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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단번도약 스승은 뉴질랜드·대만·핀란드·코스타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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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한국의 단번도약 스승은 뉴질랜드·대만·핀란드·코스타리카 [단번도약, 북조선] 한반도의 단번도약. 2027년을 준비하자·끝

1. 새로운 역사는 세계화 세대부터

4월 27일, 새벽이다. 4.27 판문점 선언 3주년이 되었다. 2018년 봄이었다. 바로 그 해 2월에 귀국했다. 3년 간 유라시아의 거의 모든 나라를 다 가보았지만, 끝끝내 가보지 못한 곳이 북조선이었다. 그 북조선의 최고 지도자가 판문점을 내려온 것이다. 방명록에는 결단과 결심과 결기를 새겼다. "새로운 역사는 이제부터." 비스듬히 오른쪽으로 올라가는 특유의 필체에 30대 리더의 포부가 그득했다. "새로운 역사는 이제부터"는 그해부터 내가 애용하는 건배사가 되었다. 1978년생이니, 마흔이 되는 해였다. 다시 천일, 강원도 인제의 DMZ 평화생명동산에서 4.27를 맞이하고 있다. 강산은 적막하다. 3년 전의 그 환호와 환희는 온간 데 없이 사라졌다. 지난밤 휘영청 보름달만으로는 마음이 영 차오르지도 환해지지도 않는다. 냉정하게 시시비비를 따지자면 북보다는 남 탓이 더욱 크다. 지난 정권의 치명적 오판이었던 개성공단 폐쇄를 되돌려 재개하지 못했고, 동아시아 철도 공동체 운운하더니 남북철도 또한 단 1미터도 건설하지 못했다. 어영부영 2년을 어벙하게 흘려보낸 것이다. 태평양 건너 워싱턴 눈치를 보느라 역사상 가장 좋은 기회를 허송세월하고 말았다. 내 탓이요, 내 탓이요, 우리들의 큰 탓이로소이다. 돌아볼수록 장탄식이 새어나올 일이 아닐 수가 없다. 일반적인 정권교체가 아니었다. 촛불혁명으로 등장한 혁명정부였다. 그러나 애초부터 통 혁명적인 구석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초대 내각부터 그 면면이 전혀 참신하지 못하였다. 그때 그 사람들이 다시 등장했다. 나는 98학번이다. 나의 20대에 전성기를 누리던 이들이 2018년 귀국해보니 재집권한 형국이었다. 산업화, 민주화를 지나 새로운 역사를 열어내고자 했던 촛불혁명의 염원이 고작 정권교체, 여야교체에 그치고 말았던 것이다. 1980년대에 태어난 신세대들이 이끄는 북쪽에 견주어,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니던 선배들이 권력을 재탈환한 남쪽이 어쩐지 더 정체되고 지체되어 있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안타깝게도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 모양이다. 참다못한 20대들이 궐기하여 민주화세대를 몰아내고 있다. 2017년 한국의 대통령 선거는 멀리서 지켜보았지만, 프랑스의 대선은 현장에서 관찰해 볼 수 있었다. 1976년생 마크롱의 당선에 호의적인 평가를 내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돌아보노라니 역시 늙은 보수당과 낡은 사회당을 대체하는 세대교체만은 중차대한 성취였던 것 같다. 