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난의 행군
지중해 같은 깊고 맑은 눈이었다. 에메랄드 빛깔 안구로 고요히 푸른 하늘을 자주 올려다보았다. 석 달째 새벽에 일어나 삼천 배를 올린다고 했다. 삼백일을 지속하고 귀국할 계획이라 한다. 돌아갈 나라가 이스라엘이었다. 유라시아 떠돌이 생활 2년차, 다람살라에서 붙박이 생활을 하고 있는 이스라엘 친구와 연을 맺었다. 살람이었는지 알롬이었는지, 이름은 가물가물하다. 다만 그가 들려준 이야기는 지금껏 또렷하게 남아있다. 어딜 가나 단골집을 만들어두는 편이다. 다람살라에서 지낸 일주일, 아침마다 글을 쓰기 위해 찾았던 카페가 하나 있었다. 커피의 향과 맛이 아주 훌륭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취향저격, 천장이 아주 높고 전망이 확 트인 공간이었다. 그곳에서 그 친구와 사흘 연속 눈이 마주치면서 말까지 트게 되었던 것이다. 나의 얕은 상식을 죽비처럼 사정없이 깨뜨리는 파천황이 콸콸콸 쏟아져 나왔다. 탈피오트(Talpiot), 텔아비브(Tel Aviv), 테크니온(Technion), 3T 모두 당시로서는 처음 접하는 정보였다. 탈피오트에서 군복무를 했으며, 테크니온에서 의과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텔아비브에서 생명공학 스타트업을 차릴 것이라고 했다. 학업에서 창업 사이 1년을 다람살라에서 안식년으로 보내고 있던 것이다. 0과 1로 작동하는 디지털 월드 WWW(world wide web)와 불일불이(不一最好)를 설파하는 삼라만상 사바세계가 어떻게 융합되고 합장할 수 있을지 흥미진진한 대화를 나누었다. 과학자이자 경영가이기도 했던 그는 아시아의 언어에도 능통했다. 나와 섞은 말은 영어였으되, 군대에서는 힌디어를 공부했고, 다람살라에서는 티베트어를 배우고 있었다. 유대인의 히브리어부터 인도인의 힌디어까지, 서아시아부터 남아시아까지 세계감각 또한 탁월했던 것이다. 그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에 대한 나의 선입견 또한 산산이 조각났다. 가장 종교적인 나라로만 알았는데 가장 과학적인 국가였으며, 가장 민족적인 나라인 줄 알았더니 가장 세계적인 국가였다. 오래 파편처럼 흩어져 살던 사람들이다. 무려 2000년이 넘도록 나라 없이 살아왔다. 겨우 허허벌판 황무지에 이스라엘을 세운 해가 1948년이다. 전 세계 디아스포라들이 중동의 모래 언덕으로 몰려들었다. 그러나 건국만으로 '고난의 행군'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당장 건국 첫날부터 전쟁이 시작되었다. 적국이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란부터 이집트까지 사방팔방이 온통 적대국이었다. 게다가 모두 이스라엘보다 덩치가 훨씬 큰 나라들이었다. 이슬람 문명권, 아랍문자 세계의 동떨어진 섬으로 존재한 것이다. 이슬람 견문 6개월 차, 텔아비브 공항에 내리자마자 이질감이 훅 끼쳐왔다. 겨우 눈에 익었던 아랍어가 아니다. 문자도 다르고, 달력도 다르다. 서력 2016년은 이슬람력으로는 1437년, 유대력으로는 5776년이었다. 시간이 다르게 흐르는 만큼이나 자력갱생, 주체노선을 고수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집단농장 키부츠를 만들어 유격전과 진지전을 펼쳐갔다. 1967년 제3차 중동전쟁, 이른바 '6일 전쟁'에 승리함으로써 비로소 온전한 나라로 바로 서는 듯 보였다. 그러나 6년 후 제4차 중동전쟁이 발발한다. 이른바 욤 키푸르 전쟁이다. 유대력의 제10월, 유대교의 5,734번째 속죄일에 맞추어 개시된 전쟁이었다. 