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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난 기후, 한반도를 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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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성난 기후, 한반도를 치다 [함께 사는 길] 2020 그 여름, 장마의 교훈
동아시아 몬순기후대의 영향권에 속한 한반도는 여름 장마를 겪는다. 우리나라 역대 최장기 장마는 2013년의 49일이었다. 그러나 올해 장마는 이 기록보다 3일이 긴 52일(중부지방 장마는 6월 24일~8월 14일)이었다. 제주에서 가장 빨리 시작된 장마이자 가장 긴 장마를 경험했고(49일), 남부지방 또한 장마에 이은 계절성 호우(소나기)가 이어졌다(48일). 52일 장마의 전국 평균 누적 강우량은 780mm 이상으로 49일 장마를 기록했던 2013년의 406mm를 훌쩍 뛰어넘는다. 때문에 피해가 커졌다.

역대급 장마의 한반도 습격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피해 현황(8월 9일 기준)에 따르면, 6월 24일~8월 9일까지 사망자는 38명, 실종자가 12명에 이른다. 7800명의 장기 이재민이 발생했고 일시 대피자 수는 1만여 명에 육박한다. 1548건의 산사태가 발생했는데 지난 8월 7일에는 기상관측 역사상 최초로 제주를 제외한 전국에 '심각' 단계의 산사태 위기 경보가 발령되기도 했다. 올여름 장마로 인한 경제피해 규모는 1조 원(<현안과 과제>, 현대경제연구원, 2020.8.13.)에 달할 것이라는 보고서가 나왔다. 전국적으로 장마 피해로 인한 특별재난지역(피해복구 소요 지방비 50% 이상 국고 보조)은 경기 안성시, 강원 철원군, 충북 충주시·제천시·음성군, 충남 천안시·아산시 등 1차 지정지 7개 지자체와 전북 남원시, 전남 나주시·구례군·곡성군·담양군·화순군·함평군·영광군·장성군, 경남 하동군·합천군 등 11개 지자체를 합쳐 총 18개소나 된다. 역대급 장마와 역대급 피해에 분개한 언론과 시민들은 장마 예보와 적절한 예방대책 부재로 인한 '인재'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올해 장마가 '인재'인 이유는 장마로 인한 수해 대책의 차원에서만 찾을 것은 아니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기후가 변했기 때문'이다. 동아시아 몬순으로 우리나라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도 대형 수재를 입었다. 중국은 두 달 장마를 겪으며 5500만 명에 달하는 이재민이 발생했고 한반도 면적의 반에 달하는 농경지 침수 피해를 입었으며 엄청난 강우로 인해 세계 최대 담수량을 가진 삼협댐이 붕괴 위기까지 몰렸다는 소식이 들어올 정도로 큰 피해를 입었다. 일본 또한 규슈에서도 1000mm가 넘는 기록적인 폭우로 140만 명에 가까운 이재민이 발생했다.
ⓒ일러스트 김소희

제트기류가 어쨌다고?

동북아시아 3국의 수해의 원인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제트기류'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동북아시아 3국에 영향을 미치는 제트기류는 북위 30~50도 지역 상공의 9~12km 사이를 시속 100~500km의 속도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불어가는 공기의 흐름이다. 이 흐름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회전하는 지구의 자전의 영향 아래, 남쪽에서 고위도로 올라오는 따듯한 공기층과 북극권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는 차가운 공기층이 만나 만들어진다. 문제는 작년과 올 초 시베리아 숲 지대에서 산불이 발생하고 영구동토층과 극권의 빙설이 줄줄이 녹아내릴 정도로 북극권이 온난화됐다는 사실이다. 북극 기온이 낮아야 제트기류가 쌩쌩 돌아가면서 역할을 하는데 북극 기온이 높으니 제트기류가 약화돼 밑으로 쳐지면서 느슨해진 것이다. 온난화를 겪고 있다지만 남쪽 적도 해상에서 만들어져 북상하는 따뜻하고 습한 북태평양 고기압대와는 완전히 다른, 차가운 북극발 대륙성 고기압이 예년과 달리 한반도 중북부에서 만나 오래도록 힘겨루기를 한 결과가 올여름 장마인 것이다. 결국 북극 온난화가 한반도 최악의 장마를 부른 원인이다. 지난해 말과 올 초 시베리아와 알래스카 곳곳의 산불은 북극권 이상고온으로 인한 것이었다. 기온이 상승하자 동토층의 눈과 빙하가 녹고 햇빛을 반사하던 백색 눈과 얼음이 녹아 드러난 지표는 더 많은 열을 품고 건조해져 침염수림대의 자연발화(산불)가 잦게 되고 그 영향으로 다시 기온이 더 오르는 알베도(반사율) 하락의 연쇄효과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러한 북극권 온난화는 결국 한반도 최악의 장마로 이어졌다.

