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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적시 명예훼손, 우린 언론 자유를 내어 주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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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사실 적시 명예훼손, 우린 언론 자유를 내어 주고 있었습니다 ['진실유포죄'를 고발합니다] "44억 의대 편입 사기" 주인공 말했다가 벌금형

진실탐사그룹 <셜록>이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헌법소원심판청구서'를 지난 10월 8일 헌법재판소에 접수했다. 진실한 이야기는 보호 받아야 한다는 믿음으로 청구인으로 직접 참여한 것이다.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 기본 바탕이다. 사실을 말할 자유를 '진실유포죄'로 가둘 수 없다는 판단이다. <셜록>은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앞두고 '진실유포죄'의 문제를 알리고자 <프레시안>에 '진실유포죄를 고발합니다'라는 연재를 진행한다. 진실을 말했다가 사실적시 명예훼손에 의해 형사 처벌당한 사례, 침묵을 강요당하는 피해자의 고통, 가해자의 역고소, 국내와 다른 해외의 명예훼손법 등을 담을 예정이다.

의대 불법 편입을 위해 44억 원을 쓴 사람이 누군지 지인에게 발했다가 벌금형을 선고 받은 사람이 있다. A 씨 사연은 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 선생. 최신옥 명진고 이사장이 얼마나 기막힌 사람인 줄 알아?"
A 씨는 오랜만에 광주 명진고 김○○ 교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2013년 9월의 일이다. A 씨가 명진고를 떠난 이후에도 그 학교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채무 관계 때문이다. 최신옥 명진고 전 이사장이 A 씨에게 수십 억 원을 줘야했다. 최 전 이사장은 2009년 5월 A 씨에게 35억 원의 빚을 졌다. 빚은 10년 뒤에 54억 원으로 불었다. 최 전 이사장이 돈을 갚지 않자 A 씨는 소송을 걸어 2014년 2월 승소했다. A 씨는 소송을 하면서 늘 생각했다.
'최 전 이사장 정말 갚을 돈이 없어서 못 주는 걸까?'
A 씨는 상대로 민사소송을 하던 중, 희대의 기여입학 사기극 주인공이 최 전 이사장이란 걸 우연히 법원에서 접했다. 최 전 이사장에겐 숨겨둔 돈이 있었다. 최 전 이사장은 A 씨에게 빚을 갚을 여력이 충분했다. 그는 딸을 의대에 불법 편입시키기 위해 최 씨가 44억 원을 썼다가 사기당했다.
▲ 광주 명진고 ⓒ셜록
이 사실을 접하고 A 씨는 최 전 이사장의 행적을 쫒기 시작했다. 사기사건 전말이 담긴 판결문을 입수해 살폈다. 알고 보니, 최 전 이사장의 일화는 이미 TV, 신문에 대서특필 됐다. 포털사이트에서 ’44억 의대‘라고만 검색해도 관련 기사가 쏟아졌다. 다만 기사에 '최신옥'이라는 이름이 나오지 않을 뿐이다.
'교육자가 돈으로 딸을 의대에 입학시키려고 하다니.'
최신옥은 딸 부정입학을 시도했을 때 사립학교 이사장이었다. A 씨는 명진고 교사와 학생들은 최 전 이사장의 과거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A 씨는 답답한 마음에 김○○ 교사에게 전화를 했다. A 씨는 판결문과 기사에 나온 사실을 김 교사에게 전했다.
"김 선생, 포털사이트에 도배된 <‘의대편입 44억’ 기여입학 사기극> 기사에 나온 사람이 누구인 줄 알아? 최신옥이야!"
최신옥 명진고 이사장이 딸 의대 편입을 위해 44억 원 썼다가 사기를 당한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2009년 5월, 명진고 이사장에 오른 최신옥은 딸을 의대에 보내고 싶었다. 딸 성적이 의대에 갈 정도는 안 됐지만, 최신옥에게는 돈이 많았다. 그는 돈을 쏟아 부으면 딸을 의대에 편입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잡지사를 운영하던 B 씨와 국립대 재단 이사장 출신 C 씨가 최신옥 얘기를 전해 듣고, 의도적으로 접근했다.
"체육관 지을 돈 40억 원을 내면, 사립대 의대에 편입할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의 유혹에 최신옥은 40억 원을 건넸다.
"우리가 총장 만나고 왔는데 40억 원 발전기금만 내면 의대에 갈 수 있게 허락 받았어요. 교수도 시켜줄게요."
단국대학교 경영대학원 교학과장 D 씨가 만든 가짜 합격증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D 씨는 최 씨를 속이기 위해 대학총장 직인을 훔쳐서 의대 편입 합격증을 제작했다. 가짜 합격증은 B와 C 씨를 통해 최신옥에게 전달됐다. 최신옥은 성공보수비 4억 원을 B와 C 씨에게 전달했다. 의대 편입 합격자 명단에 딸 이름이 없다는 것을 발견하고서야 최신옥은 44억 원 사기를 당했다는 것을 알아챘다. 최신옥은 자신을 속인 사람들을 고소했다. 2011년 10월 서울중앙지법 재판부는 B 씨에게 징역 7년, C 씨와 D 씨에게는 징역 5년이 선고했다.
"교감 선생님, 그거 아세요? <'의대편입 44억' 기여입학 사기극> 기사의 주인공이 우리 이사장님이라네요."
