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운 여름 속초 시민들이 마스크를 쓰고 속초시청 앞에서 1인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속초시가 추진 중인 영랑호 생태탐방로 조성사업 때문이다. 영랑호 둘레 물가에 데크로드를 깔고 물 위에 다리 2개를 띄우는 등 영랑호 일원을 개발하는 사업으로 특히 영랑호를 가로지르는 400m 길이의 부교를 만들고 그 중간에 각종 모임과 이벤트 등을 할 수 있는 수변 광장을 만들겠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속초시는 2019년 6월 기본계획 용역을 발주하고 총 120억 원을 들여 올해 9월 공사에 착수, 내년 상반기까지 준공한다는 계획이다. 속초시는 그동안 북부권 주민들로부터 개발에 대한 지속적인 건의가 있었고 생태관광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영랑호 일대를 생태관광사업으로 개발하는 사업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속초고성양양환경연합은 즉각 반대 입장을 밝혔다. 이미 영랑호의 경관과 자연 생태를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는 탐방로와 관광객을 위한 편의시설 등이 충분히 설치되어 있는 데다 영랑호 안까지 인공구조물을 대규모로 건설할 경우 영랑호 생태계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것이다. 속초고성양양환경연합은 이 같은 의견을 속초시에 제출했지만 속초시는 일부 환경단체의 주장일 뿐 대다수 시민들은 찬성한다며 사업을 추진, 지난 7월 14일 영랑호 생태탐방로 조성사업 실시설계용역 중간보고회를 열겠다고 나섰다.
뒤늦게 이 같은 사실을 안 속초 시민들이 직접 나섰다. 영랑호를 지키기 위해 뭐라도 해야겠다며 지난 7월 13일부터 속초시청 앞에서 '영랑호 다리 싫어요' 등의 문구가 담긴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시작한 것이다. 환경단체 소속도 아닌 평범한 시민들은 자연스레 '영랑호를 지키기 위해 뭐라도 하려는 사람들'이라는 이름으로 릴레이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속초의 보물, 영랑호를 함부로 파괴하지 않도록 힘을 모아주세요. 경제논리가 아닌 가치를 위해 싸울 수 있도록 힘을 보태주세요." 영랑호를 지키기 위해 뭐라고 하려는 시민들의 호소다. 영랑호를 지키기 위해 뭐라고 하겠다는 시민들의 바람은 그만큼 간절하다. 그도 그럴 것이 영랑호는 동해안 지역에만 있는 석호 중 하나로 자연이 수천 년에 걸쳐 바다와 육지 사이에 만든 자연호수다. 또한 바다와 민물이 만나 독특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는 곳으로 생물다양성이 풍부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상당수의 석호는 그 가치가 세상에 알려지기도 전에 각종 개발로 훼손되거나 매립되었다. 속초시의 또 다른 석호인 청초호도 40퍼센트가 매립됐다. 영랑호도 주변에 콘도가 들어서는 등 각종 개발로 인해 예전의 모습과는 많이 달라졌다. 하지만 영랑호를 지키려는 시민들의 노력으로 지금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며 멸종위기종과 천연기념물 등을 비롯한 생물들의 서식처 제공은 물론 우리나라에서 보기 힘든 조류들이 관찰되는 철새도래지이자 중간기착지로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영랑호 생태탐방로 조성사업에 반대하는 시민들은 이번 사업이 단순히 영랑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동해안 석호 전반에 나쁜 사례를 남기는 개발이 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속초고성양양환경연합 김안나 사무국장은 "영랑호 수면을 개발하는 이 사업이 진행되면, 인근 고성 송지호와 화진포, 강릉의 경포호 등 동해안 석호 전반에도 유사한 개발이 진행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동해안 석호 관리에 큰 위기를 초래할 수밖에 없고 정부의 동해안 석호의 보존 정책에 큰 위기를 초래할 사업"이라며 "개발계획이 아닌 동해안 석호를 보전할 수 있는 장치가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결국 속초시가 사업을 추진하려는 목적은 돈이다. 하지만 이 사업으로 얼마나 많은 관광객이 찾을지, 그에 따른 경제적 효과가 어느 정도인지 등 사업의 필요성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는 내놓지 않고 있다.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검토도 마찬가지다. 자연이 만든 호수를 훼손하고 새들을 내쫓는 관광을 생태관광이라 할 수 있는가. 그 안에서 휴식과 즐거움을 찾으려는 관광객은 없을 것이다. 영랑호를 지키기 위해 뭐라도 하려는 시민들의 목소리에 속초시는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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