유대인들에게 가장 경건한 날을 겨냥하여 이집트가 공격하고 시리아가 뒤를 이었다. 요란한 비상 사이렌이 회당의 은은한 종소리를 잠식해버렸다. 철두철미 정밀하게 설계된 아랍연합군의 파상공세에 이스라엘은 속수무책 완패를 당한다. 6일 전쟁 승리 6년 만에 맛보는 참담한 역전패였다. 종교적인 모욕까지 감내한 치욕적이고 굴욕적인 패전이었다. 고난의 행군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던 것이다. 건국 이후 장기 집권하던 노동당의 정통성마저 뿌리째 흔들렸다. 기어이 1977년 최초의 정권 교체까지 야기한다. 이스라엘에서 욤키푸르 쇼크는 미국의 스푸트니크 쇼크에 버금가는 것이었다. 새 정권은 200만 인구로 2억의 아랍에 맞대응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힘 대 힘, 강대 강 정면승부가 아니라 차원이 다른 싸움을 벌이기로 했다. 판세를 역전하는 전략이 아니라 새 판을 짜는 대전략을 취했다. 발상의 전환, 패러다임 시프트였다. 질적 경쟁력을 높이기로 했다. 하드파워가 아니라 소프트파워에 집중하기로 했다. 근력과 체력, 완력이 아니라 지력을 키우기로 했다. 연구와 교육에 집중 투자함으로써 기술력에서 초격차를 벌이는 미래전략을 수립한 것이다. 온 나라 만백성을 상상력과 창의력으로 중무장하기로 결정했다. 이스라엘 2.0이 재탄생하는 순간이었다. 환골탈태,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형질 전환하는 특이점이었다. 이스라엘 판 단번도약이 마침내 시작된 것이다. 그 대전환의 상징이 바로 탈피오트였다. 10대 후반 최고의 두뇌를 선발하여 과학기술로 특화된 최첨단 정예사단을 창설키로 한 것이다. 탈피오트의 출범은 일파만파 연쇄효과를 일으켰다. 1924년 나라가 서기도 전에 아인슈타인의 도움을 받아 만들었던 하이파의 미래대학 테크니온도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혁신도시이자 기업도시인 텔아비브도 생기를 띄기 시작했다. 가장 창조적인 군대로 말미암아 대학과 도시까지 동반성장하는 이스라엘식 '선군' 산학복합체가 가동되기 시작한 것이다. 선군정치와 군산학 복합체가 융합되어 창조경제가 만발하였다.2. 밀리에듀, 밀리테크
도처에서 랍비들을 목도할 수 있지 않을까 했다. 경건한 종교인보다 더 자주 눈에 띄는 사람들은 군인이었다. 예루살렘에서도 텔아비브에서도, 곳곳에서 군복 입은 젊은이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언제 어디서 로켓포가 날아들지 모르고, 어디서 언제 테러가 일어날지 모르는 항상적인 비상사태가 일상으로 정착한 나라다. 전 국민의 군인화가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고등학교를 마치면 모두가 곧바로 입대한다. 남자 3년, 여자 2년을 의무 복무 기간으로 삼고 있다. 남다른 점은 군대와 대학 사이 갭이어(gap year)가 있다는 점이다. 의무는 아니지만 의례에 가깝다. 거의 모든 이들이 1년 6개월가량 해외여행을 떠난다. 라틴아메리카나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등 제3세계를 선호한다. 파타고니아부터 히말라야, 킬리만자로와 안데스 등 지구의 지붕을 죄다 올랐다가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 그동안 반드시 제2외국어도 배우도록 한다. 영어와 히브리어가 이스라엘의 공용어임을 감안한다면, 여행을 통해 최소 3개 국어를 구사하게 되는 것이다. 낯선 땅에서의 수많은 시행착오와 다양한 현지인들과의 교류를 통해서 넓고도 깊은 안목을 키운 후에야 비로소 학문의 전당, 지성의 요람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다. 