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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 인권조례가 코로나 혐오표현을 어떻게 막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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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 인권조례가 코로나 혐오표현을 어떻게 막았나 [휴먼 라이츠 브리핑] 코로나19 사태가 지자체 인권정책에 미친 영향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 19')사태가 지속 된지 어느덧 반년이 지났다. 집단감염부터 마스크 구매 이슈 등 수많은 현상들이 나타나며 코로나19는 현재까지 우리 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코로나19의 감염은 그 자체로써 큰 두려움이다. 그 공포의 내면에는 타인에 대한 전파 가능성과 나의 개인정보와 동선의 비자발적 공개가 포함되어 있다. 코로나19 사태에서 '인권'이라는 단어가 본격적으로 드러난 것은 바로 이 '동선과 개인정보의 공개'와 관련 있다. 확진자에 대한 역학조사와 동선공개는 자신이 살고 있는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가 수행하는데, 코로나19 발생 초기에는 여러 지자체에서 성씨, 직업, 직장명, 거주지 주소 등 개인을 특정할 수 있는 정보까지 공개하기도 하였다.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는 "감염병 예방을 위해 알아야 하는 정보"를 공개하도록 되어 있는데, 어떤 정보가 감염병 예방을 위해 공유되어야 하는지 명확한 기준이 없었다. 그 이유로 지자체마다 정보공개 범위가 달랐다. 여기에서 지자체의 역할과 판단이 중요해진다. '더 많은 정보'를 원하는 주민들의 요구와 '개인정보 보호' 사이에서 고민하게 된다. 코로나19의 확진자 동선 공개 사례에서 나타나듯이 똑같은 정책이라도 각 기관의 판단에 따라 주민의 인권은 보호될 수도 있고 침해될 수도 있다. 여기서 의문을 던진다. '지역사회에 인권을 보호하는 제도가 있었다면 이 기관은 어떤 판단을 내렸을까?' 그 기관은 개인정보의 공개범위를 인권에 근거하여 판단했을 것이다. 지자체에서 인권에 기초하여 정책을 시행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일반적으로는 인권조례 제정이 첫 시작이다. 조례는 지자체를 관장하는 법규범이다. 사실 인권조례의 유무와는 상관없이 지자체는 당연히 주민의 인권을 보호하고 증진할 책무가 있지만, 예산의 확보나 인권정책을 이끌어 갈 추진체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 바탕이 될 근거가 필요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지자체에서는 인권조례를 먼저 제정한다. 그렇다면 지자체가 인권을 바탕으로 정책을 시행하기 위해선 인권조례제정만으로 충분할까? 서울특별시 금천구 사례를 보면, 금천구는 2017년에 들어서 인권조례를 제정하고자 했다. 하지만 당시 충청남도 인권조례의 폐지가 이슈화 되고 있던 상황이었다. 몇몇의 단체에서 종교적 교리를 이유로 인권조례 폐지 운동을 벌였기 때문에 상황이 녹록치 않았다. 그래서 금천구는 당장 인권조례를 제정하기보다 지역사회에 인권의 가치를 전파하는 일을 먼저 시작했다. 가장 우선한 것은 금천구 주민과 공직자들에 대한 인권교육이었다. 특히 주민을 위한 인권교육은 8주간의 긴 과정이었으나, 1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에서 자발적인 참여가 이루어졌다. 주1회 저녁 7시가 되면 퇴근을 마친 직장인부터 학생, 청년, 여성, 은퇴한 어르신과 공무원, 구(區)의원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인권을 배우기 위해 모였다. 이렇게 모인 사람들이 인권의 가치를 학습하고 주위에 전파하기 시작하면서 지역사회 안에서 인권담론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지역사회의 새로운 사람들이 계속해서 인권교육에 참가하고, 또 각종 주민 모임에서 인권교육을 스스로 개설할 뿐만 아니라 자체적으로 인권학습동아리를 구성하여 운영했다. 그리고 내부적으로는 각 부서에서 진행하는 주민교육에 인권교육을 편성하는 등의 변화도 일어났다. 그리고 2019년 여름, 인권교육을 수료한 주민과 전문가, 공무원이 모여 <금천구 인권 기본 조례 제정 추진단>을 구성하였다. 타 지자체의 인권조례를 하나하나 비교 분석하며 금천구 인권기본조례의 초안을 직접 만들었다. 이후 조례의 제정을 위해 여러 절차를 거쳤고, 그 과정에서 반대 단체들로부터 수많은 민원이 접수됐다. 대부분의 지자체는 이 지점에서 조례제정을 보류하거나 철회했다. 반대의견이 너무 많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하지만 금천구는 반대의견을 면밀히 분석했다. 입법예고 기간에는 거주지와 상관없이 누구나 의견을 제출할 수 있었기에 실제 금천구민의 의견수를 살펴봤다. 그 결과, 금천구 인권 기본 조례 제정에 찬성하는 의견 461건 중, 금천구민은 341명(74%)인 반면, 반대 의견 339건 중 구민은 6명(1.7%)에 불과한 것을 밝혀냈다. 이뿐만 아니라 조례 제정을 주관하는 부서의 장과 팀장은 모든 구의원을 각각 찾아가 조례의 내용을 설명하고 필요성을 설득했다. 