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민주주의 : 시민 참여형 임팩트 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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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 '지하 자원'에서 이제 '천상 자원'으로 가는 길
이병한 :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개인적인 질문부터 드려볼까 합니다. 역시 이력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지점이 덴마크 유학 같습니다. 언제부터 에너지 전환에 관심이 있으셨나요? 원래 관심이 있어서 덴마크로 공부하러 가신 것인지, 혹은 다른 경로로 덴마크를 방문했다가 눈이 뜨여서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인지, 그 출발이 궁금합니다.
윤태환 : 실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관심이 있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초등학교 6학년부터였어요. 과학자가 꿈이었거든요. 왜, 6학년이면 초등학생이라기보다는 곧 진학하게 될 중학교와 고등학교로 더 눈길이 가잖아요? 형과 누나들을 선망하면서 그들이 보는 책을 미리 따라 읽기도 했습니다. 대학 진학을 위한 고등학교 권장도서 목록에 있는 책들도 읽어보려는 욕심이 컸어요. 과학을 무척 좋아하는 초등학생이었던 셈이죠. 그 중에 한 권으로 <실험실 지구>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돌이켜보면 꽤나 어려운 책이었어요. 내용을 과연 얼마나 이해했을까 의문입니다. 그럼에도 펄펄 끓는 물속의 개구리에 대한 비유는 강렬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점점 온도가 올라가는데도 제대로 감지하지 못하다가 결국 개구리가 죽어가는 과정을 지구온난화에 빗댄 것이죠. 어린 마음에 열흘 동안 잠을 잘 자지 못했습니다. 과학자가 되고 싶다는 막연한 동경에서 환경과학자가 되어야겠다는 구체적인 목표가 생긴 것이죠.
이병한 : 그러면 대학에서도 환경 쪽을 전공하셨나요?
윤태환 : 물리학과 수학을 전공했습니다. 자연과학의 가장 근간이 되는 학문을 제대로 배워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어머니가 수학 선생님이기도 하셨어요. 영향이 없지 않았습니다. 첫 직장이 '에코프런티어'라고 하는 에너지 환경 컨설팅 회사였어요. 카이스트 대학원의 박사과정생들이 창업한 회사였죠. 제가 입사할 당시에 임직원은 70여명이었고요. 나중에는 120명까지 늘어납니다. 에코프런티어에서 3년 정도 일하면서 이 방면으로 일생을 투신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저는 컨설턴트 역할을 했는데, 아무래도 해외 사례들을 많이 참조하게 되거든요. 그 전에는 막연하게 에너지 환경 분야에서 독일이 가장 앞섰다고 알고 있었어요. 에너지 전환을 성공적으로 이룬 나라라고 익히 듣고 있었죠. 그런데 여러 사례를 찾다보니 덴마크가 사회민주주의 국가로서 에너지 전환을 가장 먼저 시도한 나라라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덴마크가 취한 접근 방식을 10년 정도 터울을 두고 독일도 그 나름으로 차용해서 적용했죠. 아무래도 시장의 성숙도나 시민의 성숙도에서 덴마크가 좀 더 앞서있음을 배운 것입니다. 그때가 2008~2009년도 무렵이에요. 자문하던 기관에서 덴마크로부터 500만 달러 정도 투자를 받았고, 그 과정에서 덴마크를 조금 더 깊이 연구하게 됐죠.이병한 : 그럼 대학원 시절부터 매우 오랫동안 창업을 준비해 오신 셈이네요.
윤태환 : 직접 사업할 생각은 못했던 것 같아요. 선생님이 되고 싶었습니다. 부모님 두 분 모두 선생님이셨고요. 집안에 사업가는 없었습니다. 가르치는 것에 관심이 많고, 또 잘 가르치는 편이었습니다. 어려운 개념을 쉽게 풀어내서 설명하는 일에 재미를 많이 느껴요. 덴마크에서 유학을 할 때도 창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적었어요. 학업을 마치고 돌아오면 연구를 지속하거나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맡게 되지 않을까 했었죠.
이병한 : 학자가 아니라 경영자가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을 것 같습니다. 취업이 아니라 창업을 하게 됐는데요.
윤태환 : 귀국부터 예정보다 일찍 했습니다. 학업을 다 마치지 않고 사업을 시작한 것이죠. 2012~2013년도 밀양 송전탑 사건이 있었잖아요? 어느 날 제가 속해 있던 덴마크 공대의 연구실로 연락이 왔어요. 제 연구실이 어떻게 하면 풍력 발전에서 생산한 전기를 가장 손실을 줄이면서 사용할 수 있을지를 연구하는 곳이었거든요. 밀양 송전탑 같은 것을 굳이 짓지 않아도 되는 기술적인 대안이 있는지를 자문해 왔죠. 한국에서 첨예하게 갈등을 빚고 있는 사안을 기술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지를 깊이 고민하게 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자연스레 한국 상황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졌고요. 기존의 발전소가 워낙 중앙 집중화되어 있기 때문에 송전망이 도처에 깔릴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병폐가 역력했습니다.