며칠간 점만 찍고 부리나케 돌아오는 배낭여행이 아닌 고로, 응당 비용도 만만치 않기 마련이다. 13세 성년식에 부모와 친지로부터 유산 일부를 아낌없이 투자받는 전통이 오래 쌓여 왔다. 닫힌 공간 군대에서 익힌 규율과 열린 세계 여행에서 쌓은 자율이 결합되어 자유로운 영혼이면서도 성숙한 인격을 갖추고 대학생이 되는 것이다. 이들은 이미 무엇을 공부해서 어디에 활용할 것인지를 염두에 두고 공부한다. 뚜렷한 목적과 원대한 이상을 품고 학업에 매진하게 되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면적은 대한민국 4분의 1, 충청도 크기에 불과하다. 그러나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음을 알고 있는 늦깎이 대학생들의 포부는 비전과 영감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견문을 먼저 넓힌 후에 깊은 학문의 세계로 들어가는지라 20대 초반 특유의 경직성과 도그마 같은 병폐도 드문 편이다. 실용적이고 실질적이고 실리적인 실학자로 단련된다. 그 중에서도 가장 혁신적인 실험이 바로 '과학 군대' 탈피오트라고 하겠다. 욤키푸르 쇼크 이후 1979년에 도입된 특수부대다. 히브리어로 몇 가지 뜻이 있다. 가장 대중적으로는 '견고한 산성' 또는 '높은 포탑'을 의미한다. 구약 성경 가운데 <아가서>에서는 리더십을 뜻하는 은유적 표현으로 쓰이기도 했다. 드높은 리더십을 지향하는 고로, 여느 전투 부대와는 모집 방식부터 전혀 달랐다. 고도의 학습 역량을 가장 중요한 준거로 삼았다. 교관들도 수학과 과학, 공학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박사와 교수들로 구성되었다. 과학적 역량을 군사적 역량으로 전환하는 연결고리로 탈피오트를 창립한 것이다. 군대 안의 대학이었고, 대학을 넘어서는 군대였다. 군사와 교육의 공진화, 밀리에듀의 첨병이었던 것이다. 복무 기간도 10년이나 된다. 고교 성적 최우수자들을 선발하여 다양한 시험을 거친 다음 히브리대학에 위탁하여 3년 만에 학사과정을 마치고 다음 6년을 더 복무하도록 설계했다. 이를 통하여 전 세계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든 압도적인 실력의 과학자 군인, 초엘리트 공학자 군인, 슈퍼 솔저들이 육성된 것이다. 두뇌로 전쟁하는 '브레인 아미'(Brain Army), 총칼을 든 전사(戰士)에서 지력과 지략으로 승부하는 사(士)의 본질을 회복한 셈이다. 손자병법, 사무라이를 사대부로 되돌렸다. 밀리에듀는 곧 밀레테크와 직결된다. 군대에서 갈고 닦은 실력을 곧바로 사회에 환원한다. 군에서 익힌 기술을 산업에 접목하여 전 세계를 무대로 천문학적인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수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낸다. 총탄을 대신하여 돈으로 승부하는 또 하나의 전장, 글로벌 시장에서도 탈피오트 출신이 최전선에 서는 것이다. 현재의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아이언 돔'부터가 탈피오트 사관후보생의 아이디어로 출발하여 탈피오트 졸업생들이 완성한 것이다. 에어로 스페이스 인더스트리, 엘타, 라파엘 등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방위산업체들도 아이언 돔 프로젝트와 긴밀하다. 가상의 철갑 요새를 촘촘하게 구축하게 되면서 이스라엘인들은 아랍의 봄부터 IS의 등장까지 불안한 정세가 영 그치지 않는 중동의 한복판에서도 안심하고 일상을 영위할 수 있는 예외적인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3. 새로운 역사는 이제부터
