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과 국민기초생활보장 생계급여
기본소득은 소득과 자산에 대한 심사 없이 보편적, 무조건적으로 모든 개인에게 일정액이 지급되는 반면, 기초생활보장 생계급여는 빈곤선 미만의 빈곤가구에게 부족한 소득을 보충해주는 보충급여 방식을 취한다. 아래 [그림 1]은 1인 가구의 생계급여(현재 1인 가구 중위소득의 30%에 해당하는 월 52만7000원에 미달하는 부족액 지급) 지급 후의 가처분소득과 기본소득 (1인당 국내총생산(GDP)의 10%에 해당하는 월 30만 원) 지급 및 10%의 소득세 납부 후의 가처분소득을 비교해 보여준다. 기초생활보장 예산은 고소득자에게 부과되는 세금으로 마련된다고 보아 이 그림에서 월 150만 원 소득자까지는 소득세 부담이 전혀 없는 것으로 간주했고, 기본소득의 경우 재원 마련을 위해 모든 시장소득에 10%의 정률 소득세를 부과하는 것으로 하였다(150만 원 시장소득자의 경우 가처분소득=150*0.9+30=165).노인기본소득과 국민연금의 개편방향
국민연금은 그동안 두 차례의 개혁을 거쳐 소득대체율이 70%에서 60%로, 다시 40%로 낮춰졌다. 최근 정부는 현행유지를 포함한 네 가지 안을 제시한 바 있으나 이후 논의가 실종된 상황이다. 일반적으로 거론되는 문제는 낮은 소득대체율에도 불구하고 고령화 추세로 인해 국민연금의 재정적 지속가능성이 위협을 받고 후세대에게 큰 부담을 지울 수 있어 보험료 인상 등 개혁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국민연금의 재정적 지속가능성 문제는 보험료 인상만으로 해결하기보다는, 기대수명의 연장에 따라 은퇴연령과 연금수급연령을 동시에 점차 조정해나가는 방법을 취해 해결해야 한다. 이러한 조정이 쉽지는 않겠지만, 결국은 이루어질 것이라고 본다. 국민연금의 재정적 지속가능성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노인소득 불평등을 심화한다는 것이다. 현재 노인들의 공적연금(국민연금과 공무원, 사학, 군인, 우체국연금 등 직역연금) 평균 수급액은 2인 이상 가구 중 저소득층(소득하위 20%)의 경우 고소득층(상위 20%) 노인의 12분의 1에 불과하다. 독거노인인 경우 격차가 더 크다. 저소득 독거노인의 공적연금 수급액이 고소득 독거노인의 40분의 1에 불과하다. 공적연금이 노인소득 불평등을 심화하고 노인빈곤 해소에 별 역할을 못 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가 현행 제도의 유지는 물론 세 가지 개혁안 중 어느 것을 취해도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 미봉적 개혁이 아닌 근본적 개혁이 요구된다. 국민연금의 소득재분배 기능은 저소득 불안정노동자들이 국민연금 가입기간을 40년 거의 다 채울 경우 높게 나타날 것이지만, 현실은 전혀 다르다. 아래 [표 1]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현재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이 40년 가입기간을 다 채울 때 평균소득자에게는 40%, 저소득자에게는 100%, 고소득자에게는 30% 이하가 되어 보험기능과 함께 소득재분배 기능이 크게 설계되어 있다(486만 원이 상한소득, 따라서 그 위의 고소득층은 소득대체율이 30% 미만으로 떨어진다). 그러나 다수의 저소득 불안정 취업자들은 미래소득을 위해 현재소득을 희생할 여유가 없다 보니 국민연금 가입기간을 10년도 못 채워 연금 대신 일시금 수령에 그치거나 겨우 10여년을 채워 용돈연금밖에 못 받는다.전 국민 기본소득과 모든 취업자의 고용보험 또는 소득보험
전 국민 고용보험이 먼저냐 기본소득이 먼저냐 라는 잘못 프레임된 논쟁이 던져졌다. 결론부터 말하면 전 국민 기본소득 도입 없이 전 국민 고용보험은 사실상 불가능하며, 기본소득은 전 국민 고용보험의 실질적인 도입을 보다 쉽게 할 것이다. 고용관계의 특정이 어려운 경우가 점점 더 증가함을 고려하여 고용보험을 소득보험으로 개편하는 것이 실질적으로 보편적인 고용보험을 이루는 길이 될 것이다. 그러나 소득보험만으로는 저소득 불안정노동자의 소득 안정을 기할 수 없으므로 기본소득도 필요하다. 즉, 기본소득으로 일정한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하고, 소득비례의 소득보험을 그 위에 얹자는 것이다. 이 경우 기본소득의 수준이 올라갈수록 소득보험의 부담은 줄어들 것이다. 