해결책은 태양광과 풍력 위주의 분산 에너지로 전환하는 것이었어요. 한국에서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고, 그 일을 직접 감당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솟아났습니다. 당시에 저는 결혼도 하지 않았고 부양할 가족도 없었어요. 이때가 아니면 창업을 하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무래도 결혼을 하면 모험을 하기가 쉽지 않잖아요? 한국에 일찍 돌아가서 창업을 하고 도전을 해보자는 결심을 굳혔습니다. 대학원 공부야 언제든지 다시 와서 할 수도 있으니까요. 딱 3년만 도전해 보겠다고 부모님을 설득했습니다. 3년의 실험이 여의치 않으면 다시 덴마크로 돌아가서 박사 공부를 마치겠다고 약속드렸죠. 그런데 벌써 8년차에 접어들고 있습니다.이병한 : 학업을 작파하고 창업해서 성공한 전설이 여럿 있죠. 빌 게이츠부터 일론 머스크까지. 여전히 미혼이시고요? (웃음)
윤태환 : 아니요. 그 사이 결혼도 하고, 아이도 생겼습니다. (웃음)
이병한 : 기질상 연구하고 교육하는 사람과 시장의 최전선에서 사업하는 분들 사이에는 간극이 참 크다고 느낍니다. 훌륭한 원천 기술을 확보하고 있다 해도 그게 곧장 비즈니스 성공을 담보해주지 않는 것 같고요. 양쪽을 두루 겸비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윤태환 : 부모님의 기질을 천성으로 물려받은 것 같아요. 아버지는 꼼꼼하고 치밀하셨고, 어머니는 외향적이고 사교적이셨습니다. 어머니랑 더 닮은 구석이 있어요.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지향이 강합니다. 교직과 사업이 아주 다르다고도 생각되지 않더라고요. 잘 가르치는 것과 잘 만들고 잘 파는 것이 비슷한 것도 같아요. 저는 여전히 미숙한 CEO이기는 하지만, 이 일이 제 성향과 잘 맞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직접 기업을 경영하면서 배우는 것이 정말 많아요. 한 인간으로서도 더욱 많이 성장하고 있다고 느낍니다. 대학에서 학자로만 있었다면 배울 수 없었던 세상의 여러 면들을 두루 경험하고, 해볼 수 없었을 일들을 직접 체험하게 된 것이죠. 물론 이렇게 힘들 줄 알았다면 창업하지 말고 공부나 계속할 걸 하는 생각도 종종 듭니다만...(웃음)
이병한 : '이렇게까지 힘들 줄 몰랐다'의 그 힘듦이란 뭘까요?
윤태환 : 사업이 늘 예상대로,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가 않거든요. 도중에 정말로 많은 사고들이 일어납니다. 강물이 그렇잖아요. 겉보기에는 잔잔하게 흘러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물 속에서는 매우 치열하게 다양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죠. 사업을 하다보니 중간중간 정말로 많은 돌발 변수들이 생기고, 그 문제들을 해결하느라 정신이 없어요. 그래서 비즈니스는 일종의 종합예술 같은 느낌입니다. 모든 걸 다 고려해야 하고, 사소한 하나라도 놓치면 언제든지 공든 탑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죠. 저만 잘한다고, 저희 직원들만 열심히 일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에요. 운도 따라주어야 하고요. 타이밍도 잘 맞아야 하지요. 무엇보다 좋은 사람들을 잘 만나야 합니다. 시운과 인연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절절하게 절감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조건들이 딱딱딱 들어맞아야 비로소 사업도 성공하는 것이죠.
그런데 어제의 성공이 또 내일을 담보해주는 것도 아니잖아요? 매일매일 끊임없이 진화해야하고, 더더욱 앞장서서 앞서나가야 합니다. 그러다보니 잠자는 시간 외에는 늘 사업 생각을 합니다. 아니 잠잘 때조차 생각하는 것 같아요. 아기를 안고 있을 때에도 생각하죠. 이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내가 더 열심히 일해야 하는데, 뭘 더 잘할 수 있을까 항상 골똘히 골몰하게 됩니다. 이건 창업가의 숙명이 아닌가 싶어요.이병한 : 아기는 몇 살인가요?
윤태환 : 이제 8개월, 아들입니다.
이병한 : 한참 꼬물꼬물 귀여울 때네요. 루트에너지의 비즈니스 모델을 보며 요즘 말로 '신박하다'고 느낀 것은 에너지 사업에 파이낸스와 로컬 커뮤니티를 잘 결합했다는 점 때문입니다. '에너지x로컬x파이낸스'의 조합이라는 아이디어는 어떻게 처음 나온 것일까 궁금합니다.
