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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징그럽게 오래 했네. 그런데 더 센 놈이 오네"...이스라엘 '극우 총리' 등장 의미는 [김재명의 '월드 포커스'] 15년 집권 네타냐후와 극우 새 총리 베네트, 둘 다 문제

"징그럽게 오래 했네. 그런데 더 센 놈이 새로 오네"

예루살렘의 유대인 친구 조슈아는 오늘 아침 이메일에서 이렇게 탄식했다. 15년 2개월 동안 이스라엘 총리를 지내다 물러나는 베냐민 네타냐후(71)와 차기 총리 내정자로 극우 성향을 지닌 나프탈리 베네트(49)를 두고 하는 말이다. 내각책임제인 이스라엘에서 새로운 연립내각이 1주일 안에 들어설 참이다. 유대인 친구 조슈아는 이스라엘 정치 지형상 좌파인 노동당을 지지하는 자칭 '평화주의자'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바라는 땅을 돌려주고, 이스라엘에게 아쉬운 '평화'를 되찾아야 한다고 믿는다. 조슈아가 이메일에서 욕을 섞어 내린 결론은 "이 XX놈들이 정치권에서 웅크리고 있는 한 중동 평화는 어려울 텐데..."라는 한탄이다.

"우릴 죽이는 것도, 살려두는 것도 네타냐후"

그렇다. 네타냐후가 '이스라엘의 최장수 총리'라는 기록을 지녔지만, 명예로운 기록이라고 떠벌일 일은 아닐 것이다. 그가 총리로 있던 나날들은 약소민족인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피와 눈물로 얼룩진 기간이기도 했다. 뛰는 집값과 물가 불안, 취업난 등 이스라엘 국내 문제가 불거지면 그는 팔레스타인과의 긴장도를 높여 정치적 위기를 피해나가려 했다. 유혈분쟁으로 정치생명을 이어나간 '피묻은 손'을 지녔다는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같은 맥락에서, 네타냐후의 정치생명을 이어준 것은 지중해 해변의 가자(Gaza) 지역을 사실상 '해방구'로 삼고 이스라엘에 맞서온 저항세력인 하마스(Hamas)라고 말할 수 있다. 국내정치 상황이 꼬일 때마다 네타냐후는 하마스와의 유혈 분쟁 강도를 높이는 꼼수를 부리곤 했다. 그에 따라 높아진 이스라엘 국민적 지지도를 바탕으로 자신의 정치생명을 이어왔다. 이스라엘의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볼 때,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점령하고 하마스 세력을 궤멸시키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렇게 하질 않는 까닭은 무엇일까. 가자지구 현지 취재 때 만났던 하마스 간부들은 "우릴 죽이는 것도 네타냐후이고, 살려두는 것도 네타냐후다"라고 말했다. 네타냐후를 비롯한 이스라엘 강경파들이 정치적 이익을 챙기려고 하마스와의 분쟁을 이용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유혈 분쟁을 이로운 정치적 자산으로 여긴다는 얘기다.

정치적 필요에 따른 전쟁 거듭하다 낙마

최근에도 그랬지만, 이스라엘은 걸핏하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침공하거나 폭격을 하고, 봉쇄정책을 강화함으로써 많은 피해를 입혀 왔었다. 가자지구 현지 취재 때 만난 므카이마르 아부사다 교수(알라자르 대학, 정치학)는 이스라엘의 가자 침공을 가리켜 '정치적 필요에 따라 일어난 정치전쟁'이라 비판했다.

