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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국적 유부녀 레즈비언이 잘사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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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국적 유부녀 레즈비언이 잘사는 방법 [양지훈 변호사의 법과 책] <언니, 나랑 결혼할래요?>
'아름답다'는 단어는 아름답다. 고교 시절 존경하는 은사님께 이 말의 어근을 들은 적이 있다. 선생님의 설명은 '아름'이란 말이 '나'라는 뜻을 가지므로 아름다운 삶이란 곧 나다운 삶이라는 것이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그 말은 부정확한 것으로 밝혀졌지만, 나는 여전히 선생님이 가르쳐주신 왜곡된 뜻을 더 좋아한다. 이제 막 인생을 시작하려는 열아홉 우리들에게 '아름답게 살아라, 바로 너답게'라는 말은 얼마나 근사한가. 하지만, 나답게 산다는 것이 간단치 않다는 것은 나이가 들수록 깨닫게 된다. 누가 불혹과 지천명을 말하는가, 인생을 살아갈수록 오히려 그 답은 찾기 어려워진다. 하루하루를 버티며 사는 대로 생각하다 보면 사회적 요구와 의무에 강요당하며 자신을 잃는 삶이 예정되어 있다. 특히나 표준적인 삶, '정상의 삶' 이외에 다른 대안은 없다는 듯이 구는 한국 사회에서 아름다움을 찾기란 얼마나 어려운지.

레즈비언으로서, 나다운 삶

<언니, 나랑 결혼할래요?>(김규진 지음, 위즈덤하우스 펴냄)를 '아름다운 삶'을 위한 투쟁으로 읽었던 것은, 이 땅의 성소수자로서 나답게 살기 위한 저자 부부의 경쾌하지만 우직한 의지를 확인했기 때문이다. 이 '레즈비언 에세이'가 경쾌한 것은, 작가가 원하는 레즈비언으로서의 일과 사랑을 삶 속에 정확히 구현하고자 하는 일상의 전략 때문이기도 하다. 그 전략은 투쟁적이지만 부드럽고 단호하지만 유연하다. 이 책의 제목 역시, 왠지 도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지만 동시에 '귀엽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내가 보기에 저자가 주장하는 자신의 귀여움(?!)이 제목에도 반영된 것 같은데, 책날개의 저자 소개는 이렇다.
"한국 국적 유부녀 레즈비언. 왜 아무도 레즈비언으로 잘사는 법을 알려주지 않는지 궁금해하다, 그냥 제 이야기를 공유하기로 했습니다."
소제목들 역시 내용의 대강을 짐작할 수 있을 만큼 직설적이다. '1. 레즈비언이지만 잘 살고 싶습니다. 2. 우린 오늘 결혼하지만 혼인신고는 거절당할 거야. 3. 해보기 전엔 모르는 거야.' 작가는 에둘러 말하는 법이 없고 중언부언하지 않으며 처음부터 끝까지 정직하게 스스로를 내어 보인다. 어설펐던 첫 커밍아웃부터 500번의 커밍아웃을 거친 후 프로 커밍아웃러가 되기까지, 그래서 이제 자못 경쾌한 커밍아웃 기술을 후배들에게 소개하고 회사에서도 몸쪽 꽉 찬 직구와도 같은 커밍아웃 이후, 레즈비언 커플로서 6일간의 결혼 휴가와 축의금을 받아 내기까지, 그 여정이 너무 상쾌하다.
▲ <언니, 나랑 결혼할래요?>(김규진 지음, 위즈덤하우스 펴냄) ⓒ위즈덤하우스
이쯤 되면 저자의 캐릭터가 영화에서나 볼 법한 소수자 운동의 전사로 느껴질 법하지만, 스스로를 '보수적인 유교 레즈비언'이라고 선언하며 독자의 편견을 깬다. 작가는 은근히, 자유분방한 성생활을 갖는 이성애자의 비율만큼 동성애자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뿐이라고 강조하는 것이다. 이 책은 억압적인 한국 사회에서 겨우 살아가고 있을 성소수자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한 목적과 함께, 성소수자에 대해 노골적인 편견과 은근한 혐오를 갖고 있는 이성애자들에게도 부드러운 교정의 기회를 주기 위해 쓰였을 것이다. '보통 시민으로서 레즈비언'을 강조하는 것은 그러한 전략의 일환일 것이다.