윤태환 : 제 머리에서 독창적으로 나온 것은 전혀 아니고요. 덴마크와 독일에서는 이미 1970년대부터 시작됐어요. 특히 협동조합 형태로 많이 구성되었죠. '에너지 민주화', '에너지 민주주의'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독일에서는 '에너지 주권'이라고 많이 말하고요. 그 나라들에서는 지역과 금융의 결합을 당연하게 생각해요. 덴마크에 유학가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도 거기에 있었습니다. 공학적 지식을 얻는 것도 목표였지만, 더 중요하게는 그 나라 사람들과 어울려보고 싶었습니다. 덴마크가 자랑하는 협동조합 활동을 직접 해보고 싶었죠. 에너지 민주화의 물결에 제 발을 담궈 보고 싶었습니다. 덴마크 시민들과 어울리면서 그들의 생활과 문화를 배워보고 싶었던 열망이 매우 컸습니다.
1970년대부터 거의 반세기를 경험하고 성장하면서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오늘날 독일은 거의 800만 주민이 재생에너지에 투자해서 이익을 얻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보면서 우리나라에도 시도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충분히 성공할 수도 있지 않을까 궁리하게 됐죠. 우리나라 사람들도 돈을 싫어하지는 않으니까요. 하지만 에너지를 잘 모르는 정보의 불균형 문제는 심각하죠. 에너지 문제를 돈과 연결하면 한국에서의 반응이 덴마크나 독일보다 더 뜨거울 수 있다고 가설을 세운 것입니다. 여전히 검증하고 있는 단계이기는 해요. 지난 8년간 180개가 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어느 정도 입증되고 있는 것 같기는 합니다.이병한 : 한국에서도 적용가능하다고 보시지요?
윤태환 : 네. 신재생 에너지로의 전환과 금융과 지역주민의 결합이라는 비즈니스 모델이 성공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고 있습니다. 긍정적인 반응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어요.
이병한 : 덴마크의 오랜 사민주의 전통을 이야기하셨잖아요? 독일은 또 비례대표제로 운영되는 국가이죠. 비즈니스는 별개라고들 하지만, 아무래도 정치제도와 사회문화와 무연할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에너지 사업을 하시다보면 자연스레 공공적인 영역까지 관심이 미치지 않을까 짐작이 되는데요. 사업 그 이상의 어떤 액션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안해보셨을까요?
윤태환 : 일단 정치나 행정은 제 깜냥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만, 덴마크나 독일의 에너지 전환에 사회민주주의나 비례대표제 같은 문화와 제도의 영향이 분명히 컸다고는 생각합니다. 다만 저로서는 좌/우나 진보/보수에 상관없이 재생에너지 사업에 시민들이 동참했던 동기와 이유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 사업에 참여하는 주민들이 100만이 넘고 300만을 넘고 500만을 돌파하면서 정치가 바뀐 측면도 크거든요. 보수당이라고 하는 기민당조차도 에너지 전환에는 적극 참여할 수밖에 없는 동력을 민이 만들어낸 것이죠. 보수가 진보로, 우파가 좌파로 전향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지향적인 재생에너지 정책으로 가지 않고서는 표를 얻을 수 없고 집권을 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조성된 것이죠.
저는 우리나라에도 그런 형태의 영향력을 발휘하고 발산할 수 있는 미래의 씨앗을 심어보고 싶어요. 아직 루트에너지의 고객이 만 명이 안 됩니다. 현재 국내의 에너지협동조합에 가입한 분들을 모두 합해도 1만 명이 되지 않는 것으로 알아요. 이 씨앗이 10만 명이 되고 100만 명이 되고, 300만 명이 되면... 그러면 우리나라에서도 좌/우와 보/혁에 상관없이 에너지 환경 분야만큼은 누구나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시기가 오지 않을까 전망하죠. 양적 변화가 질적 변화를 가져온다고 하잖아요? 그 양-질 전환의 티핑포인트가 오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정치인들과 행정가들도 재생 에너지를 최우선으로 삼는 예측 가능한 정책을 설계할 수 있겠죠. 그래야 정권의 교체에 무관하게 정책의 지속성이 담보될 수 있고, 그래야 환경 비즈니스 또한 안정적이고 또 과감하게 도전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한 지속가능한 생태계를 만들어내는 것이 루트에너지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저희들이 일하는 최고의 목적입니다.이병한 : '루트에너지'(Root Energy)라는 사명에 풀뿌리가 주도하는, 민초가 선도하는 재생에너지로의 대전환이라는 비전도 담겨 있겠군요. 그러함에도 기후재앙은 이미 진행 중입니다. 인류에게 주어진 대전환의 시간이 넉넉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정부와 대기업의 이니셔티브 또한 간과할 수 없을 것 같은데, 코로나 팬데믹 이후 정부가 설파하고 있는 그린뉴딜 정책이 있지 않습니까? 꼼꼼히 살펴보셨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실지요?
윤태환 : 저야 당사자가 아니고 주변자라서요. 정책을 직접 결정하는 과정에 참여할 수가 없으니, 결과만 지켜보는 입장이지요. 큰 방향성은 맞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비판이나 비평을 할 수 있을 만큼의 계획이 나온 게 없습니다. 세부적인 디테일이 거의 없어요. 거창한 선언만 있었지, 아직 구체적인 계획안을 본 적이 없습니다. (웃음)
이병한 : 가장 신랄한 비판이네요. (웃음)
윤태환 : 구상만 있을 뿐이라는 점은 정부나 여당도 다 인정해요. 저도 녹색성장위원회의 민간위원으로 활동하고 있거든요.