전 국민 고용보험은 모든 취업자의 고용보험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하지만, 취업자와 비경제활동인구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비경제활동인구 중 구직포기자나 소극적 구직자, 취업과 비경제활동을 반복하는 사람, 경력단절 여성, 취업준비생 등도 사실상의 실업자 또는 준실업자로 볼 수 있으며, 이들을 배제한 취업자 고용보험은 사실상의 사각지대를 양산한다. 또한, 취업자 중에서도 임시일용직과 영세 자영업자 등 저소득 취업자가 너무 많다. 따라서 현재의 고용보험(실업급여 기간 4월 내지 9월, 급여액 165만 원 내지 198만 원)을 확대하여 모든 취업자를 포괄하는 것이 불가능함은 전 국민 고용보험 주창자들도 인정하고 있다. 장지연.홍민기(2020)는 고용주를 특정하기 어려운 노동자와 자영업자를 포함해 모든 취업자를 포괄하는 '소득중심 고용보험'을 제안하고 있다. 상당히 획기적인 좋은 제안이다. 먼저 이들은 고용관계 특정이 어려운 경우가 많아 고용주의 보험료 분담을 요구하기 어려운 점, 그리고 고용에 대해 보험료를 요구하는 것이 고용을 줄이는 유인으로 작용하는 점 등을 고려하여 고용보험료를 조세방식으로 전환하되, 사업주에게는 임금이 아니라 이윤에 과세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즉, 근로자의 보험료는 지금처럼 원천징수 방식을 유지하되, 사업주의 경우 이윤에 비례하여 법인세와 사업소득세로 기여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고용을 많이 창출하지만 이윤이 적은 중소기업은 부담이 줄고, 고용은 적게 하고 이윤은 많이 내는 대기업은 부담이 커져 고용회피 유인을 없앨 뿐 아니라 부담의 형평성도 개선될 것이다. 이는 사회보장 재원마련을 위해 모든 노동소득과 자본소득(기업이윤 포함)에 정률로 과세하자는 사에즈와 주크먼의 국민소득세와 일맥상통하는 제안으로서, 노동소득에만 과세하는 유럽 여러 나라의 사회보장세보다 우월한 방안이다. 다음으로 실업과 취업 구분이 점점 더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실업급여의 요건과 지급기간 및 지급률을 정하는 문제가 있다. 장지연.홍민기(2020)는 두 가지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는 고용보험 대상을 일정 소득자 이상으로 제한하고, 그 이하 소득자는 실업부조로 보호하는 방안이다. 가령 근로소득과 사업소득을 합산한 2년 간 총소득 1500만 원 또는 2000만 원을 기준으로 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2년에 2000만 원 기준을 적용해도 월평균 소득(83.3만 원)이 실업급여 최저액(월 165만 원)보다 훨씬 낮다. 실업급여 최저액보다 낮은 소득을 올리는 수많은 저소득 불안정 취업자들이 주기적으로 실업급여를 받고자 하면 제도의 안정적 운영이 어려울 수 있다. 지금은 저소득 불안정 취업자는 거의 고용보험에서 배제되어 있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크게 드러나지 않지만, 고용보험이 이들을 포괄할수록 문제가 노정될 수 있다. 최소소득 요건에 미달하여 고용보험에서 배제되는 저소득자는 물론, 실업급여 수급기간이 끝날 때까지 재취업에 성공하지 못한 장기실업자 등에게도 실업부조를 지급해야 하는데, 저소득 취업자가 많은 한국의 현실에서 노동시장에 미칠 충격이 우려된다. 가령 고용보험의 실업급여에서 제외되거나 기간이 지난 모든 실업자에게 월50만 원의 실업부조를 지급한다면 수많은 저소득 일용근로자와 자영자, 플랫폼 노동자는 물론 구직 단념자, 취업준비생까지도 구직자, 즉 실업자로 등록할 유인을 가지게 된다. 그렇다고 현재 정부가 도입하기로 한 한국형 실업부조처럼 중위소득 60% 이하의 실업자에게만 구직활동을 조건으로 월 50만 원을 6개월까지만 지급하는 것으로는 해결책이 안 된다. 6개월 동안에 취업을 못한 실업자들은 그냥 방치할 것인가? 필자는 까다로운 조건으로 제한된 인원에게만 단기간의 실업부조(월 50만 원*6월=300만 원)를 지급하는 현안보다는, 모든 근로연령층 인구에게 연 300만 원(월 25만 원)을 기본소득으로 지급하는 게 낫다고 본다. 이렇게 하면 연 300만 원 이하 통합소득자 163만 명, 일용근로소득자 225만 명을 포함한 380여만 명이 하던 일을 멈추고 실업부조를 받겠다고 하거나, 취업준비생이나 경력단절 여성 등이 우리도 구직활동을 할 테니 실업부조를 달라고 할 일도 없다. 기본소득을 받으면서도 계속 일해서 수입이 생기면 10%의 소득세만 내면 되니까 굳이 하던 일을 멈출 필요가 없다. 핀란드가 실업부조(기초실업급여) 수급자들을 대상으로 기본소득 실험을 한 이유가 여기 있다. 