프랑스 헌법 제1조에 "생물다양성과 환경보호를 보장하고 기후변화에 맞서 싸운다."는 조항이 들어갈 것이라고 한다. 에코사이드(ecocide), 생태계 파괴를 범죄로 규정할 것이라고도 한다. 고속열차로 2시간 반 이내에 도달할 수 있는 거리의 항공노선도 전격 폐지하기로 했다. 인권선언으로 근대를 열어젖힌 나라가 앞장서서 자연의 권리도 법적으로 보장하는 미래형 생명문명 국가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기후 시민의회’의 역할을 첫 손에 꼽아야겠으나, 역시나 40대 대통령의 세대적 감수성 또한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좌냐 우냐, 진보냐 보수냐 따위의 산업사회형 구도를 단박에 탈피하여 다음 문명으로 단번에 도약한 것이다. 이미 현재 정권에는 기대할 바가 없는 고로 모두가 2022년 대선을 논하고 있지만, 나는 요즘 유난히 2027년을 생각하고 있다. 1987년으로부터 40년이 되는 해이다. 민주화 원년, 1987년에 태어난 아기가 마흔 살, 불혹에 접어들게 된다는 말이다. 즉슨 그만큼이나 오랜 세월이 흘렀다. 민주화는 이미 아득하고 아련한 20세기의 추억이다. 그러함에도 아직도 1987년에 붙들려 1980년대를 살아가고 있는 '선생님', '선배님'들이 적지 않다. 그래서 아직도 한가하고 안이하게 적폐청산 타령이나 읊조리고 있다. 그때 그 시절의 싸움을, 그 지긋지긋한 다툼을 30년도 모자라 40년째 이어가려고 하는 것이다. 그들의 그 적대적 세계관이야말로 20세기가 주조해낸 적폐의 정수임을 자각조차하지 못 한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허물어진다. 세상을 동과 서로 나누던 담장이 일순에 사라졌다. 바로 그 해에 탄생한 것이 WWW, 월드와이드웹이다. 벽을 대신하여 망으로 연결되는 디지털 신세계가 개창한 것이다. 1991년에는 소련마저 해체된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전면적으로 갈마드는 세계화 원년이 개막된 것이다. 1992년부터 대학생들은 배낭여행을 떠나기 시작한다. 1987년 민주화와 1989년 여행 자유화가 합류하여 이 땅에 배낭여행 1세대가 등장하게 됐다. 그들은 유럽부터 동남아까지 TV로만 보던 세상을 직접 누비기 시작한 세계화 원년 세대였으며, 방콕에서도 파리에서도 PC통신을 통해 한국과 소통하는 경험을 하기 시작한 디지털 1세대였다. 92학번, 그들이 벌써 쉰 줄에 이르렀다. 그 사이 한국은 세계적인 나라가 되었다. BTS부터 윤여정까지 세계적인 명사들을 꼽노라면 두 손이 모자랄 정도의 국가가 되었다. 더는 일본의 식민지, 미국의 종속국이 아니다. 경제적으로도 세계 10대 대국이며, 문화적으로는 세계를 이끌어가는 선도국가이다. 산업화세대의 공로로 부족함이 덜한 물질생활을 영위하게 되었고, 민주화세대의 공헌으로 아쉬울 것 없는 문화생활도 누리게 되었다. 두 세대가 이룩한 발판 위에서 나는 어느 나라 어떤 도시에 가도 환영받고 환대받으며 여행도 할 수 있었다. 고로 더 이상 보/혁으로 나뉘어 다툴 까닭이 전혀 없다. 산업화세대도 공이 7이다. 민주화세대도 공이 7을 넘는다. 박수 받아 마땅한 역사적 성취를 이루셨다. 다만 그때 그 시절의 경험 탓에 오늘날 한국의 위상에 걸맞은 발상과 상상력을 제시하지는 못한다. 지구적 아젠다를 제기하고 지구적 과제를 솔선수범하여 해결해나가는 지구적 리더십을 전혀 발휘하지 못한다. 2027년에는 기필코 반드시 완연한 세대교체가 이루어져야겠다고 생각하는 까닭이다. 