이병한 : '녹색성장'이라 함은 이명박 정부 때 만들어진 기구인가요? 지금도 있는 것인지?
윤태환 : 네. 10년째 지속되고 있고요. 저는 3년차 활동하고 있습니다. 녹색성장위에서 활동을 해보아도 부족한 점이 태반이죠. 우리나라 정책은 여전히 경제성장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니까요. 코로나 대응에서도 마찬가지고요. 민생 회복을 최우선시하면서 정책을 입안하다보니 탈탄소 정책은 우선순위가 한참 떨어집니다. 많이 안타까운 상황이죠.
그간의 경험을 미루어 보아도 에너지 전환을 정치인이나 행정가들에게 맡겨둘 수가 없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설령 그러한 의지가 있고 역량을 갖추고 있는 분이라 해도 여럿 중의 일부에 그치거든요. 지난 10년이 그러했듯이 아마도 앞으로 10년도 정치가 바뀌어서 짠-하고 대전환을 선도하는 그림은 어렵다고 생각해요. 솔직히 말하자면 이명박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현재 정부랑 똑같아요. 변한 게 없어요. 앞으로 10년, 정권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에너지 정책에서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래서는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하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할 수가 없을 테고요.이병한 : 말잔치만 무성하고 요란했던 것이군요.
윤태환 : 결국 민간에서 저희들이 더 많이, 더 깊이, 더 넓게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인이나 행정가가 아니라 근본적인 변화의 힘은 국민으로부터, 주민들로부터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어떻게 2030년이 오기 전에 100만 명의 국민들이, 1000만 명의 주민들이 신재생 에너지 혹은 탄소중립 프로젝트에 직접 투자하고 금전적인 소득도 올릴 수 있을까를 궁리하는 이유입니다. 바로 여기에서부터 변화의 씨앗을 만들어가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그 사업에 동참한 바로 그 분들에 의해서 올바른 투표가 이루어지고, 그들이 선택한 정치인과 행정가들이 올바른 정책을 추진하게 되고 말이죠. 그 분들도 그런 변화를 기다리고 계신 것 같아요. 정치인들이 앞장서서 변화를 선도하기는 요원해 보입니다.
이병한 : 뼈아픈 지적이네요. 안타까운 이야기입니다.
윤태환 : 어디까지나 제 경험에서 비롯한 주관적인 견해입니다.
이병한 : 객관적인 팩트인 것 같습니다. 정부는 그렇다 치고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등등 해서 기업들은 매우 빠른 속도로 전환해 가려고 시도 중인 것 같은데, 이런 흐름은 어떻게 보시나요?
윤태환 : ESG가 글로벌 트렌드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찬반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린 워싱(green washing, 위장환경주의)의 사례가 워낙 많아서요. 국내 ESG에는 특히나 그린 워싱이 빈번하다고 생각합니다. 잠깐이기는 하지만 10여 년 전에 ESG를 평가하는 애널리스트로 일한 적이 있습니다. 국제적인 기준의 인덱스를 활용해서 기업을 평가한 정보를 국민연금에 판매하는 일이었는데요. 그때나 지금이나 평가 기준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어요. 당시에도 평가 지표는 너무 포괄적이고 기업에서 제공하는 데이터는 너무 불완전해서, 과연 분석 정보에 차별성이 있을까 의문이 많았거든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령 석유를 시추하는 회사인데 재생에너지에 조금 투자를 한다고 해서 ESG 기업으로 편입될 수는 없다고 보거든요. 그런데 대부분의 애널리스트는 긍정적인 평가 보고서를 올려요. 그래서 저는 ESG에 너무 맹목적으로 빠지면 안 되고, 그 추세와 지표 또한 제3자의 견지에서 계속 비판적으로 지켜보고 견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궁극적으로 가야 할 방향이기는 하되, 녹색세탁 없이 제대로 가야 하는 것이죠.이병한 : 한국전력도 재생에너지 쪽으로 전환하겠다고 하죠?
윤태환 : 한전은 참 예민한 사안인데요. 재생에너지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으로서는 반대할 수밖에 없는 입장입니다. 정부에는 재생에너지 영역을 대규모로 키우기 위해서 공기업이 앞장서야 한다는 명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전 지구적인 기준에 보자면 하루 빨리 온실가스 배출량이 줄어들어야 하기 때문이죠. 과연 어느 방식이 더 빠르면서도 더 많은 사회적 임팩트를 창출할 수 있느냐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공기업이 주도하는 방식이 더 효과적일지, 아니면 민간에서 선도하여 시장을 확장하고 일자리까지 창출하는 선순환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죠.
이병한 : 한전 공대는 어떨까요? 에너지에 특화된 대학을 만들겠다는 것인데요.
