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느닷없는 제안을 받았다. 초인종이 울려 나가보니 전력회사를 바꿔보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노동하지 않을 권리에 따라 일요일은 모든 매장이 문을 닫는 나라, 버스가 파업을 하면 단 한 대의 버스도 볼 수 없었던 나라, 대학등록금이 없는 나라, 임대 기간을 세입자가 결정하는 나라,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큰 나라, 핵 발전을 중단하기로 한 나라가 독일이었다. 우리와 많은 것이 달랐지만, 그때만 해도 독일의 전력산업이 전력망과 판매시장까지 개방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전력회사를 바꿔보라는 제안은 내게 사기꾼의 음험한 속삭임으로 치부되었고 얼른 문을 닫았다. 독일 학교 가족기숙사에 거주할 때 이야기이다. 독일에 거주할 때 나는 지역 에너지 공기업으로부터 1년에 한 번씩 전기요금 고지서를 받았다. 요금은 전년도 평균 사용량을 기준으로 평균 금액을 월별로 분납하고 당해 전력량을 1년 후에 정산 받는 방식이었다. 고지서에는 사용량과 요금, 100% 재생에너지라는 사실이 명기되어 있었다. 100% 친환경에너지라니! 감동이었지만, 전력회사를 선택해서 계약을 맺을 수 있다는 사실은 뒤늦게 인지했다. 고지서는 한전으로부터 발급받은 것이 전부였던 경험이 지역에너지공기업을 한전과 동일시한 것 같기도 하다. 전력회사 선택만이 아니었다. 전력 무역 적자라는 말도 독일 거주 당시 처음 들어보았다. 독일은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다시 탈핵 로드맵을 세우고 이행하고 있었다. 핵산업계는 그로 인해 전력 무역이 적자라는 흑색 모략을 일삼았고 독일 정부는 흑자 데이터를 보여주며 탈핵 정책을 방어해내고 있었다. 그런데 전력 수출입이라니? 삼면이 바다이고 북으로는 가로막혀있어 고립된 섬과 다를 바 없는 한국에서 살아온 나로서는 전력 수출입이란 말 역시 생경하기 이를 데 없었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독일 재생에너지 협동조합 쇠나우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상을 보면서, 쇠나우 협동조합이 배전망 사업권을 따내기 위해 의회를 설득하고 모금을 하는 과정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배전망 사업권을 왜 사야하지? 한전에서 하는 일 아닌가? 잘 못 알아들었나? 독일어 실력을 탓하고 있었다. 민영화 된 전력시스템임을 이해하고 나서야, 왜 그린피스 자회사에서 재생에너지사업을 하는지도 이해하게 되었다. 그들은 '당신의 콘센트에 연결된 전기가 무엇으로 생산된 전기인지 알고 있는지?'를 묻고 자신들이 공급하는 100% 재생에너지를 사용하라고 광고했다. 물론 이 선전은 한편으로는 맞고 한편으로는 아니다. 소비자가 재생에너지 공급회사와 계약을 맺으면 재생에너지로 만든 전기에 대한 요금을 지불하지만, 사용하는 전기는 석탄과 가스, 핵 발전, 태양광과 풍력으로 생산된 전력이 전력망으로 모아지고 분산되며 내 집안의 콘센트로 연결된 이른바 혼합 전기를 사용한다. 내가 독자적으로 생산한 전기를 사용하는 게 아닌 한, 재생에너지전력회사와 계약을 맺어도 깨끗한 전기만 내 집으로 흘러 들어올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물론 내가 지불하는 전기 요금의 양만큼이 재생에너지로 생산된 것은 분명하다. 소비자를 혼란에 빠뜨린다 생각되었지만, 광고는 그렇게 하는 것인가보다! 하며 넘어갔던 기억이다. 에너지전환을 주장하는 한 축에서는 재생에너지 요금제를 넘어 재생에너지 직접 구입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해왔다. 한전을 통해서만 전력을 구매하는 구조에서는 자사 제품을 100% 재생에너지를 통해 생산하고 납품해야 하는 기업 RE100 캠페인에 참여할 수 없고 이것이 기업에 불이익을 준다는 것이 주된 요지였다. 이제까지는 한전을 통해서만 전력 구매가 가능했고 발전사업자는 발전사업만 할 수 있었지만, 얼마 전 신재생에너지에 한해 발전사업자도 전력을 직접 판매할 수 있도록 전기사업법이 개정되었다. 물론 전력 직접 거래의 장이 열리는 것에 대한 우려 역시 만만치 않다. 2000년대 초반 중단되었던 전력산업 민영화의 포문이 재생에너지 확대라는 거부할 수 없는 흐름에 편승하여 열리는 것은 아닌지, 과연 공기업에 의한 전력판매사업 독점이 재생에너지 사업에 걸림돌로 작용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이견이 많다. 필수재인 전력을 공공성과는 거리를 둔 시장에 맡긴다는 것이 과연 재생에너지로의 전환 과정에서 에너지민주주의와 어떤 맥락을 함께하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 역시 여전히 유효하다. 독일을 비롯한 많은 나라들은 에너지전환을 위해 전력산업을 민영화한 것이 아니다. 이미 민영화 된 기반에서 거대 에너지기업의 사업 종목이었던 석탄발전, 핵 발전이 재생에너지 산업으로 넘어가는 중이다. 이미 재생에너지 발전단가가 더 저렴해지는 상황에서 산업이 기후변화와 핵 사고라는 위기에서 안전하고 청정할 뿐만 아니라 저렴하고 일자리도 더 많이 만들 수 있는 재생에너지로 넘어가는 것은 당연한 흐름이다. 전기와 같은 필수재를 민간영역에 둘 것인지 공적 영역에 두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은, 무엇이 에너지전환이 이루어야 할 에너지 공공성 강화에 기여 하는가에 대한 답에서 찾아야 한다. 기업 RE100을 완수할 수 있는 방법이 기업들의 오랜 숙원이었던 전력 판매 시장 개방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었는지, 오히려 거대 기업이 불공정한 시장경쟁에서 저렴한 재생에너지 전력을 독점하는 상황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닌지,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 그저 연료의 전환과 사업의 확장만을 의미하는 것이었는지는 다시 물을 필요가 있다. 모두를 위한 에너지전환의 길을 제대로 걷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은 빠진 것은 아닌지 되물어야 한다. 전력회사를 바꿔보라는 제안은 사기꾼의 속삭임도 아니었고, 그린피스에너지와 계약을 하면 내가 사용하는 플러그에서 나오는 전기가 재생에너지 100%라는 말도 용납되지 않아 우리는 계속 지역에너지공기업과의 계약을 유지하기로 했었다. 내가 사용하는 전기의 출처가 재생에너지 100%가 되려면 우리나라 재생에너지 발전비중이 100%가 되는 방법밖에 없다. 핵발전과 석탄발전을 끄고 재생에너지로 온전히 공급해야 가능한 일이다. 그 과정에서 시민이 직접 발전을 하고 발전사업자로 참여하고, 에너지협동조합과 같은 공동체 에너지의 힘으로 에너지전환을 추동해야 한다. 에너지전환이 발전원을 바꾸는 것에만 매몰되지 말고, 누구와 무엇을 위한 전환인가를 끊임없는 묻는 것, 에너지 공공성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 에너지전환의 곧은 길이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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