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지난 6월 12일 본지 기고문(☞관련기사: 최근 기본소득 논의가 놓치고 있는 것들)에서 기본소득이 궁극적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사회적 활동가치가 개인의 선한의지에 의존한다는 문제, 현재 존재하는 각종 사회정책과의 협력 방안 논의가 부족하다는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당시 기고의 의도는 유토피아적 사회정책의 '끝판왕'인 기본소득 정착을 위해 중간 단계로 참여소득의 필요성을 제기하고자 함이었다. 그러나 당시 본지의 기본소득 논의는 기본소득 찬성자와 제3의 길인 복지정책그룹 간의 논쟁으로 덮여있어 참여소득 논의가 들어갈 틈이 없어 추가적인 기고가 어려웠다. 그러나 최근 기본소득 논의가 잦아들어 기본소득을 비롯한 미래 사회정책 담론의 지속적인 논쟁을 이어가고자 하는 마음에 앞으로 세 차례에 걸쳐 참여소득의 의미와 필요성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참여소득에 대한 두 번째 논의에 해당되는 이번 글에서는 사회기여, 지역공동체 참여 방책으로써 참여소득의 탄생 배경과 정의, 그리고 주요 논쟁들을 소개한다. 앞으로 연재할 세 번째 글에서는 우리나라의 참여소득의 현황을 유럽의 참여소득과 비교해 본다. 마지막으로는 참여소득의 활성화를 위해 필요한 제도적 대안을 모색할 예정이다.
앞으로의 기고는 지난 5월30일 한국사회경제학회 춘계 학술대회에서 필자가 발표한 논문 "참여소득, Capability, 그리고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 중 참여소득의 일부만을 발췌 각색한 것이다.
2년 전 핀란드 기본소득 실험을 주도한 헤이키 힐라모(Heikki Hiilamo)는 캐서린 콤프(Kathrin Komp)와 함께 네덜란드, 독일, 덴마크, 핀란드 네 나라의 사회적 참여(social participation)와 참여소득 사례를 연구하였다. 이 연구는 토니(Tony)의 참여소득 정의인 유료 일자리, 교육과 훈련, 자녀 및 고령자 돌봄, 승인된 형태의 자발적 노동 분야를 비교 분석하였다. 연구 결과, 네덜란드가 가장 폭 넓게 유료 일자리, 어린이와 부모 돌봄, 성인(지속)교육을 사회적 참여로 인정하고 있으며, 자발적 봉사도 참여소득으로 인정함이 확인됐다. 연구에서 독일은 중간정도 수준의 국가로 인정됐다. 유료 일자리는 참여소득으로, 돌봄은 가능하기는 하지만 완전하지 않은 사회적 참여로 인정하고, 자발적 봉사가 효율적이라면 사회적 참여로 인정이 가능하다는 독일의 입장 때문이다. 덴마크는 자발적 봉사와 돌봄은 사회적 참여로 인정하지 않았으며, 핀란드의 경우 돌봄은 참여소득으로 인정하지 않으나 자발적 봉사나 성인 지속교육훈련은 가능하다는 입장이었다.대한민국, 교육훈련, 유료 일자리, 돌봄분야에서 참여소득 강국
우리나라의 경우를 보자. 이미 한국은 참여소득 강국이다. 우선 교육훈련 분야에서 평생교육 중 시민참여 교육, 문화예술교육은 참여소득이라 명명할 수 있으나, 학위중심형 평생교육은 수요자 부담 원칙을 하고 있기 때문에 참여소득 정의에 부합하지는 않아 보인다. 반면 직업훈련은 참여소득으로 보아도 손색이 없다. 1998년 금융위기 이후부터 실업자 훈련 또는 인력양성 훈련에 참여하는 이는 무료 훈련비 외에 '훈련장려금' 명목으로 매달 30만 원가량 지원받는데, 훈련비와 훈련장려금 모두 합쳐 참여소득(여기서 참여소득 규모를 논하지는 않지만 실업자 및 인력양성 훈련의 경우 훈련비, 훈련수당 포함 최소 수백만 원에서 국립대 인문사회계열 4년 치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까지 가능하다)으로 정의할 수 있다. 또한 저소득층과 청년층일부를 대상으로 하는 '취업성공패키지' 훈련에 참여하여도 매달 30만 원 이내의 훈련장려금을 받으니, 이 또한 참여소득이라 정의하는데 아무 문제는 없어 보인다. 최근 도입된 실업시 6개월 동안 매월 50만 원을 지급하는 국민취업지원제도는 확실한 참여소득이다. 교육 훈련생만 참여소득을 받는 것도 아니다. 현재 우리나라 민간직업훈련 시장에서 정부 보조금이 훈련기관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평균 70~80%에 육박하여 훈련교사들까지 참여소득을 받는다고 볼 수 있다. 둘째 돌봄의 경우를 보면 정부가 0세에서 5세 미취학 어린이를 대상으로 적게는 24만 원, 많게는 47만 원의 어린이집 보육비를 지원하고 있다. 어린이 돌봄 참여소득이 시행 중이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실업자 직업 훈련처럼 당사자에게 현금으로 직접 제공하지 않고 (보육)기관에 지급하기는 하지만, 남성과 여성의 돌봄이라는 사회적 기여와 양육의 공공성 기여라는 점에서 참여소득이라 할 수 있다. 양육수당, 아동수당도 아이 돌봄차원에서 참여소득이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집안의 가구원이 가구 내 중증 고령자 돌봄을 위해 요양보호사 자격을 취득하면 국가에서 임금을 보조하던 적이 있었다. 이 또한 참여소득이다. 가족이 아닌 노인, 장애인을 요양하고 돌봄의 일을 하는 요양보호 활동도 참여소득이다. 셋째, 승인된 자발적 일을 지원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다. 이중 대표적인 것이 사회적 기업, 마을 기업, 협동조합이라 할 수 있다. 이들 세 가지 사업은 민간 영역에서 투자 수익 문제로 참여하지 않은 비충족 사회요구 사항(Unmet Social Needs)을 해결하기 위한 지역 주민의 자발적 일자리다. 이를 위해 고용노동부(사회적 기업), 기획재정부(협동조합), 행정안전부(마을기업)에서는 근로자 채용 시 인건비를 1년차 70% 3년차 30% 내외로 지원한다. 이는 참여소득이라 정의할 수 있다. 문제는 참여소득의 지속성과 충분성이다. 