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오샤와 사례를 통한 시사점
제너럴 모터스사(GM)가 한국에서의 철수결정을 내렸을 때, 캐나다에서 가장 큰 공장이 있던 오샤와(Oshawa)시의 노동자들도 생산중단을 통보받았다. 오샤와시는 전형적인 자동차 공업도시로 주민들 다수가 자동차 공장에서 일했고, 대를 이어 일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미 2009년에 제너럴 모터스사는 캐나다 정부에 108억 캐나다 달러의 구제금융을 받았음에도 2018년에 다시 생산중단을 발표했다. 그러면서 오샤와 지역에서는 1만5천개 이상의 직/간접 일자리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여기까지는 한국의 상황과 비슷하다. 그런데 오샤와의 노동자들은 지역의 연대조직들과 함께 ‘오샤와녹색일자리(Green Jobs Oshawa)’라는 단체()를 만들고 공장을 활용할 방법을 모색했다. 오샤와녹색일자리는 현안에 대한 관점부터 명확히 했다. 해답을 쥔 해결사가 아니라 문제를 일으키는 당사자로 제너럴모터스사를 지목했고, 외국의 공장들과 경쟁하는 건 과거의 실패를 되풀이할 뿐이니 대안은 사회가 필요로 하는 제품을 생산하는 것이고, 단지 일자리가 아니라 캐나다의 제조업 역량을 유지해야 한다는 명분을 세웠다. 그리고 오샤와녹색일자리는 대안을 구체화하는 보고서를 만들었다. 이 보고서는 조립공장을 폐쇄하는 대신 캐나다정부가 시설을 인수해 전기자동차(BEV)를 생산하면 5년 이내에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40만 톤 감축하고 1만3천개 이상의 일자리를 만들어 4년 이내에 정상화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공장 인수에 필요한 공공투자는 14~19억 캐나다 달러 정도인데, 제너럴모터스가 구제금융을 받고 30억 캐나다 달러를 갚지 않았으므로 추가비용 없이 캐나다 정부가 인수할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정부가 필요한 관용전기자동차, 특히 우편차량이나 앰뷸런스 등을 생산하자고 주장했다. 대안적인 전망으로는 꽤 구체적이었지만 한국만큼이나 캐나다에서도 노동자들이 이런 대안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고, 캐나다 연방정부나 온타리오주정부도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와중에 오샤와 공장에서 많은 노동자들이 해고되었고 공장에서는 GM의 차량 부품을 제조하는 생산라인만 운영되었다.그러다 2020년 코로나19 전염병이 유행하고 캐나다에서도 마스크를 비롯한 개인보호장비(PPE)가 많이 부족했다. 오샤와녹색일자리는 공장의 생산라인을 활용해 마스크와 개인보호장비를 생산하자는 캠페인을 시작했고 실제로 공장에서 마스크가 생산되었다(자동차 회사의 마스크 생산능력에 관해서는 다음 기사를 참조. (자동차 공장에서 마스크와 인공호흡기를 만든다?). 이 과정을 통해 캐나다의 제조업 역량을 유지하고 사회가 필요로 하는 제품을 생산한다는 오샤와녹색일자리의 대안이 설득력을 얻게 되었다. 캐나다의 시민단체인 The Council of Canadians는 오샤와녹색일자리의 공동세미나에서 저탄소 경제로 전환하려면 공공서비스와 제조업의 변화가 필요하고 오샤와공장이 좋은 계기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여전히 오샤와에 살고 있는 숙련노동자들이 빈 공장을 잘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오샤와녹색일자리는 캐나다간호노조연맹(CFNU)과 온타리오 병원노조(CUPE), 캐나다 공공부문노동자연맹(Canadian Union of Public Workers)과 공동성명서를 발표하며 정부를 압박했다.