명실상부 21세기 세력이, 지구를 경영하는 비전을 제시하는 지구세대가 대한민국의 리더십을 주도해가야 한다. 꼰대는 물러나라는 말이 아니다. 중앙을 비워달라는 뜻이다. 산업화세대도 민주화세대도 서울에, 수도권에 눌러앉았다. 부동산 문제를 비롯한 극심한 국토 불균형의 출발에 진보/보수를 막론한 중앙중심주의가 가로놓여있다. 귀농과 귀촌을 청년들에게 권할 일이 아니다. 그분들이 떠나오셨던 지방으로 되돌아가서 고향을 되살리는 일에 인생의 후반전을 걸어보시라는 말이다. 나라를 일으키기 위해 중앙과 중심에서 갈고 닦았던 실력과 노하우를 로컬의 재생과 재활에 결부시켜달라는 청이다. 개인적으로 인생의 후반전을 뜻 깊게 보내는 일이자, 피폐해진 지방을 되살려내어 나라에도 큰 보탬이 되는 의미 있는 과업이기도 할 것이다. 20세기형 과거세대들이 비워줄 중심과 중앙을 채워나갈 21세기의 미래세대는 인류의 과제를 해결해가는 미래문명의 선도국으로서 자각과 책무를 성실하게 수행해가야 한다. 고로 더는 20세기의 선진국을 따라가고 따라할 일이 아니다. 한국은 이미 일본에 못지않은 나라이다. 인도는 영국보다 경제규모가 큰 나라가 되었다. GDP로는 중국이 미국을 능가하는 날도 아주 멀지만도 않았다. 유럽이 아니라 아시아가 주도하는 오래된 미래가 다시 열리고 있다. 이 거대한 세계사적 대반전에 직면하여 인류가 가야할 미래문명의 모델을 남북합작으로 선취해나갈 수 있는 비전과 역량을 키워야 한다. 북조선의 단번도약에 참조할만한 나라가 스위스, 이스라엘, 싱가포르였다면, 남한의 단번도약에 참고해볼 만한 나라로는 뉴질랜드, 대만, 핀란드, 코스타리카를 꼽고 싶다.

2. 미래 국가, 미션 국가

뉴질랜드를 찾은 것은 2019년 연말이다. 2020년 새해 두 달을 남반구에서 보냈다. 지구법의 선도국가이다. 사람의 권리만 보장하는 나라가 아니다. 사람보다 먼저 자연이 있었다. 인간에 앞서 강산이 있었다. 강에도 산에도 법적인 권리를 부여했다. 자연권을 인권만큼이나 소중하게 보장해주는 헌법적 기틀을 다진 것이다. 원주민 마오리족의 세계관을 현대적 법학으로 진화시킨 것이다. 그때도 지금도 총리는 1980년생, 저신다 아던이다. 2017년 총리가 되었을 때는 37살이었다. 취임 이후 인상적인 장면을 연거푸 보여주었다. 결혼은 미루어두고 동거를 하고 있다. 첫 임기 중에 아기를 낳고 6주간의 출산휴가도 넉넉히 누렸다. 태어난 지 3개월 된 딸을 데리고 유엔총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무슬림 여성의 상징인 히잡을 두르기도 했다. 모스크에서 일어난 극우세력의 테러에 총리가 직접 히잡을 쓰는 파격적인 행보로 반이슬람 정서가 만연한 서구국가들과는 확연히 다른 뉴질랜드의 다양성과 통합성을 과시한 것이다. 의회에서는 아랍어 인사까지 하면서 다문명국가의 수장임을 한층 선명하게 드러내었다. 2018년 식민모국인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을 만날 때는 마오리족 전통 외투를 걸치기도 했다. 서구의 백인 남성이 득세했던 지난 200년이 마감되고 다문명 다문화가 공존하는 지구촌 시대가 열렸음을 여실하게 보여준 것이다. 실제로 의회 구성원들의 면면이 가히 ‘지구촌’을 방불한다. 태평양과 인도양 건너 라틴아메리카와 아프리카에서 이주해 온 의원들도 여럿이고, 스리랑카를 비롯해 태평양 도서 출신 의원들도 있다. 120명 의원 가운데 여성은 57명이고, 성소수자는 10%에 이른다. 20명의 장관으로 구성된 내각에서도 여성은 8명이고, 원주민 마오리족은 5명이다. 