2019년 2월, 하노이로 달려갔다. 동아시아론에서 유라시아 문명사로 나의 인식이 넓어지고 깊어지는데 하노이는 결정적인 전환점이었다. 귀국은커녕 더 멀리까지 가보기로 작정하게 된 운명적 장소였다. 내 인생의 궤적을 통째로 바꾼 도시에서 북미관계의 새 국면이 열리고 우리 민족사의 새 지평이 솟아나는 줄 알았다. 그런 만큼이나 하노이 노딜 뉴스에 무릎이 꺾일 듯 황망하였다. 요란하게 흔들리는 마음은 곧장 몸의 반응으로 이어졌다. 2019년 삼일절, 3.1혁명 100돌을 골방에서 골골 감기로 앓았다. 아무런 성과 없이 빈손으로 평양으로 되돌아가는 대륙기차, 김정은과 김여정은 어떤 생각을 했을 것인가? 핵능력을 최대한 고도화하여 탑다운 담판으로 일거에 체제를 보장받으려 했던 지난 9년의 전략을 복기하고 곱씹었을 것이다. 장사꾼 양아치 대통령의 쇼맨십에 놀아난 꼴이니 치욕과 굴욕을 감내하며 정면 돌파, '새로운 길'을 모색했을 것이다. 때로는 외부 쇼크가 철저한 자기파괴와 자기혁신을 자극하기도 하는 법이다. 새로운 역사도 이제부터이다. 더는 핵을 이마에 지고 살아갈 까닭이 없다. 너 먼저 죽고 나도 죽자, 어차피 사용치도 못할 핵단추이다. 값비싼 고철 덩어리에 불과하다. 100만 대군을 거느릴 이유는 더더욱 없어진다. 군대가 커야할 까닭이 없다. 미래의 전쟁은 인해전술, 사람 머릿수로 싸우는 것이 아니다. 두뇌 싸움, 브레인의 퍼포먼스를 극대화하는 지식전쟁, 과학전쟁, 수학전쟁이 된다. 지피지기 백전불퇴(知彼红颜知己 百戰不殆), 아는 것이 힘이니, 싸우지 않고도 이기는 방법을 연마해야 한다. 21세기 전장의 최전선은 피 흘리는 필드가 아니라 연구실이고 사무실이다. 컴퓨터 자판기를 두드리는 키보드 워리어가 승패를 좌우한다. 미래 전쟁의 요체는 선제타격이 아니라 선제 무력화이다. 인공지능(AI)을 탑재한 드론이나 사이버 공격, 우주 전쟁 모두 전투 이전에 상대방의 지휘 체계를 무력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완력으로 싸우지 않고도 지력으로 이기는 전략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첫째도 AI, 둘째도 AI, 셋째도 AI가 된다. 진실로 과학과 수학이 필요한 시간이 된 것이다. 늦게나마 평양에 '과학자 거리'를 조성한 것은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강성대국의 기초는 소프트파워 기초학문이지, 허장성세 가득한 하드파워 군부가 아니다. 설사 육박전이 벌어진다고 해도 군인이 직접 투입되는 경우 또한 점점 드물어 질 것이다. 로봇이 사람을 대신한다. 이스라엘 방위군에서는 이미 적지 않은 로봇들이 국경 정찰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적진에 먼저 달려가는 선봉대도 로봇 군단이 될 것이다. 센서와 카메라를 장착한 무인 자율 전투차를 타고 적진 깊숙이 침투하여 전장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전술과 전략 또한 거듭 업데이트하게 될 것이다. 무기 체계의 무인화는 물론이요, 지휘 통제마저 인공지능형 체제로 진화해갈 것인 고로 가슴팍과 어깨에 훈장을 줄줄이 달고 있는 장성도 여럿 거느릴 필요가 없는 것이다. 북조선 역시도 탈피오트를 적극 참조하여 매년 30-40명의 정예과학자 부대를 양성하는 것이 장래의 국가 안보에도 훨씬 이로울 것임에 틀림없다. 비용은 대폭 줄고, 효용은 전폭 늘어나는 일거양득이 아닐 수 없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