캐나다 정부는 지금도 노동자들의 요구를 받아들이고 있지 않지만 2020년 연말에 제너럴모터스사는 2022년부터 오샤와공장에서 픽업트럭과 전기차를 생산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렇지만 공장으로 돌아갈 수 있는 노동자는 1,400~1,700명에 정도이고 노동조건도 예전보다 나빠졌다. 결과만 보면 엄청난 성공사례처럼 보이지 않는 오샤와 사례를 언급하는 이유는 두 가지 때문이다. 첫째는 노동자들이 공적인 의제를 주도했다는 점이다. 오샤와녹색일자리는 먹튀를 일삼는 제너럴모터스사를 해결책에서 빼고 온실가스 감축과 사회적으로 유용한 생산, 제조업 역량 유지와 같은 공적인 의제를 만들었다. 오샤와녹색일자리는 공공소유모델을 지향했고, 지역사회의 다양한 공공부문을 강화시키고 일자리를 확장시키려 했다. 코로나19에 따른 마스크와 개인보호장비 생산은 이런 대안이 유효하다는 것을 각인시킨 사건이었다. 둘째로 정의로운 전환이 직접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전기차를 생산하기로 한 것은 기후위기에 대한 캐나다의 여론을 의식한 것이었다. 앞서 언급한 대안 보고서는 캐나다인의 72%가 캐나다를 위한 녹색 뉴딜을 지지하고, 84%가 전기자동차의 정부조달을 지지하며, 67%가 2030년까지 내연자동차의 판매를 금지하고 싶어한다는 여론조사를 언급한다. 즉 오샤와녹색일자리는 일자리와 환경이 분리될 수 없다는 점을 인지했다. 이것은 기후위기에 대응하려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을 노동의 연대세력으로 끌어들였다.한국에서는 누가 주도할까?
2018년 제너럴모터스사가 군산공장을 철수하고 현대중공업의 군산조선소가 가동을 중단했다. 정부와 노동조합을 위협하던 GM이 빠진 자리를 지금은 명신, 에디슨모터스, 대창모터스, MPS코리아, 코스텍같은 기업들이 채웠고, 상생협약을 바탕으로 '전북 군산형 일자리'가 만들어져 전기차 클러스터가 조성되고 있다. 클러스터 내 모든 기업의 노조가 지역공동교섭을 하고 이 내용이 사업장별로 적용되어 사실상 임금관리위원회가 5년간 임금범위를 강제하는 방식은 처음부터 논란을 빚었다. 그렇지만 일자리는 노동자들이 상생협약을 받아들이도록 만들었다. 초국적기업 대신 중견기업 중심으로 전기차 클러스터를 만들었으니 이것은 성공한 사례일까? GM이 빠질 때 국유화 방안이 잠깐 얘기되긴 했으나 일터를 어떻게 전환하겠다는 노동자들의 구상도 잘 보이지 않는다. 전환 과정에서 단체행동권을 제약받는 노동자들의 힘은 더 약화되었다고 볼 수 있고, 실제로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전기차를 생산하고 있으니 온실가스를 감축하는데 기여한다고 주장할 수 있지만, 전기차 클러스터는 성장동력으로 얘기되지 정의로운 전환의 과정으로 얘기되지 않는다. 그래서 기업과 정부는 사회적으로 이로운 제품 생산보다 생산능력을 높여 수출에 힘쓰겠다고 부르짖는다. 무엇을 어떻게 생산하고 공동으로 소유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아직 구체적으로 시작되지 않았다. 군산의 경험으로 본다면 한국의 정의로운 전환은 어떤 경로를 갈까? 노동조합, 중앙/지방정부, 기업, 지역사회는 제각기 어떤 경로를 만들까? 정의로운 전환은 사회와 환경, 경제의 통합적인 접근을 요구하고, 이것은 노동자와 작업장의 변화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며 사회적으로 필요한 물품과 서비스를 생산하는 과제는 노동조합의 능력을 넘어선 과제이다. 그런 만큼 해당 기업이나 노동자들만이 아니라 이런 전환을 준비하는 주체들은 다양해야 하고 투입되어야 할 자원도 다양한 경로로 마련되어야 한다. 지금은 노동자들이 생태계와 사회에 이로운 물품과 서비스의 생산을 지역사회와 함께 고민하고, 지역사회가 정부와 기업을 압박할 정치와 소비의 힘을 조직한다는 초안 정도만 나와 있다. 누가 누구와 함께 어떤 방식으로 정의로운 전환을 주도할 것인지에 대한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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