한다(Banerjee and Duflo, 2019). 인도처럼 가난한 나라들도 낮은 수준(인도의 경우 GDP의 5% 수준)의 기본소득제 시행은 에너지 보조금과 같은 기존의 비효율적 프로그램들을 대체하면 가능하리라 본다. 이는 소득불평등과 빈곤 완화는 물론 경제 활성화에도 큰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본다. 인도가 GDP 5% 수준의 기본소득을 실시할 수 있다면 한국의 경우 GDP 10% 수준의 기본소득 실시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의 사회복지 재정지출이 2018년 GDP의 11% 정도로 선진복지국가들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절반에 그친다는 것을 생각하면 복지국가로 나아가기 위해 GDP 10% 정도의 복지지출 증가는 어차피 가야 할 길이다. 한국 GDP(2018년 1898조 원)의 10%를 전 국민에게 동일금액으로 나누면 1인당 GDP의 10%에 해당하는 월 30여만 원(연360여만 원)이다. 1인가구의 최저생계비에 턱없이 모자라는 금액이지만, 3인 가구에 월 90만원, 4인 가구에 월 120만원이면 상당한 밑받침을 해주는 셈이다. 최소한 송파 세 모녀 사건과 같은 비극은 방지할 수 있게 된다. 1인당 GDP 10% 정도의 수준에서 기본소득을 도입하는 것이 선진복지국가보다는 한국에서 보다 쉽게 이루어질 수 있다. 이미 높은 수준의 복지를 향유하고 있는 선진 복지국가들에서 이 정도의 낮은 기본소득은 대중에게 큰 매력이 없다. 더구나 해당 국가들이 이미 높은 국민부담률(조세와 사회보장기여금을 합한 부담률)을 더 높이기는 어려우므로, 기존 복지지출을 상당부분 대체하지 않고서는 높은 수준의 기본소득을 도입하기가 어렵다. 기존 복지지출에 따른 이해관계자들이 형성되어 있으므로 이를 개혁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가이 스탠딩이 부유한 나라들보다 개발도상국들이 기본소득을 도입하기가 더 쉬울 수 있다고 한 것은 바로 이처럼 복잡한 기존 복지제도의 개혁에 따른 어려움 때문이다(Standing, 2017: 246).스위스가 기본소득에 관한 국민투표를 할 때 공식적으로 기본소득 금액을 내걸지는 않았지만, 기본소득 주창자들이 월 2500스위스프랑(약 317만 원)의 높은 금액을 예시했다. 이는 막대한 증세 또는 기존 복지지출의 전면적인 구조조정을 필요로 할 것이라는 두려움을 일으켜 기본소득제 도입안 부결로 이어졌다. 반대로, 핀란드 정부가 기본소득 실험을 한 목적은 기존의 복지지출 수준을 더 높이고자 한 것이 아니라, 지나치게 복잡한 복지지출구조를 간소화하며 장기실업자들이 관대한 실업급여에 의존하여 구직을 기피하는 것을 막고 고용을 증진하는 수단으로서 기본소득이 유용한지를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최근 유럽 27개국 대상 사회조사에서 응답자의 71%가 기본소득 도입에 찬성한 사실이 보여주듯, 유럽 여러 나라에서 기본소득에 대한 대중의 관심과 지지가 커지고 있음에도 가까운 시일 내에 기본소득제 도입이 현실화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반면 한국은 인도와 같은 개발도상국들보다는 경제적 여유도 있고, 반면 복지지출은 아직 낮은 수준이어서 기본소득이라는 새로운 소득보장 제도를 도입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춘 나라라고 할 수 있다.
GDP 10% 규모의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수 있나?