정부의 목표 또한 행복과 웰빙에 초점을 맞추었다. 더 이상 GDP 성장률에도 연연하지 않는다. 부탄이 정립한 행복지수를 바탕으로 아동 빈곤 해결과 지속가능한 환경, 디지털 역량 강화 등 구체적인 평가 지표를 마련하여 정책 수립과 예산 배분을 조정하고 있는 것이다. 기후위기 등 지구적 과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고 능력이 있고 기술이 있다면 3년 짜리 임팩트 비자(Impact Visa)를 발급하여 마음껏 실험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만국의 만인들에게 부여하고 있기도 하다. 디지털 일방으로 내달리던 실리콘밸리의 대항마로 디지털-그린-로컬이 상호진화하는 '임팩트 밸리'를 전 세계인의 지혜를 모아 다함께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 ⓒwikipedia
뉴질랜드만큼이나 코로나 팬데믹 방역에 성공한 나라로 대만을 꼽을 수 있다. 여기에는 1981년생, 디지털 장관 오드리 탕의 역할이 혁혁했다. 프로그래머이자 해커 출신으로 장관에 임명되었던 2016년에는 서른다섯 살이었다. 역대 최연소 장관이자 첫 번째 트랜스젠더 장관이기도 하다. 남자로 태어나서 여성으로 살아가기를 선택했다. 그녀는 일찍부터 신동 소리를 들으면서도 학교에서 따돌림에 시달리던 끝에 자퇴와 인터넷 독학의 길을 택했고, 그 후 10대에 창업해 큰 성공을 거뒀다. 학생과 직장인이라는 20세기형 인생 모델과의 급진적 결별을 주체적으로 선택함으로써 MZ 세대의 라이프스타일을 선구적으로 개척한 것이다. 성별마저 전환했음에도 디지털 장관으로서의 직무 수행에는 하등의 문제가 되지 않는다. 도리어 그 예민한 감수성과 빼어난 지성으로 미래의 인류사회가 직면한 가장 큰 과제인 디지털 민주주의를 선도적으로 실험하고 있다. 양안의 맞은편 중국이 14억의 압도적인 인구에 기초한 빅데이터로 '디지털 공산주의'라는 초유의 실험에 박차를 가하며 20세기형 민주주의의 대안을 모색하는 가운데, 대만이 디지털 문명과 새로운 민주주의의 결합이라는 전지구적 과제를 솔선수범하고 있는 것이다. 양안 간에 펼쳐지고 있는 대륙과 대만의 체제경쟁 2.0이 흥미롭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이다.
▲오드리 탕(唐鳳) 대만 디지털 장관. ⓒwikimeda
2019년 핀란드에서는 34세의 여성이 총리가 되었다. 1985년생, 산나 마린이다. 나이도 인상적이지만, 연립정부의 면모는 더더욱 흥미롭다. 20세기형 좌우, 보혁의 다툼은 그친지 오래이다. 산업사회에 기초한 진보/보수의 구도 자체가 적폐이다. 핀란드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과제(Mission)에 기초하여 내각을 구성했다. 자연스레 보혁과 좌우가 동거하는 무지개 정권이 되었다. 19명 장관 중에 여성은 12명이다. 12명 여성 중에 30대가 4명이다. 내무부와 교육부 등 요직을 30대 여성들이 진두지휘한다. 역시나 국정 과제에 GDP라는 말은 한마디도 등장하지 않는다. 경제성장은 더 이상 정부의 목표가 될 수가 없다. 기후변화와 세계화, 고령화를 핵심 과제로 설정했다. 핀란드는 일찍이 1990년부터 탄소세를 도입한 기후변화 선도국이기도 하다. 재생에너지의 비율도 절반에 육박할 만큼 모범적인 지표를 자랑한다. 그러함에도 국정 제1과제로 재차 기후위기 대처를 꼽은 것이다. 북유럽을 복지국가의 전범으로만 접근하는 것도 20세기형 진보의 편향이고 누습이다. 