윤태환 : 저에게도 이미 강의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우리나라에 아직 에너지 전문 대학원이 없기는 해요. 카이스트나 유니스트도 에너지 전문 인력을 양성하지는 않거든요. 그런 기관이 필요하다는 점은 예전부터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당장 저부터가 국내에서는 마땅히 공부할 곳이 없었기에 덴마크까지 유학을 갔으니까요. 에너지 분야를 연구하고 교육하는 기관을 만드는 것에는 찬성하는 편입니다. 미래를 생각한다면 괜찮을 뿐만 아니라,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관건은 어떻게 만들 것이냐죠. 과연 공기업에서 세우는 건이 좋을까요? 한전이 아니라 국가가 나서서 국립대학으로 만드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이 아닐까요. 덴마크 공대는 학비가 전혀 안 들어요. 석박사 대학원 과정은 도리어 돈을 받으면서 배웁니다. 물론 그만큼의 과제를 수행해야 하죠. 사견이지만 저는 한전 공대보다는 국립대학이 더 좋은 방안일 것 같습니다.이병한 : 기왕 민감한 사안을 여쭤본 김에 하나만 더 질문드리고 싶습니다. 탈원전을 둘러싼 논란도 많잖아요. <인사이드 빌게이츠>라는 다큐나 그의 신간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을 보아도 원전을 폐기하기보다는 더욱더 진화시키는 쪽으로 접근을 하고 있는데요. 미래 에너지로서의 원자력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윤태환 : 저도 한참 빌 게이츠의 신간을 읽고 있는 중입니다. 제가 이해한 바로는 그 분 또한 태양광과 풍력을 근간으로 하는 신재생에너지의 비중을 급진적으로 늘려야 한다는 것이 주된 논지라고 보고요. 그 외에 소형 원자로 기술도 앞으로 발전시켜야 할 분야로 꼽고는 계시죠. 저는 그 분의 관점에서는 충분히 그렇게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다만 저는 에너지에 보태어 금융까지 하는 사람의 견지에서 복합적으로 사안을 판단하게 되는데요. 온실가스 감축 효과만 보자면 원전 또한 매력적인 대안이 될 수 있음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경제적 측면에서 리스크가 적지 않다고 생각해요. 과연 내 돈을 가지고 원자력에 투자할 수 있을까? 투자한 액수 이상의 이득을 회수할 수 있을까를 궁리해 봅니다. 경제성에서 원전 운영 비용이 매우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사고가 나면 워낙 대형사고가 날 수밖에 없는지라 보험 설계도 취약하고요. 이미 미국이나 프랑스의 원전 업체들이 적지 않게 파산하고 있어요. 투자자의 관점에서 원전은 리스크가 몹시 큰 상품인 것이죠. 아무리 한국의 원전 기술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정부가 보증하지 않는 이상 펀드레이징이 될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합니다.이병한 : 경제적 리스크는 그렇다 치고, 에너지 주권이랄까요. 에너지 민주주의 차원에서도 원전은 결국 중앙집중형 발전 방식을 벗어날 수 없는 것 아닌가요?
윤태환 :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소형 원자로 기술이 이미 많이 진척되었고요. 분산 에너지로도 충분히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빌 게이츠도 이런 점을 주목하고 있죠. 빌딩 단위로도 소형 원전을 가동할 수 있으니까요. 다만 역시나 그 안전에 대한 보장을 누가 할 것이냐는 근본적인 딜레마가 있습니다. 우리 건물에 경수로가 설치되어 있는데 만의 하나로 사고가 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 재난을 대비한 보험 상품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인가.
금융을 하는 입장에서는 보험이 되지 않으면 돈을 빌려주지 않거든요. 기술적으로야 원전을 작게 만들어서 분산 에너지로 쓸 수 있지만, 시장에서의 사업화 과정에서 어마어마한 보증보험을 만들지 않는 이상 상품이 보호되기 힘들다고 봐요. 20~30년 잘 쓰다가도 사고가 한 번만 터지면 그 건물 일대의 지역 전체가 초토화되니까요. 그 복구비용은 어떻게 할 것이며, 책임은 누가 얼마나 질 것이며... 간단치가 않다고 봅니다. 반면에 태양광이나 풍력은 태풍이 불어 사고가 나도 다 보험이 되거든요. 소형 원자로는 기술적인 차원이나 에너지 분산보다는 금융의 관점에서 회의적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이병한 : 금융 공부는 또 언제 하신 걸까요?
윤태환 : 일하면서 했습니다. 창업을 준비하면서 금융 공부도 시작했고요. 저도 공대 출신이라 금융에는 문외한이었는데, 직접 회사를 경영하자니 모르면 안 되더라고요. 닥치니까 배운 거죠. 지금은 어떤 금융 회사를 만나도 다 협상이 가능한 정도의 실력을 키웠습니다. 새로운 금융상품을 만들어낼 수 있을 정도까지 역량이 올라온 것 같아요.
이병한 : 사업을 하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공부까지 병행하고 계신데, 사생활 없이 정말 모든 시간을 일에 쓰시겠구나 라고 짐작하게 됩니다. 지금 우리가 이야기 나누고 있는 이 공간은 회사인데요. 개인적인 공간은 어떠할까요? 평소에는 어떤 곳에서 어떻게 지내시는지 일상이 궁금합니다.
