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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 안정을 위해 수십 년짜리 빚쟁이가 되길 자청해야 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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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 안정을 위해 수십 년짜리 빚쟁이가 되길 자청해야 하는 사회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그렇게 세입자가 된다

청년 1인 가구의 세입자 정체성을 삭제시키는 사회

유흥업소나 유령회사에 다닐지도 모르는 청년들이 우리 옆 동네에 입주하게 되는 걸 용납할 수 없다며 기숙사와 공공임대주택을 반대하던 목소리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민달팽이유니온이 생기던 2011년에도, 10년이 지난 2021년에도 청년과 가난한 자에 대한 혐오는 서울, 경기도, 충청도를 비롯한 그 외 수많은 지역에서 여전하다. 자산의 격차가 곧 삶의 격차로 이어지는 사회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롯한 사회 구성원으로 자립하고자 하는 청년들의 첫 독립이 늘 위태로울 수밖에 없는 것은 바로 이 변함없는 차별 때문이다.

이 차별은 어떻게 가능한가? 부담 가능한 주거비로 쾌적한 주거환경을 누리며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삶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대체 어떤 연유로 차별받는가?

위와 같은 청년주택 반대를 이유로 건축 자체가 지연 또는 무산되면 이로 인해 주거 상향이 늦춰지는 대상은 주로 청년 1인 가구다. 이들은 왜 더 나은 주거를 누릴 권리를 부정당하는가? 청년 1인 가구의 존재가 불완전하고 한시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것, 그런 미완의 존재들이 모여 사는 공간이 지역에 생기는 것을 동네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것으로 치부하는 이유는 사실 그들이 곧 세입자이기 때문이다.

청년 1인 가구는 대체로 누군가의 집을 빌려 살고 있으며, 어떤 주택을 소유하고자 하는 실수요자이기에 앞서 지금 당장 세입자로 존재하고 있음에도, 이 정체성은 계속해서 삭제되거나 되레 혐오의 근거로 쓰인다. '라떼는(나 때는) 말이야'를 비롯해, '더 노력해서 더 좋은 직장에 들어가라'거나, '징징거리지 말고 부모의 집으로 돌아가라'거나, '이럴 시간에 주식이나 코인 등을 공부해서 한탕 해내라'는 메시지들로 둘러싸인다. 청년 1인 가구에게도, 세입자에게도 주거 안정을 꾀할 권리가 있음을 인정하는 말을 듣기란 여간 쉽지 않다.

주거 안정을 위해 수십 년짜리 빚쟁이가 되길 자청해야 하는 사회

다양한 불안 요소가 도처에 흩뿌려져 있는 현대 사회에 이제 막 내던져진 청년 1인 가구들에게 주거 안정이란 언젠가 획득하고 싶은 목표이자 영영 해결하기 어려운 지상 최대의 과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무엇이 주거 안정을 저해하는지, 혹시 어떤 권리가 침해되고 있지는 않은지, 구조적으로 벌어지는 불평등을 해소할 방안은 없는지에 대해 주목하는 언론이나 정치인을 만나는 것은 행운과도 같다.

'지옥고(반지하, 옥탑방, 고시원)' 문제를 겪고 있다며 청년들의 주거 문제를 한껏 소비하던 주체들은 이제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았다'를 줄인 말)' 담론을 내세우며 청년들이 더 쉽게 빚지고 집을 구매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더 많은 개발과 공급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한다. 시장에는 더 많은 돈이 풀리고, 유동성이 높아진 자본들은 더 비싸고 더 많은 집을 향한 연료로 쓰일 것을 모두가 알고 있음에도 말이다. 집값은 계속 오르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보증금과 월세도 덩달아 오른다. 그 누구도 섣불리 임금소득으로 집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기 어렵다.

그런데 그 높은 집값과, 그런 집을 소유하고 있지 못해 겪는 다양한 주거 불안과 권리 침해들이 정녕 개인이 노력해서 극복해야 하는 몫인가? 과거부터 보유한 자산이 충분하지 않을지언정, 이 자산의 격차가 곧 삶의 격차로 이어지고, 차별받는 이유로 작동하는 것이 이치에 맞는가? 주거 안정을 위해 은행으로부터 빚을 져야만 하는 것이 합당한가? 자가를 마련할 정도의 자산을 가족으로부터 증여받지 못한 나는 마침내 집을 소유하게 될 때까지 불안에 떨어야만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인가? 정녕 주거 사다리에 오르지 못한다면, 미래의 나는 주거 안정을 보장받지 못하고, 쾌적하고 안전한 주거 환경을 영위할 수 없게 되는가?

세입자 권리를 생략하는 것에 익숙한 사회

민달팽이유니온은 2011년부터 청년 주거권 보장과 주거 불평등 완화를 위한 활동을 해오고 있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청년 1인이 홀로 민간 임대차 시장에 놓이게 됐을 때 겪는 다양한 권리 침해와 불평등의 장면들을 드러내는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저 혼자 역행하는 청년 주거 빈곤율을 비롯해 타워팰리스보다 비싼 고시원 월세 등을 드러내는 활동을 시작으로, 청년들이 일상 속에서 당연한 것처럼 침해당하고 있는 주거권을 주목해왔다.