핀란드는 실업보험 미가입자와 실업보험에 의한 실업급여 기간이 종료된 장기실업자에게는 월 75만 원의 실업부조를 무기한 지급한다. 구직활동을 조건으로 하지만 형식적인 보고에 그치고 실업부조에 안주하는 장기실업자가 많다. 핀란드 정부 내에 이들에게 구직활동 보고 및 감시를 강화하고 위반 시 급여삭감 등 제재를 강화하자는 의견과 실업부조와 동일한 금액을 기본소득으로 주어 취업회피 유인을 없애자는 의견이 있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기본소득 실험이 2년간 실시되었고, 실험 2년차에는 고용활성화 정책이란 이름으로 실업부조 수급자들에게 감시와 제재를 강화하는 정책이 실시되었다. 2년간의 한시적 기본소득이 영구적 기본소득처럼 효과를 낼 수 없는 근본적 한계가 있음에도, 실험 2년차에 기본소득 수급자들이 채찍질이 강화된 실업부조 수급자들보다 주관적 행복도와 삶의 질에서는 물론, 고용 측면에서도 유의미한 효과를 얻었음이 드러났다. 고용증진이 기본소득의 주된 목표는 아니지만, 실업부조를 주면서 채찍질을 가하는 것보다는 기본소득이 고용증진에 더 효과가 있었다는 것은 주목할 대목이다. 장지연.홍민기(2020)의 두 번째 안은 포인트 적립제도인데, 사실상 소득보험이라고 할 수 있다. 개인 총소득을 누적하여 특정한 기준 금액을 넘으면 (예를 들어 5년 동안 1500만 원) 실업급여 수급자격을 부여하고, 실업급여 지급기간과 지급액을 누적 포인트와 연계하는 방안이다. 실업급여를 수급하면 포인트를 차감한다. 실업급여액의 산정은 실업 전 평균소득액과 실업 혹은 준실업상태를 확인하기 위한 현재소득액의 두 가지를 가지고 한다. 이렇게 하면 완전실업만이 아니라 부분 실업으로 인한 소득감소까지 보전해줄 수 있으며, 별도의 실업부조가 필요하지 않게 된다. 더구나, 소득과 실업급여액을 연계함으로써 자영업자들이 소득을 축소 신고할 유인을 없앨 수 있다. 이 방안은 저소득 불안정 취업자를 포함한 모든 소득자를 포괄할 수 있고, 이들에게 실업부조를 받기 위해 실업자가 되도록 하는 유인이 없는 등 장점이 있는 반면, 장기간 불안정한 취업으로 저소득을 오래 지속하는 사람은 실업급여(또는 소득보험 급여)를 받아도 아주 작은 금액밖에 받을 수 없게 된다. 기본소득을 도입하면 이러한 저소득 문제가 완화될 것이다. 기본소득 수준이 너무 높으면 근로유인이 저하될 수 있겠지만, 월 25만 원 내지 30만 원 수준의 기본소득과 함께 소득비례의 전 국민 소득보험(포인트 적립방식의 고용보험)을 도입하면 기초소득 보장과 함께 실업, 질병(상병수당), 출산(산전산후휴가 및 육아휴직급여) 등으로 인한 소득감소를 보전하는 보험기능까지 완비할 수 있을 것이다.전 국민 기본소득과 소득보험으로 21세기 새로운 소득보장제도의 선도국가로
이상의 제안을 종합하면 전 국민 기본소득으로 GDP의 일정비율(가령 10%에서 시작해서 사회적 합의에 따라 증액)을 똑같이 나누고, 그 위에 기존의 고용보험과 공적연금을 전 국민 소득보험으로 대체하자는 것이다. 노동소득과 자본소득을 포함한 모든 소득원천에 정률 과세하여 사각지대 없이 모든 국민을 완전 포괄하며 소득, 즉 기여에 비례하여 실업, 질병, 은퇴 등의 사회적 위험에 일정한 소득보장을 제공하는 방안이다. 소득재분배 기능과 보험기능이 복잡하게 결합된 기존의 사회보험에서 소득재분배 기능은 분리해내어 순수 소득비례의 소득보험으로 재구조화하는 대신, 소득재분배(또는 '선분배'라고 하는 게 더 타당) 기능은 기본소득으로 집중시키는 것이다. 다만, 근로연령층에 소득보험과 노인 소득보험을 필요에 맞게 설계하면 된다. 근로연령층과 노인 간의 경계도 점점 모호해지므로 기존의 실업보험과 공적연금처럼 경직되게 설계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기본소득 만으로 빈곤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공적부조를 유지하되, 점차 기본소득 수준을 높여감에 따라 사회 전체적으로나 빈곤층 개개인으로서나 공적부조 의존도를 줄여나가자는 것이다. 기본소득은 개인단위로 지급하되, 공적부조는 가구단위 지급을 계속 유지하는 것도 보완적으로 기능하는 점이 있을 것이라고 본다. 또한, 기초생활보장 급여 외에 근로장려금도 그 필요성과 효과가 부정되는 증거가 확인되기 전까지는 존치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한다.참고문헌:
박정훈. 2020. '진짜 불쌍한 사람'만 지원하자는 사람들에게: 전국민고용보험 vs. 기본소득 논쟁은 허구다. 오마이뉴스 (6월 23일).
장지연.홍민기. 2000. 전국민 고용안전망을 위한 취업자 고용보험. 한국노동연구원, 월간 노동리뷰(6월호).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