윤태환 : 조그마한 아파트에 부인과 어린 아기와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제 방이 따로 있지도 않아요. 옷 방에 책상 달랑 하나 있는 게 제 방처럼 되었습니다. 거실에 TV를 없애고 서재로 바꾸려고 노력하는 중이에요. 와이프나 저나 워낙 책을 좋아하거든요. 지금은 육아가 가장 중요한 시기인지라, 집에서는 아이 보는데 시간을 가장 많이 쓰고 있죠. 퇴근하면 육아 출근을 하는 셈입니다. (웃음) 밥 먹이고 목욕 시키고 젖병 소독까지 끝나면 얼추 밤 12시? 그제야 잠을 잘 수 있습니다.
이병한 : 가정적이시군요? (웃음)
윤태환 : 부인이 올 타임 육아를 하고 있어요. 양가가 도와줄 수 없는 형편이라서요. 제가 귀가해야 그나마 잠깐 쉴 수 있죠. 그렇게 8개월 째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 전에는 책도 더 많이 읽고 여행도 가고 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그 또한 여의치 않게 되었죠. 저희는 늦게 결혼을 하고 늦게 아이를 가져서 임신부터 출산까지 힘든 시간을 보냈어요. 조산의 위험도 없지 않았고요. 병원에 일찍 입원해서 고생을 했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는 아이와 부인에게 감사한 마음입니다. 갓난아기를 겨우 재우고 나면 잠깐 영화를 보거나 커피 타임 가지는 정도? 맥주 한 캔 하면서 담소를 나눕니다.
이병한 : 집에 태양광을 설치해 두지는 않으셨고요?
윤태환 : 베란다도 없는 아파트에 살아서요. 대신에 단열을 제대로 해두었죠. 4중창 통유리로 에너지 관리비는 훨씬 적게 나옵니다. 태양광은 달지 못했지만, 태양광에 투자는 많이 해두었고요. (웃음)
이병한 : 친환경 비즈니스 하시는 분들이 가장 선망하는 기업 중의 하나가 파타고니아잖아요. 아까 인사드린 직원 한 분도 파타고니아 외투를 입고 계시기도 하던데요. 파타고니아와 협력하는 활동도 있으시죠?
윤태환 : 네. 한국에 파타고니아 매장이 마흔 개 정도 있습니다. 그 전국 전 매장의 모든 전력을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려고 해요. 원래는 2025년까지가 목표였는데, 올해까지 그 프로젝트를 완성하기로 계획을 앞당겼어요. 어떻게 전면적 혁신을 달성할 수 있을지 자문하고 협의하는 중입니다.
이병한 : 덧붙여 자랑하고 싶거나 흥미로운 프로젝트를 소개해 주셔도 좋겠습니다.
윤태환 : 저희 루트에너지의 미션이 재생에너지 전환을 10년 이상 앞당기는 것입니다. 탄소 중립을 10년 이상 앞당기는 것이죠.
이병한 : 그럼 2040년이 목표인가요?
윤태환 : 가능하면 더 일찍 달성되면 좋겠습니다. 최소한 정부가 설정한 목표보다는 10년 이상 빠르게 진척시키고 싶어요. 크게 두 가지를 준비 중인데요. 첫째로 저희가 가덕산 풍력발전소를 성공적으로 이루어내었습니다. 강원도 태백에 43메가와트 풍력발전소를 설치하면서 태백시민들만 제한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모델을 만들어내었죠. 덕분에 올해는 전국 몇몇 곳에서 주민들의 커뮤니티 펀딩으로 대규모 태양광과 풍력 발전소들을 짓는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게 되었어요. 그런 프로젝트들이 잘 진행되어 가면서 규모가 더 큰 사업 또한 다섯 건 정도 담당하게 될 것 같습니다.
두 번째로 그간의 저희 플랫폼에 재생에너지 사업, 태양광과 풍력 중심으로만 투자할 수 있는 포트폴리오가 있었는데요. 앞으로는 이것을 탄소중립 프로젝트 전체로 확대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마이셀프로젝트에 대한 인터뷰도 하셨잖아요? 그런 대체육이라든가 대체가죽, 전기버스, 로컬 푸드 등등 그 모든 비즈니스가 다 온실가스와 관련된 것이니까요. 그런 사업들에도 저희가 금융을 해주는 포트폴리오를 확대하려고 합니다.이병한 : 임팩트 투자를 직접 하시겠다는 뜻인가요?
윤태환 : 임팩트 투자를 일반 국민들이 하실 수 있도록 도와드리겠다는 것이죠, 탄소 중립을 지향하는 임팩트 투자에만 특화해서 말이죠. 그쪽으로는 저희가 전문성이 있기 때문에 유망한 기업들과 의미있는 프로젝트를 발굴해서 금융 사각지대 문제를 해결해 주고 싶어요. 특히 모든 국민들과 시민들과 주민들이 다함께 탄소중립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드리고 싶어요. 올해 꼭 해보고 싶은 일입니다.