주거 불안을 개인의 몫으로 남겨두지 않기 위해 다양한 현장과 당사자들을 대면하고 있노라면, 어쩐지 이 사회가 청년 1인 가구들에게 바라는 것이 자신의 정체성을 '세입자'라고 깨닫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세입자에게도 주거는 권리로 보장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도록, 그저 잠재적 자가소유자 또는 임대인으로 사고하게끔 하는 것인 아닌가. 세입자에게 가해지는 권리 침해들을 세입자의 '서러움'이라는 서정적 표현으로 뭉개고 있는 것은 아닌가.

주택임대차계약서는 세입자로 자기 정체성을 획득하게 되는 청년들이 얼마나 불균등한 정보와 권력 앞에 홀로 놓이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서류다. 이 계약서 안에는 버젓이 위반건축물로 공급되는 집 답지 못한 집, 누가 관리하는 지도 모른 채 일단 달라는 만큼 지불해 온 관리비, 정주할 권리를 주장하기 어려운 거주 기간,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과 함께 덩달아 오르는 보증금과 월세 등이 한꺼번에 담겨있다. 한 장짜리 계약서 안에 얼마나 많은 세입자들의 권리가 함부로 다뤄지고 있는지 가늠조차 어렵다. 다양한 청년들을 대상으로 계약서와 관련한 교육을 다닐 때마다 듣는, '등기부등본이나 건축물대장이 무엇인지 설명 한 번 받지 못하고 공인중개사가 가리키는 칸에 이름 하나 서명하고 말았다'는 이야기는 이제 클리셰(cliché, 진부한 표현)이다.

위반건축물이 아닌 집을 찾기 어려운 대학가 신(新)쪽방촌, 코로나19 이후 더 취약해지는 일자리와는 상반되게 꼬박꼬박 오르는 보증금과 월세, 이유 모르게 덩달아 오르는 관리비 등을 주목하는 행정가나 정치인을 만나는 것은 몹시 드문 일이다. 되레 대출을 풀고, 더 많은 빚을 더 오래 짊어지게 될지라도 우선 자가 마련할 수 있는 청년들을 더 많이 확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 주목받는다.

대출 규제를 왜 풀어야 하는가? 개발은 왜 계속되어야 하는가? 재개발과 재건축은 왜 촉진되어야 하는가? 어떤 청년의 삶이 어떻게 나아져야 하기 때문인가? 그 영향으로 다른 누군가의 삶이 더 악화될 여지는 없는가? 2021년 한국 사회에서 세입자로 살아가는 청년 1인 가구는 왜 지금 당장의 권리 침해를 해결하기 위해 수십 년의 미래를 저당 잡혀야 하는가? 여전히 질문은 해소되지 않는다.

주거 안정, 성공적인 삶의 도착점이 아닌 인간다운 삶의 출발점으로 존재해야

인스타그램에는 부동산 투자를 통해 삶의 안정을 찾으라는 광고들이 줄을 잇는다. 빚을 져서 집을 사고, 월세를 받으라 한다. 사회 초년생도 할 수 있단다. 어떤 사람은 빚을 져서 집을 사고, 그 집에 세 들어 사는 사람의 보증금으로 약간의 빚을 상환하고, 남은 만큼의 이자를 은행에게 월세처럼 지불한다. 아주 나중에 집값이 오르면 더 많은 보증금 또는 월세를 받을 수 있고, 되팔면 또 이득이니 얼른 뛰어들라고 말한다.

빚을 지는 사람의 삶과 세 들어 사는 사람의 삶은 생각보다 연결되어 있다. 전자에 해당하는 어떤 사람은 집값이 떨어질 것을 불안해하고, 혹시 이자가 오를까 봐, 세입자를 제때 구하지 못해 진작에 보증금으로 대체했던 빚을 다시 메꿀 방법이 없을까 봐 불안할지도 모른다. 후자에 해당하는 사람은 세입자이기 때문에 권리가 없는 것처럼 여겨지는 구조 속에서 일상 자체를 불안하게 영위한다. 공정한 거래를 통해 계약한 내 거주 공간에서 생활하고 잠들고 있으면서도, 내 집을 꿈꾼다. 정녕 주거 불안은 그 자체로 해소될 수 없는가. 주거 안정은 세입자로 살면서는 영영 누릴 수 없는 꿈인가. 정녕 빚을 져서라도 집을 사야만 하는가. 그럼 그 삶은 진정 안정적인가.

집을 재산으로 갖고 있지 못한 사람에게도 주거권이 당연한 권리로 보장되는 사회를 기대한다. 언젠가는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세입자 정체성은 삭제시킨다고 해서 없어질 것이 아니다. 민달팽이유니온은 앞으로도 청년층의 당사자 연대를 자처하며, 세입자 네트워크를 꾸려나가고, 집을 자산 증식 수단으로만 보지 않는 비영리 주거 모델을 실험하고, 주거취약계층들이 겪는 권리 침해와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활동을 함께 해나갈 것이다.

* 내가만드는복지국가는 의제별 연대 활동을 통해 풀뿌리 시민의 복지 주체 형성을 도모하는 복지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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