김○○ 교사는 A 씨 얘기를 듣자마자 곧장 교감과 행정실장을 찾아가 해당 사실을 전했다. 교감과 행정실장은 최신옥 전 이사장에게 연락해 김 교사에게 들은 말을 그대로 옮겼다. 최 전 이사장은 분노했다.
"누가 그런 말을 했습니까? 그 말을 한 사람을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할 겁니다!"
최 전 이사장은 '진실의 발원지'가 A 씨라는 걸 알아냈다. 최신옥 전 이사장은 A 씨를 '사실적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우리나라 형법 제307조 1항에는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나와 있다. 최신옥은 명진고 실세였다. 전직 이사장이었지만, 실질적으로 학교 관리 업무를 총괄했다. 첫째 딸 F 씨와 남편 김인전 씨가 번갈아 명진고 이사장을 맡는 동안, 최 씨가 명진고 운영을 주도했다. 김○○ 교사에게 증인을 서달라고 최 전 이사장의 제안을 거절하지 못했다.
▲ 광주교사노동조합과 부당해임 교사, 명진고 학생들이 지난 6월 11일 명진고에서 학교 재단을 비판하는 피켓 시위를 벌이는 모습. ⓒ명진고 학생 제공
A 씨는 단 한 명에게 진실을 얘기했다는 이유로 유죄를 선고받았다. 광주지방법원 재판부(재판장 모성준)은 "A 씨의 말이 학교법인의 이사장으로서 도덕성이나 윤리성이 없다는 취지의 발언으로 해석될 수 있고, 피해자에 대한 사회적 가치 혹은 평가를 저해할 가능성이 있다"며 A 씨에게 250만 원 벌금형을 선고했다.
"전파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A 씨와 김○○ 교사는 친밀한 관계가 있다고 보기 어려운 데다, 실제로 김○○ 교사는 A 씨 발언 내용을 알렸기 때문에 전파할 가능성이 없는 특정한 사람이라고 볼 수 없다." – 광주지방법원 2014고단5045
물론 사실을 적시했더라도 공익성이 인정되면 처벌을 피할 수 있다. 공적인 사안이나 공인을 고발할 경우 법원은 대체로 '공익성'을 인정해 주지만, '공익성'의 기준은 모호하다. 재판부는 A 씨가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언론이 아닌 개인의 고발은 좀처럼 '공익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A 씨는 항소했다. A 씨는 "이미 언론을 통해 발표된 사실을 말했으니 최신옥 명예가 훼손될 가능성도 없지 않느냐"고 따졌다. 2심 재판부(재판장 송기석)은 "명예훼손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숨겨진 사실을 적발하는 것에 한하지 않는다"면서 20년 전 대법원 판례를 인용했다.
"이미 사회의 일부에 잘 알려진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이를 적시하여 사람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행위를 한 때에는 명예훼손죄를 구성한다." – 대법원 93도3535 판결
유언비어를 퍼뜨린 것도 아닌 전국적으로 보도된 기사 내용을 말했을 뿐인데, 범죄자 낙인을 찍은 사법부를 A 씨는 이해할 수 없었다.
"명예훼손 재판에서 승소하고 최신옥 전 이사장은 무서운 게 없어졌다. 제가 패소했다는 걸 알고, 최 전 이사장의 비밀을 아는 사람들은 알아도 모르는 척을 할 겁니다." – A 씨
이 사건 이후에도 최신옥은 자기 명예를 스스로 무너뜨렸다. 그는 학교 돈으로 1억3000만 원짜리 벤츠를 사고, 또 그 벤츠를 담보로 1억 원을 몰래 대출을 받아 썼다가 처벌 받았다. 그는 2018년 6월, 업무상횡령죄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그는 교사 채용 시 돈을 요구했다가 실형을 살았다. 최종 면접에 오른 지원자를 서울의 한 식당으로 불러 "5000만 원을 내면 지리교사로 채용해 주겠다"고 말했다가 지난해 4월 배임수재 미수죄로 징역 6월 실형을 선고 받았다. 최신옥의 여러 문제가 드러났지만 명진고 교사와 학생들은 진실을 말하기 어렵다. 진실을 말해도 A 씨처럼 사실적시 명예훼손으로 처벌당할까 두려워서다.
▲ 광주 명진고 학생들이 지난 9월 24일 명진고 비리를 비판하는 학내 집회를 진행 중이다.ⓒ명진고 학생 제공
실제로 최신옥 일가는 광주에서 '고소왕'으로 불린 지 오래다. 명진고나 최신옥 일가를 비판하면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하기 일수다. 학생도 예외는 아니다. 명진고 측은 해임 교사 복직을 주장하는 현수막을 게시하고 보도자료 배포한 학생과 시민활동가, 그리고 이를 기사화한 기자를 지난 6월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고소 결정에는 최신옥 일가가 깊이 개입되어 있다. 최신옥의 두 딸은 명진고 교사다. 의대에 못 간 둘째 딸은 현재 명진고 교감직무대행을 맡고 있다.
"의대편입 44억 기여입학 사기극의 주인공이 최신옥이라는 걸 우리가 모를 거라고 생각하시죠? 아니에요. 모르는 사람 없어요. 말하면 소장 날아오니까 말 못하는 겁니다."
명진고로부터 부당 해임당한 E 교사가 <셜록>에 전한 말이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한, 명진고 교사와 학생들은 최신옥의 어두운 과거와 문제를 쉽게 말할 수 없다. 학생들도 말할 자유를 잃고 있다. 점심시간에 학교 비리 의혹을 비판하는 시위를 여는 학생들에게 명진고 교장은 이렇게 외쳤다.
"남을 불편하게 하는 자유는 없어!

이 기사는 <프레시안>·<셜록> 제휴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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