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은행의 채용비리를 살펴보면, 그야말로 '막장'이란 말이 떠오른다. 국민은행은 2015년부터 2016년까지 정규직 신입사원 공채에서 무려 190명을 부정하게 채용했다. 이 기간 국민은행 전체 신입사원은 655명이니, 약 3분1을 부정하게 채용한 셈이다. 채용 비리를 저지른 국내 다른 은행을 압도하는 규모다. KB금융지주 회장이 연루된 걸로 보이는 2015년 부정 입사의 한 사례를 보자. 김수현(가명)이라는 남자는 120명 채용을 예고한 2015년 국민은행 상반기 신입사원 공채에 응시했다. 서류전형이 진행중인 2015년 4월 당시, 오O 국민은행 채용팀장은 인사팀 상사들로부터 이런 취지의 지시를 받았다.
"사실상 청탁받은 지원자들은 가급적 합격시키도록."
권OO 당시 인력지원부 부장은 청탁받은 지원자 명단을 오 팀장에게 건넸다. 그 명단에는 김수현도 포함됐다. 그의 이름 옆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회장님 각별히 신경"
오 팀장은 이를 KB금융지주 회장과 KB국민은행 은행장을 겸임하는 윤종규 회장의 지시라고 인식했다. 오 팀장은 이 지시를 따르지 않으면, 인사 및 보직 등 각종 처우에서 불이익을 받을 거라 짐작했다. 특혜 없이 알아서 합격권에 들면 좋으련만, 김수현은 서류전형 합격자 커트라인 중 '꼴찌'였다. 국민은행은 서류전형 합격자 정원을 840명으로 계획했는데, 그 중 김수현은 공동 840등이었다. 서류전형 합격자 발표 직전인 2015년 5월 11일, 오 팀장은 상부의 승인을 받고 서류전형 합격자 정원을 30명 더 늘렸다. 이렇게 김수현은 간신히 통과했다. 김수현은 최종 단계인 2차 면접 평가에서 'BC 등급'으로 또 불합격권에 들었다. 이번에도 오 팀장이 나섰다. 그는 채용팀 직원에게 김수현의 평가등급을 'AA 등급'으로 상향 조작하도록 지시했다. 두 번의 부정한 도움으로 김수현은 최종 합격했다. 그는 현재 서울시 강남구 모 지점에서 별탈없이 근무하고 있다. 서울남부지방법원 재판부(재판장 노미정)는 업무방해 등의 혐으로 기소된 오O 채용팀 팀장, 권OO 인력지원부 부장, 이OO 경영지원그룹 부행장에게 각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2018년 10월 26일에 선고했다. 김O HR본부장에겐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남녀고용평등법 위반 혐의를 받는 주식회사 국민은행에게는 벌금 500만 원을 선고했다. 1심 판결문의 양형이유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국민은행은 은행업계 1, 2위를 다투는 기업으로서 그에 맞는 사회적 책무가 존재한다고 할 것이다. (중략) 불법적인 조작으로 점수가 변경되어 당락이 달라진 지원자의 규모가 상당하다. 피고인들의 행위는 채용과정에서 투명하고 공정한 평가를 기대하였던 일반 지원자들의 신뢰를 저버리는 행위로서, 사실상 가장 큰 피해자는 지원자들이고, 이들이 받은 허탈감과 배신감은 보상받을 길이 없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지점이 있다. 재판장의 지적대로, 국민은행의 경우 점수가 조작되어 최종 합격 여부가 달라진 지원자의 규모는 상당하다. 1심 판결문에 따르면, 2015년~2016년 국민은행 신입사원 지원자 중 채용 과정에서 불공정한 혜택을 받아 최종합격한 사람은 총 190명이다. 대법원 확정 판결을 기준으로, 우리은행-대구은행-광주은행-부산은행에 부정한 방법으로 입사한 사람 총 59명과 비교할 때 상당한 숫자다. 먼저, 부정입사자 김수현이 입행한 2015년 신입사원 공채를 보자. 국민은행은 2015년 상반기 신입행원 최종합격자 120명 중 28명을 부정채용했다. 신입행원 중 약 4분의1이 부정입사자인 셈이다. 같은 해 하반기 신입사원 공채는 더 심각한데, 국민은행은 최종합격자 300명 중 114명을 부정채용했다. 최종합격자의 약 3분의1 이상이 부정입사자다. 2016년 하반기 신입행원 공채에서는 최종합격자 235명 중 48명이 부정채용자다. 국민은행은 왜 두 차례 혜택을 주면서까지 김수현을 채용했을까? 그의 아버지와 윤종규 회장의 관계를 살펴보면, 그 의문이 풀릴지 모른다.