전 국민에게 1인당 월 30만원(연360만 원)을 지급하려면 187조 원, 또는 2018년 GDP(국내총생산) 1898조 원의 9.8%가 필요하다. 2018년 국민순소득(1547조 원) 기준으로는 12%에 해당한다. 2020년 정부 예산 총액이 512.3조 원, 사회복지 예산총액이 180.5조 원(재정 외로 운영되는 건강보험과 장기요양보험을 포함한 공공사회지출 총액은 250여조 원) 수준이니, 올해 정부 예산의 35% 또는 올해 사회복지 예산 전액을 기본소득에 써야 한다. 현금복지만을 보면 2017년에 73.4조 원이었으므로 기존 현금복지 총액보다도 훨씬 큰 금액이다. 얼핏 보면 너무나 큰 재정 부담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아래 [그림 1]에서 보듯 한국의 공공사회지출은 민주화 이후 급속하게 증가해왔지만, 여전히 OECD 국가 중 최하위 그룹에 속한다. 2018년 현재 한국의 GDP 대비 공공사회복지지출 비중은 11.1%다. 1990년의 2.7%로부터 빠른 속도로 증가해왔으나, 여전히 프랑스의 31.2%, 핀란드의 28.7%는 물론, OECD 평균인 20.1%에 비해서도 매우 낮은 수준이다 (OECD 평균을 끌어내리는 데 한국과 함께 터키, 칠레, 멕시코가 크게 기여했는데, 이 몇 나라를 제외한 나머지 OECD 국가들의 평균과는 거리가 더 커진다). 우리가 OECD 평균 수준으로 공공사회복지지출을 늘리면 기존의 사회복지를 유지하고도 1인당 GDP 10% 수준의 전 국민 기본소득을 할 수 있다. OECD 평균을 넘어서서 복지선진국을 지향한다면 GDP 15% 이상 수준도 가능할 수 있다. 기본소득 도입 시 기존 현금복지(2017년 현재 73.4조 원)의 일부를 대체한다면, 순비용은 더 작아질 것이다.정부 재정에서 복지지출 비중을 OECD 평균수준으로 끌어올려야
우리나라가 이처럼 공공사회복지지출에 상대적으로 작은 비중의 예산을 사용하는 데에는 개발독재 시절의 유산이 작용하고 있다. 과거에 비해 사회복지지출이 많이 늘어나긴 했지만, 여전히 경제 분야 지출이 정부 예산의 20%가량을 차지하여 OECD 평균의 두 배에 달한다. GDP 대비 정책금융은 OECD에서 최고 수준을 차지하고 있다. 더구나, 문제는 이러한 예산 중에 비효율적, 낭비적 예산과 나눠먹기 예산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보고서(장우현 외, 2014)에 따르면, 중소기업진흥공단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은 기업의 수익률이 지원 탈락 기업의 수익률보다 낮았다고 한다. 정부 예산이 한계기업과 좀비기업을 연명시켜 비효율을 키우는 것으로 보인다. 또, 농민 수는 줄고 있는데 농업 관련 공무원과 준정부기관 직원 수는 늘고 있으며, 농업 관련 예산이 대다수 농민보다는 소수의 대농과 농업관련 기업을 지원하는 데 쓰인다는 점도 문제다. 농업 직불금의 경우 농가당 평균 수급액(2015년)이 105만6000원인데, 중위값은 22만8000원에 불과하다. 아래 [표 1]을 보면 경지규모 0.5헥타르(ha) 이하의 소농들은 직불금 평균 수급액(7만7000원)이 농업소득의 3%에 불과한데, 10ha 이상의 대농들은 평균 수급액(3250만 원)이 농업소득의 32.5%에 달해 농가소득의 불평등을 증가시키고 있다(한석호.채광석, 2016). 모든 농가에 동일 금액의 직불금을 지급하든지, 모든 농촌주민 또는 농민에게 1인당 동일 금액을 농촌기본소득 또는 농업참여소득으로 지급하는 정책 대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 아니면, 연 2~3조 원의 전체 직불금 예산 중 절반은 동일 금액으로, 나머지 절반은 면적이 아닌 소출 기준으로 지급하여 형평성과 함께 농업생산성 향상을 동시에 도모할 수도 있을 것이다.재정의 자연증가분을 적극 활용해야
재정지출구조의 개혁 못잖게 기본소득 재원 마련의 유효한 수단이 재정의 자연증가분 활용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첫 해인 2017년 정부 본예산이 400.7조 원이었는데, 그동안 특별한 증세 없이 약간의 핀셋증세밖에 하지 않았음에도 2020년 본예산은 512.3조 원으로 112조 원가량 증가했다. 물가가 오르고 GDP가 성장함에 따라서 증세 없이도 각종 세법상 과표구간에서 상위 구간으로 이동하는 개인과 법인이 자연 증가하여 세수가 증가하기 때문이다. 만일 지난 3년간 정부가 재정증가분의 절반 또는 3분의 1 정도만이라도 기본소득 예산으로 확보하는 노력을 기울였다면 3년 만에 40조 원 내지 56조 원의 재원이 마련되었을 것이다. 국가재정법에 의해 정부는 매년 5년 단위의 중기재정계획을 마련하도록 되어 있는데, 사회보장지출을 국민부담의 60% 수준으로 올리기 위한 재정지출구조 개혁 5개년 계획과 함께 매년 예산 증가분의 절반이나 3분의 1씩만 기본소득을 위해 떼어내어도 상당한 재원마련이 가능하다. 아마도 5년이면 조세개혁 없이도 GDP 5% 내외의 재원 마련이 가능할 것이다. 차기 대통령 후보들이 기본소득 재원 마련을 위한 5년 중기재정계획안을 제시하여 경쟁하도록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물론 지출구조 개혁뿐만 아니라 조세개혁안까지 포함해야 GDP 10% 수준의 의미 있는 기본소득이 가능할 것이다.보편 증세와 부자 증세 병행해야
