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리 시설의 낙후된 환경과 운영 지배 구조의 문제
캐나다는 노년을 보내고 싶은 대표적인 나라로 꼽혀왔다. 잘 발달된 의료복지 시스템이 그 이유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사실 중 하나는 캐나다에서 처방의약품과 치과, 그리고 장기요양 서비스는 공적 의료 제도로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역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주정부 보험 혹은 직장보험으로 보장이 되지 않기 때문에 해당 서비스들에 대한 높은 경제적 부담이 계속해서 문제가 되어 왔다. 선거 때마다 끊임없이 "공적보험으로의 전환"이 정치적 화두가 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재가 서비스가 제도화 되어 있지 않은 탓에 많은 노인들이 퇴직 후 시설로 입소하는 것이 보편적인 문화로, 꽤나 많은 노인이 시설에 거주하고 있다. 캐나다 전체 장기요양시설 중 54%는 민간 영역에서 운영되고 있다. 요크 대학의 팻 암스트롱(Pat Armstrong) 교수는 공적 보건의료 제도에서 분리된 채 운영되어 온 장기요양 제도의 문제가 장기요양시설의 집단 감염을 초래했다고 지적한다. 장기요양시설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민영 시설이 정부의 관리감독을 받지 않다보니, 낙후된 시설, 감염 통제에 대한 인력 훈련의 미비 등 고질적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고 있었고 결과적으로 코로나 19 감염에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캐나다 의사협회지에 발간된 논문에 따르면 온타리오 주 장기요양시설 거주 노인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한 결과, 영리 시설에서 코로나19 감염 위험이 비영리 시설에 비해 1.96배 높았으며, 사망자 수도 1.78배 높았다. 연구진은 영리 시설의 병상 당 시설 면적이 낮고, 시설 자체도 낙후되어 있었던 점이 높은 감염률과 사망률을 야기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CBC 뉴스는 1998년 건물 안전 진단 기준이 개정되었음에도 개정 지침을 준수하지 않는 시설이 온타리오주 전체 병상의 3분의 1을 차지한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주목할 만한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한 기업이 다수의 장기요양시설을 소유하는 일명 체인 소유형(Chain ownership) 시설에서 더 많은 감염자가 속출한 것이다. 해당 시설들에서는 비용 절감을 위해 환자 당 인력수를 적게 고용하였고, 한 명의 인력이 많은 환자를 관리하다 보니, 환자의 입장에서 필요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시간이 적어질 수밖에 없었다.정부의 대응, 그리고 시설 관리를 둘러싼 연방정부-주정부 간의 갈등
사실 정부가 장기요양시설에 무관심했던 것만은 아니다. 해마다 정부 예산에서 장기요양 관련 예산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예산을 받은 기관들이 예산을 어떻게 운영하고 있는지에 대한 모니터링은 부족했고 정부 보조금을 받지 않는 민영 시설은 관리의 완전한 사각지대였다. 그렇다 보니, 서비스 수준도 시설별로 천차만별이었다. 장기요양시설의 코로나19 감염을 두고 터질 것이 터졌다는 반응이 나온 이유도 코로나19 사태 이전부터 민영 시설에 대한 문제제기가 끊임없이 있었기 때문이다.여전히 위험에 노출된 '남겨진 노인들'
캐나다는 최근 몇 개월 비상사태가 선포되면서 봉쇄 수준이 강화되었다. 다행히 전체 확진자 수는 조금씩 감소했지만 장기요양시설의 집단 감염은 여전히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토론토 한 장기요양시설은 시설 인력들의 집단 감염이 확인되면서 노인들만이 남겨졌고 임시적 방편으로 토론토 대학병원 연합(University Health Network)에서 당분간 해당 시설의 운영을 책임지기로 했다. 남겨진 노인들은 가족과 친구들을 보기가 어려워졌고, 심지어 시설 안에서 혼자 쓸쓸히 삶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던 노인들의 안타까운 사연도 들리고 있다. 학계 전문가들은 코로나19와 앞으로 언제 또 발생할지 모를 감염병을 예방하기 위해 장기요양시설에 대한 보다 종합적 계획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해결책을 찾자는 자성의 목소리는 어쩌면 다행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백신 접종이 더딘 상황에서 시설 거주 노인들이 언제 집단 면역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가 여전히 팽배하다. 불평등 바이러스라고도 불리는 코로나19. 우리는 질병이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가혹하지 않다는 사실을 오늘 소개한 캐나다의 사례에서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먼 나라 이야기같이 들릴지 몰라도, 한국도 상황이 별반 다르지 않다. 정부의 방역지침에도 불구하고 노인요양 시설의 집단 감염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요양 시설에 거주하는 노인들은 대부분 거동이 불편하고 기저질환을 가지고 있어 코로나 19에 감염되면 중증환자로 이어질 위험성이 크다. 확진자가 전무한 요양 시설은 있어도 한 명만 확진된 시설은 없다는 이야기는 요양 시설의 감염은 시설 거주 노인 모두에게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질병과 사망의 위험과 공포는 사회적 약자에게 차별적으로 그리고 더 강하게 나타난다. 비단 노인뿐만 아니라 여러 사회적 약자들이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이지 않도록 하는 노력은 언제나 중요했고, 2년째로 접어든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다시 한 번 그 중요성이 확인되었다. 무엇보다 백신 접종만으로 코로나19 사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제도의 근본적인 개혁 없이는 제2, 제3의 코로나19 사태에서도 시설 거주 노인들은 위험의 최전선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코로나19의 전 세계적 대유행을 맞아 많은 언론이 해외 상황을 전하고 있습니다. 확진자 수와 사망자 수, 백신을 얼마나 확보했는지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국가별 '순위표'로 이어집니다. 반면 코로나19 이면에 있는 각국의 역사와 제도적 맥락, 유행 대응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정치·경제·사회적 역동을 짚는 보도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연구소는 '코로나와 글로벌 헬스 와치'를 통해 격주 수요일, 각국이 처한 건강보장의 위기와 그에 대응하는 움직임을 보여주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모두의 건강 보장(Health for All)'을 위한 대안적 상상력을 자극하고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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