"이스라엘이 궁극적으로 노리는 것은 하마스 붕괴가 아니다. 팔레스타인 내부의 권력 공백은 이스라엘의 국익에도 도움이 안 된다. 잇단 전쟁을 통해 보다 약해진 하마스를 만들어내 이스라엘 안보에 대한 위협을 줄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팔레스타인의 2대 정파인 파타(Fatah)와 하마스가 서로 믿지 못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팔레스타인 내부의 분열과 갈등을 부추김으로써 이스라엘의 점령정책을 보다 편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네타냐후의 대팔레스타인 강경정책과 그에 따른 유혈 분쟁이 이어지면서, 이스라엘 유권자들도 피로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네타냐후로는 중동의 평화를 가져올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한 공감대가 점점 커나갔다. 이스라엘 국내 경제도 실업과 집값 등 여러 어려운 문제들에 부딪치자, 네타냐후에 대한 지지도는 줄어들었다. 그런 분위기 아래 지난 3월 치러졌던 총선에서 네타냐후의 리쿠드 당은 30석을 얻는 데 그쳤다. 늘 그래왔듯이 네타냐후는 다른 보수-종교 정당들과 합쳐 120석 이스라엘 의회(크네세트)의 과반수(61석)를 확보해 연립정부의 수장으로 정치생명을 이어가려 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실패했다. 네타냐후는 안 된다는 분위기 아래 군소 정당들이 뜻을 모았고, 6월 2일(현지시간) 그의 퇴임이 사실상 굳어졌다. 네타냐후는 수뢰, 배임, 사기 혐의로 재판을 받아왔다. 그 가운데는 할리우드 영화제작자로부터 뇌물을 받아 챙긴 혐의도 들어있다. 총리직이라는 보호막이 벗겨진 그가 형사처벌을 받게 될 가능성은 훨씬 높아졌다.

노선이 불투명한 무지개 연정

이번 새 연립내각의 중심 인물은 원내 제2당으로 중도 성향의 예시 아티드 당(17석)을 이끄는 야이르 라피드이다. TV 앵커 출신인 라피드는 끈질긴 물밑 협상력을 발휘, 9개의 군소 정당들을 설득해 최대 68석을 모아 연립내각을 출범시킬 참이다. 새 연정에 참여한 정당들을 보면 극우, 중도, 아랍계 정당들을 모두 아우른다. 극우 성향의 야미나(7석), 우파 성향의 뉴 호프(6석), 중도 우파 성향의 이스라엘 베이테이누(7석), 중도 성향의 청백당(8석), 온건 좌파 성향의 메레츠(6석)과 노동당(7석), 아랍계 정당 연합 조인트 리스트(6석)와 또다른 아랍계 정당 라암(4석) 등이다. 새 연립정부는 한마디로 정치적 스펙트럼이 매우 넓다. 그래서 무슨 색깔이라고 말하기가 애매하다. 이스라엘 언론도 이를 가리켜 '무지개 연립정부'라는 표현을 쓸 정도다. 네타냐후 쪽에서 '정치적 야합'이라고 비난하는 것도 엉뚱한 얘긴 아닐 듯하다.
▲ 이스라엘의 극우 정치 세력으로 분류되는 야미나의 나프탈리 베네트(오른쪽) 대표와 예시 아티드의 야이르 라피드(왼쪽) 대표가 연정에 합의하고 2년씩 총리를 맡기로 했다. ⓒAFP=연합뉴스

네타냐후보다 더 극우 성향

문제는 극우 강경 성향의 나프탈리 베네트(49세)가 차기 총리에 오른다는 점이다. 7석뿐인 군소정당 야미나의 당수가 어떻게 총리에 오를 수 있을까. 제2당인 예시 아티드 당 지도자로서 이번 새 연립정부를 출범시키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라피드의 끈질긴 물밑협상 덕분이다. 라피드는 연립내각 출범 요건인 과반수 61석을 채우려는 일념으로, 베네트에게 달콤한 제안을 내놓았다. 이른바 순번제 총리직 제안이다. 베네트가 먼저 총리직을 2년 동안 맡고, 2023년에 자신이 총리가 되겠다는 얘기였다. 베네트로선 마다할 이유가 없다. 최근 2년 사이에 4번의 총선거를 치를 정도로 혼돈을 겪어온 이스라엘 정치권에서 베네트는 최대 수혜자가 된 셈이다. 베네트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그 잔혹성으로 악명 높은 이스라엘군 최정예 특수부대인 '사이렛매트칼' 장교 출신이다. 2006년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공해 엄청난 인명살상과 환경 파괴를 저질렀을 때 예비역 장교로 전투 현장에 투입됐다. 그가 이스라엘 정계에 첫발을 들여놓은 것은 네타냐후의 보좌관으로서였다. 네타냐후 총리 밑에서 경제, 교육 등 여러 부서의 장관직을 맡았다. 네타냐후와는 2018년에 갈라섰다. 국방장관직을 맡겠다고 나섰다가 들어주지 않자 딴살림을 차렸다. 베네트가 속한 정당 '야미나'는 '주이시 홈', '독실한 시온주의자 당'같은 극우-종교 세력이 모여 만든 군소정당이다. 이런 성향의 이스라엘 정치인들에게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그리는 중동 평화의 그림은 없다.