김수현의 아버지는 김OO 한양대학교 교수다. 그는 2014년 3월 28일부터 2015년 3월 27일까지 KB금융지주 사외이사였다. 2014년 윤종규 회장 선출 당시 '회장후보추천위원회' 위원이었다. 윤종규 회장은 2014년 11월 제4대 KB금융그룹 회장 겸 제6대 KB국민은행장에 올랐다. 김수현을 부정채용하도록 인사담당자들에게 지시한 혐의를 받는 윤종규 회장은 막상 국민은행 채용비리 관련 기소 대상자에선 제외됐다. 앞에서 살펴본 대로, 부정입사자 김수현 청탁 메모에 "회장님 각별히 신경"이란 문구도 발견됐지만, 검찰은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윤종규 회장을 기소하지 않았다. 윤종규 회장은 채용비리 혐의에 벗어난 이후 나날이 승승장구 중이다. 2014년 11월 회장으로 선임된 윤 회장은 작년 9월경 세 번째 연임도 성공하며 2023년까지 임기가 보장된 상황이다. 윤 회장과 마찬가지로, 1심에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받은 채용비리 책임자들도 역시 무사하다. 오O 전 채용팀 팀장은 여전히 국민은행을 재직 중이다. 권OO 전 인력지원부 부장은 국민은행 지주사인 KB금융지주로 옮겨 일하고 있다. 기자는 배진교 정의당 의원실을 통해 "집행유예 형을 받은 채용비리 책임자들이 근무가 가능한지" 국민은행에 질의했다. 국민은행은 "형사상의 범죄로 금고 이상의 유죄판결이 확정되었을 경우에 당연면직 처리한다"고 밝혔다.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올 때까지 피고인들을 지켜보겠다는 의미다. 국민은행은 부정입사자 채용 취소와 채용비리 피해자 구제 계획에 대해서는 현재 진행 중인 2심 재판을 이유로 답변을 거부했다. 기자는 반론을 듣기 위해 부정입사자 김수현에게도 전화를 했다. 그는 "전 사외이사 김 교수가 아버지는 맞다"면서 "국민은행 채용비리 판결문에 내 이름이 등장하는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사외이사와 KB금융지주 회장후보추천위원을 지낸 그의 아버지 김OO 교수가 부정 채용을 청탁했을까? 기자는 27일 오후 김 교수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 김 교수는 "국민은행 채용비리를 취재하고 있다"는 기자의 말만 듣고 "관심 없다"며 전화를 끊었다. 기자는 "1심 판결문에 아들의 이름이 등장한다는 사실을 알았는지", "윤종규 회장에게 아들의 국민은행 공채 지원 사실을 알렸는지", "아들의 부정채용과 관련해 교수로서 도의적 책임을 느끼지 않는지" 등을 김 교수에게 문자로 물었지만, 그는 아무 답을 하지 않았다. 어쨌든 김OO 교수의 아들은 국민은행 입사 때 두 번이나 부정한 도움을 받았다.
국민은행에선 '웃픈' 일도 벌어졌다. 2015년 하반기 신입행원 채용 때 부행장의 자녀와 이름은 물론 생년월일까지 같은 이OO 씨가 입사 지원서를 냈다. 오 채용팀장은 이 씨를 부행장 딸로 인식하고 필기전형에서 합격시키기로 마음먹었다. 오 팀장은 이 씨의 논술 평가 등급을 B+,B에서 B+,B+등급으로 상향 조작하도록 채용팀원에게 지시했다. 이 씨는 필기전형에서 합격했다. 일은 다음 단계에서 터졌다. 알고 보니, 부행장의 자녀는 남성이었고, 당시 군복무 중이었다. 국민은행은 여성 지원자 이 씨 면접에서 탈락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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