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미국 '기후대선'은 자국 기후위기 대응만이 아니라 파리협정의 신기후체제에도 긍정적인 신호를 주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반동으로 단절된 유럽과 미국의 공조가 되살아나고, 여기에 일본, 중국, 한국 등이 탄소중립 대열에 동참한다는 결정은 기후 안보 메커니즘이 작동할 수 있는 최소 조건이 될 것이다. 미 대선 결과와 최근 탄소중립 확산에 대해 기후행동추적자(Climate Acrion Tracker)가, 아직 충분하지 않지만, 지구 1.5도 목표 달성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평가를 내린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조 바이든과 카멀라 해리스가 공식 당선되더라도 난관은 많다. 상원에서 주도권을 찾으려면 내년 1월 조지아주 결선 투표에서 승리해야 한다. 물론 상원의 동의가 없더라도, 할 수 있는 게 적지 않다. 청정대기법과 국가비상사태법 등 기존 법률과 행정명령 등을 적극 활용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 재임 기간에도 주정부나 지방도시들이 탈탄소 전환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온 흐름은 더 공고해질 것으로 보여 연방정부에 큰 힘이 될 것이다. 그러나 보수 성향의 연방대법원 구성에 상원의 지지마저 없으면, 근본적인 한계를 극복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공화당과 상대하는 것말고도, 민주당 내부 정치지형에 따라 기후대응, 에너지전환과 그린뉴딜의 향방이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바이든으로 대표되는 당 주류 온건파는 버니 샌더스와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등의 '급진적 그린뉴딜'에 반대하거나 소극적인 반응을 고수하고 있다. 당내 경선 과정에서 바이든 캠프가 샌더스의 정책공약을 일부 수용했지만, 최종 '기후계획'은, 국내에서 관심을 받았던 2019년 상하원 그린뉴딜 결의안에 비해 협소하고, 트럼프가 문제 삼았던 급진성은 찾아보기 힘든 수준으로 정리됐다. 대통령과 부통령 당선 예정자들 사이의 입장도 차이가 있다. 바이든은 1980년대부터 기후변화에 관심을 갖고 의정활동을 해왔지만, 그린뉴딜을 사회주의로 낙인찍는 왜곡된 정치문화에서 다소 평범한 내용으로 공약을 채웠다. 화석연료 채굴․생산 금지 조치는 담지지 않았다. 반면 해리스는 바이든에 비해 급진적 그린뉴딜에 우호적인 입장을 밝혔지만, 취임 이후 바이든 행정부과 민주당 주류 세력을 설득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앞으로 민주당은 당 안팎에서 급성장한 민주적 사회주의 그룹(Democratic Socialists of America)과 선라이즈 무브먼트(Sunrise Movement), 기후정의동맹(Climate Justice Alliance) 등 청소년․사회운동과 전략적 제휴를 지속하겠지만, 기후정의와 정의로운 전환을 범위, 규모, 속도, 방법, 이 모든 측면에서 전면화하려는 급진파와의 거리두기는 이미 시작된 것 같다. 이들은 이번 선거를 기후대선으로 만들고, 스스로 민주당 승리의 동인이 됐지만, 이제는 당선자들의 행보를 압박하고 견인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100대 도시의 온실가스 감축목표 설정 및 달성 상태를 평가한 브루킹스 연구소의 보고서가 제안하듯이 아래로부터의 기후대응이 더 활성화될 필요도 있다(Pledges and progress, 2020. 10). 최근 전개 상황에 약간의 과장을 더하면, 미국의 상황은 박근혜 탄핵과 문재인 당선, 그리고 이어진 한국 총선 국면과 닮은 구석이 있다. 앞으로도 비슷한 모습이 펼쳐질지 모른다. 다만 차이점도 분명한데, 그중 하나가 바로 급진적 대안 세력의 존재 여부다. 우리에게는 바이든이든 오카시오-코르테스든, 민주적 사회주의 그룹이든 선라이즈 무브먼트든, 판을 바꿀 결정적 변수가 아직 없다. 정확하게 말하면 지나치게 약세다. 반면 집권 더불어민주당 주류 세력의 실정에 몸을 불리는 국민의힘은 트럼프와 공화당의 처지와 사뭇 다르다. 국민의힘은 2030년 감축목표 적극 상향 촉구, 2050년 순배출 제로(net zero) 지향,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 원칙 준수를 담은 '기후위기 비상 대응 촉구 결의안'(국회, 9월)에 동참했다. 