PPT 프러포즈와 악플러 고소 사이

작가는 일과 사랑을 자신답게 쟁취하기 위해 애쓰는데, 여러 에피소드 중 저자의 귀여움과 기백을 보여준, 인상적인 두 장면이 있다. 그는 자신의 귀여움이 가볍지 않음을, 연인에게 프러포즈를 PPT 기획서로 하는 장면을 통해 보여준다. 동성 결혼 허용 국가에서의 혼인신고 절차를 안내하고, 결혼 후 상호 책임을 위한 서류 작성의 종류를 일별한 후, 동거에 필요한 정량적·정서적 요소들을 나열한다. 공동 대표 법인 설립, 특별 연고자 상속 재산 분여부터 가족 마일리지 합산, 수술 시 보호자 동의까지 리서치를 해 두었으니 정말이지 섬세하고 사려 깊은 결혼 제안서가 아닐 수 없다(결혼을 염두에 둔 독자라면 적극 따르고 본받을 만하지 않은가). 그의 용기와 주도면밀함은 인터뷰 기사에 달린 악플에 대처하는 장면에서 빛을 발한다. 세 건의 기사에 달린 댓글 1만2000건 중 일부를 분석하여 그 내용을 분류하고, 혐오 댓글과 다른 기사에 단 댓글을 비교하여 악플러들의 성향을 파악한다. 이 작업은 저자가 이들을 고소하기 위한 사전 정비작업이자 고소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이후 변호사를 선임해 고소를 진행하고 일부에겐 사과까지 받아낸다. 이것을 기백, '진취적이고 씩씩하며 굳센 기상을 지닌 정신'이라고 부르지 않는다면 달리 뭐라고 할 수 있을까.

가장 보통의 삶을 응원한다

저자 부부가 성소수자이지만 이성애자들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공장식 웨딩'을 스스로 선택하고, 무사히 식을 치러내는 장면에선 왠지 모를 통쾌함이 느껴진다. 이들 부부의 성별이 같음을 제외하고는 다른 이성 커플들의 일과 생활, 취향에서 차이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보통'의 두 와이프를 막는 것은 그들 내부가 아니라 그들 외부에 엄연히 존재한다. 구청에 했던 그들의 혼인신고가 반려되는 장면이 그 경계를 명확히 드러낸다. 이 반려 처분을 가능하게 한 논리를 우리 민법 교과서에서 확인해보면 이런 구절이 발견된다.
"혼인은 남녀 간의 단순한 성애에 기한 결합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정당하다고 시인되고 동시에 법질서에 의하여 승인된, 양성의 생활공동을 목적으로 하는 결합으로, 대표적인 가족법상의 법률행위(계약)이다. 따라서 법적 승인 없이 혼인은 존재하지 않으며, 법적 승인이 있음으로써 혼인은 비로소 다른 비정상적인 남녀관계와 달리 법에 의하여 보호된다."(<민법강의>(지원림 지음, 홍문사 펴냄, 2009), 최신판에는 이 서술이 조금은 바뀌어있을지 궁금하다.)
이들이 부부로 인정되지 못할 이유란 도대체 무엇일까. 프랑스의 시민연대계약(결혼 제도를 통하지 않고 이성뿐만 아니라 동성 간에도 준가족적 지위를 보장하는 사회계약) 같은 진보적 제도까지 언급할 필요는 없겠다. 다만, 나는 우리 법 테두리 안에서도 이들을 옹호할 근거를 찾고 싶다. 그리하여, 현재 우리 법의 적극적 해석으로도 이들의 부부로서의 지위가 인정될 수 있다고 주장해본다. 법원은 법률혼이 아닌 사실혼 역시 제한적으로나마 보호하고 있으며, 그 성립 요건으로 두 가지만을 들고 있는데, "주관적으로 사실상의 혼인 의사의 합치가 있어야" 하고 "객관적으로 당사자 사이에 사회관념상 부부 공동 생활이라고 인정할 만한 사회적 실체가 상당 기간 계속되거나 지속이 예정되어 있어야" 한다는 요건이 그것이다. 이들은 이미 사실혼의 요건을 모두 만족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가장 보통의 이들 커플의 행복을, 보통의 방식으로 빌어주지 못할 이유가 무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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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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