아랍계 정당과의 마찰 가능성

네타냐후가 정치적 멘토인 셈이지만 베네트는 더 극우 성향을 지녔다. 2015년 교육부 장관으로 있을 때엔 이스라엘 인권-평화 활동가들이 학교 강연자로 나서는 것을 금지해 논란을 부르기도 했다. 이스라엘판 블랙 리스트를 만든 셈이다.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에서 유대인 정착촌을 늘려나가야 한다는 입장을 공공연히 밝히기도 했다. 베네트의 극우 성향과 지난날 이력은 앞으로도 논란거리가 될 것이다. 아랍계 정당(팔레스타인 원주민 출신으로 이스라엘 시민권을 지닌 유권자들의 정당)인 조인트 리스트가 이번 연립내각 구성 참여를 놓고 내부 진통을 거듭한 것도 그 때문이다. 영국 방송 <BBC>가 조인트 리스트(6석)를 뺀 8개 정당이 연합해 62석으로 전체 의석 120석의 과반을 넘겼다고 보도한 것도 이런 사정에서다. 만에 하나 같은 아랍계 정당인 라암마저 연립정부 구성에 불참하겠다고 돌아선다면? 과반수인 61석을 채우지 못할 것이고, 이스라엘 정치권은 또다시 선거를 치를지도 모른다. 총리직에서 물러나는 네타냐후는 혹시라도 그런 혼돈의 시나리오가 펼쳐지길 간절히 바랄 것이다.

정착촌 문제로 연립내각 무너질 수도

이스라엘의 새 연립정부 출범을 앞두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어떤 생각들을 하고 있을까. 네타냐후의 15년 장기집권이 막을 내렸으니 평화를 누리길 기대할까. 나아가 이스라엘과의 협상을 통해 그토록 바라던 독립을 이루고, 내친 김에 194번째 유엔 회원국으로 가입할 수 있으리라 여길까. 그렇진 않다. 네타냐후의 후임자로 더욱 강성 성향의 인물이 나선다는 소식을 이미 들은 이상,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근거 없는 희망 고문으로 스스로를 힘들게 하진 않을 것이다. 새 총리 베네트는 "나는 민족 간 증오와 갈등을 정치 수단으로 활용하지는 않겠다"고 말했다고 알려진다. 이는 어디까지나 정치적 수사로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지난날 베네트의 이력을 보면, 네타냐후와 마찬가지로 팔레스타인의 피를 먹고 배를 불린 정치인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서안지구의 유대인 정착민들은 극우 강성 총리의 등장 소식을 듣자마자 환호성과 더불어 박수를 쳤다는 소식이다. 극우-중도-좌파의 연합이란 불안정하기 그지 없다. 언제라도 정책과 이해관계의 충돌로 말미암아 연립내각이 무너지고 다시금 총선을 치르게 될 수도 있다. 특히 유대인 정착촌 확장문제를 비롯한 대팔레스타인 점령정책 문제로 아랍계 정당들과 갈등을 빚고 연립내각이 깨질 가능성이 높다. 총리직에서 물러나는 네타냐후는 그런 날이 하루라도 빨리 오길 바랄 것이다. 자신이 형사 처벌을 받고 최악의 경우 교도소로 가는 처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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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명
김재명 국제분쟁 전문기자([email protected])는 지난 20여 년간 팔레스타인,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시리아 등 세계 20여 개국의 분쟁 현장을 취재해 왔습니다. 서울대 철학과를 나와 <중앙일보>를 비롯한 국내 언론사에서 기자로 일했고, 미국 뉴욕시립대에서 국제관계학 박사과정을 마치고 국민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2022년까지 성공회대학교 겸임교수로 재직했습니다. 저서로 <눈물의 땅 팔레스타인>, <오늘의 세계 분쟁> <군대 없는 나라, 전쟁 없는 세상> <시리아전쟁>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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