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 → 비방' 바뀌면서 1심 무죄, 2심 유죄
얼마 후 A 한의원 한의사는 B 씨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B 씨가 인터넷에 A 한의원 한의사 명예를 훼손하는 글을 올렸다는 이유에서였다. 검찰은 B 씨를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로 기소했다. 검찰은 "B 씨가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해 공연히 사실을 드러내어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주장했다. 1심 법원은 B 씨 손을 들어줬다. "표현상 오류나 과장은 있지만, 사실에 부합하고 다른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기 위해 글을 썼다고 동기를 밝힌 점"을 들어 2014년 2월 무죄를 선고했다. B 씨의 행동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다고 본 것이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로 처벌되지 않는 유일한 조건은 '공익적 목적'이 인정될 때다. 공익을 위해 사실을 유포하는 것에 대해서는 죄를 면해준다. 공익의 반대 개념은 비방으로 여겨진다. 1심 재판부는 'B 씨가 환자의 의사결정에 도움이 되는 정보와 의견을 제공한 점'과 '특정 분야 인터넷 소비자에게만 정보를 제공한 점'이 비방할 목적과 거리가 멀다고 판단했다. 2심에서 결과는 뒤집혔다. 2014년 8월, 2심 재판부는 원심을 뒤집고 B 씨에게 50만 원 벌금형을 선고했다. B 씨가 공익적 목적이 아닌 비방의 목적으로 글을 썼다고 여겼다. 2심 재판부는 '의사가 부패한 한약을 아이에게 먹여도 된다고 말했다고 오인할 수 있게 글을 쓴 점', 그리고 '부패 원인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그 책임이 모두 한의사에게 있는 것처럼 글을 쓴 것'은 한의사를 비난하기 위해 한 행동 같다고 판단했다. 사건은 대법원까지 갔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상고 기각 결정을 나오면서 2015년 3월 B 씨에게 벌금 50만 원형이 확정됐다.모호한 법원의 '비방의 목적' 기준
소비자는 물품을 선택할 때 긍정이든 부정이든 정보를 제공받을 권리가 있다. 소비자 권리는 우리 법에 보장되어 있다. '소비자가 물품을 선택하는데 필요한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는 권리' 그리고 '소비자가 사업자의 사업 활동 등에 대하여 의견을 반영시킬 권리'가 있다고 소비자기본법 4조에 적혀있다. 헌법 제124조에도 "국가는 건전한 소비행위를 계도하고 생산품의 품질 향상을 촉구하기 위한 소비자보호운동을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한다"고 나와 있다. 하지만, 소비자 권리가 실제로 잘 실현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소비자가 의견을 표출하기 쉬워지자, 사업자가 자신에게 좋지 않은 내용을 쓴 소비자를 명예훼손으로 형사 고소하거나 민사상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사례가 늘어났다. '비방의 목적'이 인정되면, 유포한 내용이 사실이든 아니든지 간에 명예훼손죄로 처벌될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하는 것이다. 고소만으로 소비자의 입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기 때문에, 사업자는 고소 혹은 고소 경고를 통해 손쉽게 안 좋은 평판을 관리할 수 있다. 문제는 '비방의 목적' 기준이 모호하다는 점이다. B 씨의 1심과 2심 결과가 달랐듯 '공익적 목적이냐 비방의 목적이냐' 판단하는 법원의 기준은 명확하지 않다. 법원의 판단을 통해서만 처벌 여부가 가려지기 때문에 판사가 누구냐에 따라 달라지곤 한다. 판례에 나온 비방에 대한 기준은 추상적이다. 내용과 유포 상대, 표현 방법 등을 고려해 비방의 목적이 있었는지 여부를 결정한다고 정한다고는 하지만, 이를 근거로 비방 유무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판사 개인이다. B 씨와 유사한 일을 겪은 C 씨의 사례만 보더라도 추상적이고 모호한 '비방'의 기준을 알 수 있다. 2011년 12월, C 씨는 유명 산모 인터넷 카페에 ○○산후조리원을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 온수 보일러가 고장 나고, 산후조리실 사이에 소음이 발생하는 등의 문제가 생기자 조리원에 환불을 요구했다. C 씨는 환불 과정에서 겪은 조리원과의 갈등을 카페에 올렸다. 산후조리원 측은 C 씨를 고소했다. 명예훼손으로 피고인석에 선 C 씨는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1심 재판부는 C 씨 행동에 비방의 목적이 인정된다며 다음과 같은 이유로 2012년 6월 B 씨에게 50만 원 벌금형을 선고했다. '막장 대응'과 같이 다소 과격한 표현을 쓰는 등 비난 수위가 정도를 넘었다는 점을 유죄의 근거로 들었다. 항소 기각 후 이어진 대법원 판결은 정반대였다. "산후조리원에 대한 정보를 구하고자 하는 임산부의 의사결정에 도움이 되는 정보 및 의견 제공이라는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이라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피고인의 주요한 동기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면 산후조리원 이용대금 환불과 같은 다른 사익적 목적이 내포되어 있더라도, 그러한 사정만으로 피고인에게 비방할 목적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범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같은 사례, 다른 결론
B 씨와 C 씨 모두 불만족스러운 서비스를 경험하고 환불을 요구했다가 사업주로부터 거절당한 후 사업주를 비난하는 글을 인터넷에 올렸다. 둘 다 유죄, 무죄를 한 번씩 경험했지만, 결과는 크게 갈렸다. B 씨는 유죄, C 씨는 무죄가 나왔다. 한의원에 대한 불만을 인터넷에 게시한 B 씨는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결국 벌금형이 확정돼 범죄자가 됐다. 반면, 산후조리원에 대한 불만을 인터넷에 게시한 C 씨는 항소심까지 유죄였다가 대법원에서 무죄로 결론 나 억울함을 씻었다. 과연 B 씨와 C 씨의 결과 차이를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다만, 몇 가지 사실은 명확하다. B와 C 씨가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겪은 고초는 형벌에 준하는 수준이었을 것이다. 사업자가 소비자를 상대로 고소를 했다는 사실 자체가 알려지는 것만으로 입을 여는 소비자는 줄 것이다. 소비자 권리가 설 자리가 줄어든다.이 기사는 <프레시안>과 <셜록> 제휴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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