이병한 : 굉장히 신선한 아이디어 같습니다.
윤태환 : 기후위기나 에너지, 환경 등등 거대한 이야기를 하면 정작 일반 시민은 자신들의 일상에서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느냐며 낙담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저희를 통해서, 루트에너지가 확보하고 있는 정보를 잘 활용해서 새로운 도전에 직접 나서볼 계기를 마련해 드리고 싶습니다. 올해는 재생에너지 전환을 넘어서 전방위적인 탄소중립으로까지 루트에너지의 미션이 확장되는 한 해가 될 것 같습니다. 뜻을 함께하는 우군들을 많이 모아야지요. 안타깝게도 온실가스를 줄이는 사업에 뛰어들었던 분들이 그사이 많이 줄었거든요.
이병한 : 줄었다고요? 이제야말로 시작 아닌가요?
윤태환 : 저랑 비슷한 시기에 창업했다가 사업을 접은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시장이 대기업과 공기업 중심으로 많이 왜곡되어 있어요. 에너지 환경 쪽으로는 특히 더 그렇습니다. 정책의 영향을 크게 받을 수밖에 없는 시장인데다, 정권에 따라서 방향이 많이 바뀌기 때문에 건강한 시장 생태계가 잘 만들어질 수 없는 구조입니다. 지난 정권에서는 원전을 중시하는가 했더니, 현재 정권에서는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갈팡질팡, 오락가락하는 것이죠. 다음 정권에서는 또 어떻게 바뀔지 확실치 않고요. 이처럼 예측 불가능성이 증폭되면 스타트업들은 살아남기 힘들어집니다. 자본으로 버텨낼 수 있는 대기업만 살아남을 수 있죠.
한때는 태양광 업체가 2만 개가 넘었어요. 2014년 전후로 싹 사라지고 3000여 개만 남았고, 작년부터 또 그런 변화가 진행 중입니다. 현재 정부가 말하는 탄소 중립 정책 또한 아젠다만 있지, 시장이 형성되어 있지는 않거든요. 국민들의 인식도 아직은 따라오지 못하고 있고요, 우리가 사업을 준비하는 동안 의식의 전환도 일어나면 좋은데, 한참 후에 일어나는 경우가 많아요. 고객들의 선택은 늘 나중이더라고요. 그래서 어떻게 그 전환의 시기를 6개월, 1년이라도 앞당길 수 있을까 고민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유럽을 보면 폭스바겐 전기차와 기존의 가솔린 차 사이의 가격 차이가 꽤 큽니다. 여전히 전기차가 더 비싸요. 대신에 정부가 가솔린차에 세금을 엄청 매겨서 전기차 가격과 거의 비슷하게 만들었어요. 정부의 정책으로 자연스럽게 소비자의 선택을 전기차 구매로 유도하는 것이죠. 우리나라는 여전히 따라가지 못하는 편이에요. 전기차에 비하면 디젤차가 월등히 쌉니다. 탄소세나 기후환경세 등 조세 제도 개혁 등 게임의 룰을 바꾸어야 합니다. 여전히 우리나라는 시장의 규모와 성숙도 면에서 부족한 점이 많은 것이죠. 아이디어와 테크놀로지가 있다고 해도 시장에서 팔려면 비싸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과연 소비자들이 그 제품을 구입해 줄 것인가. 쉽지 않아요. 아니 매우 힘든 형편입니다.이병한 : 이런 쪽 스타트업들이 어렵다는 것은 한국적인 상황인가요? 아니면 글로벌한 상황일까요?
윤태환 : 한국적인 상황입니다. 비건 문화가 잘 형성되어 있고, 탄소 세금이 잘 정착되어 있는 독일이나 유럽은 지구와 생명을 살리는 스타트업들이 창업하면 훨씬 잘 될 수 있죠. 리사이클이나 업사이클 하는 의류 회사들도 유럽에서 꽤나 잘 나가고 있어요.
이병한 : 그래도 최근에 소셜미디어를 보면 이런 방면으로 관심을 기울이는 젊은 세대들이 꽤 많아지고 있는 것 같던데요?
윤태환 : 네. 확실히 그런 것 같습니다. 10대와 20대가 의식 있는 가치 소비 활동을 더 많이 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렇게 조금씩 변해가겠죠. 정부가 조금 더 강력한 시그널만 줄 수 있으면, 전 연령대가 그렇게 갈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탄소 배출이 적은 비건 상품이 더 저렴해져야 하고, 탄소 배출이 적은 자동차가 더 싸져야 하고, 탄소 배출을 줄인 옷과 신발이 더 잘 팔리게 유도해 주어야죠. 정책이 그렇게 설계되어야 소비자들의 인식과 선택도 바뀌게 되고, 그러면 그럴수록 친환경 비즈니스에 대한 임팩트 투자도 더 활발하게 이루어지겠죠. 그런 선순환의 고리가 산업 생태계가 조성되기길 바랍니다.
이병한 : 태양광에 주력하고 계시잖아요? 최근에 일각에서는 인공태양을 주목합니다. 핵분열이 아니라 핵융합을 통해 미래에너지를 확보하자는 것인데요. 인공태양은 어떻게 전망하세요?