핀란드는 어느 나라보다도 기업 친화적인 정책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나 기후위기를 창의적으로 해결하는데 민간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전폭적인 지원을 한다. ESG로 상징되는 미래형 기업들에 국가가 앞장서서 대대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 그래서 4차 산업혁명에도 전혀 배타적이지 않다. 기술적 진보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평생학습사회로의 전환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백세 인생, 앞으로는 모두가 일생동안 거듭하여 배우고 익혀야 한다. 대학교 졸업장의 유효기간은 채 10년도 가지 못한다. 끊임없이 더 배우고(upskilling), 또 배우는(reskilling) 미래형 교육국가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산나 마린 핀란드 총리. ⓒwikipedia
기후위기를 타개하는 미래형 생명국가로 중남미의 보석, 코스타리카도 주목할 필요가 크다. 역시나 1980년생, 카를로스 알바라도가 대통령 직을 수행하고 있다. 이력부터 흥미롭다. 정치학자이자 언론인이었고 작가이기도 하다. 38세였던 2018년에 집권했다. 취임식에는 크리스타나 피게레스도 참여했다. 2015년 파리에서 열린 기후변화협약의 사무총장을 역임했던 그 또한 코스타리카 출신 여성이다. 코스타리카를 세계 최초로 군대를 폐지한 나라이자 생물다양성의 보고인 나라로 만들어가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전직 대통령의 딸이다. 실제로 알바라도 대통령 역시도 국정 제1과제로 '탈탄소 경제사회'를 내걸었다. 태평양과 대서양을 사이로 한 국토 전체에 전기 기차망을 구축해서 탄소 배출 없는 미래형 모빌리티 건설에 전념하고 있다. 이처럼 지구적 과제를 선도적으로 해결하는 과정을 학문적 체계로 정립해가는 세계 유일의 지구대학(EARTH UNIVERSITY)이 있는 나라가 코스타리카이기도 하다. 20세기형 낡은 지표의 상징인 GDP로는 코스타리카의 순위가 까마득히 아래쪽에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21세기형 행복과 웰빙과 생명지수로 따지자면 G7에 들고도 가장 앞쪽에 자리할 것이다. 마침 2021년 올해는 코스타리카 독립 200주년이다. 스페인의 식민지였다. 그러나 스페인을 따라간 것이 아니라 독자적인 사상과 지향으로서 세계에 자랑할 만한 독립국가를 이루었다. 뉴질랜드 역시 영국의 식민지였다. 그러나 한때의 대영제국보다 더 다양한 문명과 문화와 인종을 아우르는 21세기형 지구촌 국가를 만들어내었다. 대만 역시 일본의 식민지이자 미국의 동맹국이었다. 일본보다 훨씬 더 문화적 감수성이 세계적이며, 디지털 민주주의에서도 미국을 월등하게 앞서가는 실험을 하고 있는 선도국가가 되었다. 달리 말해 20세기형 세계관에서 저만치 탈피하여 미래문명을 향하여 성큼성큼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정녕 18세기형 동양과 서양, 19세기형 서구와 비서구, 20세기형 북반구와 남반구의 구획은 옛말이 되었다. 동서남북이 심대하게 재편되고 있는 대반전의 티핑포인트를 지나가고 있는 것이다.