전체 합의 과정에서 2030년까지 2010년 대비 50% 감축안이 소수의견으로 취급됐지만, 한때 '저탄소 녹색성장'을 내세웠던 정당의 DNA가 확인되는 대목이다. 국회 기후위기 비상선언 대통합은 동상이몽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평소 재생에너지 비중, 탈석탄과 탈핵 여부와 시점에 대한 입장이 상이한 두 당의 관계를 떠올리면, 기후변화 의제가 상식이 됐다는 순진한 해석보다 결의안 이면의 디테일이라는 무기를 배치한 새로운 전선에 서로 합의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정부가 유엔에 최종 제출할 2030년과 2050년의 온실가스 감축계획에 무엇이 담길지도 중요하지만, 탈핵 쟁점을 외면해서는 곤란하다. 최근 검찰의 산자부와 한수원 압수수색으로 월성 1호기 쟁점은 마치 드라마 <비밀의 숲> 시즌3의 소재로 삼아도 될 듯하다. 실제 사건의 기승전결은 이렇다. ①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2011년)와 국내 원전 비리 적발 및 재판(2012~2015년) ②원자력안전위원회 월성 1호기 수명연장(2차) 허가와 에너지위원회 고리 1호기 영구정지 권고(2015년), 서울행정법원 월성 1호기 수명연장 처분 취소 판결과 원자력안전위원회 고리 1호기 영구정기 결정(2017년), 한국수력원자력 월성 1호기 조기폐쇄 결정(2018년) ③국회 감사원 월성 1호기 감사 요구와 원자력안전위원회 월성 1호기 영구정지 결정(2019년), 감사원 월성 1호기 조기폐쇄 감사 결과 보고서 발표, 검찰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수력원자력 등 압수수색(2020년). 새누리당 집권 시기에 결정된 고리 1호기 영구정지와 더불어민주당 집권 시기 결정된 월성 1호기 영구정지의 사유는 사실상 같다. 안정성, 경제성, 전력수급, 지역수용성, 전력수급계획과 정부정책을 종합적으로 판단했다. 두 개의 사건을 관통하는 하나의 진실이다. 배경 담론이 다를 뿐인데, 고리 1호기 정지에는 '후쿠시마 사고와 원전 비리 등으로 저하된 국민 신뢰 회복 필요'가 작동했고, 월성 1호기 정지에는 '탈핵, 탈석탄, 재생에너지 확대의 에너지전환 정책'이 뒷받침됐다. 녹색성장의 흔적을 지웠던 박근혜 정부가 노후 석탄화력발전소의 폐기․대체건설․연료전환을 부분적으로 추진했던 사실까지 고려하면, 외부 환경에 의한 상황적 에너지전환(interim energy transition)으로 볼 수 있고, 그후 들어선 정부는 시민이 주도하는 에너지전환(deliberate energy transition)을 바탕으로 정책적 체계를 갖춘 에너지전환(transformative energy transition)의 성격을 갖는다 하겠다(Edomah et al., 2020). 전환정책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 없이, 그리고 생태합리성 개념 부재 상태에서 정책집행 감사가 제대로 진행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경제성 있는 고리 1호기를 폐쇄한 전례에 비춰보면, 수명연장 여부에서 경제성 평가가 결코 전부가 될 수 없다. 그마저도 주요 변수를 어떻게 처리하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고, 명확한 규정도 없는 게 현실이다. 2017년에 이미 수명연장의 위법성이 인용돼 무효 판결도 내려졌다. 월성 1호기의 비밀은 '감사원 감사 방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런 결말의 장르물라면 망작 리스트에 등재되지 않을까. <비밀의 숲> 시즌3의 반전은 따로 있다. 핵발전이 저탄소 혹은 탈탄소 에너지전환에 효과적이라는 가설은 방사능 위험만이 아니라 탄소감축에도 부정적이기 때문에 기각된다. 핵발전을 유지하거나 확대해야 한다는, '원전 없는 탄소중립'은 불가능하다는 기득권 논리가 결국 무너진다.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에 비해 상대적으로 탈핵 운동과 관련 여론 수준이 낮은 미국의 특수성은 이번 선거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 공화-민주 양당은 차세대 원자로 개발 법률을 합의 제정한 바 있다. 대선 과정에서도 바이든과 해리스는 탈핵 입장을 표명한 샌더스와 엘리자베스 워런과 달리 핵발전에 대해 공식 입장을 밝히는 데 소극적 태도을 보였다. 