주민들 또한 지역사회를 대상으로 조례제정 촉구 서명운동을 벌였다. 이처럼 주민의 주도적인 참여와 구청의 노력이 함께 어우러진 덕분에 「금천구 인권 기본 조례」는 2019년 12월 31일자로 제정될 수 있었다. 이 과정에 참여했던 한 주민은 "금천구에서 진행한 인권교육 뿐만 아니라 조례제정 과정에 참여한 것, 그리고 그 필요성과 가치를 알리고자 한 행동들이 모두 자신의 인권역량 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게도 인권적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했다. 인권분야에서는 이러한 과정을 '인간 자력화(empowerment)라고 한다. 조효제 성공회대 교수는 그의 저서 『인권의 지평』(후마니타스, 2016)에서 인간의 자력화에 대해 "사람이 스스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주체임을 자각하고 자기 권리를 요구할 줄 아는 것, 즉 인간의 자력화는 모든 인권 달성의 첫걸음이 된다"며 자력화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지자체가 인권을 바탕으로 정책을 시행하기 위한 초석으로 인권조례 제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조례를 제정하는 것만으로 끝이 나서는 안 된다. 또 조례의 제정 방법은 행정부 혹은 의회에서 단독으로 추진하기보다, 지역사회의 자력화에 중점을 두고 추진되어야 한다. 지역사회 주민 누구나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에 대해 주장하고 논의할 수 있으며, 정책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적으로 주민의 인권의식 향상을 지원하고,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시간과 장소에서 공론의 장을 개최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논의의 장에서는 각자의 의견을 충분히 공유하고 조정하면서 방향을 정하고 결과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이와 같은 과정은 신속한 결과를 내긴 어렵지만 규범을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그 규범이 지역사회에서 현실적으로 실행될 수 있는 기본 토대를 형성한다. 이렇게 형성된 인권규범과 자력화를 통해 인권의식을 갖춘 사람들이 등장하면서 지역사회의 인권정책은 실제로 작동하게 된다. 금천구청의 한 부서에서는 본인들이 지도·감독하는 시설의 인권분야 점검을 담당공무원이 아닌 인권전문가가 시행하도록 했다. 시설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인권침해나 차별을 실질적으로 점검해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각 사업부서에서는 사업의 참여자를 모집할 때 차별적 요소가 없는지 자문을 구하고, 동주민센터에서는 직접 인권교육을 편성해 지역의 주민들에게 인권의 가치를 전파하고 있다. 또한 금천구청은 코로나19의 확산이 시작될 무렵, 선제적으로 전 직원에게 문자메시지를 발송해 중국동포 및 외국인에 대한 혐오표현 사용 자제를 당부했다. 그리고 구청장, 부구청장 및 전 간부가 참석하는 회의에서는 재난상황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정보접근권 보장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금천구 인권 기본 조례」의 제정 목적에 맞게, 인권을 바탕으로 코로나19 사태에 대처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인권에 대한 다른 방식으로의 접근이 필요하다. 더디지만 인권이 현실에서 실제로 작동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나가는 방식도 고려해 볼 시기가 되었다. 여러 조건들 중에서도 정책을 집행할 공무원과 이를 이끌어갈 주민의 자력화는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한다. 이렇게 형성된 인권제도와 문화는 행정 속에서 인권을 중심으로 발현되어 지역사회 인권보장에 앞장 설 것이다. '기초'지자체들은 이젠 인권을 '기초'로 정책을 펼쳐 볼 때다.

(이 기고는 필자의 개인적인 견해의 글임을 밝힙니다. 필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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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기혜
프레시안 편집·발행인. 2001년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편집국장, 워싱턴 특파원 등을 역임했습니다.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한국의 워킹푸어>, <안철수를 생각한다>, <아이들 파는 나라>, <아노크라시> 등 책을 썼습니다. 국제엠네스티 언론상(2017년), 인권보도상(2018년), 대통령표창(2018년) 등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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