최악 장마 부른 남·북극권 온난화

한반도 최악 장마라는 지역적 이상기후 현상이 북극권의 온난화 때문이고 북극권 온난화를 가속시킨 것이 북극권 빙설의 해빙이었다면, 북극의 해빙은 왜 발생했을까? 지구와 한반도의 기후에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환경부와 기상청이 지난 7월 펴낸 <한국 기후변화 평가보고서 2020>은 지구적 기후변화를 조망하면서 한반도 지역의 기후변화의 양상을 정리하고 있다. 이 보고서의 방대한 내용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21세기 말로 갈수록 지구 전역의 기후변화는 심각해질 것이며 지구 평균보다 심각한 기후변화를 겪고 있는 한반도의 이상기후 현상은 더욱 잦아지고 강력해진다'는 것이다.
▲ 1992~2017년간 남극 빙산 질량 변동. 이 기간 동안 약 3조 톤의 얼음이 남극에서 소실되었다.(IMBLE, 2018) 출처 : <한국 기후변화 평가보고서 2020> 89쪽.

<한국 기후변화 평가보고서 2020>

<한국 기후변화 평가보고서 2020>은 환경부가 '기후변화의 영향 및 적응'을, 기상청이 '기후변화의 과학적 근거'를 분담 연구하여 작성했다. 보고서는 미래 기후변화 전망을 위해서 새로운 미래 시나리오(경로)를 적용했다. 새로운 시나리오는 IPCC 5차 보고서에 사용된 대기 중 온실기체 농도를 중심으로 구성한 대표농도경로(RCP)에 사회경제 지표값을 포함시킨 것인데 공통사회경제경로(SSP)라고 불린다. SSP는 2021~2022년 사이 발간 예정인 <기후변화에 관한 국제협의체(IPCC)>의 6차 보고서에 적용될 예정이다. <한국 기후변화 평가보고서 2020>은 대표농도경로(RCP)를 사용한 이전 연구 결과를 요약하고 추가로 공통사회경제경로 2종(SSP 2.6과 8.5)의 시나리오를 사용해 작성됐다. 사회 구조변화와 온실가스 감축 정책까지 포함된 시나리오를 사용해 더 사실적인 미래 기후변화 전망이 나온 것이다. 21세기 한반도 기후변화의 핵심은 '폭염과 홍수의 증강'으로 전망된다. 극한기후에 휘둘리는 21세기가 한반도의 미래인 것이다.

21세기 말 지구 기후변화 전망

△ 21세기 말의 전 지구 평균기온은 온실가스 배출 정도에 따라 현재 대비 약 1.9~5.2℃ 상승한다. 이것은 5차 보고서에서 사용된 시나리오 RCP 2.6(낮은 수준의 기후변화경로)과 RCP 8.5(현재 추세의 탄소배출이 이어지는 높은 수준의 기후변화경로)의 평균값인 1.3~3.7℃ 사이의 상승 폭보다 높다. 기후 예측 시나리오가 정교해질수록 미래 기후변화의 폭이 큰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 지구 연평균 강수량은 현재보다 약 5~10% 증가한다. 특히 기온 상승폭이 가장 큰 극지방과 강수량이 가장 많은 적도에서 강수가 두드러지게 증가한다. 동아시아 몬순지대는 5~9월 사이에 강수량이 최대 20% 증가한다. △ 지구 평균 해수면 온도는 현재보다 약 1.4~3.7℃ 상승하고 지구 평균 해수면은 현재보다 약 52~91cm 높아진다. 해수면 상승은 극지방 바다 빙하의 해빙에 큰 영향을 받는데, 특히 북극에서는 21세기 중반 이후엔 여름철에는 바다 빙하가 거의 사라진다. 현재 수준의 탄소배출이 계속되는 시나리오(SSP5-8.5)에서는 21세기 말 여름에는 남극 바다 빙하도 사라질 것이다. △ 육지지역에서 온난일은 향후 10년마다 약 15일씩 증가하고 한랭일은 10년마다 약 4일씩 줄어든다(SSP5-8.5). △ 강수일과 무강수일은 크게 늘거나 줄진 않지만, 이상기후 현상인 극한 강수는 더 잦아지고 강도는 점점 증가한다. △ 연간 35Gt씩 탄소배출이 되는 현재 추세가 이어진다면 21세기 중반 이전에 북극의 9월 바다 빙하는 사라질 것이다.
ⓒ일러스트 김소희