윤태환 : 핵물리학자들의 이상적인 기술인데요. 많이 실패하고 있습니다. 20년 전에 20년 후에는 된다고 그랬거든요. 지금도 20년 후에는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지요. 저 또한 인공태양광이 달성된다면 정말 좋다고 생각하지만, 그 20년 동안에는 다른 대체재가 반드시 필요한 것 아니겠어요? 저는 태양광이나 풍력으로도 충분히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미국의 텍사스에서 한파로 정전 사태가 일어났잖아요? 미국에서 가장 많은 정유업계가 있는 곳이 텍사스입니다. 석유화학 공장들부터 시추공장까지 엄청나게 많아요. 최근에는 셰일가스 기업까지 많이 생겼고요. 화석연료를 가장 많이 쓰는 텍사스가 한파 피해가 가장 컸던 것이죠. 그런데 텍사스에 테슬라 공장도 있거든요? 테슬라 공장은 거의 피해를 보지 않았다고 합니다. ESS(에너지저장장치)를 설비해 두었기 때문이죠. 즉, 굳이 핵융합까지 가지 않더라도 태양광과 풍력에 수소와 배터리 기술만 더욱 고도화되면 에너지의 생산과 보급과 수급에는 큰 문제가 없지 않을까 생각해요. 인공태양 연구를 꾸준히 할 필요는 물론 있겠죠.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도 늘 최악과 차악을 준비해 두어야 하니까요. 하지만 저는 인공태양을 기다리고 있기보다는 하루 빨리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에 전력을 기울이는 편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라도 텍사스처럼 될 수 있다고 보아요. 한파부터 폭염까지 기후재난은 앞으로 수시로 찾아올 것이니까요.이병한 : 일각에서는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기 위해 멀쩡한 산을 깎는다, 태양광이 환경을 더 파괴한다는 설도 없지 않습니다.
윤태환 : 산에 나무를 심는 것보다는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는 게 더 낫다고 말하는 강경한 재생에너지론자도 있기는 해요. 국가 간 전쟁보다 기후재앙이 더 큰 위기이기 때문에 서둘러 그렇게 가야 한다는 것이죠. 하지만 저는 나무가 줄 수 있는 가치를 온실가스 감축 효과로만 따질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제가 남산 근처에 사는 이유가 산책을 어릴 때부터 좋아해서거든요. 자연에서 누리는 여가 활동의 가치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산을 깎아 지은 태양광 발전은 대부분 지난 정부에서 허가해 준 것이에요. 다행히 산에다가 태양광을 짓는 사업은 시행이 어렵도록 정책이 바뀌었습니다.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구태여 멀쩡한 산을 깎아서 태양광을 설치할 필요는 없다고 여깁니다. 산이 아니더라도 재생에너지 전환을 백퍼센트 달성하는데 하등의 문제가 없습니다. 공장의 옥상이나 건물의 지붕을 활용해도 좋고요. 간척지에도 쓰임이 다한 땅이 적지 않거든요. 수상 발전과 해상 발전의 여지도 크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은 동해와 서해, 남해까지 3면이 바다이기에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요. 전남 고흥이나 당진에는 염해 농지가 많아요. 염도가 높아서 더는 농사를 못 짓는 땅이 되고 만 것이죠. 거기에 태양광 발전을 설치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앞바다에서는 해상 풍력을 해볼 수 있고요. 해상 풍력은 아직 한국의 기술이 선진적이라고 말하기 힘듭니다. 그러나 태양광은 충분히 해볼 만한 프로젝트가 되겠죠.이병한 : 시중에는 태양광 패널이 다 중국산이어서 중국에만 이롭다는 설도 있습니다.
윤태환 : 사실 중국산 패널이 성능도 좋고 가격은 더 싸요. 사업하는 입장에서는 중국제를 선호하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쓰는 상품들 가운데서도 중국제가 엄청 많잖아요. 그 중국화 되어 있는 공산품 시장 가운데 태양광도 있는 것이지요. 유독 태양광만 꼬집어 국산 타령하면서 딴지를 거는 데는 다른 이유가 있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과연 국산품을 보호하면 만사형통인가도 고려해 보아야 합니다. 오히려 기술력을 더 떨어뜨릴 수도 있어요. 앞으로 태양광은 세계적으로 성장할 잠재력이 큰 시장인데요. 국내 업체들도 경쟁력을 확보해야 해외 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중국과 인도와 미국 등 가장 큰 시장에서도 기술경쟁력과 가격경쟁력을 갖추고 경합할 수 있으려면 보호가 능사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병한 : 태양광도 풍력도 결국 천상자원인데요. 하늘의 변화, 기후와 날씨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작년에는 장마가 석 달 가까이 지속되기도 했잖아요. 간헐성의 제약은 어떻게 극복할 수가 있을까요?
윤태환 : 재생에너지 발전의 유일한 흠이죠. 햇볕의 내리쬠과 바람의 불어옴과 멈춤은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으니까요......(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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