기본소득 재원 마련을 위해서는 부자증세만으로는 부족하며, 보편적 증세가 필요하다. 기본소득론자들 가운데는 보편적 증세만으로 재원을 마련하자는 의견과 부자증세를 병행하자는 의견이 있다. 즉, 정률세(flat tax)에 바탕한 기본소득안을 옹호하는 의견과 누진세(progressive tax)에 입각한 기본소득안을 지지하는 의견이 있다. 전자는 구체적인 수단으로 정률의 소득세(개인소득세 및 법인소득세) 또는 부가가치세를 기본소득의 재원으로 제안하며, 후자는 누진적인 소득세를 주된 재원으로 제시한다. 최근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선출을 위한 예비선거에서 기본소득 공약으로 관심을 끈 앤드루 양(Andrew Yang, 2018)은 부가가치세를 재원으로 할 것을 제안했으며, 그의 정책을 하버드대 교수이자 부시 대통령 하의 경제자문위원장을 역임한 그레고리 맨큐(Gregory Mankiw, 2019)가 적극 지지한 바 있다. 불평등 연구의 대가로서 2017년 작고한 앤서니 앳킨슨은 일찍이 정률세에 기반한 기본소득안(the basic income/flat tax proposal)에 관심을 가졌으나(Atkinson, 1995), 정작 마지막 저작에서는 누진적인 소득세를 주요 재원으로 제시하였다(Atkinson, 2014). 독자 여러분 가운데 정률세에 입각한 기본소득안에 고개를 갸우뚱하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기본소득은 모든 국민에게 동일금액을 지급하기 때문에 소득재분배 효과가 약하거나 전혀 없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재원 마련에서 정률 과세는 소득재분배 효과를 전혀 도외시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특히 부가가치세와 같은 소비세는 저소득층의 소비성향이 고소득층보다 높으므로 역진적인 성격을 가지는데, 부가가치세로 기본소득을 실시한다는 구상에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아래 [표 2]는 보편적 복지국가의 소득재분배 효과를 단순하게 이념형으로 보여준다(Rothstein, 1998). 이 표는 사실 정률의 소득세를 기초로 한 기본소득의 효과를 정확히 보여주는 것이다. 40%의 정률세로 거둔 세수 전액을 240의 정액으로 모두에게 지급할 경우, 최하위 20% 소득계층은 시장소득 200에서 가처분소득은 360(시장소득 200-세금 80+공적이전/기본소득 240 = 360)으로 늘고, 최상위 20% 소득계층은 시장소득 1000에서 가처분소득은 840(시장소득 1000-세금 400+ 공적이전/기본소득 240 = 840)으로 줄어들어 5분위배율이 5에서 2.33으로 줄어드는 것을 볼 수 있다. 즉, '정률'로 걷어서 '정액'으로 나누어주면 상당한 재분배효과가 일어남을 알 수 있다. 사실 서구와 북구의 큰 복지국가들이 높은 소득재분배 효과를 누리는 원인은 누진적 과세라기보다, 세금을 많이 걷어서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한 금액이나 비슷한 수준의 현금 및 현물 급여를 많이 지급하기 때문이다. 이 나라들의 소득세는 우리보다 훨씬 높지만, 부가가치세도 우리보다 훨씬 높다. 소득세를 인상하는 데 한계에 다다르자 다소 역진적인 부가가치세를 추가적인 복지 재원으로 사용한 것이다. 조세가 다소 역진적이라도 복지급여에서 재분배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한국에서도 유럽의 큰 복지국가들처럼 부가가치세를 인상하여 주요한 복지재원으로 활용하자는 의견이 있다. 그러나 필자는 조세정의 실현 차원에서 보편적 증세와 부자증세를 병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따라서 부가가치세 인상보다는 소득세와 재산세에 우선순위를 두는 것이 올바르다고 본다. 누진적인 소득세(개인 및 법인소득세)와 토지보유세 및 부유세를 기본소득의 주요 재원으로 할 것을 제안한다. 부가가치세 인상은 초기 단계보다는, 기본소득을 GDP의 10%를 넘어서서 15% 수준이나 그 이상으로 확대하고자 할 때에 고려할 수 있다고 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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