지구 평균보다 위험한 한반도 기후변화

△ 한반도의 평균온도는 지난 100년간 1.8℃ 상승했다. 이는 지난 130년간 0.85℃ 상승한 지구 평균을 훌쩍 뛰어넘는 기록이다(RCP8.5). 실제로 한반도의 대표적 온실기체인 탄소와 메탄의 2008~2018년 사이 측정기록을 보면 대기중 농도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 미래 한반도 연평균 기온은 21세기 말 RCP 4.5에서는 2℃ 이상, RCP 8.5에서는 4℃ 이상 상승할 것으로 전망되었다. △ 21세기 말 폭염의 강도와 빈도는 모두 증가할 것으로 전망됐다. 1979~2005년 대비 미래 2075~2099년에는 폭염 발생 빈도 지수는 약 52.5일 증가하고, 폭염 지속 기간 지수는 약 44.5일 증가하며, 폭염의 강도 지수는 약 2.2℃ 증가할 것이다(RCP 4.5) 현재까지 역대 최악 폭염을 기록했던 2018년보다 심각한 폭염이 21세기 말에는 여름의 '평균'이 될 것이라고 전망된다. 섭씨 33도가 넘는 폭염 일수가 2018년보다 많아질 것이다. 폭염 일수는 현재의 연간 10.1일에서 21세기 후반에는 35.5일로 크게 증가할 것이다. △ 전반적인 평균기온 상승에 따라 동물 매개 감염병, 수인성 및 식품 매개 감염병도 증가할 것이다. △ 강수량은 21세기 말 RCP 4.5와 8.5에서 모두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2050년 이전에 강수량의 변동성이 커져 가뭄과 호우 같은 극한 강수 현상이 잦아질 것이다. 특히 여름 홍수, 봄·가을 가뭄이 일상적으로 증강될 것이다. △ 동해 난류가 고위도로 북상해 바다 표층 수온이 상승할 것이다. 황해 생태계에 중요한 황해 저층 냉수도 2100년까지 서서히 증가할 것이다. △ 해수면은 2100년까지 RCP 2.6에서 37.8cm, RCP 4.5에서는 48.1cm, RCP 6.0에서는 47.7cm, 그리고 RCP 8.5에서는 65.0cm 상승하는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현재 추세대로 온실기체 배출이 계속되면 2100년 한반도 연안 해수면이 1m 상승해 한반도 면적의 1.2%(여의도 300배)가 침수될 것이다. △ 현 추세대로 탄소배출 지속 시, 벚꽃 개화 시기는 2090년에 11일 빨라지고 소나무숲은 15% 감소한다(2080년경). 또한, 2070년 이후 벼 수확량은 25% 이상 줄게 되며 제주에서 감귤이 사라지고 중부지역이 감귤 재배지가 된다.

기후변화를 완화할 대책은 없어?

우리나라는 지구상에서 가장 심각한 기후변화 핫스팟(지구 평균 2배)이고 총에너지의 85%를 석탄과 석유, 천연가스 같은 화석연료로 공급하는 세계 탄소배출 7위 국가이다. IPCC의 <1.5℃ 특별보고서>(2018)에 따르면, 지구 전체적으로 1.5℃ 이내로 21세기 기후변화를 막아야 기후파국을 피할 수 있고, 그러자면 2050년에 세계 전체가 탄소중립(탄소 배출 제로) 상태로 들어가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2050년까지도 석탄발전을 유지할 계획이고 2050년을 바라보는 중장기 탄소 감축 목표조차 세우지 못한 상태다. 최근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 타파를 위해 발표된 '그린뉴딜' 정책에서도 기존의 2030년 목표(2017년 대비 24.4% 감축)만 재확인했을 뿐 추가적인 장기 감축 목표는 없었다.
▲ 석탄화력발전 수출을 지원하는 한국수출입은행이 녹색기후기금 이행기구 승인 신청을 냈지만, 승인이 보류된 적이 있다. ⓒ환경운동연합

2020 그 여름, 장마의 교훈

21세기 내내 이어질 기후위기의 긴 그림자를 길고 길었던 2020 여름 장마로 맛봤다. 지금처럼 우리 국가사회가 당장의 전염병 유행으로 인한 경제위기 해결에만 목매고 있으면 금세기 내내 기후변화의 쓴맛을 볼 수밖에 없다. <한국 기후변화 평가보고서 2020>에서 지적된 한반도 기후변화의 실태는 2014년에 나온 같은 보고서에서도 동일하게 지적된 것들이다. 다만 그사이 더 심각해졌을 뿐이다. 기후변화 연구를 해도 정작 기후변화를 완화할 실질적인 국가사회적 정책 전환이 더디면 한반도 기후파국은 피할 수 없다. 무늬뿐인 '그린뉴딜' 정책부터 '그리닝'시켜야 한다. 핵발전과 석탄산업 투자를 계속하는 금융을 규제하고, 재생에너지 외피를 쓰고 실제로는 재생에너지의 성과를 좀먹게 될 수소연료전지사업과 같은 허무맹랑한 정책을 중단해야 한다. 에너지 전환과 길항하는 모든 정책적 충돌부터 지양하는 기후변화 완화정책의 대대적인 수술이 필요하다는 것이, 2020 긴 여름 장마의 교훈이다.
ⓒ일러스트 김소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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