▲카를로스 알바라도 코스타리카 대통령. ⓒwikimedia
그런데도 '좌빨'이니 '토착왜구'니 20세기형 레토릭을 구사하면서 상대방을 험담하고 자신들의 존재근거를 세우는 적폐들이 적지 않다. 아직도 여전히 저편을 때리며 이쪽의 세력을 최대한 동원함으로써 표를 구하고 경제적 이익까지 취하는 쌍팔년도식 정치문화를 답습하는 논객들도 여럿이다. 대학생이 된 1998년 이후로 20년 넘도록 지켜본 바, 그들이 정치권력과 문화권력을 누려서는 미래로 나아갈 가능성이 하나도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2022년 대선이 채 1년도 남지 않은 현재 거론되고 있는 인물의 면면을 보니 다음 5년도 크게 기대할 바가 되지 못한다고 하겠다. 그래서 더더욱 2027년을 제대로 준비해야 한다. 1987년으로부터 40년. 2027년부터는 지구적 과제를 선도적으로 해결해가는 지구경영국가로서의 비전을 갖춘 지구세대들이 전면적으로 등장해야 한다. 남쪽이 물갈이 되어야 북쪽과의 협력도 판갈이, 패러다임 전환이 가능해질 것이다. 민족주의적 지평이 아니라 세계적 지평에서 인류의 과제를 해결해가는 남북실험으로 진화해갈 수 있을 것이다. 올 겨울방학에는 코스타리카에 가기로 했다. 생명문명 선도국가의 실험을 눈여겨 살펴보고 돌아올 것이다. 내년 여름에는 핀란드에 갈 것이다. 헬싱키 근방에 조성되고 있는 북유럽형 스마트도시, '주민참여형 리빙랩'이라고 하는 칼라사타마의 실험을 관찰하고 올 작정이다. 내년 겨울에는 오랜만에 대만에도 가보려고 한다. 디지털 신세계가 가상적으로 구축하고 있는 메타버스에 정체 상태를 답보하고 있는 민주주의가 어떻게 결합하여 진화할 수 있을지를 연구해볼 계획이다. 한국이, 한반도가 단번에 도약하기 위해서는 그만큼이나 뜀틀의 구름대 또한 다채롭고 견고하게 만들어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직도 19세기말 유길준이 <서유견문>에서 그렸던 서방국가들이 세계를 이끌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여지껏 20세기형 선진국 G7 국가들이 미래를 열어가고 있는 것처럼 오판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결단코 그러하지 않다. 이미 세계적 국가의 반열에 오른 대한민국이 참조하고 학습해야 할 나라들의 목록은 한참이나 달라졌다. 지구의 미래와 전체 인류의 과제를 선구적으로 해결하고자하는 미션 국가(Mission Oriented Government)들을 주목해야 한다. 뉴질랜드, 코스타리카, 핀란드, 대만 같은 작은 나라들이 그러한 미래형 미션국가라고 하겠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이다. 북조선의 단번도약만큼이나 남한도 단숨에 비약해야 하겠다. 새로운 역사는 세계화 세대부터, 2027년을 명실상부 '한반도의 21세기'를 여는 '다른백년'의 원년으로 준비할 일이다. 일파만파 월드와이드웨이브(world wide wave)의 진동을 일으키는 생명문명의 허브/허파가 이 땅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단번도약, 북조선' 연재는 이번 글로 마무리됩니다. 그간 '단번도약, 북조선'에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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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한
20대는 사회과학도였다. 서방을 선망했고, 새로운 이론의 습득에 골몰했다. 30대는 역사학자였다. 동방을 천착하고, 오랜 문명의 유산을 되새겼다. 자연스레 동/서의 회통과 고/금의 융합을 골똘히 고민했다. 그 소산으로 1000일 <유라시아 견문>을 마무리 짓고 40대를 맞이했다. 개벽학자이자 지구학자이며 미래학자를 지향한다. 인간 이전의 자연적 진화는 물론이요, 인간 이후의 자율적 진화에, 인간만의 자각적 진화를 두루 아울러야, 지구의 진화에 일조할 수 있는 미래학자의 자격이 갖추어진다고 생각한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공진화, 하늘과 땅과 사람의 공진화, 생물과 활물과 인물의 공진화, 만인과 만물과 만사의 공진화, 개벽학과 지구학과 미래학의 공진화, 이 모든 것을 아울러 깊은 미래(DEEP FUTURE)를 탐구하는 깊은 사람(Deep Self), 무궁아(無窮我)이고 싶다. www.byeongh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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