그렇다고 국내 일부 언론과 야당이 미국의 새 정부가 찬핵 입장이라는 단정짓기에는 무리가 있다. 선거 캠프의 정책공약과 유력 언론의 질의답변을 종합해보면, 청정에너지원 중 하나로 연구․조사를 이어가겠다는 절충안을 제시했다고 이해하는 편이 맞다. 에너지전환 연구자로 잘 알려진 벤자민 소바쿨은 <네이처 에너지> 논문(Nature Energy, 2020)에서 재생에너지와 핵 발전의 탄소감축 효과를 추적했다. 그는 오래 전에도 에너지원별로 채굴에서 처리 단계에 이르는 온실가스 배출량 전 주기 평가를 통해 재생에너지, 핵, 가스, 석유, 석탄 순으로 온실가스가 많이 배출된다고 결론내렸다. 최근 분석은 역사적, 경험적으로 재생에너지와 핵의 관계는 배타적, 경합적이어서 하나가 다른 하나를 밀어 낸다고 한다. 재생에너지를 추구하는 나라는 비핵 상태이거나 탈핵을 향하고, 반대로 핵을 추구하는 나라는 재생에너지가 보조적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런 반비례 관계는 핵과 재생에너지가 공존해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를 무너트리고, 핵발전의 유지․확대가 오히려 재생에너지시스템 활성화에 걸림돌이 됨을 보여준다. 따라서 기후위기에 적합한 에너지원은 채굴주의를 극복하는 재생에너지에서 찾아야 한다. 그리고 탈핵의 내러티브는 영화 <판도라>의 재난 드라마보다 <비밀의 숲>을 매개로 하는 감정의 구조에서 전환의 리얼리티를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탄소중립이라는 착시에서, 그리고 그린뉴딜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탈탄소사회로의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그린뉴딜정책 특별법(정의당, 8월)과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탈탄소사회 이행 기본법(더불어민주당, 11월)이 테이블에 올라왔다. 더불어민주당 발의안이 더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어 기후위기 결의안을 구체화한다는 점에서 국회 대통합도 가능할 것 같다. 그러나 "정부는 대통령령으로 정한 2030년 온실가스 총 배출량 목표를 달성하여야 하며, 이를 조기달성하기 위해 노력하여야 한다"는 현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과업에 대한 별도의 대책이 없다면, 과거 정부보다 상대적으로 낮다는 인상, 그러니까 더 전진하지 못하고 원점에서 다시 출발했다는 평가 그 이상의 뭔가가 있겠나 싶다. 트럼프 이전으로, 박근혜 이전으로. 올해는 코로나19 사태로 유엔 기후총회가 제때 열리지 못하고 내년으로 연기됐다. 대신 개최 도시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 기후정의 진영(COP26 Coalition)이 모여 온라인 행사(From the Ground Up: Global Gathering for Climate Justice, 11월 12일~16일)를 진행한다. 진짜 탄소중립과 그린뉴딜, 그리고 정의로운 전환의 동향을 점검하고, 지역, 국가, 국제 스케일에서의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는 자리다. 출발이 늦었으니, 우리에게 더 큰 도약말고는 방법이 없다. 정의로운 전환이 법제화되는 마당에 정의로운 탈핵․탈석탄 전환 계획과 프로그램을 구상하고 실행해야 한다. 유럽에서는 2015년부터 정의로운 전환 프로그램 논의가 시작됐고, 2017년부터 탈석탄 지역전환 플랫폼(Coal Regions in Transition Platform)이 가동되면서 전환실험이 예비적으로 실행되고 있다. 2018년 그리스에서 촉발돼 정식화된 유럽 지방정부 정의로운 전환 포럼(Pan-European Forum of Just Transiton Mayors)은 노동단체, 환경단체과 연구조직과 함께 유럽 그린딜과 국가별 정의로운 전환 프로그램을 현실화하는 데 주요 동력이 되고 있다. 에너지전환과 기후대응을 선도하는 방법 중 하나는 지역에서 선도적으로 관련 계획을 수립하고 대안 모델과 전환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작업이다. 그리고 정부에 요구하고 사회에 요청하자. 미래의 문을 함께 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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