넷째, 일종의 유료 일자리(Paid work) 형태로 각 지자체가 시행하고 있는 의용소방대, 산림 숲 해설가, 지역문화해설가, 문화예술교육 전문인력 지원사업, 청년활동가 육성지원 사업, 그리고 소위 공공근로로 폄하되던 공공의 일자리 지원사업은 참여소득으로 정의하여도 무방하다. 이들 일은 빛나지는 않지만 조용하게 우리의 삶을 쾌적하고 안전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아직까지 활성화되어 있지 않지만 생활 사회간접자본 확충을 통한 문화예술 지원사업, 체육, 의료, 교육사업(방과후 수업 등)에 소요되는 인력채용과 활용도 참여소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외에도 공공의 안녕과 시민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는 체계적, 지속적인 시민 단체활동, 일시적, 일회성이 아닌 사회봉사활동 등도 참여소득으로 정의할 수 있다.참여소득, 사회운영 체제의 리눅스
일자리 프로그램만큼은 세계적으로 우리나라가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지 않을까 추정된다. 다양한 일자리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은 우리나라에 그만큼 보편적이고 안정적인 사회보장제도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반증이다. 2015년 청년층고용 정책 프로그램 수만 해도 중앙부처, 지자체를 합쳐 288개에 달한다. 여성, 장애인, 중장년, 고령자, 저소득층 등 대상별로 확장하면 프로그램 수는 상상히 안 갈 정도다. 이는 유럽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북유럽을 비롯한 유럽국가의 복지가 오늘날 근로연계형복지로 바뀌었다 할지라도, 여전히 우리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안정적 사회보장 제도가 운영 중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우리나라의 많은 일자리 프로그램 수는 참여소득을 발굴하고 활성화하는 자양분이 될 수 있다. 지금까지 필자가 정의한 참여소득에 일부 독자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 있다. 필자는 대한민국의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 프로그램 중 정부가 일자리 사업과 실업대책으로 주로 사용하던 직업훈련과 돌봄을 참여소득으로 정의했기에, 어쩌면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의 생각과 다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글의 의도는 정확히 성공한 것이다. 왜냐하면, 이전 글에서 필자는 참여소득은 열려있는 논의의 공간이며 새로운 정의를 내릴 수 있는 자유를 허용한다고 말하였다. 참여소득은 컴퓨터 운영체제인 리눅스처럼 참여소득에 관심있는 모든 사람이 다 같이 우리가 머물고 있는 공간의 사회 운영체제를 만들어가는 사회운영체제의 리눅스이다. 중앙정부 및 지자체의 일자리 정책과 프로그램 모두를 참여소득으로 규정할 수는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것이 진정한 참여소득이고 이는 기존의 공공근로와 무엇이 다르고 같은가를 따지는 것보다, 어떻게 하면 기존의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의미 있는 공공의 일로, 사회기여 일로, 참여소득으로 재탄생시킬 수 있는가에 주목해야 한다는 점이다. 중앙과 지방 정부 관료의 행정력에 의존해 진행할지, 아니면 지역주민이 숙의 민주주의와 참여를 통해 자신들에게 가장 최적화된 사회적, 공공적인 비충족사회 요구를 정의하고 결정하고 수용할지에 따라 참여소득의 성패는 판가름 날 것이다. 지금처럼 중앙 정부 위주의 지역 일자리 사업 정책, 심지어 광역시나 도와 읍면동간의 차이 없는 일자리 정책을 지속할지, 고용보험이라는 고용 중심의 일자리 성과에 얽매여 지역주민의 다양한 요구를 외면하는 일자리 정책을 유지할지는 그 지역, 국가의 선택사항일 수밖에 없다. 다만 최근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초네트워크 발전에 힘입어 지역과 개인의 다양한 요구를 충족하는 정책요구가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은 인지할 필요가 있다. 이때 참여소득은 인간의 다양한 요구를 충족시키고자 하는 시민들의 자기 존엄성과 정체성을 지키고 유지하는데 기여할 것이다. 다음에서는 참여소득의 활성화를 위한 지역사회의 참여, 시민화, 공공일의 역할을 알아본다.참고문헌
1. 김미정(2016), "육아와 보육의 공공성, 그리고 기본소득", 『기본소득의 쟁점과 대안사회』, 박종철 출판사.
2. 이상준외(2019),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의 정치공학적 소비 -직업교육훈련 정책을 중심으로-」, 한국사회정책학회 춘계 학술대회 발표논문.
3. Heikki Hiilamo 와 Kathrin Komp(2018), "The Case for a Participation Income: Acknowledging and Valuing the Diversity of Social Participation", The Political Quarterly, Vol. 89, No. 2, April–June.
4. Kathi Weeks(2011), "The problem with work", 제현주 옮김(2017), 『우리는 왜 이렇게 오래 열심히 일하는가?』 동녘 출판사.
5. 고용노동부(2015), 『한 권으로 통하는 청년 고용정책』.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